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 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 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동아일보/황인숙의행복한시읽기〉2015.06.19.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그림이 있는 시선집 ‘그녀에게’에서 나희덕 시들을 다시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나희덕은 정신과 정서가 참으로 건강한 시인이구나. 그의 시들은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매혹적이다. 그의 빼어난 시편들에는 사랑의 시가 많은데, 사랑의 두근거림도 실연의 뻐근함도 시인의 섬세한 미적 감각으로 단아하고 차분하게 조탁돼 있다. 경망스러움과 주책없음과 극한 엄살 등이 동력 자원이 되고, 심지어 그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상태가 강하게 드러나면 ‘개성 있다’라는 프리미엄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시이거늘, 어쩌면 그 일종의 ‘정신과 영혼의 불구’가 예술혼을 태우기 쉬운, 따라서 흔히 쓰이는 연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희덕의 건강미 넘치는 시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나희덕은 태작을 거의 내지 않는데, 출중한 재능에 더해 자기 검열이 엄격해서일 테다.
화자는 날마다 ‘지치도록’ 달리는 커리어우먼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온종일 다리를 옥죄던 스타킹부터 벗어 던졌을 테다. 그리고 소파에든 방바닥에든 털퍼덕 앉아 발목이나 종아리를 주물렀을지 모른다. 문득 벗어놓은 갈색 스타킹이 눈에 들어온다.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단다. 화자의 하루, 나아가 삶의 굴곡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 ‘껍데기’! 여성 생활에 밀접한 물체인 스타킹을 통해서 시인은 스타킹 신고 일하는 여성의 일상과 내면을 보여준다. 스타킹을 ‘암말’에 비유한 것은 시인이 말띠인 것과도 상관있지 않을까? 오늘도 내일도 스타킹은 달리리. 튼실한 암말처럼 지치지 않는 워킹우먼을 태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