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길에 지뢰가 더 많다
동지법회를 앞두고 눈이 펑펑 쏟아졌다.
겨울 설경을 마주하고 불공하는 일도 퍽이나 운치 있어서 특별한 추억으로 기억 될 것 같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시점.
오늘이 지나면 점차로 밤의 길이가 짦아 질 것이다.
천문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동지를 기점으로 해서 하루에 2분씩 해 지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하니까 눈여겨볼 일이다.
이를 동양적으로 해석하면 동지는 음의 기운이 끝나고 양의 기운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음이 어둠이라면 양은 밝음 아니던가.
어둠이 지닌 에너지가 불안과 질병이라면 밝음이 지닌 에너지는 희망과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동지부터는 어두운 기운이 사라지고 밝은 기운이 작용하는 원리이다.
동짓날 여기 시골 절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다녀갔다.
이런 날 팥죽을 나눌 수 있어서 암자를 방문한 이들에게 덜 미안하다.
날이 갈수록 사람과 사람이 살벌해져 가는 요즘 세상에서 팥죽 한 그릇에 인정이 오고 갈 수 있어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인적이 끊어지고 다시 고요해진 오후의 산사.
동짓날을 계기로 성쇠하는 세상 이치를 새삼 정리해 보았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물러나면 밤이 오듯 음양이 이렇게 교차하고 있는 게 우주의 질서다.
무릇 모든 일에는 본말과 시종이 있는 법.
이것은 우리 인생길도 고락이 반복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울고 나면 다시 차는 것과 같이 우리 인생에서는 길흉의 변수가 있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음양의 변화와 그 조화를 살펴 인생사에 적용하는 지혜를 동짓날에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길에는 순풍과 역풍이 불어온다.
매사에 순풍을 원하지만 만사가 뜻대로 호락호락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길에서는 때로는 순풍이 화가 되기도 하고, 역풍이 오히려 큰 복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 변화와 변수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일전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검찰총장이 혼외자식 문제로 사퇴를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명예를 얻은 것이 되레 화근이 된 경우다.
반대로 신임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그 역풍 때문에 일신의 복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좋은 일에는 더욱 조심하고 좋지 않은 일이라도 그 뜻을 살펴 더 먼 곳에 시선을 두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는 순풍에 돛 단 듯이 순항하는 경우는 드문 법.
누구나 한 번 쯤은 역풍과 마주하게 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삶에서 고난과 장애를 만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풍 예찬도 필요하다.
역풍을 이용하여 전진의 동력으로 삼는 요트를 보라.
역풍이 불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않던가.
이 같은 불편의 과정을 이겨내야 우리는 성장할 수 있고 삶의 속내가 깊어진다.
일본의 역사소설 『대망』에 나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대사를 기억한다. “어깨에 진 짐이 가벼우면 인간이 안 된다.”
때때로 실패를 쥐어야 삶은 안으로 여물 수 있다.
인생의 무게가 가벼우면 큰 인물 되기가 쉽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인생에서 힘들이지 않고 성공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몇 번의 좌절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자가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어둠을 견딘 자만이 아침 햇살이 얼마나 눈부신지를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는 역풍을 맞이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미군들에게 전해 오는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들었다. “걷기 좋은 길에는 항상 지뢰가 묻혀 있다.”
어쩌면 잘 닦인 길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평탄한 인생길에 함정이 있고 변수가 많다는 것으로 위로 삼자.
동짓날의 깊은 밤도 내일부터는 점점 옅어질 것이니 이것이 돌고 도는 세상이치이다.
출처 : 현진 스님 /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