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향기’
한 기자가 당대의 섹스 심벌이었던 마릴린 먼로에게 물었다. “잠을 잘 때 무엇을 입느냐”고.
먼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왜요? 물론 몇 방울의 샤넬 넘버 5죠.”
향수만 뿌리고 알몸으로 잔다는 먼로의 말 한마디로 샤넬 넘버 5는 가장 대중적인 향수로 유명해졌다.
‘연기를 통한다’는 뜻의 라틴어 ‘per fumum’을 어원으로 하는 향수는 약 5000년 전 고대인들이 신과 인간 간의 교감을 위한 매개체로 사용한 인류 최초의 화장품으로 불린다. 지금은 55초 만에 1개씩 팔려나갈 정도로 유명한 향수의 대명사지만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샤넬 넘버 5는 상식을 깨뜨린 혁명이었다. 한두 종류의 꽃을 원료로 만들던 당시 향수는 향기가 쉽게 날아갔다. 향기를 지속적으로 내려면 많이, 그리고 자주 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샤넬 넘버 5는 그때까지의 향수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장미와 재스민 등 80여종의 다양한 꽃에 합성화학물질인 알데하이드를 혼합해 은은하게 지속하면서도, 시공을 초월해 살아남는 향기를 만들어냈다.
샤넬 넘버 5엔 프랑스 특유의 미학 이론도 숨어 있다. 아름다움은 추한 것 옆에 있을 때 더 아름답게 보인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를 기획했을 때, 그가 꿈꾼 향수는 ‘나’의 개성, 추상적이면서도 독특한 뭔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향수는 시간이 지나면 그 향이 사라진다. 향은 순간일 뿐 영원할 수는 없다. 향수는 여성의 타고난 아름다움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 때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 미학에 따르면 ‘추(醜)’가 바로 향수의 역할이다. 샤넬이 천연 꽃 향기 대신 인공적인 향수를 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정하가 <사랑이 켜지다 로그인>이라는 산문집에서 “향수란 당신의 살 냄새와 섞여야 비로소 새로운 향기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샤넬 넘버 5는 그 이름에서 보듯 숫자 5와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코코 샤넬이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조향사였던 에르네스트 보가 제시한 6가지 향수 중에서 망설임 없이 선택한 게 다섯번째 향수였고, 그래서 이름도 샤넬 넘버 5로 지어졌다. 5는 샤넬의 행운의 수였다. 샤넬이 친구들에게 샤넬 넘버 5를 처음 선보였던 것도 5월5일(1921년)이었고, 사업가 버트하이머와 손잡고 샤넬 향수회사를 설립해 대량 생산·판매에 들어간 것도 5월5일(1924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