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마지막 교향곡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5번은 음악적 형식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교향곡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1번 교향곡의 뉘앙스를 풍기면서 두 교향곡이 서로 맞물고 있는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절대음악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는 음악적 퇴행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기나긴 교향곡의 길에 마지막 이정표를 세우고 영원한 음악적 순환의 굴레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확대된 타악기군을 포함하는 오케스트라의 표준에 가까운 4악장 교향곡”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은 순수 기악곡으로서 ‘울려 퍼지는’ 교향곡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5번 교향곡이 쇼스타코비치 전체 교향곡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바로 그의 모든 교향곡에 대한 결론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곡을 작곡함으로써 그는 교향곡 장르의 새로운 진보에 대한 그동안의 시도를 다시 처음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작곡가의 철학이 깃든 교향곡이란 장르는 무조라는 현대적 음악언어로 펼치기보다는 오히려 고전적 음악언어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피력했다.
쇼스타코비치는 현대음악은 새로운 형식을 통해서 재탄생될 것임을 확신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교향곡의 존재 영역에 대한 명백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15번 교향곡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은 우화적인 면과 아울러 따뜻하고 쾌활한 분위기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곡가들의 마지막 작품에서 풍기는 삶에 대한 경건함이나 숙연함과는 달리 매우 긍정적인 생각과 실내악적인 경향을 풍기고 있다. ▶1972년 아들 막심의 초연 지휘를 녹음한 앨범 재킷(멜로디아).
이 곡은 교향곡 14번 ‘죽은 자의 노래’가 발표된 후 2년이 지난 1971년, 쇼스타코비치가 69세 되던 해 여름에 매우 빠른 속도로 작곡되었다. “급한 작곡은 금물”이라던 자신의 반성을 무색하게 하였으나 “심혈을 기울여 매우 빠른 시일 안에 완성했다.”는 말로 변명을 대신했다. 15번에 대응하는 1번을 작곡한 것이 그의 19세 때, 그 후 46년 동안 모두 15곡의 교향곡을 완성한 금세기 최대의 교향곡 작곡가에게는 4년이라는 생명이 더 남아 있었지만, 교향곡에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초연은 1972년 모스크바에서 아들인 막심의 지휘와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의 연주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Maxim Shostakovich/MRSO - Shostakovich, Symphony No.15 in A major, Op.141
Maxim Shostakovich, conductor
Moscow Radio Symphony Orchestra
Released in 1972, Melodiya
1악장: 알레그레토
매우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고 다니며 로시니의 <월리엄 텔> 서곡 마지막 부분의 주제 ‘금관의 선율’을 인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쇼스타코비치는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을 매우 선명하고 경쾌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시도는 곡 전체의 구성은 고전적이지만 세부적인 형태는 소나타 형식에 구애되기보다는 자유로운 형식 표현을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이러한 자유로운 형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서만이 자유로운 생각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 생각은 쇼스타코비치의 과거 회상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역할의 결정적인 도구가 바로 로시니로부터 인용한 금관의 선율인 것이다. 어릴 적 그가 깊은 인상을 받은 선율이며 이를 통해서 과거로 날아가는 것이다. 작곡자의 아들 막심은 “<윌리엄 텔>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멜로디였다.”고 말했다. 이 선율은 5차례에 걸쳐서 반복되며 매우 다양한 인상을 남기면서 전체 악장을 이끈다.
2악장: 아다지오
2악장은 장송 행진곡 분위기로 일관되게 진행된다. 특히 전통적인 장송 행진곡과는 달리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장송 행진곡은 1번 교향곡의 3악장, 4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인 3악장, 11번 교향곡의 3악장 ‘추억’에서도 쓰인 바 있는 형식이다. 주요 악상은 병행3도를 특징으로 하는 금관의 코랄이다. 이 금관의 코랄과 첼로의 레치타티보 대화가 3차례 이루어진 다음 라르고의 장송 행진곡으로 이어진다.
3악장: 알레그레토
악상에서 1악장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많다. 바순으로부터 시작되는 목관의 도입부와 현을 중심으로 하는 재현부, 그리고 바이올린 솔로로 시작되는 중간부, 타악기로 마무리 짓는 피날레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면을 증폭시킨다. 탬버린, 실로폰, 캐스터네츠, 우드블록 등 타악기의활약은 웅장하지만 음량은 크지 않다. 여러 가지 악기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효과는 그리 과장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부분은 마지막 악장에도 포함되어 있다. 괴기하고 장난기 어린 느낌을 주는 악장이다.
4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레토
이 악장은 표면적으로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타악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과 유명한 바그너의 음악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운명의 동기’를 인용하고 있으며, <신들의 황혼> 중 ‘지그프리트의 장송 행진곡’의 리듬과 패턴을 사용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두를 암시하는 음형까지 등장하고 있다. 타악기는 3악장에서도 얼굴을 내비치지만 4악장에서는 팀파니를 포함해서 무려 13종의 타악기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타악기 특유의 강렬하다거나 투박한 면을 강조하기보다는 산뜻하고 명료한 음색이 울려 퍼진다.
1악장에서 로시니의 ‘금관의 선율’이 5차례에 걸쳐 나타나듯이 바그너의 이 금관과 어우러진 선율은 8차례나 반복된다. 그러면 왜 윌리엄 텔이나 지그프리트가 등장하는가? 이들은 바로 영웅들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이러한 영웅들을 끄집어내서 음악적 소재로 사용한 것은 20세기는 영웅의 시대가 아님을 말한다. 또한 저 영웅들은 고전적인 교향곡이라고도 비유할 수 있다. 마치 영웅은 영웅의 시대에서 빛나듯, 교향곡도 마찬가지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쇼스타코비치는 분명 이 4악장을 통해서 더 이상의 교향곡과의 교감은 접어두고 새로운 형체를 찾아 나서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