63.동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미국 너구리 사진입니다. 우리나라 너구리와는 달리 도둑질하러 온 사람처럼 가면이 아주 뚜렷하게 보입니다. 미국에서 살 때 뒤뜰에 자주 나타나던 녀석인데, 나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면서 '언제 이 집을 털어야 되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사진 너구리의 표정을 볼 때면 '동물은 전혀 생각할 줄 모르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지능을 의심하게 됩니다. 저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계산하고 있는 표정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동물학자인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인 내가 하는 이야기는 일반인이 하는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즉,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집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은 흔히 자식 자랑하는 것처럼 "우리 집 개가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말합니다. 개를 키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개가 내 감정을 읽고 또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동안 우리 집 개가 임신했다고 얼마나 유세를 떨었는지 모릅니다. 한밤중인 새벽 2시에도 배고프다고 나를 깨웠습니다. 옆에 와서 끙끙대면, 나는 "야, 좀 전에 먹었잖아" 하고 대화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동물이 생각이 없는 기계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다만 그 사실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입증해 내느냐,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동물행동학입니다. 그리고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다 보면 그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다 볼 수 있습니다. 내 책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의 소제목 중 하나도 '동물 속에 인간이 보인다'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잘못하면 성경을 액면 그대로 믿는 기독교 신자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욕먹기 십상입니다. 창세기 제1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만은 특별히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다른 동물들이 모두 자연의 선택을 받는 동안, 우리 인간만 홀로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수적인 기독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면 인간이 동물하고 같다는 거냐"고 흥분합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동물하고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인간이 굉장히 특별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고 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긁적이게 됩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럼 우리는 식물인가요? 동물이 아니라고 하면, 이분법적으로는 식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무생물이겠지요. 분명히 우리는 움직여 다니는 동물인데, 왜 동물이라고 하면 기분 나빠 하는 것일까요? 그럴 이유가 없는데 말입니다. 물론 인간은 굉장히 특별한 동물입니다. 하지만 동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생물의 계통을 잡아 주고 분류하고 명명하는 분류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그 생물이 언제 어떻게 진화해서 분화되어 나왔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생물의 계통을 분류합니다. 먼저 분화되어 나온 생물을 나중에 분화되어 나온 생물군과 분류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딱정 벌레 네 종류를 놓고 분류한다고 했을 때, 그중 공통조상에서 진화되어 오다가 제일 먼저 분화되어 나온 딱정벌레가 나머지 딱정벌레들과 충분히 다르다고 생각되면 그 딱정벌레를 분리해서 다른 과로 묶어 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먼저 분화되어 나온 순서로 분류해 나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제일 나중에 분화되어 나온 딱정벌레만을 따로 빼내고, 그 이전에 분화되어 나온 것들을 한꺼번에 묶어 놓는 것은 분류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분류의 기초를 모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장류가 포함되어 있는 분류표에서 예외가 생깁니다.
분류표에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사람, 이렇게 네 동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류표에서는 제일 늦게 분화된 사람을 따로 떼어 놓고,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를 한꺼번에 묶어 놓았습니다. 분류의 원칙상 틀린 분류라는 것은 생물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차마 자존심이 상해서, 털 달린 영장류와 같은 집안에 묶이기가 싫어서, 틀린 것을 알면서도 그냥 두 눈 딱 감고 따로 떼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고 있습니다.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가 거의 99% 같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전자의 99%가 같다면, 정말 많이 비슷한 동물입니다. 물론 그 1% 남짓이 굉장한 차이를 만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제 유전자 차이가 단 1%밖에 안 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총 균 쇠>라는 책을 쓴 UCLA의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책인데, 여러분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다른 저서로 <제3의 침팬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도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그는 우리 인간을 가리켜 '제3의 침팬지'라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침팬지와 굉장히 비슷한 종이 또 하나 있습니다. '피그미침팬지'라고도 하고, '보노보'라고도 부릅니다. 예전엔 그냥 평범한 침팬지라고 여겼는데, 침팬지와 피그미침팬지는 다른 종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분류표에 침팬지, 피그미침팬지 그리고 '제3의 침팬지'인 인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털이 조금 없는 침팬지입니다.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정말로 침팬지입니다. 양쪽 손 다 손금이 가로로 일자인데, 이것이 바로 침팬지 손금입니다. 침팬지인데 털 깎고 여러분 옆에서 수십 년 동안 숨어서 잘 산 것입니다. 대학 교수도 되고, 강의도 하는 그런 침팬지입니다.
침팬지는 손금을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입니다. 우리 인간과 참으로 비슷합니다. 뇌의 형태로만 보면 인간의 뇌와 거의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비숫합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동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고요. 과학적으로 볼 때 우리는 분명 동물입니다. 침팬지와 굉장히 가까운 동물이지요.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중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 이야기
최재천 지음
첫댓글 동물아이큐1위~10위
침팬치,범고래,돌고래,코끼리,돼지,강아지,고양이,호랑이,까마귀,앵무새 라는군요~^^
7위인고양이가50정도
개가60,돼지가65정도~~^^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침팬치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