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0-13)
2006.7.28(서울제일교회 금요예배)
“10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12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0-13)
1. 하나님을 만나야 산다.
불신자는 물론이고 때로 신자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삶이 힘들게 느껴지고, 때로는 하나님이 내게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며, 마음에 어둠과 부정적인 생각들(우울, 근심, 패배주의적인 생각들, 무가치한 느낌, 의기소침, 영양가 없는 비교의식들, 열등감 등)이 파도쳐 올 때가 있다. 그렇다면 정말 하나님이 멀리계실까? 그렇지 않다. 그분은 내게서 멀리 계시지 않다. 가까이 계신다. 내 곁에, 내 안에 계신다. 죽음과 골짜기와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분들에게 사는 방법을 나눈다.
본문 말씀은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기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와서 부르짖음으로 기도하고, 더 깊이 만나기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12~13절 말씀에 “12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온전한 만남이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와서 기도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기 원하시는 이유는 우리와 만나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은 곧 여호와를 만난다는 것이다.
왜 이처럼 여호와를 찾고 만나야 하는가? 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 안에 참된 평안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말씀과 유사한 말씀들이 성경에는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 성경전체가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말씀이며, 그 유일한 방법이 십자가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4)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는 이유는 곧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꿈이요, 희망이요,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생명의 포도나무되신 우리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만 밖에 버리워 밝히고 불태워질 뿐이다(요 15:5-6).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5-6)
2. 전심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이 자리에 함께 하신다. 우리 안에 계신다.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가까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사람을 주님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주님을 만나지 못할까? 그 차이가 뭘까? “전심으로”라는 말을 주목하라. 전심은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만 구하는 것이다(투명, 동기의 순수성). 전심은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만 소망 두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 목적이 아니라 주님을 목적 삼는 마음이다. 갓난 아기가 온 힘을 다해서 엄마를 찾으며 울 듯이 하나님만을 찾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전심이 아니다. 믿기는 믿는데 온 마음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믿고, 경험에 따라서 믿고, 심지어 내가 듣고 싶은 말이나 내 생각에 맞는 말씀들만 골라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으면 만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그리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하나님만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셨기 때문에 또는 해주면...이 아니라,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기준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구약시대에 제사 드릴 때, 하나님은 흠 없고 점 없는 제물을 원하셨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내 마음의 온전함을 원하신다(헌금이 제물이기 이전에 헌금을 통해 바쳐진 나의 마음이 제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갖는 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이다. 이것이 전심이다.
3. 주님을 찾으라. 주님을 구하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고, 전심으로 찾지 않는데 이차적인 이유가 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이라는 찬송의 가사에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온 맘과 정성 다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예)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설교자) 오직 주님만이 내 삶의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보기 원합니다.
(다같이)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라. 전심으로 주를 섬기지 못하고 두 마음을 품었던 것, 청결치 못했던 것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라.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하나님을 찾으라. 사랑을 고백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