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미나리꽝(밭)과 솔(부추)을 회상하다.
화제의 영화 <미나리>를 보는 내내 어린 시절의 계속 떠올랐고, 그 주인공인 영화 속의 윤여정이 아니라 내 이런 시절 내내 함께했던 박심청이라는 이름의 내 할머니였다.
어린 시절 몇 년을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을 때, 내 역할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리 손주, 솔밭 가서 솔(부추) 베어와야지“ ”응“ 하고 가능골의 솔밭에 가면 바람에 그 새 푸른 솔들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잘 드는 낫으로 솔을 벨 때 콧 끝을 스치는 솔 냄새, 할머니는 그 솔을 가지고 데쳐서 무침도 해주고, 솔전도 부쳐주셨다.
“우리 손주, 미나리 밭에 가서 마니라 베어 와야지” “응” 동철이 삼촌네 집을 지나 영수 당숙에 집에서 조금 내려 가면 마을 사람들의 미나리꽝이 여러 다랭이가 있었는데, 우리 집 미나리 꽝은 시냇가 근처 제일 끝 지점에 있었다. 봄이 시작되자 마자 봄의 끝자락까지 오고 가며 베었던 미나리, 미나리 역시 데쳐서 무쳐 먹기도 했고, 물김치도 담았지만, 미나리 줄기가 연필처럼 굵어졌을 때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던 그 맛이 기억 속에 생생한데, 우리 집안의 농장인 솔밭(부처밭)과 미나리꽝이라고 부리던 미나리밭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가끔씩 그 작고 소중했던 ’솔과 미나리 농장“을 회고할 뿐이다.
내 고향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상백암만 그러하랴. 서울의 왕십리에서 나는 미나리가 서울 장안에서 제일 맛이 좋은 미나리였다.
지금까지도 회자 되는 그 미나리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이 19세기 서울에 살았던 심노숭沈魯崇이었다. 그가 유배를 가 있는데 지인이 유배지로 미나리를 보내오자 지은 시가 ’미나리 노래[水芹歌]’다.
한양성 동쪽 왕십리에는
집집마다 문 앞에 미나리를 심는다
푸릇푸릇 남가새도 같고, 부들과도 같은데
흰 눈 흩날리는 겨울을 홀로 견뎌내네
서울의 대가집들 이월에 겉절이 만드느니
가늘고 연한 미나리를 고춧가루로 버무려
분원 사기종지와 오리알처럼 하얀 그릇에
담아내 오면 입에 침이 먼저 들 정도
반찬으로도 좋고 술안주로는 더욱 훌륭해서
꿩젓, 양기기보다 훨씬 낫고 말고
청포 탕평채를 곁들여
갓 빚은 술 한 잔이면 종일토록 얼큰하지
또 별미로 미나리강회가 있으니
데친 미나리와 생파를 적당히 나누어
엄지손가락 크기로 둘둘 말아선
저민 생선이나 고기 넣어 초장에 찍어 먹네
남은 줄기는 잘게 잘라 기름에 볶아
봄날 점심 비빔밥에 넣어 먹기 좋구나
배오개 시장에 채소 장사 다 있지만
오로지 미나리 장사만 치마에 돈이 가득하다
천고의 호방한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은
귀양 가면서 철령 높은 구름을 노래했던 분인데
이분이 어찌 식도락가 일까만
북해가에서 서울 미나리를 그리워했다네
북청으로 유배를 갔던 백사도 그리워한 왕십리 미나리는 옛 문헌이나 이야기 속에만 남아 있으니,
(신정일의 신택리지, 서울 편>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마포 새우젓장수와 왕십리 미나리장수>라는 이야기이다.
194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사람들은 얼굴만 보고도 마포 사람과 왕십리 사람을 금방 알아냈다고 한다. 서울특별시사편찬 위원회가 펴낸 《동명 연혁고》의 ‘마포구’ 편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실려 있다.
조선시대에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 목덜미가 까맣게 탄 사람을 왕십리 미나리 장수라 하였고 얼굴이 까맣게 탄 사람을 마포 새우젓 장수라 하였다. 그 이유는 왕십리에서 아침에 도성 안으로 미나리를 팔러 오려면 아침 햇볕을 등 뒤에 지고 와 목덜미가 햇볕에 탔기 때문이고, 마포에서는 아침에 도성 안으로 새우젓을 팔러 오려면 아침 햇볕을 앞으로 안고 와 얼굴이 햇볕에 새까맣게 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이잡듯이 걸을 때, 내 별명이 <마포 새우젓장수와 왕십리 미나리장수>였다. 왜냐하면 얼굴도 새카맣고, 목덜미도 새카맣게 탄 사람이 ‘나’ 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선, 새우젓, 소금, 바닷말, 땔감 등이 서해에서 마포로 올라와 남대문을 거쳐 서울의 곳곳에 공급되었다.
동대문 밖 근교에서는 미나리, 한남동과 안암동 일대에서는 무와 배추가, 자하문 밖에서는 능금과 복숭아, 감과 배들이 서울에 공급되었는데, 그때 서울 처녀들이 돈 벌러 나가는 광경이 ‘건드렁타령’에 실려 있다.
왕십리 처녀는 풋나물 장수로 나간다지, 고비 고사리 두릎나물 용문산채를 사시래요 , 건드렁 건드렁 건드렁거리고 놀아보자…… 애오개 처녀는 망건장수로 나간다지, 인모망건 경조망건 곱쌀망 건을 사시래요.
서울의 왕십리도 그렇지만, 전주의 선너머(중화산동 화산서원 일대)에도 미나리밭이 그렇게 많아서 전주 팔미에 들었었는데, 미나리가 자라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푸르던 미나리가 자라던 그 자리에는 아파트와 건물들만 쑥쑥 자라고 있으니,
영화 미나리를 보면서 미나리꽝(밭)을 추억이나 해야 하니, 세월은 가고 추억만 남아 그 옛날을 회상할 뿐이다.
“원더풀! 미나리. 그리운 할머니” 하면서
2021년 3월 6일 토요일.
첫댓글 미나리하면 떠오르는 옆집 할머니, 미나리나물과 고추장 넣어 비벼 드시는걸 즐기셨던분으로~! 그리고 그분의 삶이...
미나리 독특한 향과 식감을 떠 올리며~!
ㅎㅎㅎㅎ 그런 기억이 있군요.
식감은 참으로 아사삭하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