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11. 26 주일예배설교
인생에서 흉년을 만날 때(룻기 1:1-5)
Ⅰ. 서론
하나님의 자녀는 인생의 환난(흉년)이 면제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인생의 흉년과 환난은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참으로 지혜로운 인생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생의 흉년과 환난을 맞이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행하는가? 아니면 인간적인 계산으로 행동하는가?에 달려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인생의 환난(흉년)을 대처하는 지혜를 배우기 원한다.
Ⅱ. 본론
1. 흉년의 원인 - 하나님의 징계: 범죄한 당신의 백성을 돌이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
→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시대에 약속의 땅 가나안 전역에 임한 흉년(1절)
* 흉년의 극심함의 증거
1)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의 한 가정이 모압으로 이주한 것을 볼 때(1, 2절)
유다 - ‘찬송’, 베들레헴 - ‘떡집’, 에브랏 - ‘풍성한 수확’이라는 뜻. 따라서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이 살던 곳은 찬송이 넘치고 먹을 것과 수확이 풍성한 장소였다.
2) 자식들의 이름을 절망적으로 지은 것을 볼 때(2절)
두 아들 말론은 ‘병든’, 기룐은 ‘쇠약한’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징계로 가나안 땅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나오미가 영양부족인 상태에서 아이들을 낳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 해결책 - 신앙으로 반응해야 함(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징계를 달게 받는 것)
'엘리멜렉'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이다. 이는 엘리멜렉이 태어날 때 그의 부모가 지어 준 이름으로서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던 사사시대에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할 정도로 그의 부모의 신앙심이 깊었다는 것을 드러내 주며 엘리멜렉 또한 그의 부모 신앙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나오미'는 '나의 기쁨' 또는 '나의 아름다움'이란 뜻입니다. 그의 부모가 이런 이름을 붙여준 것은 나오미가 그녀의 부모에게 기쁨을 안겨 주는 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이름을 고려해 볼 때, 엘리멜렉의 가정은 좋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복된 가정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들은 그 믿음을 계승하고 믿음으로 반응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불신앙적으로 반응했다.
▶ 그 증거? 엘리멜렉이 자신이 살던 땅에 흉년이 들자 가족을 데리고 기근을 피해 이방 땅 모압으로 간 것이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불신과 또 하나님의 징계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피해 보고자 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3. 불신앙의 결과? 가문의 몰락, 불행
그러면 이 가정의 불신앙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잠시 기근을 피해 잘살아보겠다는 그들의 꿈대로 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의 인생은 순탄하지는 않았다. 이민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죽고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된다(3절).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두 아들을 장가보낸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잠깐이었다. 모압생활 10년 즈음에 두 아들 말론(‘병든’)과 기룐(‘쇠약한’)도 죽고 만다(5절). 여자들만 남게 되는 비참한 과부일가를 이루게 된다. 결국 모압생활 10년만에 나오미의 가정은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이민 갈 때의 나오미 가정의 기대와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나오미의 인생에 남은 것은 허탈과 텅빈 삶이었다.
* 그러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 그것은 인생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해결하지 않고 인간적인 계산으로만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 근거▶ 그 땅(베들레헴-‘떡집’이라는 뜻)에 흉년이 들자 그들이 취한 행동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풍요한 이방의 땅 모압을 향해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특히 잠시라도 불신앙적으로 반응하면 안 된다. 잠시가 장기간 갈 수 있고, 그것은 결국 더 큰 불행을 낳는다.
엘리멜렉의 가정은 모압에서 잠시 거주하려고 했지만(1절), 그들은 그곳에서 10년 이상을 지내면서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4-5절).
* 그러면 도대체 나오미 가정의 선택은 과연 무엇이 잘못인가?
그들은 그 땅에 흉년이 들었지만 약속의 땅에 거하며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믿음보다도 물질의 풍요를 따라 모압 땅을 선택했다. 믿음을 잃어버릴 위험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모압 땅은 어떤 곳인가? ‘그모스’ 신을 섬기는 지역 - 예배의식에 성적인 충동을 일으키고, 복을 받기 위해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지역, 따라서 그곳으로 옮기면 모압 족속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모압 지역 말고도 얼마든지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보다는 안일과 부를 따라 움직였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잘 살아보겠다는 그들의 꿈은 완전히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현상유지는 커녕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았고,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단명하고 말았다. (오호통재라!) 그 비참함을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 좀 힘들어도 믿음 따라 사는 것이 복임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사는 것이 복임을 기억하라. 왜? 때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이다(6절).
예) 창 26:1-16 이삭의 이야기
그가 살던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함→ 1차적으로 블레셋의 그랄에 거함→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 땅에 거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심→ 순종→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아내 리브가를 여동생이라고 속이다가 그랄 왕에게 빼앗길뻔한 위기도 있었음→ 그러나 그 땅에 거하자 하나님께서 모든 위기에서 건져주시고, 그 땅에서 농사하여 백배나 얻는 복을 받았고, 마침내 거부가 되고 강성해졌다. 심지어는 그들이 시기하고 두려움을 느껴 떠나가라고 할 정도였다.
혹시 여러분의 현재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주님을 떠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는가? 그러나 주의하라. 주님을 떠나면 나오미처럼 처절한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 또한 이미 나오미처럼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지는 말라.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주님께로 돌아가라.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고통과 환난의 삶으로부터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Ⅲ. 결론
여러분! 혹시 지금 삶 가운데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가? 그러나 너무 쉽게 그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하지 말라.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나님 앞에서 죽겠다는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반드시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인생의 어려움과 환난을 이기는 힘을 주실 것이다.
예화) 미국의 재벌 <하이드 알버트 알렉산더> 이야기
그는 1887년, 미국의 경제 공황 때에 자신의 소득 중 십분의 구를 하나님께 드렸던 독실한 신자였다. 그는 공황 중에도 하나님께 서원한 헌금을 드리기 위하여 집을 팔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조롱했다. 그러나 그는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던 믿음을 본받아 확신 있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의 음성을 듣고 1889년 맨소래담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때도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조롱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이드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공황 중에도 그의 사업은 번창하여 맨소래담은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회사로 성장하였고, 오늘까지도 견실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변함없이 의지하는 믿음을 소유하므로 결국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나오미의 가정은 흉년으로 인해 살아가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며 믿음으로 반응했다면 해결의 돌파구가 열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조금’을 참지 못해 그만 약속의 땅을 떠나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비록 힘들고 삶이 여러분을 속일지라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라. 그래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 주시고, 환난과 흉년을 평안과 풍요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