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방에서 새벽에 눈을 떴다. 3월, 고국의 꽃샘추위는 토론토 날씨 못지않게 매섭다. 방바닥을 데우는 보일러 덕분에 마치 온돌방에 자리를 펴고 누워있는 듯하다. 엄마가 잠자던 싱글 침대에는 남편이 곤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토론토에서 서울까지 14시간 비행으로 아직 피곤하지만, 다시 잠들기는 그른 것 같다.
여러 가지 상념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내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엄마 때문인가 보다. 이 방에서 초점 잃은 눈동자를 하고 몇 개 남지 않은 치아로 간신히 음식물을 씹고 있던 엄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만나면 나를 알아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두어 해 전, 요양원 입소를 거부하는 엄마에게 캐나다에서 전화로 언성을 높여가며 윽박질렀다. 제발 자식들 걱정 그만 끼치고 시키는 대로 하시라고. 엄마는 그날 종일 버티셨다. 그러다 다음날 곧장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나는 죄책감에 마음이 아렸다. 그때 나 역시 결심했다. 자식이 나를 돌보기 힘들어 하면 기꺼이 내 발로 요양원에 들어가리라고.
주인 없는 방에서 한 사람이 사용하던 가구와 물건을 바라보는 느낌은 참 묘하다. 특히 그 주인이 이곳에 돌아오기 힘들 거라는 상상을 하면 더 그렇다. 무심코 낡은 플라스틱 서랍장을 여닫으니 부스러진 조각이 우수수 떨어진다.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무엇이든지 과감히 잘 버리는 나에 비해,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엄마는 수명이 다한 것들을 여태껏 가지고 있다. 반짇고리와 그 안에 들어있는 실패들도 쓸만한 게 거의 없다. 누렇게 변색된 흰 실을 버리려다 멈췄다. 유효기간이 훨씬 지난 화장품 샘플은 왜 이리도 많이 챙겨 둔 건지.
대부분 50년은 족히 넘은 가구와 물건들이 엄마의 방을 채우고 있다. 버려야 할 것과 남아야 할 것이 뒤섞여 있다.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들이다. 검은색 앉은뱅이 자개 화장대 앞에 앉았다. 이것을 들여놓던 날, 기쁨에 들떠 아이 같았던 엄마의 표정이 어슴푸레 기억 난다. 이제는 서랍 손잡이와 자개 장식도 여러 군데 떨어져 나가서 볼품없지만, 엄마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보물 1호였음에 틀림없다. 화장대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친다. 그 속에 정성 들여 화장하는 엄마의 옛 모습도 아른거리는 듯하다.
할머니가 물려 준 100년도 더 된 머릿장이 빛을 잃은 채 귀퉁이에 놓여 있다. 주인의 손길에서 벗어난 티가 역력하다. 엄마는 몸통뿐 아니라 경첩과 손잡이 부분까지 늘 윤이 나게 반들반들 닦았다. 나와 함께 머릿장을 닦을 때마다 독하게 시집살이를 시켰다는 할머니의 뒷담화를 하곤 했다. 그토록 미워하던 시어머니의 유품인데 뭐 하려고 광을 내며 정성을 쏟은 것인지. 엄마 역시 집안의 가보로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유행이 한참 지난, 바퀴 없는 트렁크 2개가 눈길을 끈다. 아버지의 유품이다. 아버지는 저 가방을 들고 자주 외국을 드나들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한편으론 많이 부러워했던 듯싶다. 두 분이 저 큰 가방을 들고 함께 여행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화장대 위에 군복 차림의 아버지 영정사진이 엄마의 방을 응시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한결같은 모습으로 엄마를 지켜봤으리라. 맞은편 침대 위에 엄마의 칠순맞이 가족 사진이 금박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걸려 있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 이민 오기 3일 전에 찍은 기념 사진이다. 20년전 얼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엄마는 어쩌면 사진 속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이별의 아픔을 삭이곤 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추억이 담겨있던 물건을 불필요하다고 여겨 과감하게 정리한 내 행동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방을 차지하고 있는 낡은 가구와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잠자고 있던 나의 기억 세포를 깨우는 것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먼 훗날 나처럼 회상에 잠길지도 모를 자식을 위해 몇 점이라도 남겨 둘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삶에는 이따금 후회와 모순이 따르는 법인가 보다. 엄마같이 망각의 시간이 찾아올 때까지 살고 싶지 않지만, 엄마가 치매 걸린 모습으로라도 살아계신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하니 말이다.
엄마의 글이 보고 싶다. 글을 보면 엄마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곳저곳 샅샅이 뒤져 보지만 엄마가 쓴 일기는커녕 메모지 한 장 발견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엄마에게 편지를 받아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가 제정신일 때 왜 한 번이라도 글쓰기를 권고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엄마의 꿈과 현실 사이엔 어떤 괴리감이 있었는지 궁금한 것이 많은데... 더 이상 소통이 불가능한 엄마의 속내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마냥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이 많은 물건 중에 무엇을 유품으로 간직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엄마가 즐겨 끼던 반지? 목걸이? 그런 것은 가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엄마는 정신이 온전할 때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인 내게 무얼 남기고 싶어 했을까? 이 방에 머무는 동안, 엄마가 가장 잘 느껴지는, 엄마를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물건 하나라도 찾아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화장대 서랍에서 내가 오래 전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찾았다. '사랑하는 엄마에게'라고 쓰여진 글자가 유난히 정답게 다가온다. 이 카드를 받고 흐뭇했을 엄마의 미소가 어느덧 내 입가에도 감돈다.
첫댓글 주인없는 엄마의 방을 둘러보며 회상에 잠긴 딸의 심정을 어쩌면 이렇게도 잘 묘사하셨나요?
읽고나서 시간이 지나도 먹먹함의 여운이 가시질 않네요.. 저도 엄마의 유품중 단 하나 지녔던 브로바 손목시계를 차고다니다가 끈이 끊어져 잃었을때 주저앉아 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어떤거라도 하나쯤은 정수님이 간직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엄마가 살아계신 모든 분들이 저는 부럽습니다..
살가운 딸로서 살아온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글을 통해 지나간 시간에 머물러 보는 방법밖에 없군요.
제 글을 따듯한 시선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딸의 인생에서 엄마는 영원히 함께 걷는 존재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실감합니다. 엄마가 걸어가신 길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인지도 모르기에, 엄마의 나이를 살면서 때늦은 회한에 젖게 됩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제게서 가끔씩 발견되는 엄마닮은 움직임, 외모, 그리고 성격을 마주칠 때 멈칫하곤 합니다.
유연훈님의 말씀, 마음에 잘 담아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미숙 이에요.
늦봄이 다시 온듯한 오후,
정수 님의 수필을 읽으니
제 가슴으로 아리하게 안겨
왔네요. 우리들에게 엄마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지요.
정수님 덕분에 제 어머니를
떠오르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미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손으로 이곳에 창작 글을 처음으로 직접 올리게 되어 감회가 남다릅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댓글로 격려까지 해주시니 그 기쁨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궂은 날에도 변함없이 카페를 지켜오신 선생님같은 분이 계셔서 정말 든든합니다.
이곳이 활성화되어 우리 문협회원들이 맘껏 창작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김정수님의 글 감사히 읽고 다녀 갑니다 어머님의 낡고 바랜 소중한 시간들이 카드에 베어 있겠지요. 읽고 또 읽으며 딸을 그리워 하신 어머니, 주름진 손 때 묻은 카드가 눈에 선합니다. 정수님! 늘 건강히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유 명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비대면 상황에서 이렇게 인사 드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
엄마의 손 때묻은 카드를 서랍장 속에 다시 두면서 엄마가 다시는 읽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 저몄습니다.
코로나19가 내년이면 물러가길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선생님께서도 항상 건강유의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언젠가는 다가올 일들이라 착잡한 마음으로 읽었어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때가 되면 그럴수 있을까 싶어요. 80세 되도록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있는 부모님께 새삼 고마움이 샘 솟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작년 고국방문을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하는데 그저 멀뚱하게 바라보던 엄마의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아요.
이제 코로나로 엄마 소식조차 제대로 들을 수가 없네요.
오늘이 친정 아버님 팔순이시더군요. 축하드려요~♧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니 축복입니다.
이곳을 통해 자주 소통할 수 있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한동안 엄마의 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한숨 길게 내쉬고 그 방에서 나올 수 있었네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먹먹해지던 느낌이 부스스 일어납니다. 부모와 자식은 가장 사랑으로 이어진 관계지만, 한결같을 수는 없기에 가끔씩 애증이 겹치기도 하죠. 그래서 더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 지 모르지만, 그런 사랑의 연결고리에 삶이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이 선물처럼 느껴지네요.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저 역시 엄마의 방에 갇혀 빠져 나오기 힘들었답니다.
글쓰기란 어찌 보면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너머를 바라보게 해주는 듯합니다.
사랑의 연결 고리에 삶이 흘러간다는 말씀, 선물처럼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안계신 어머니 방에서 느끼는 따님의 마음이 잔잔히 가까이 다가옵니다.캐슬뷰 양로원 봉사를 오랫동안 가고 있는데 어르신들 뵙고 오면 항상 저의 삶을 돌아 보게 됩니다.저 분들도 젊은 시절이 계셨고 꿈을 꾸며 활발하게 움직이시던 시절이 계셨는데...싶은 생각으로 더욱 마음이 숙연해지곤합니다.어머니께서 그러시군요.김정수님의 어머니께서 잊어버리신 기억 가운데서도 살아 계심이 위로와 힘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활발하게 문협에서 활동하시며 섬겨 주심도 감사합니다.
두 차례 화상회의를 통해 만나뵐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삶이든 관계든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영원하리라는 믿음 또한 살아있는 동안 가능한 것이겠지요.
엄마의 방에서 결국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물건이 아니라 기억이었나 봅니다.
고국 신문에 캐나다생활을 기고하시고 이곳에서 봉사활동 하시면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 한마음 가득 응원하며 감사드립니다.♡
김정수 선생님 안녕하세요
에드몬톤 김숙경입니다
화상에서 뵈어 반가웠습니다
글 읽으며 내내 짠하고 멍멍해졌습니다
편찮으신 엄마라도 살아 계시면 축복입니다
저는 엄마가 하늘 가셨거든요
그리움이 썰물처럼 밀려올 때가 간간이 있답니다
엄마의 추억이 되는 어떤 것이라도 소장하시면 좋을실 것 같습닏다
그리움 속에 사는 우리는 또 다른 그리움을 물려주게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예현 선생님, 저도 화상회의에서 만나뵐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에드먼튼은 절친한 친구가 살고 있기도 해서 남다른 곳입니다. 오래전 한번 방문하기도 했고요.
그리움 속에 사는 우리는 또 다른 그리움을 물려주게 된다는 말씀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밤입니다.
오늘은 이곳도 에드먼튼 못지 않게 종일 눈이 내렸네요.
눈만큼 아름다운 그리움을 가지고 잠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