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저는 공감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
저는 직업 상, 정서적으로 힘드신 분들과 많이 대화하곤 하는데,
"아니, 심리학 하는 사람이 공감을 못 하면 어떻하나요?"
라고 일갈하실 수도 있겠으나,
사실, 상담이나 코칭업계에서 공감능력이란 "과유불급"에 해당한답니다.
이전 글에서도 소개드렸지만,
공감능력이란 쉽게 말해서,
타인의 감정을 마치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정신능력입니다.
그런데, 상담가가 상담할 때마다 내담자의 부정적 감정에 동화돼 버린다고 상상해 봅시다.
상담가는 냉철한 이성을 유지한 채,
내담자의 이야기에 경청하면서 생상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리드해야 하는데,
어떤 상담가가 최상위 공감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내담자들로부터 밀려드는 분노, 짜증, 억울함 같은 감정들의 쓰나미에
나 또한 정신적으로 녹초가 되고 말 거에요.
만약, 공감능력이 필수재라면,
저 같은 사람은 일상생활이나, 특히, 저의 직업 전선에서
수많은 불협화음과 좌절들을 겪어야 했을 테지만,
공감능력에 대한 오해
흥미로운 사실은,
공감능력에는 다행히도 대체재가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공감능력에 대한
이성적 대체재와 감정적 대체재를 하나씩 소개해드릴께요.
이성적 대체재
공감능력의 결여는
연쇄살인마들을 만드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사이코패스의 조건에는 다른 여러 성격들과의 조합이 필요함)
※ 공감능력이 없으면 사이코패스이다 (X)
사이코패스이면 공감능력이 없다 (O)
공감능력보다 중대한 사이코패스의 하위 성격요인들은,
폭력성,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병적인 거짓말 등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속칭, "화이트칼라 소시오패스"라고 해서,
자신의 사이코패스 기질을 이용은 하되, 철저히 숨기면서 승승장구하는
그러한 포식자들이 숨어 있습니다.
참조)
① 사이코패스 기질은 남을 짓밟는데 주저함이 없으므로 경쟁사회에서 유리할 수 있습니다.
② Hare나 Lilienfeld 같은 심리학자들이 주로 이에 대해서 연구합니다.
죄책감이나 공감능력이 아예 없는데,
어떻게 자신의 그러한 면모를 숨길 수 있을까?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동료를 보면서 아무런 공감이 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스스로에게도 아무런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어떻게하면 그러한 자신의 본성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일까?
이건 "사회적 지능"의 영역입니다.
학자들에 따라서,
"social psychological skill"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mind read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주변 상황을 보면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쟤는 지금 어떤 기분이겠구나,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겠구나
여기까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겁니다.
그리고나선, 사회적으로 올바름직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감정의 영역이 아닌 "이성의 영역"인 겁니다.
공감능력이 강한 사람들은 머리를 쓸 필요가 없어요.
그들의 감정이 오롯이 나에게 전달이 되니까, 자동적으로 느껴지니까.
그런데, 이러한 공감능력이 없다면,
머리라도 굴려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태도를 보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감정적 대체재
박상영 선수가 "할수있다"를 되뇌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도 많은 분들이 깊은 감동을 느끼셨을 겁니다.
근데 공감불능자인 저 또한 그랬습니다.
제가 뭐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느껴야겠다 하고
사회적 지능의 영역에서 억지로 감동을 짜 냈던 건 아니고,
(사실 감정의 영역에서는 억지로 뭘 느낄 수도 없지만요.)
이 과정은 다시 감정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저는 그 때 공감(X)이 아닌 감정이입(O)을 했던 겁니다.
다시 정리해봅시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이 나에게 복붙되는 현상입니다.
감정이입은?
내가 타인의 상황에 이입해서 그 상황을 가상으로 겪어보는 거에요.
이걸 판타지스럽게 비유해 보자면,
공감은?
타인이 마법주문을 외우면 그 즉시 나도 똑같이 주문을 복사할 수 있는 겁니다.
감정이입은?
내가 타인에게 빙의해서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처럼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이건 선택의 문제인데,
공감은 자동적입니다.
상대방이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주문을 외울 때,
나도 걍 자동반사적으로 그 주문을 외우게 되는 거죠. (헉)
반면, 감정이입은 선택적입니다.
내가 감정이입을 하고 싶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대상에게만
(내 현실적/이상적 자아와 닮아있는 캐릭터)
선택적으로 그 순간 빙의되는 거죠.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모든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을 하진 않습니다.
나와 비슷한, 또는 내가 닮고 싶은 그러한 특정 캐릭터에게만
선택적인 감정이입 과정이 일어나게 되요.
반면, 최상위 공감능력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걍 무조건 TV 속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의 감정이 복붙돼 버려요.
아 나는 공감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은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는 또 자주 운단 말야,
나 뭐지????? TT
비록, 공감능력은 떨어지지만,
감정이입 등의 전반적인 감정기능은 괜찮은 거에요.
나의 전반적인 감정기능 상태를 알아보고 싶다면
BIG 5 성격검사를 추천드리는데,
개방성의 하위 항목 중에 "감정존중"이라는 요인이 있습니다.
이 요인이 BIG 5 내에서는 나의 감정기능 상태를 가장 잘 반영하는 요소에요.
공감은 우호성의 하위 항목으로,
공감 수치가 낮으면서 감정존중 수치가 높다면
이 둘은 서로 "대체 관계"에 있으므로,
낮은 공감능력이 전반적인 감정기능으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친절한 요약)
① 공감능력은 감정기능의 일부일 뿐이다.
② 낮은 공감능력은 사회적 지능으로 대체하거나
③ 감정이입 등의 전반적 감정기능으로 커버할 수 있다.
④ 공감능력은 딱 적당한 수준일 때가 베스트이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가장 재미있는 주재네요 ㅋㅋ
제가 그래서 공감능력 부족으로 머리를 써야했던거군요
조금 뜨끔한게..전 공감능력이 많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순간 감정이입 이었던거 같기도 하고…
오... 저는 제가 감정이입 잘 하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공감능력이 별로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좋을 줄 알았는데 다른 거군요. ;;; 좋은 글 고맙습니다. :)
와 이것도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어요
공감을 저도 잘하는줄 알았지만 감정이입이엇던것 같네요
스포츠에 열광하고, 응원팀의 우승에 눈물을 흘리는건 어느쪽인건가요?
공감과 감정이입이 둘 다 묻어있다고 봐야하는데 이 둘을 구분하고 싶다면 내 자아와는 거리가 먼 캐릭터를 볼 때의 내 감정선을 체크하면 됩니다. 남성의 경우 여성 운동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이 때도 내가 감동을 받는다 싶으면 공감능력의 영역으로 보는 게 타당할 거에요.
감정존중 13점... ㅋㅋ 이래 나올 줄 알긴 했어요. 감정폭 크게 표현하는 사람에게 피곤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개인 애정사엔 사이코패스 수준이고요.
그럼에도 말씀하신 그 감정이입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빠져드는 거 같습니다. 흥미로운 주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