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우연한 자리에서 ‘마중물’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새삼스러운 양 나의 뇌리 속에는 내가 처음 글을 써보겠다고 시집이며 수필집 등을 닥치는 대로 읽던 시절 어느 작가의 글에서 ‘마중물’이란 단어를 접하고 몹시도 감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마중’이라는 단어에다가 ‘물’이라는 단어 하나를 합쳐서 이렇게 아름답고 정겨운 단어가 된 것이 무릎을 칠 만큼 신기하고 감탄스러워했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그리고 보니 마중이라는 단어에 얹혀서 생겨난 말들이 봄 마중, 달마중, 해 마중, 임 마중 등 여러 군데에서 발견될 때마다 그 정겨움에 한글이 과연 위대한 글에 틀림이 없구나 하고 더 큰 존경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국어사전에는 마중: 오는 사람을 나아가 맞아 드리는 일이라고 설명되어있고, 두어 단어 밑에 마중물: 펌프로 물을 퍼 올릴 때, 물을 이끌어 올리기 위해 펌프에 부어주는 물이라고 설명되어있다. 어째든 마중이란 상대방을 목적지까지 데려오려고 나가는 행위를 말함이 틀림없을 성 싶다. 이 왕에 ‘마중’이라는 단어가 옛날 일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된 마당에 ‘마중’에 대한 오랜 기억 하나를 소개하고 싶어진다.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 중에 나는 충청도의 어느 시골인 외가에 피난시절을 보낼 때 경험한 한 체험담이다.
큰 산을 기대어 서너 줄기의 등성이가 뻗은 사이사이로 이십여 가구씩 모여서 형성된 부락인데 우리나라의 고유한 부락형태로 집성촌이어서 거의 모두가 한 가지 성을 사용하는 일가친척인 관계로 동네의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치르게 되던 네 일 내 일이 따로 없이 같이 모여 아낙네대로 모여서 음식 장만하고 남정네들은 역시 모여서 준비하고 모든 절차를 서로 내일처럼 하면서 지내는 전통적인 우리들 조상들의 관습을 간직하고 있는 부락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늑하고 정겨운 마을이었다.
물론 마을 어른들 모두가 누구네 집 제사는 어느 날이고 어느 집 딸, 아들의 혼사는 언제 인가를 자기 집 일처럼 구슬처럼 꿰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 어른 한 분이 일부러 나에게 오셔서 오늘이 윗동네 갑식이 아버님 기일인데 너도 나이가 그만하니 제사에 참석해서 제사의 모든 것을 배울 겸해서 나와 같이 참석하여 제사에 대하여 경험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별로 할 일도 없는 생활 속에서 나는 얼른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무언가 궁금한 것을 기다리는 들뜬 마음으로 저녁 시간을 기다리는데 문 밖에서 큰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가자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이왕이면 조금 일찍 가서 일 좀 거들어 주어야지. 일을 거드는 것도 공부니라.”
하시는 동네 어른을 따라 갑식이 어른 댁에 도착하니 벌써 동네 어른들이 모여 제상을 진설하며 가벼운 잡담들을 나누고들 계셨다. 나는 얼른 어른들께 인사를 올리고 한쪽 귀퉁이에 서서 질서 정연하게 잘 차려진 제사상을 흥미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는지 어른 한 분이 성냥을 꺼내어 양쪽 촛불과 향에 불을 붙이면서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구만 도착 할 때가 되셨는데 어찌 오늘은 발걸음이 좀 느리신가 보네.”
하며 연신 활짝 열어 놓은 문간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기야 처음 참석하는 나도 이상하기는 했다. 분명히 갑식이 형님의 아버지제사라고 했는데 아까부터 갑식이 형은 보이지를 않고 손님들만 둘러 있는 게 이상하기도 했다. 조금 후에 대문께가 두런두런하더니 등불을 앞세워 들고 갑식이형이 들어서자 모두가 뜰로 내려가 두 줄로 늘어서서 두 손을 앞에 모르고 머리를 조아리며 길을 만들어 주는 형태를 이루니 그 사이로 갑식이형이 등불을 앞세우고 들어가며
“아버님 다 왔습니다. 여기는 댓돌입니다. 조심해서 천천히 오르십시오.”하는데 모두들
“갑식이 어르신 뵙겠습니다, 그간 평안 하셨는지요?”
하며 마치 오래 밖에 나갔다 돌아오는 동네 어른을 마중하는 말들을 중얼거리듯 외면서 준비된 방으로 들어가 제사의 모든 절차를 격식대로 진행을 하였다. 나로서는 그동안 가끔 보아서 알고 있는 제사의 순서와는 너무나 다르고 낯설어서 다음날 시간을 내서 갑식이 형을 찾아 그 연유를 물었다.
“갑식이 형 나 한 가지 물어 볼게 있어서 왔는데요.”
“나한테 물어 볼게 있다구? 야 이거 영광이로구나. 그래 물어 볼게 무어냐 한 번 들어나 보자.”하며 내 의문을 다 듣고는 껄껄 웃으며
“그래서 그게 궁금했었구나. 하기야 너는 처음 겪어본 일이어서 궁금하기도 할게다. 그럼 내가 설명해 주지.”하면서 내개 들려준 사연은 이랬다.
“사실 선친께서는 앞을 못 보는 소경이셨다. 어려서 심한 열병을 앓고 나신 후 후유증으로 시각을 잃으셨지. 그 후로는 돌아가실 때까지 세상을 못 보시고 불행하게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해마다 제삿날에는 생전에 앞을 못 보시던 일을 생각해서 혼백(魂帛)이 집에 차려 놓은 제사상까지 오실 때 눈이 안보여서 고생하실 것 같아서 때가 되면 내가 등불을 들고 가서 모셔오는 것이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의 의미에도 합당하고 옳은 일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기로 동네어른들의 동의를 얻어 마중을 나가서 안전하게 모셔오는 일을 하게 되었다. 글쎄 혼(魂)마중이라고나 할까. 어때 이제 좀 이해가 가느냐?”
모시고 오면서는
“아버님 오늘이 아버님 기일이어서 모시러 왔습니다.”
또 도랑을 만나면
“여기는 도랑입니다. 조심해서 건너세요.” 그리고 동네로 들어오면서 평소에 잘 아시던 집을 지나 올 때는
“여기 아버지친구 삐뚤이 영감네는 손녀딸 혼사를 올봄에 치르기로 결정 났대요.”등 궁금해 하실 일 년 동안의 마을 일들을 고하면서 모시고 오는 것이라고 연유를 설명해 주었다.
“아 그랬군요. 나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퍽이나 궁금하고 이상했었지요. 고마워요. 갑식이형.”하고는 의문이 풀린 가벼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 이후로 나는 ‘마중’이라는 단어를 보거나 듣게 될 때마다 이때 일이 생각나곤 한다. ‘마중이란 어찌 보면 정감어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타지에 오는 사람을 만난다는 즐거움도 겹치기도 하지만 반갑지 않는 사람의 ‘마중’심부름은 오려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오래전 시골생활 시절의 갑식이형의 지칭 “혼 마중”만큼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감격을 내개 느끼게 해준다. 조상을 위한답시고 의미도 모르고 도리에도 맞지 않는 요사이의 제사풍조는 주인공들이 과연 날짜 찾아서 지내주는 기억력이 고맙고 감사하게 느낄만한 행위인가 의문도 든다. 이 생각에 옛 어른들의 진정한 지혜들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시조 한 수가 생각난다.
탄노가(嘆老歌)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러 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지은이:우탁 1263~1343. 호는 역동, 고려 충숙왕 때의 학자.>
이제는 언젠가는 마중 오는 백발이 걱정되는 세월을 보내면서 마음속으로 감사하게 마중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니 손가락이 꼽아지지를 않는다. 겨우 요사이 갑자기 뜬다는 “백세인생.”이라는 노랫말처럼 못 간다고 전하하고 떼를 쓸 핑계거리나 그럴 듯하게 하나 생각이 들어 준비 해둘 수나 있었으면 좋겠다.
****
마중이라는 단어가 정겨워 이글을 올려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중을 가장 기뻐하는 지요. 저는 부모님 마중과 부모로써 자식마중이 가장 행복합니다.
비가 촉촉이 산촌을 적시는 토요일입니다. 개구리가 폴짝 뛰며 “나 왔지롱.”하는 경칩, 개구리마중이 되겠군요. 작년에는 경칩인데도 추워 개구리들이 나오다가
“우씨! 왜 이렇게 추운 겨. 얼어 죽겠네.”하고 다시 한 번 달력을 확인하는 개구리도 있었지요. 마을 산을 오르면서 유행을 격하게 타는 개구리는 옷을 얕게 입고 나와서 동사를 한 개구리도 있어 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세계나 동물세계나 멋쟁이는 가끔 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상 일기예보를 꼭 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지요.
오늘 날씨는 촉촉한 비! 개구리들이 나와서 운동회를 해도 될 만큼 산촌 기온은 포근합니다. 방금 마당에 있는 나무보일러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왔거든요. 어제보다 더 기온이 올라간 거 같아요. 개구리가 사람에게 배워야 할 것은 돈을 벌어서 난방을 하고 살아야하고 추우면 파카잠바를 사서 입어야 한다는 겁니다. 목이 쉬도록 마르고 닳도록 말을 하여도 그저 귓등으로 듣고 대듭니다.
“개골” 하고 말이죠.
말을 듣지 않아 자다가 떡 얻어먹기는 그른 개구리지요. 아주 싸가지가 바가지입니다.
약 먹을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자꾸 옳은 소리를 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첫댓글 예~감사히 읽었습니다^^ 저의 맘에 닿아 김치처럼 소중하다 생각합니다^^고맙습니다.
좋은 글 함께 나누고 싶어서 올렸습니다. 긴 글에 식겁했지요. 이 글은 책에서 만날 수 없는 귀한 글입니다.
마중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잊고 지낸 정겨운 단어이지요.
옛 어른신들의 어른 섬김 예의에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아직 저희집에서는 혼 마중, 혼배웅을 합니다.
@수연 서문순 예를 다 깆추어 선영을 모시는 대단한 집안 맏 며느리로서 수고 많으시겠습니다
요즘은 남글 옮기기에 시간을 많이 쓰시네.
헌데 출처와 원작자의 표시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저자가 서운하다 하지 않을지...
했잖아요.
@수연 서문순 혼마중하고 소재수님 썼잖아요. 필사를 하면서 공부중이지요.
혼 마중, 혼 배웅 - 섬김의 모습 배울 점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남편이 너무 옛날방식을 고집해서 불만이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이제부터는 남편하는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느낌이 옵니다.
네, 좋은 글이어서 올려봤습니다. 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