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습니다. 무신론자와 다른 종교의 사람들은 물론 창문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일부는 신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국가 교회의 지도자보다 많은 것을 더 명확하게 지적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This piece is written exclusively with Christians in mind. Atheists and those of other religions are of course welcome to peek in through the window, and in fact part of me suspects that many who do, though disagreeing with the theology, will perhaps see the points being made more clearly than many of our national church leaders.
교회 역사상 이토록 많은 교회들이 폐쇄된 적이 없었습니다. 교회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이 그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2,000 년의 교회 역사에서 주님의 만찬이 그토록 오랫동안 오랫동안 중단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 놀라운 상황의 몇 주 후에, 우리는 한 두 명의 저명한 교회 지도자들의 몇 가지 불평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너무 모호하기 때문에 사도행전 5 장에서 사도요한과 사도 베드로가 산 헤드린에서 선언한" 우리는 사람에게 보다 하나님께 더욱 복종해야 한다,"는 귀절을 마음에 담습니다. 그때문에 영국의 보리스 존슨과 매트 핸콕의 자의적이고 비이성적인 통치가 자행될 때 우리는 독립 선언으로 갔음이 마땅합니다.
Never before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have so many churches been shut for this long. Never before in the history of the church have God's people failed to meet together in such great numbers for so long. Never before in 2,000 years of church history has the Lord's Supper been suspended for so long for so many.
After weeks of this startling situation, we have started to hear a few murmurings from one or two prominent church leaders. However, most of it is so insipid that it bears the same sort of resemblance to John and Peter's declaration to the Sanhedrin in Acts 5 - "We must obey God rather than men" - as Boris Johnson and Matt Hancock's arbitrary and irrational rules bear to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예를 들어, 최근 트윗에서 우스터 주교 John Inge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확하게 청소되고 감독되는 교회에서 기도하기 위해 조용히 앉아있는 사람의 위험은 반드시 슈퍼마켓으로 가는 여행보다 크지 않은가요? 그것이 필경 적은 위험에 불과하다면, 그 사람과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은 훨씬 클 것입니다. 나는 왜 교회를 오픈하는게 허용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
모순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진술에 자신이 대답을 했다 그는 기독교를 사적인 개인주의 관습으로 축소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명령 선을 완전히 받아들여서 그 조치가 쇠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그문제는 그런 수준이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 더보세요here).
For instance, in a recent Tweet, John Inge, Bishop of Worcester had this to say:
"The risk to a person sitting quietly to pray in a church which is properly cleaned and supervised is surely not greater than a trip to the supermarket? The benefits to that person and countless others will be much greater, though. I wonder why churches not being allowed to open?"
Ironically, he answered his question in his own statement. Not only does he reduce Christianity to some private, individualistic contemplative affair, buthe does so wholly accepting the Government line that its measures were essential to avoid being decimated. Which they were not(more on that hereand below).
좀 더 자세히 살펴 보자. 주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교회는 왜 열리지 않습니까? - 세 가지 기본 이유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1.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인 예배 corporate worship는 하느님의 명령이 아니라 비 필수적이고 사교 모임과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2. 교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건강한 사람들을 몇 주 동안 (성서적 가르침과는 달리) 격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3. 우리는 균형 감각을 잃었습니다.
Let's look at this in more detail. In answer to the Bishop's question - why are the churches not allowed to open? - I would give three basic reasons:
For many Christians, corporate worship is seen as non-essential & something like a social gathering, rather than a command from God.
The church has fallen for the notion that quarantining healthy people for weeks (contrary to biblical teaching),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was vital.
We have lost our sense of proportion.
자, 이것들을 하나씩 다루겠습니다.
예배의 중심
그리스도인을 위한 예배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돌아가는 허브이며,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입니다. 성서는 우리가 함께 일하고 책임을 지는 신자들과 함께, 주일에 따라 하나님의 날을 숭배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약속한 사람이 충실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희망의 고백을 굳게 잡자. 우리는 서로의 습관을 잃지 않고 사랑과 선한 일을 위해 서로를 동요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날이 가까워짐에 따라 서로를 격려하며 (히브리서 12 : 24,25)
So let's deal with these one by one.
The Centrality of Worship
Worship, for the Christian, is - or at least should be - central to all we do. It is the hub around which our lives revolve, it is the engine that makes the car go. The Bible commands us to worship God Lord's Day by Lord's Day, together with a body of believers with whom we are in fellowship with, and to whom we are accountable:
"Let us hold fast the confession of our hope without wavering, for he who promised is faithful. And let us consider how to stir up one another to love and good works, not neglecting to meet together, as is the habit of some, but encouraging one another, and all the more as you see the Day drawing near." (Hebrews 12:24,25)
기독교는 결코 사적인 일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세주이시며, 죄인을 위한 속죄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오른편으로 올라가서 모든 것을 그의 복종 아래에 놓을 때까지 통치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요일에 사적인 종교의 확장이나 사회 모임으로서 교회에 가는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간다 :
"주님, 온 땅에 기뻐하십시오.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 노래로 그분의 임재로 오십시오! "(시 100 : 1-3)
Christianity is not, and never has been a private affair. It is a public declaration that Jesus Christ is the Saviour of the World, that he died on the Cross as the atonement for sinners, that he rose bodily from the dead,
and that he ascended to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where he shall reign until he has put all things under his subjection. And because it is this, we do not go to church on a Sunday as an extension of some private religion, nor as a social gathering, but primarily to give glory to the Triune God:
"Make a joyful noise to the Lord, all the earth, Serve the Lord with gladness! Come into his presence with singing!" (Psalm 100:1-3)
우리는 큰 기쁨과 감사로 육체적으로 함께 해야합니다.
"오셔서 주님께 노래합시다. 우리의 구원의 바위에 즐거운 소리를 냅시다! 감사함으로 그분의 임재를 시작합시다. 찬양의 노래로 그에게 기쁜 소리를 냅시다! "(시편 95 : 1-3)
We are to do this physically together, with great joy and thanksgiving:
"Oh come, let us sing to the Lord; Let us make a joyful noise to the rock of our salvation! Let us come into his presence with thanksgiving; Let us make a joyful noise to him with songs of praise!" (Psalm 95:1-3)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경건과 경외와 함께 육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따라서 우리의 하느님은 소비하는 불이기 때문에 경건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느님께 받아 들일 수있는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히브리서 12 : 28-29)
And we are to do this physically together with reverence and awe:
"Therefore let us be grateful for receiving a kingdom that cannot be shaken, and thus let us offer to God acceptable worship, with reverence and awe, for our God is a consuming fire." (Hebrews 12:28-29)
그렇다면 잉게 주교는 “정확하게 청소되고 감독되는 교회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을 위해 교회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특별한 건물에 갈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믿음의 선포자이며 완성자, 예수가 이것에 대해 지시하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여기 산상수훈에서 예수의 말씀이 있습니다 :
"하지만 기도할 때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히 아버지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은밀하게 보시는 아버지께서는 당신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마태 복음 6 : 6-7).
What, then, is Bishop Inge talking about when he speaks of churches reopening for someone "sitting quietly to pray in a church which is properly cleaned and supervised"?We don't need to go to a special building to pray, and it's not like we don't have any instruction on this from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Here's Jesus in the Sermon on the Mount:
"But when you pray, go into your room and shut the door and pray to your Father who is in secret. And your Father who sees in secret will reward you." (Matthew 6:6-7).
예수에 따르면 기도를 위해서 특별한 곳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소위 거룩한 공간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방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게 다이지요.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방에서 그것을 할 수 없다면, 당신은 다른 곳에서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방에서 혼자 할 수 없거나 스카이프 Skype 또는 줌 Zoom으로 함께 할 수없는 일은 그리스도의 지방 몸에 있는 다른 신자들과 동일한 물리적 위치에 모여서 성서에서 지시하는 방식으로 그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 현실의 무언가를 반영하면서 말입니다 :
"그러나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시와 하늘의 예루살렘과 축제 모임에 있는 수많은 천사들과 하늘에 등록된 첫째 아들과 모든 사람의 재판관인 하느님께로 왔다 "의로운 사람들의 영과 완전하게 하신 계약과 새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말을 하는 뿌려진 피에서 말입니다" (히브리서 12 : 22-24).
According to Jesus, you don't need to go to a special place. You don't need to find some so-called holy space. You go into your room and get down on your knees and you pray. That's it. And if you can't do it in your room, you can do it anywhere else you like.
What you cannot do alone in your room, or even together by Skype or Zoom, is worship him in the way that the Bible instructs, which is to gather together in the same physical location as other believers in a local body of Christ, striving to reflect something of this reality:
"But you have come to Mount Zion and to the city of the living God, the heavenly Jerusalem, and to innumerable angels in festal gathering, and to the assembly of the firstborn who are enrolled in heaven, and to God, the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the righteous made perfect, and to Jesus, the mediator of a new covenant, and to the sprinkled blood that speaks a better word than the blood of Abel." (Hebrews 12:22-24).
불행히도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거의 3 개월 동안이 일을 하지 않았으며 계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거나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폐쇄된 채로 방해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지금 그의 교회를 시험하고 계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가 주는 시험 중 하나는 우리가 의도한대로 그 분을 숭배하기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를 보시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이 나라의 교회가 이것에 대해 영광으로 덮여 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그 분을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함께 매주일 예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향한 큰 부르짖음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Unfortunately, it seems that many in the churches either don't understand or don't believe this. And it is because they don't understand or believe this that they are not nearly as bothered as they should be by the fact that we have not been doing this for nearly three months, and continue not to do it. And it is precisely because they are not that bothered by it that the churches have remained shut. I am of the view that God is testing his church at this time, and one of the tests he is giving is to see how much we really desire to worship him as he intended.Thusfar, I can't see that the church in this country has exactly covered itself with glory on this - at least I have not heard of any great crying out to God that he might restore us, so that we can go and worship him together each week.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함께 모이는 것을 비 필수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면 왜 국가 지도자들이 꼭 필요한 것처럼 취급할까요? 교회는 폐쇄가 필수가 아닌 경우에도 그 폐쇄를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문을 닫았으며, 만나기에는 너무 위험했습니다. 교회는 방금 정부가 정한 법을 따랐습니다." 라는 변명이 나옵니다..
The bottom line is this: if Christians treat gathering together physically as non-essential, why would the leaders of the nation treat it as if it were essential?
The Church has accepted the lockdown as essential when it is not
"But," comes the response, "the churches are closed because there is a global pandemic, and it has simply been too dangerous to meet up.The churches have just followed the law set out by the Government."
정부가 취한 조치가 실제로 합법적이었는지를 제외하고, 사업가 사이먼 돌란 Simon Dolan이 고등 법원에 제소한 소는그렇게단순하지 않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여러 부분으로 그것에 대해 글을 썼기 때문에 요점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여기에 몇 가지 간단한 사항이 있습니다 :
Leaving aside whether the actions taken by the Government have actually been lawful - something which the businessman Simon Dolan is taking to the High Court - this simply is not the case.
I don't want to labour the point too much, as I have written about it in numerous pieces over the last few weeks, but here are a few brief things to note:
-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적어도 6 개월 이상을 국민에 전염된 후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구의 약 0.06 %를 사망케 했습니다. 이 숫자는 정부가 엄중하게 강제시행한 폐쇄를 정당화 할 수있는 수준의 숫자가 아닙니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서류에 몰래 추가된 코로나 사망 기록 방식의 변화로 인해 그 수치가 크게 팽창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기엔 C-19 *를 가진 사람의 사망, * C-19 *를 반드시 기록할 필요는 없음). - 감염확진자 사망률은 스탠포드 대학과 최근 질병 통제 및 예방 센터 (CDC)를 포함한 수많은 연구에 의해 약 0.26 % 인 것으로 나타 났으며 이는 원래 추정치보다 훨씬 낮고 계절 독감에 비해 볼때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 코로나 Covid-19는 인구의 매우 적은 비율에 대해서만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것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고통받지 않습니다. - 스웨덴을 포함하여 교회를 폐쇄하거나 폐쇄하지 않는 아래 차트가 보여 주듯이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들을 검역하는 것이 사망을 줄였다는 증거는 없다.
After being in the population for at least 6 months, and probably more, according to official figures, the virus has killed around 0.06% of the population.These are simply not the sorts of numbers that could justify the measures put in place (in any case, that figure is likely vastly inflated, due to the change in the way of recording Covid deaths, which was sneaked into the Coronavirus Act so that any deaths of a person *with* C-19, and not necessarily *from* C-19 are recorded).
The Infection Fatality Rate has been shown by numerous studies,including one from Stanford Universityand even recently the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to be around 0.26%,which is far below some original estimates and not far above a bad seasonal flu.
It has been well known for some time that Covid-19 is potentially deadly for only a very small proportion of the population, and most people who get it do not suffer greatly.
There is no evidence whatsoever to show that quarantining perfectly healthy people has reduced deaths, as the chart below - including Sweden, which did not "lockdown" or close its churches - shows:
1957 년과 1968 년에 HSN2와 H3N2가 훨씬 더 심각하게 발생했을 때 교회는 문을 닫지 않았다. 1918 년 스페인 독감 기간 동안 교회가 널리 폐쇄되지 않았는데, 오늘날 우리가 겪었던 것보다 더 치명적일 정도로 가장 치명적이었지만, 교회는 개방된 채로 남아있었다. 위기 동안 사람들은 종교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되는 종교에 의존해야 한다. " 물론, 그러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1918 년에 사망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Covid-19가 실제로 폐쇄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될 수있는 증거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없습니다. 데이터에서 볼 수있는 "폐쇄"와 사망률 감소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생명을 구했다는 것도 없습니다.
The churches were not shut during the far worse outbreaks of HSN2 and H3N2 in 1957 and 1968. There was also no widespread closure of churches during the 1918 Spanish flu, which was immeasurably more deadly than what we have today, and most remained open"on the grounds that during a crisis people should turn to religion, not be excluded from it." Of course, the argument could be made that taking such action may have prevented deaths in 1918, but as stated above, there is no evidence from anywhere in the world that can be used to back up the claim that the Covid-19 shutdown has actually saved lives, since there is no correlation between "lockdown" and reduction in deaths to be seen in the data.
비록 데이터가 "폐쇄"를 현명하고 비례적인 반응으로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시작시 바로 "폐쇄"에 대한 논거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은 몇 주와 몇 주 전이었습니다. 특히 놀랍게도, 지난 몇 주 동안 우리는 5 월 은행 공휴일에 붐비는 너도밤 나무 장면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전국의 도시에서 열린 대중 시위에서 사람들의 집단 모임을 보았습니다. 전자에는 국회의원들로부터 엿보기가 거의 없었으며, 후자에는 많은 사람들이 트윗을 하고 지원을 표했다. 이들은 우리의 자유와 필요에 따라 교회 폐쇄를 지지하고 또 제한을 여전히 지지하는 동일한 국회의원 MP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진행되는 정치인의 위선을 불러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실제 요점을 놓치게 됩니다.
그 정치인들은 실제로 자신의 유행성 대창궐 선전을 믿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만나지 말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탄원했을 것이며, 경찰이 개입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부과된 조치로 처리해야 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전자인 경우, 그들은 완전히 책임을 지지 않으며 실제로 흑인이나 백인이 모두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것이 후자라면, 왜 우리는 왜 여전히 그들의 터무니없는 징벌적 폐쇄를 돌리는 것에 참고 살아야 합니까?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Although I don't think the data has ever supported "lockdown" as a sensible and proportionate response, an argument might have been made for a precautionary "lockdown" right at the start. However, such days were weeks and weeks ago. What is especially alarming, is that for the last few weeks we have seen mass gatherings of people, firstly in the scenes of crowded beeches on the May Bank Holidays, and more recently in the mass protests being held in cities throughout the country. On the former, there was hardly a peep from our Parliamentarians, and on the latter many of them tweeted and spoke out in support.These are the same MPs who have supported and still support the restrictions on our liberties and the closure of churches as a necessity. And whilst it might be reasonable to call out the hypocrisy going on here, to do so would be to miss the real point, which is this:
They don't actually believe their own pandemic propaganda. If they did, they would have been pleading with people not to meet up and risk lives, and they would have been calling for the police to intervene to stop them going ahead.Either there is a deadly virus which needs to be dealt with by the measures imposed; or it's not as deadly as they say.If it's the former, they are utterly irresponsible and show that neither black or white lives actually matter to them; if it's the latter (which it is), then why exactly are we all still living under their absurd impositions?One or the other, but not both!
교회들에게는 모순이 엄청나다. 사람들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미니애폴리스의 한 남자를 기억할 수있다. 그러나 우리는 합법적으로 모였어도, 구원의 선포자이자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왕의 왕, 주님의 주님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참을 수있을 만큼 준비가 되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For the churches, the irony is enormous: people can now apparently gather together in large numbers to remember a man in Minneapolis whose death - tragic though it was - has no real bearing on this nation; yet we cannot legally gather together to remember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salvation, the King of Kings, the Lord of Lords. I'm not sure our forefathers would have been as ready to tolerate such a situation as we apparently are.
우리는 균형감을 잃어버렸습니다
We have lost our sense of proportion
모든 사람들의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 바이러스에 대해 반응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본인은 취약한 범주 (일반적으로 기저질환 상태가 있는 70 세 이상)에 있을 수있는 사람들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과소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십시오.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연초에 비타민 D 부족으로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취약성" 범주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루이지애나 주립대 보건과학 센터에서 실시한 연구와 같은 일부 연구 Tulane 의과 대학, Texas A & M 의과 대학, Orleans는 비타민 D 부족이 코로나 COVID-19 심각도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I am at a loss to understand why Christians, of all people, have reacted in the way they have to this virus. Please understand, I'm not downplaying the potential threat for those who may be in a vulnerable category (i.e. generally over 70s with underlying health conditions), for whom sensible precautions would be advisable. I am also not speaking as someone who has nothing to worry about. On a personal level, I may well be in a "vulnerable" category myself, since I was diagnosed at the start of the year with vitamin D insufficiency, which some studies, such as this oneconducted by the Louisiana State University Health Sciences Center New Orleans, Tulane School of Medicine, and Texas A&M College of Medicine, have suggested could be an underlying driver of COVID-19 severity.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에 의해 지나치게 불안해 하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우리는 바람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무모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을 믿고 만일의 때에 대비하는 것은keep your powder dry가장 큰 규칙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그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을 의미합니다. 신앙이 하는 일에 대한 이 훌륭한 설명을 읽고, 승리와 승리를 가져 오는 믿음에서 고통과 고난을 초래하는 믿음으로 어떻게 반쯤 돌파하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믿음은 두 가지 모두를 가져 오거나 견딜 수 있습니다.
But the Christian faith teaches us not to be unduly unsettled by such things. It doesn't teach that we should throw caution to the wind, or to be reckless - Trust in God and keep your powder dry is a great rule of thumb - but it does teach us that our faith is to overcome our circumstances, even if that means suffering for Christ's sake. Read this great description of what faith does, and notice how it pivots halfway through, from faith that brings victory and triumph, to faith that brings suffering and affliction. Yet it is the same faith in the Triune God that brings about, or endures, both:
"And what more shall I say? For time would fail me to tell of Gideon, Barak, Samson, Jephthah, of David and Samuel and the prophets - who through faith conquered kingdoms, enforced justice, obtained promises, stopped the mouths of lions, quenched the power of fire, escaped the edge of the sword, were made strong out of weakness, became mighty in war, put foreign armies to flight. Women received back their dead by resurrection. Some were tortured, refusing to accept release, so that they might rise again to a better life. Others suffered mocking and flogging, and even chains and imprisonment. They were stoned, they were sawn in two, they were killed with the sword. They went about in skins of sheep and goats, destitute, afflicted, mistreated - of whom the world was not worthy wandering about in deserts and mountains, and in dens and caves of the earth." (Hebrews 11:32-38)
This is a faith that conquers. It is a faith that triumphs. It is a faith that is prepared to put our lives on the line. It is not a faith that refuses to take risks. It is not a faith that thinks we can make our lives risk-free. It is bold. It is courageous. It is fearless. As General Thomas "Stonewall" Jackson said in answer to a question of why he remained so calm on the battlefield:
"Captain, my religious belief teaches me to feel as safe in battle as in bed. God has fixed the time for my death. I do not concern myself about that, but to be always ready, no matter when it may overtake me.... That is the way all men should live, and then all would be equally brave."
Easier said than done, of course, but it is at least something to strive for.
I can imagine some people might misunderstand what I'm saying here, and will claim that I am setting faith up against science. Nope. We should study the data; we should look at the risks; we should act accordingly.If this were the Bubonic Plague, which killed around 60% of the populations it entered, we wouldn't be exercising faith by meeting together in a closed building - we would be exercising sheer folly (though as an aside, in times of the plague, outdoor services did often continue, with appropriate measures taken). But this is not the Black Death. Nor is it Spanish flu. It is a virus with an Infection Fatality Rate of around 0.26% (slightly higher than bad seasonal flu), which has killed just 0.06% people in the UK, which is deadly to less than 1% of the population, and which the authorities who have put us into lockdown clearly don't believe is as dangerous as their propaganda would suggest, as evidenced by their silence or support when mass gatherings were held.And so why are we still not meeting together week by week? Because the Government says so? The same Government that is happy to allow mass gatherings in cities? 결론 In Conclusion
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슬픔은 정부가 교회를 폐쇄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정부의 폐쇄조치에 거의 방해받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만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그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교회의 폐쇄가 불필요한 행동이라는 것에 동의하든, 당신이 나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든 그 결과는 같아야 합니다 : 매주 예배의 헌정과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평상시와 같이 계속 생활 할 수있는 삶을 살아야하는데, 이 같은 성경 귀절이 있습니다 :
"여호사밧은 새로운 궁정 앞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집회에 서서 말했습니다."오,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여, 당신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당신은 모든 나라의 왕국을 다스립니다. 당신의 손에는 힘과 능력이있어서 아무도 당신을 견딜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 당신은 이 땅의 주민들을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몰아내지 않고 친구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영원히 주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 살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성소를 지었습니다. '재해가 우리와 칼, 심판, 역병, 기근에 닥치면 우리는 이 집 앞과 당신 앞에 서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이 집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난으로 당신에게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듣고 구원할 것입니다. "(역대하 20 : 5-9).
My biggest grief in all this is not that the Government has shut the churches, but rather that so many in the churches don't seem to have been nearly as bothered by it as they should have been.If worshipping together is essential - which Christians must surely believe it is - then whether you agree with me that the closure of the churches was an unnecessary action, or whether you disagree with me and think it was vital, the result should have been the same: a crying out to God for deliverance and restoration of weekly worship together, and of life being able to continue with some normality. Something like this:
"And Jehoshaphat stood in the assembly of Judah and Jerusalem, in the house of the LORD, before the new court, and said, "O LORD, God of our fathers, are you not God in heaven? You rule over all the kingdoms of the nations. In your hand are power and might, so that none is able to withstand you. Did you not, our God, drive out the inhabitants of this land before your people Israel, and give it forever to the descendants of Abraham your friend? And they have lived in it and have built for you in it a sanctuary for your name, saying, 'If disaster comes upon us, the sword, judgment, or pestilence, or famine, we will stand before this house and before you - for your name is in this house - and cry out to you in our affliction, and you will hear and save." (2 Chronicles 20:5-9).
Forgive me if I am being too harsh, but I've really not noticed much of that going on. Instead, a deep complacency seems to have set in, which I think stems from decades of what the great theologian and philosopher Francis Schaeffer termed, "Personal Peace and Affluence". But here's a question to end with, which I think Christians need to be asking themselves: with the authorities openly making a mockery of their own arbitrary rules with their tacit or open support for certain mass gatherings, and with shops about to open, including a total relaxation of Sunday trading, do you think that we are maybe being taught something about our priorities when we are still forbidden by law from worshipping together, as Christians have done for 1000s of yea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