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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부와미모
안녕 언니들 나 또왔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으로 시작되는 시 게시물을 두편 올렸었는데
스크랩수나 댓글수를 보니 현대시에 관심을 가져주는 언니들이 있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올리려고^^
오늘 올릴 시는 이경교 시인의 시집 [모래의 시]에 수록된 작품들이야.
이경교 시인도 사실 우리 학과 교수님이신데 교수님의 신간 시집이 나와서 공동구매를 했었어.
뭣도 모르고 사긴 했지만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보니 정말 좋더라구.
우선 시집 첫 장에 나온 시인의 말을 옮겨와 볼게.
나는 사실보다 몽환의 가치를, 늘 보이지 않는 저쪽을 열망한다.
가보지 못한 마을의 안개와 노을과 저녁을 기다린다.
나는 그 마을이 이 세상과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풍경과 사랑과 풍속을 만나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꿈꾸는 건 체온과 숨결이 묻어나는 숲과 수평선이다.
체온과 숨결이 내 시의 표정이며 정신이길 원한다.
그걸 불어넣어 세계와 사물을 초대할 때, 홀연히 나는 사라지고 거기, 내 마음의 점 하나 찍히길,
내 몸이 초록숲과 수편선으로 남겨지길.
2011년 5월
이경교
정말 좋지? (나만 좋나;;;;)
이 세상과 닮지 않은 새로운 마을과 풍경과 사랑과 풍속을 만나듯 이 시를 즐겨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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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장밋빛 정원
그가 방에 불을 켰을 때, 들창마다 꽃물이 흘렀다 마지막
갈매기가 다리를 끌며 돌아가자, 하늘에 실금 하나 그려졌다
나는 노을이 흔드는 방울소리를 듣고 있었고 그는 붉게 물들
어 문지방을 넘어왔다 길들이 침구를 펼칠 무렵이면, 누구나
죽음에 대해 골똘해진다 문득, 감탕나무 눈빛이 한없이 깊어
진다
열기는 서늘해지기 전, 반드시 장밋빛의 과정을 거친다 그
빛깔이 애무와 비슷해서 우리는 서로 붉어졌다, 붉은빛은 검
은빛과 쉽게 섞이고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어둠 밑에서 꾸물꾸물, 장미가 꽃을 준비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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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간이역
너도 보고 있니? 나는 지금 별의 간이역을 본다 물개자리,
큰곰자리 별 어디쯤에서 기차소리가 들린다 저길 봐, 슬슬
마을로 내려서는 떠돌이별 하나, 그의 보퉁이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지상의 외딴 마을 지나, 저 별은 상아해안이나
희망봉 근처로 이동할 모양이야 거기가 아프리카인 줄도 모
르고, 언젠가 내가 그랬거든 그때 너를 데리고 떠나게 될 줄
알았지, 하지만 지금은 캄캄한 저녁, 방향을 잃어버린 별 하
나가 하늘의 간이역을 나서며 두리번거린다 방금 사라진 별
똥별의 부음을 손에 쥐고, 또 어디로 가려는 걸까 별의 눈망
울이 몹시 출렁인다 너도 듣고 있니? 별자리에서 별자리로
이어진 간이역마다 반짝반짝, 기적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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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관악기
하현달의 등줄기가 생선처럼 부풀어 제 몸에 등불을 매단
목관악기를 본다 거기 외롭게 휘어진 악기의 나무를 지나 내
목을대를 두드리는 소리의 구멍들 모든 악기의 과거로 걸어
가 보면 한 그루 나무가 서있는 것처럼, 호흡이란 바람결을
붙잡거나 풀어주는 악보, 공기방울도 누군가 들였다 뱉어낸
소리의 봉분이다
나의 과거로 돌아가 보면, 하현달의 비탈을 미끄러져 내리
며 내 몸엔 또 몇 개의 음표가 자라난 걸까 밤마다 호흡을
고르는 나는 무슨 나무가 울리는 음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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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여관
물의 지도를 짚어나가다, 어느 마을이었지 무성한 물 숲 뒤
편에서 물비늘이 몸을 떠는, 지도의 한 지명 위에서 내 눈길
이 멈춘다
내 몸에도 물결의 감촉이 새겨진다 언제쯤인가, 폭설처럼 강
물 위에 몸을 눕히던 자리, 물살의 체온이 내 눈꺼풀을 감겨
주던 수역水驛
강물에도 옹이 지는 매듭이 있다 흐름이 멈칫멈칫 발길을
세우는 정거장이 있다 그 언덕 어디쯤 기억을 긁어모아 불을
지피는 따스한 온돌방이 있다 물방울에 기대어 몸을 덥히던
별과의 동침! 수면 위로 번지는 물의 잠이 있다
물안개 너머 여기저기, <빈방 있음> 물결의 안내 표지판
이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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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폭포
보았다고 말하지 마, 네가 본 건 내가 아니야 알려고도 하
지 마 나는 이름을 잊었어 내 이름은 머물지 않아, 나는 그
냥 은주발에 담은 눈이야*
알몸 다 내놓고 나는 다시 증발하지 언뜻 네 눈길이 한번
붙잡았을 뿐, 나는 여기 왔다간 적도 없어 거기 있더라고 말
하지 마, 그 순간 내 몸은 사라지고, 나는 햇빛 속에서 하얗
게 타오르지
나 언제까지 숨어 살 수 있을까? 하루 해는 또 서둘러 나
래를 접고, 어둠이 물방울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데 왜 내 곁
엔 아무도 없나?
다만, 내가 여기 서늘하게 젖은 몸을 말릴 때
*파릉(巴陵)화상: 銀椀裏盛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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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호텔
너는 자꾸 나무 이름을 물었다 내가 이름을 댈 때마다 나
무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이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이어주는 기억의 회로, 그때 가지와 가지 사이에서
반짝, 하고 불이 켜졌다
우리는 나무의 출입문을 지나 긴 회랑을 걸었다 줄기와 잎
새들은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단단한 몸
매와 흰 살결이 눈부셨다 오래된 악기군요, 그래 품위 있는
집이지, 그때 나는 푸른 융단 위로 걸어 갔을 새들의 추억을
떠올렸다
이끼로 치장한 안뜰을 지나자 하늘로 이어진 굴뚝이 보였
다 바람의 창문엔 비늘 같은 나뭇잎 휘장이 드리워 있었다
공기방울로 짜여진 침실 문턱, 푸른 벽지의 솜털이 일어서고
내가 너에게 사랑을 고하자 네 몸에선 수액의 향기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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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책
꽃잎은 모두 문을 닫고 있다, 뜰안 텅 비어
햇빛 그림자 혼자 추녀밑에 서성인다
책장을 덮는 순간, 꽃 지는 소문 들었던가
소멸은 필경 뜨거운 생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한
어느 대목쯤이었을 것이다
꽃잎 낱장들 겹겹으로 입술 포개져
저 나선형 미로가 낭떠러지처럼 아득하다
나는 꽃막을 활짝 열고 싶었는데
지금 꽃의 문짝 밀치고 들어선다면, 서슬
푸른 문장에 눈이 베일 수도 있으리라
닫혀있는 것들은 열릴 때가 있는 법
닫힌 문 앞에서, 다시 책장을 펼친다
내가 바라는 건 꽃들의 수런거림이 아니라
눈빛으로 꾹꾹 눌러 담는 묵독의 풍경이다
나는 꽃의 속눈썹이 정지하는 찰나를 기다린 것인데
꽃 피고 지거나, 책을 읽다가 덮는 사이
책의 쪽문 쪽으로 무심결 바람 들이치고
책갈피마다 꽃 그람자 설핏 이우는
봄날의 묵독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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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트를 짜는 밤
거미가 예술가로 등재된 건 중세 훨씬 전이다
수메르인들의 쐐기문자나 페르시안 카페트 역사 이전부터
거미는 온몸으로 글자를 쓰고 문양을 찍어 왔으니
아름다운 건 왜 두려운지, 치명적인 것일수록 눈이 부신
까닭을 설명할 순 없지만
저 거미집이 제 살을 헐어 짠 카페트라면
허공에 매달린 글씨라면, 누군가 그걸 읽어줄 때까지
거미의 죽음도 그만큼 미루어졌으리라
아랍어 문자 속에선 이따금 거미가 꿈틀거린다
별과 달이 떴다가 지고, 은실의 카페트가 펼쳐진다
어느 신비주의자는 거미가 자신이라고 우긴 적 있지만
내 몸에서도 은실 타래 술술 풀리거나
까닭없이 툭툭 끊어질 때 있으니, 보아라
저문 바다, 안개 낀 부두를 지나가는 나귀
나귀는 등이 휘고, 거미는 지금 몸이 결린다
내가 늦은 밤 글씨를 쓰는 동안
거미는 꽝꽝, 허공에 인장을 찍고 있다
달무리를 건너와 종이 카페트 위에 그 무늬 박힌다
펜을 쥔 내 손마디 아라비아해 쪽으로 휘어지고
왼쪽 어깨가 몹시 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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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해변의 장밋빛 정원
들창을 기웃거리는 사이, 지상에서 가장 긴 몇 분, 잠시
정지한 시간이 해안선에 걸려있다 시간도 고삐가 풀리면 일
제히 넘어질 때 있으니 거리를 재다가 고백하지 못한 말, 해
일처럼 밀려 와 둑방 터질 때, 세월은 물결에 휩쓸리고
지상에서 가장 길었던 장밋빛도 흘러, 누군가 소리없이 방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긴 망또를 끌고 와 해안선에 지친 등
을 기대는 것이다
들창 닫힌 어둠 속에서, 조용히 신의 용서를 빌 때
이 정원에서 과거란 다만, 불빛 꺼진 담장의 안쪽이거나
장밋빛이 지워지는 거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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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악기
별빛이 악기라면, 아따금 달빛이 흔들리거나
은하수 가장자리 흰 모래밭이 선명해지는 건
악기의 선율에도 고저장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구름 골짜기 축축한 발등을 밟고 지나가는
저 해금소리를 들어보라
악기에게도 잉태와 출산의 순간은 있어
새로 뜬 별들 오물오물, 입술 벌릴 때가 있다
공명퉁을 부풀리거나 현弦을 고르는 일이
별빛에겐 낯설지 않아서
길 잃은 갈매기에겐 항로가 되기도 한다
내 귀 어두워 캄캄해지는 저녁이면
악기는 내 오목한 귓밥 안쪽
세관고리관 위에 둥지를 튼다
내가 눈짓으로 오명한 건 목동의 별이지만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건 풀피리 소리다
저 악기는 내가 떠돌이 별이었던 시절
하늘을 건반삼아 두들기던 풍금이거나
숨가쁘게 뜯던 해금의 현이어서, 아직도
그 울림 하얗게 허공을 맴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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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 좋은 시들 더 있는데 힘들어서 더는 못 쓰겠다;;;
다음에 시간 있을 때 후르츠 캔디 버스와 모래의 시에서 다 못 옮긴 좋은 시들 가지고 또 올게^^
첫댓글 언니 우리학교 문창과네 반갑당ㅋㅋㅋㅋㅋ 그런데 박상수 시인도 우리 학교에 강의하고 계셨어?? ㅠㅠ 나도 청강하고 싶다..
응 1학년 2학기때 야간반에서 문예창작이라는 과목으로 강의하셨어. 정말 멋진 시간들이었어ㅠㅠ강의 정말 좋더라구ㅠㅠ 강의 끝날 때쯤 내가 우리 학교에 또 출강해달라고 부탁드리긴 했는데 모르겠다ㅠ 만약 또 강의 하신다면 꼭 청강해! 강추!!
언니 이거 나 한시간뒤에 와서 꼭 꼭 읽을거야!!!!!!!!!!!!!!!!!! 좋은 시 쪄줘서 넘 고마워!!!!!!!^_^!!!!!!!!!!
고마워 ㅠㅠㅠㅠ 나중에 다이어리 쓸때 써놔야지!
아참참! 스크랩!
시 너무 좋다... ㅠㅠ
좋당좋당아련한새벽에다시읽어봐야겠엉고마워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