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글을 많이 쓰는편이 아니지만, 제가 다른분들 글을 읽고 도움이 많이 되었기에,
이식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버지께서는 11월 23일 뇌사자 간이식 수술을 받으시고 중환자실에 입원중이십니다.
정말 그동안 가족들이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고, 좌절의 순간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몇 개월 사이 겪었던 일들을 쓰기에 가급적 병원이름과 실명은 거론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 주관과 호/불호 판단은 가급적 배제하려고 노력합니다.
병원과 의사들에 불만이 많았지만, 비전문가인 환자 시각에서 본 내용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경험을 되돌아보면 여러 번의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지만,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좋은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고, 잘 판단했을 수도 있죠.
다만 가급적 객관적으로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은 읽으시는 분들이 개인적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나이는 올해 62세로 젊은 시절 지나친 음주로 30대 후반에 급성 B형 간염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후 금주/금연을 하시고 평생을 간염 관리를 하며 살아오셨습니다만 결국 4년전 간경변에 이은 간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이때 첫번째 선택의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담당 의사께서는 아버지께 간암인 듯 하다는 소견을 내고 절제술을 권하였습니다만,
당시 간암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아버지께서는 절제라는 말에 기겁을 하시고 내과적인 치료를 선택하셨습니다.
암이라는 게 재발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특성이 있는데 절제 후 재발할 경우 다시 절제를 반복하다가는 마지막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말씀이셨습니다.
결국 대체의학을 활용하는 요양원에서 몇 개월 요양을 하셨고, 이후 다시 확인한 결과 암세포는 오히려 커져있었습니다.
암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입수해서 적합한 판단을 내렸어야 하는데, 가족들이 암이라는 판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제 책임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인터넷 등 활용기회가 적은 부모님보다 간암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훨씬 많았는데,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보다는 병원과 부모님의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절제술을 권했던 의사의 적절한 판단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수까지 범했습니다.
다만 유명병원의 유명한 의사이셨던 그분은 환자에게 병의 인과관계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기 보다는,
단정적으로 말씀하시고 환자가 본인의 말을 잘 따르지 않거나 의심할 경우 불같이 화를 내고 불친절하셨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고,
이에 적절한 판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의사를 불신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가족회의를 하고 병원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저희 가족의 판단 실수였고, 가족의 책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다시 한번 병원을 옮기게 되었고, 이때부터 지리한 색전술의 반복이 시작되었습니다.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색전술을 12회 받았습니다.
암세포가 발견되면 색전술을 시행했고, 색전술 이후 검사를 하면 암세포가 줄어들거나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효과가 없을 때는 다시 날짜를 받아 색전술을 시행했습니다.
당시 색전술을 진행한 후 병원에서 소견을 들어보면, 아버지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하고,
아버지께서도 큰 불편 없이 살아가셨기에 모든일이 잘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간암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봤지만, 이때도 수박 겉핧기 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불성실한 정보 수집에도 아들로써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병원측에 한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제가 정보를 안찾아봤다 하더라도 간암 치료에 간이식 수술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통해 병원에 문의해보라고 말씀드렸었고,
어머니께서도 의사분들이 회진돌 때 문의를 하셨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본인이 한번, 제가 다시 물어보라고 해서 한번, 두번을 문의하셨으나 아버지 경우는 간이식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서 이식 불가사유에 대해 상세히 문의를 했어야 했는데,
어머님이 담당 주치의사도 아니고, 레지던트 분들이 회진돌 때 물어보았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 또 한번의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결국 2년 넘게 색전술을 받는 동안 이식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고, 병원에서도 아무도 권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올해 5월 경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황달이 너무 심해져서 병원으로 갔고 색전술을 받았는데,
색전술 이후 검사에서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으며,
다시 시행한 색전술도 아버지 몸이 받아들이지 못해 시술 중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제서야 저희 가족은 아버지 몸상태의 심각성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벌써 간암 말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무지에 땅을 쳤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진 후였습니다.
황달을 떨어뜨리기 위해 담도관 확장 시술 및 관을 통해 담즙을 배출하는 시술을 받았으나 소용없이 황달은 심해져만 갔습니다.
점차 복수도 차오르기 시작했고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데,
제가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주치의한테 간이식이 안되느냐고 정확히 문의를 하라고 하였고,
마지막으로 지친 어머니께서 주치의사(교수님) 회진왔을 때 정말 저희 아버지는 간이식도 안되는건가요? 라고 문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지금 기증자만 있다면 아버지 상태로는 간이식이 가장 적극적으로 권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말씀을 전해듣고 정말 저는 땅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동안 직접 병원에 가서 주치의사와 상담하지 않았던 지…
왜 그동안 어머니를 통해서만 아버지 상태를 전해듣고 있었는 지…
왜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었던 지…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즉시 외과 외래를 밟아 담도외과 의사를 만나 아버지 상태를 물어봤습니다.
아버지 사진을 죽 훑어보더니 색전술을 대체 얼마나 받으셨길래 혈관이 이지경이 되었냐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결론적으로 기증자가 있으면 이식수술은 가능하다. 그러나 담도를 암이 누르고 있고, 전이는 아니나 침범되어 있는 상태라
수술후 재발확률이 3~40%에 이른다.
일단 지금이라도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재발확률이 3~40%에 이른다는 말은 다시 절망감을 맛보게 했습니다.
같은병원에서도 내과와 외과간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결국 재발할 때 하더라도 수술이라도 해봐야되지 않겠냐는 가족의 의견에 따라
제가 기증을 하기로 하고 기증자 검사를 받았습니다.
안그래도 아버지께서 한시라도 빨리 수술을 하는게 좋다는 의견에 따라 1차 검사결과가 나오자 마자 급하게 2차 검사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도 협조를 해주어 2차 검사결과도 검사 당일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직검사가 끝나고 지혈을 위해 누워있는 저에게 간호사분이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은 저를 당황케 만들었습니다.
지방간이 높아 지금은 이식이 불가하다. 앞으로 2주안에 5~10kg 을 감량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비교적 건강한 편이고 신체적 조건도 아버지에 비해 좋은 편이며, 운동도 다른 사람에 비해 꾸준히 하던 저에게는 무척 당황스러운 소리였습니다.
지금까지 직장 신체검사에서 지방간 소견을 받은 적은 약 5년전 1번이었고, 이후에는 모두 정상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조직검사 결과가 정확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이후 저는 운동을 통한 감량에 들어갔습니다.
하루에 3~4시간을 확보하여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이 시기에 와이프가 첫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었는데, 남편이 간 기증을 해야한다는 소식도, 또 산모와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운동을 해야한다는게 와이프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렇게 3~4일 운동을 하던 중에 병원에서 어머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간 크기는 정상인데 우엽 비율이 기준치에 미달하여 이식이 불가하다고 연락이 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다시 한번 절망에 빠졌습니다. 특히 저는 기대하고 계시던 아버지께 무척 죄송스러웠습니다.
아버지 재발 가능성 때문에 친척분들께 기증을 부탁을 드리기도 죄송스러웠던 저희 가족은 중국행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제 여동생과 함께 중국 간이식과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 지인을 통해 확보하고, 중국행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간이식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브로커, 와이프 친구분 어머니 소개로 알게 된 이식경험자 소개, 이식을 받은 이모부 친구분 소개 등을 통해 모았습니다.
그중에서 와이프 친구분 어머니 소개를 통해 알게된 이식경험자께서 추천해주신 중국 의사분을 통해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수술받으신 분께서 믿을만한 분이셨고, 양심적이며 실력있는 의사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경로를 통해 알게된 병원 또는 의사는 중간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했고,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선택한 의사는 중국 내에서도 실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간이식, 새로운 생명의 길>이라는 책에도 이름이 나와있는 의사였습니다.
계속 반대하던 저희 부모님께서도 그책을 읽고는 중국행에 동의하셨습니다.
선택한 의사분을 추천해주신 이식 경험자 말씀으로는 그 의사의 경우 수술 후 회복이 어려운 경우는 수술을 안한다고 하길래 더 신뢰가 갔습니다.
판단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는 성공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돈만내면 무조건 수술해준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결정한 후, 아버지 병원기록을 모두 떼서 그 의사에게 보냈으나 의사로부터 아버지는 재발 확률이 너무 높아서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저희 가족은 다시 한번 실수를 했던 것 같습니다.
다급해진 마음에 저희 가족은 그 의사에게 통사정을 했고(소개해주신 분을 통해서…이제는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고 계셨습니다.)
결국 와서 검사라도 해보자라는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중국에서의 고행은 시작되었습니다.
벌써 시간은 흘러 10월 초였고, 어머니께서 이민가방에 바리바리 짐을 싸서, 아버지를 모시고 중국 청도로 출발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내는 저와 동생 심정은 뭐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청도로 가신 이유는 원래 그 의사분이 북경에서 수술을 진행했으나, 현재 북경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수술규제가 심하여,
수술할 일이 있을 때 미리 협의가 되어있는 청도병원으로 와서 수술을 진행하고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시설보다 의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저희 가족은 아무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청도에 계신 부모님과 서울에 있는 저와 동생의 국제통화가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조선족 통역과 간병인과 함께 계셨습니다.
청도에 있는 병원은 시설은 옛날 서울대학병원 수준이라고 방문했던 매제가 그러더군요.
(매제가 여동생과 상해에 살고있었고, 당시 여동생은 조카가 심장 판막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어 서울에 있었습니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청도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괜찮았다고 하시더군요.
하여간 청도에서 이식할 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생활이 시작되셨습니다.
초조했지만, 생각만큼 빨리 나오지 않더군요.
1주가 지난 후에 간이 배정되었는데 O형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시 1주가 지날 즈음에 간이 배정되었는데 역시 O형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20일경이 지난 후에 의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퇴원 요청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동안 친절하게 대해주던 젊은 중국의사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부인, 부군은 앞으로 2주안에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2주동안 저희 병원에 간이 배정될 계획이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시던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이에 놀란 어머님이 한국으로 전화하셨고, 저는 급하게 사전에 기본정보를 알아봐놨던 브로커분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그중 한분이 마침 내일 배정되는 O형간이 있으니 이동이 가능하면 내일아침 첫비행기로 바로 광저우로 이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수술이 급하다는 소리에, 그리고 약 20일간 중국병원에서 간이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경험에서,
저와 동생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광저우 행을 택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님께 말씀드려 다음날 아침 첫비행기로 바로 광저우로 이동하도록 말씀드렸고,
저도 바로 광저우행 비행기표를 예약해서 다음날 아침 첫비행기로 광저우로 향했습니다.
브로커 분은 친절하게 다음날 약 2시 경에 간이 적출될 예정이고,
아버지가 빨리 도착하셔야 바로 검사를 시작해서 오후 5시 경에는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광저우에 오전 11시경 도착하셨고, 저는 12시경 도착했습니다.
광저우 공항에서 약 2시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기에, 부모님은 브로커분이 준비해준 차량을 타고 먼저 이동하셨습니다.
저는 12시에 도착하여 1시에 다른 곳에서 광저우로 오신다는 브로커분을 만나 함께 병원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이때까지 겨우 수술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으나, 도착하신 브로커분의 말씀은 다시 한번 저를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이를 어쩌죠? 오전에 간을 적출했는데, 간상태가 안좋아 수술할 상태가 아니라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다음주 화요일에 다시 한번 O형간이 나올 예정이니 그때까지 기다려 보시죠. 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안타까운 소리였습니다. 서울에서 아버지 수술을 받으실 수 있다는 소리에 급히 휴가내고 광저우까지 날라왔는데 허탕이라니…
어쨌든 그분과 함께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먼저 병원에 가있으셨기에 가야만 했습니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브로커분과 대화하며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가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닌가?
정말 오늘 간이 적출되긴 했을까?
오늘은 안타깝게 적출된 간 상태가 안좋았지만 다음주라는 기회가 또 있지 않는가?
다음주도 간 상태가 안좋다면?
부모님께서 또 얼마나 실망하실까? 등등….
2시간 동안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저는 중국 간이식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 판단을 하기위해 동행하는 분께 계속해서 문의를 드렸고, 친절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소개해준 브로커 분이 사기를 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오늘 간이 나온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주에 나온다는 얘기도 오늘의 실망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해준 말인 것 같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저희 가족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이미 거동이 힘든 아버지가 여기까지 오시면 그분들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계산된 것 같다.
여기서 머물러 있어도 다음주에 간이 나온다는 확신은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그렇게 나오지 않던 간이 우연히 제가 연락한 바로 다음날 나오기로 되어있었다는 것,
그럼에도 아직 수술받을 사람이 확정되어있지 않았었다는 것,
또 바로 다음주에도 또 O형 간이 나오기로 되어있다는 것,
등등 확률낮은 일들이 너무 우연하게 제 상황과 맞아 떨어졌기에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또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청도에 계실 때, 사촌형이 북경에 있는 병원을 소개시켜주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사촌형 말로는 조선족 친구가 있는데 그분 친구가 북경 경찰의 높은 분이며, 그분께 사정얘기를 했더니 북경으로 오면 바로 수술받게 해주시겠다고 병원을 옮길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광저우에서 청도에서처럼 기다려야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청도에서처럼 장기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던 저는
다시 사촌형이 소개시켜준 북경 병원으로의 이동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광저우 근방 병원에 도착하여 부모님을 근 20여일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출발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해 계셨습니다.
황달은 더욱 심해져 온몸이 노랗게 되었고 검은 빛까지 띄는 것 같았습니다.
말씀도 거의 못하시고 쉰 목소리로 겨우 힘들게 한마디 하시는 정도였습니다.
어머님도 계속된 병원생활에(서울에서도 계속 병실 생활을 하셨습니다.)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힘들게 오늘 수술이 안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연히 아버지 어머니는 절망에 빠지셨고, 당장 사기꾼 아니냐고 따지고 드셨습니다.
잠시 아버지, 어머니께 상황을 설명드렸고, 아버지 어머니는 사촌형이 소개해준 북경 병원으로 당장 가자는 의견이었습니다.
이미 그때는 오후 5시가 거의 다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급하게 사촌형과 통화를 했고, 사정 설명을 하고는 북경병원에 오늘 이동하여 입원할 수 있는 지 문의하였습니다.
사촌형은 친구를 통하여 북경의 경찰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광저우 병원을 소개해주신 브로커분께서 사기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으나, 다음주에 O형간이 나온다는 말씀은 솔직히 믿기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늦어도 2주 안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기에 저에게는 시간이 급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수술을 받지 못한 실망감에 무조건 바로 떠나자는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북경의 경찰 친구분과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습니다.
브로커분께서 일단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라고 생각하셨으나, 제 생각에는 병원을 옮긴다면 당장 옮기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비록 계속되는 이동으로 아버지 몸상태가 걱정되었지만, 하루를 지내게 되면 이동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동을 하려면 비행기 시간 때문에 바로 이동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연락이 닿지 않은 상황에서 저는 사촌형 친구의 친구인 경찰을 믿고 북경으로 이동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병원도 북경에서 간이식으로 유명한 병원이었습니다.
염치불구하고 광저우로 안내해준 브로커분께 이동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비행기표 예약과 공항까지 이동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분도 더 붙잡지 않고 공항까지 태워주셨습니다.
병원에서 5시 반경 출발하였고, 이동하는 차안에서 저녁 9시 30분경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약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한걸음 한걸음을 부축받아 겨우 옮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동하며 계속 북경쪽으로 연락을 취하였고, 일단 밤늦게 북경에 도착하니 하루는 호텔에서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날은 저희 가족 모두에게 악몽 같은 하루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청도에서 출발한 새벽부터 식사를 전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쓰러지기 직전이셨습니다.
어머님이 서울에서 싸간 짐은 청도에서 구입한 각종 살림살이로 더 불어있었습니다.
제가 힘이 좋은 편이지만 혼자서 부모님 짐을 다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님이 부탄가스를 이민가방 곳곳에 숨겨넣었다가 공항 검색대에서 걸려 모든 짐을 풀어 부탄가스를 압수당하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하여간 겨우 겨우 도착하여 북경 수도공항 활주로에 내렸을 때가 밤 12시 30분경이었습니다.
이때 북경의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국제공항이 아닌, 시내 외곽 조그만 국내선 공항이었습니다.)
비행기는 공항 주기장 한가운데 서있었고, 비행기로 버스가 데리러 오지도 않고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 모두가 공항 건물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안개는 자욱하여 사방이 분간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치 제 심정이 날씨로 표현된 것 같더군요.
하여간 겨우 민박을 구해 하루를 지냈으며 다음날 통역해줄 분 한분을 구해 병원으로 갔습니다.
경찰분은 와이프가 그 병원에 일하고 있었으며, 병원 내과에 친구가 주임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주임의사는 청도에서 찍어온 아버지 사진을 보고, 이미 늦은 것 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재발확률이 높아서 자기 병원 중국 환자들에게는 이런 경우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발확률이 3~40% 된다는 얘기는 들었다고 하자, 자기가 볼 때는 6~70%는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세한 내용은 외과의사가 직접 차트를 봐야 알겠다고 했습니다.
외국인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쉽지 않아 여러가지 해프닝 속에 겨우 중환자실에로 입원하실 수 있었고,
어머니와 저는 겨우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병원 중환자실은 환자에게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 직접 음식을 만들어 하루 세끼를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이에 어머니와 저는 조선족 간병인분과 함께 중국인 민박을 잡아 하루를 지냈습니다.
어머님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가스불이 있는 곳을 잡아야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겨우 구한 중국 민박집은 정말 열악했습니다. 안내해준 조선족 통역분이 한국민박을 생각하면 안된다고 하여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심했습니다.
작은 아파트 1층이었는데, 방마다 1~2분씩 중국분들이 머무르고 있었고 저희방을 가기위해서는 다른사람이 머무르고 있는 방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방에는 한쪽벽은 도배도 안되어있었고, 좁은 방에 침대3개가 나란히 붙어있었으며, 침대이불은 언제 세탁을 했을지 알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전날 이동으로 무척 힘들어하셨던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켰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루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한 저는 병원 근처 호텔을 잡았습니다.
2인실이 약 6만원 정도로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머물만 했습니다. 시설도 괜찮았습니다.
어머니가 걱정하신 가스불은 없었으나 청도에서 구입한 전기밥솥으로 아버지가 드실 죽을 쑬수 있었습니다.
입원을 금요일에 하셨고, 토요일에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주말에 의사와 저녁식사 약속을 잡아줄 테니 그때 궁금한 내용을 다 물어보라는…
그래서 주말에 게속 기다렸으나 일요일에 다시 연락이 와서는 의사 사정으로 다음주 화요일로 약속이 연기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에 회사를 계속 비울 수 없었던 저는 일단 일요일에 서울로 돌아오고, 대신 제 여동생이 북경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월요일이 되자 다시 목요일로 약속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저희 가족은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있어 면회를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브로커를 통하지 않은 덕분에 아버지 상태에 대해 전혀 알수가 없었고, 처음 소개받은 내과의사도 바쁜데 계속 전화를 하니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 저녁 제 동생이 어떻게 부탁해서 중환자실에 들어가 아버지를 잠시 면회를 하고 왔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전화가 와서 울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아버지를 뵈었는데 병이 더욱 깊어지시어 곧 돌아가실 것 같다. 여기서는 신경도 안쓰고 있는 것 같다. 그냥 방치해둔 상태인 것 같다 등등…
고민에 빠진 저는 다시 계속 도와주고 있는 사촌형과 상의를 했습니다.
이쪽에서는 아버지 소식을 들을 길이 없다.
처음 소개해준 내과의사는 계속 짜증만 내고 어떻게 진행될지 설명을 안해준다.
소개해준 경찰도 병원에 들리겠다고 말을 했으나 본적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
북경에 머물고 있던 회사 선배에게도 연락해서 상의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배는 아무래도 경찰 자체가 사기꾼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중국에서는 이런 류의 사기가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되돌아보면 중국에 있는 동안 가장 최악의 선택이라고 후회할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는 인터넷에서 간이식 환자를 유치하고 있는 조선족 의사가 한명 있었습니다.
제가 초기 아버지 간이식을 위해 중국에 있는 여러 브로커들에게 아버지 자료를 보냈었는데, 당시 그 의사에게도 아버지 자료를 보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 상태가 안좋긴 하지만 수술은 가능하다고 얘기를 들었던 상태였습니다.
다만, 일단 경찰 소개를 통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기 때문에 혹시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피하고자 그 의사에게는 연락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더 이상 아버지 소식을 알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마침 북경 병원을 소개해준 사촌형 형수님이 그 의사와 친척분이 아는 사이라고 하며 그 의사에게 연락하여 아버지 상태를 문의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도 아버지 상태를 알아보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친척분을 통해 말씀해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그 의사는 다음날 아침 자기에게 환자가족이 직접 전화를 하도록 하라고 했고, 이에 제동생이 전화를 해서 얘기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이러저러 해서 아버지가 경찰과 경찰이 소개해준 내과의사 소개로 이미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얘기를 하자,
본인에게 이식을 상담하러 전화한 줄 알았다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랍니다.
확인해보겠다고 하고 신경질 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고 동생이 놀라서 전화했습니다.
그러더니 오후에 경찰이 소개해준 내과의사를 통해 전화가 왔습니다.
그 조선족 의사가 오후에 찾아오더니 그 환자(저희 아버지)는 수술이 불가해서 본인이 입원안받겠다고 한 환자인 데 왜 받았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면서,
당장 퇴원시키라고 했다는 겁니다.
원래 저희를 귀찮아 하던 내과 주임도 통역을 통해 매우 화를 내며 자기도 모르겠으니 당장 퇴원하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말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아버지 수술이 가능하다고 빨리 중국으로 오시라고 얘기했었는데…
아마도 자기를 거치지 않고 입원한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돈을 요구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병원을 소개해준 경찰에 다시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상황을 정리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사촌형을 통해 연락이 왔는데, 정리는 커녕 오히려 조선족 의사한테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 가족은 정말 절망적이었고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게 됐습니다.
동생이 저와 사촌형 형수님을 원망하더군요.
아버지 간이식을 위해 줄곧 달려왔는데 처음으로 포기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모셔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찰과 내과의사가 도와줄 용의는 있으나 최소한 수술을 앞당겨줄 능력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병원에도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고 아버지가 수술을 받더라도 그 기간을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선족 의사에게 돈을 주고 생명을 구걸할까도 생각을 해보았지만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병원 의사와 식사를 하기로 했던 목요일 (이때가 10월 30일이었군요) 아버지를 퇴원시켰습니다.
이 병원은 다시 한번 저희 가족을 당황스럽게 만들더군요.
퇴원하려고 호텔 숙소에서 어머님과 동생이 짐을 싸고 있었는데 조선족 간병인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병원 의사인데 아버지 문제로 좀 보자고 그랬다고…
그래서 동생이 어머님과 매제, 간병인과 함께 그 의사를 만났습니다. (매제가 상해에서 이날 북경으로 와서 퇴원을 도와줬습니다. 원래는 병원 의사만날 때 함께 볼 생각으로 갔었죠.)
그 의사 왈, 아버지 상태를 설명하며, 아버지가 매우 위급한 상태다. 지금 당장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데,
수술 대기자 리스트를 가리키며, 아버지는 제일 끝순서다. 이대로는 수술 받기전에 돌아가실 거다 라고 하며,
자기에게 우리나라 돈으로 2억을 주면 오늘 당장 수술을 받게 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위와 같은 내용으로 급하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저는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기꾼은 아닌가? 하지만 병원 의사라고 하니 사기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간은 지금 간호사가 가서 사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전 광저우에서 브로커분께 들은 바로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불법적으로 빼돌린 간을 병원간 입찰을 통해 사올 수 있다고…
그러나 일단 그렇게 큰 돈을 구할 수가 없었고, 또 간상태도 알 수 없었고, 그 의사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으로써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를 기회를 그렇게 보내니 정말 안타까웠으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경찰이 주선해준 의사와의 저녁식사를 뒤로하고 북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상태가 매우 급했다고 생각했기에, 바로 당일 저녁 비행기티켓을 예약하고 퇴원수속을 밟았습니다.
퇴원조차 쉽지 않더군요. 제 여동생 내외와 어머니가 아버지를 모시고 비행기를 타고 제가 앰뷸런스를 불러 인천공항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습니다.
퇴원에 시간이 한참 걸려 제동생은 발을 동동 굴렀고, 병원에 예치해둔 입원비용을 환불받을라고 하니 내일 다시 오라 그러더랍니다.
제 동생이 폭발해서 당장 내놓으라고 소동을 부렸고, 일단 받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는 가장 중요하던 중국에서의 병원 기록을 하나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중환자실 들어갈 때 함께 넣어 보냈는데, 수술해주겠다고 돈을 요구했던 의사가 가져갔기에 바로 돌려주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제 동생은 할 수 없이 병원 기록과 사진 등을 포기하고 우편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한 후 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그 병원 기록은 아직도 한국에 도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항에서도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동생과 어머니의 부축으로 겨우 걸음을 옮기시기에, 항공사 측에 휠체어 서비스를 요청했는데,
이게 화근이 된건지, 아니면 중환자라 자체적으로 판단을 한건지 항공사 측에서 비행기에 탑승을 할 수 없다고 막아선 것입니다.
의사 소견서를 갖고 오라는데,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정사정을 하고 비행기 시간에 겨우 맞춰 탑승을 할 수는 있었으나 인천에서 대기하고 있던 저에게는 정말 답답한 순간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전에 입원해있던 병원으로 이동할 생각이었으나, 아버지께서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는 얘기를 들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객지에서 너무 고생을 하셨기에, 그리고 입원 예약이 되어있지 않으니 어차피 응급실로 들어가셔서 병실이 날때까지 또 고생을 하실 것 같길래 집으로 모실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휠체어에 타고 나오시는 모습과 앰뷸런스에 실리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집으로 모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앰뷸런스에서 누워있는 아버지 곁에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그동안 객지생활로 말씀이 아니셨고, 아버지는 눈만 깜박이시는 정도지 말씀도 못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겨우 응급실에 도착해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응급실 간호사분이 중국에서 수술 못받고 돌아오시는 분은 처음 봤어요~ 라고 하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제가 정확히 알아보지 못했고, 정확히 판단을 못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일단 그나마 병원에 도착하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됐는데도 바로 입원을 안시켜주는 겁니다. 처음엔 입원실이 안나서 그런줄 알았는데, 입원실은 낫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물어보니, 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외과로 입원해야 하는데, 검사를 해보니 아버지 폐렴이 워낙 심해서 내과로 입원시킬 지 판단을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폐렴이 너무 심해서 간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돌아가시게 생겼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조금 후에 한가지 더 가족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예전 기록을 보니, 복벽에 암세포가 전이가 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식을 어떻게 받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복벽에 전이라는 말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것 때문에 이식이 안된다면 대체 지금까지 뭣 때문에 그 고생을 했단 말입니까?
더욱이 복벽에 전이라는 기록도 모두 이병원 기록인데, 당시 왜 간이식이 가능하다고 얘기를 했을까요?
하여간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병실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날 밤늦게 입원실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예전 중국으로 떠나기 전 제가 기증할 예정으로 아버지께서 간이식 수술전 검사를 받았는데,
당시 PET사진에 겨드랑이 근처에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것도 확인해봐야 된다고 했습니다.
즉, 아버지께서 간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1) 건강한 기증자가 나와야 하고, 2) 복벽에 전이되었다는 내용을 확인해봐야 하고, 3) PET촬영에서 나온 무엇인가도 확인되어야 하며, 4) 마지막으로 폐렴도 나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산 하나하나 넘기가 저에게는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더군요.
일단 2, 3, 4는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니 아버지의 체력과 하늘에 맡기기로 생각하고,
제가 할 수 있는 1번만 확실히 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중국에서 아버지를 모셔오기 직전,
고생하고 있는 저희 가족을 보고 외삼촌이 기증 의사를 밝혔었습니다.
이에 일단 염치불구하고 삼촌께 부탁하여 1차 검사를 몇일전 진행해놓았고, 2차 검사를 받았습니다.
사실 제입장에서는 아버지께서 이식을 받더라도 재발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친척분께 부탁드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능하면 제가 기증을 하고 싶었기에,
외삼촌이 외래 오던날 제 기증자 검사를 담당했던 외과의사분을 찾아가 문의드렸습니다.
일단은 지방간과 관련하여 당시로부터 몸무게를 5~6kg 정도는 줄였다는 것을 말씀드렸고,
간 좌우엽 비율이 안맞아 안된다고 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해주십사 부탁드리며, 가능하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기증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외삼촌이 기증을 했는데 재발한다면 너무나 죄송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친절했던 외과 의사분은 다시 한번 확인해서 연락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외삼촌이 2차 검사를 받던 날 회사를 마치고 담당 외과의사분을 만나기 위해 혹시 계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외과를 찾아갔으나 역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병실로 올라가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의사분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간크기 관련 문의를 드렸던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기억을 해내시며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다른 사람이 측정했더니 기준치 이상이 나오더라고…한번 더 측정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저는 정말 뛸듯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즉시 2주 동안 5 kg 정도를 감량하고 운동을 중지했던 것이 후회가 되더군요.
간호사는 5~10kg 정도는 빼야한다고 했었으니까요.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이후 주말에 저는 다시 감량을 위한 운동에 들어갔습니다. 월요일 조직검사를 다시 해보자는 희망을 갖구요…
어머니도 병원 의사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고, 병원 의사가 외삼촌의 경우 나이가 40대라 기증자 검사 통과하기가 어려울 것 같고,
아드님이 기증하게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나 기다리던 전화는 월요일에 오지 않았습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화요일 아침에 전화가 오더군요.
세번째 측정했는데 기준치 미달이라 기증은 안되겠다구요…
충격을 받은채로 조금 자세히 물어봤습니다.
간을 절제해주고 남아있는 부분의 비율이 30%가 넘어야 하는데,
1차 검사에서 28.x %, 2차 검사에서 30.x% 가 나왔는데, 3차 검사에서 27.x %가 나와 기증 불가로 최종 판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전화 통화해준 의사가 결정을 번복해줄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정했습니다.
정말 기증할 사람이 없다. 사람마다 수치가 변경되는 그정도 오차라면 가능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환자 가족의 마음은 이해하겠으나, 어쩔 수 없다… 재검할수록 병원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측정하는데 최종적으로 측정한 사람의 판단을 번복할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할 수 없이 마지막 외삼촌께 희망을 걸었습니다.
이식센터에도 연락하여 뇌사자 대기 우선순위가 혹시 올라갔는지 물었습니다. 응급도가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매우 위중하시긴 한데, 아직 2A로 올라설 단계는 아니라는 겁니다.
어차피 뇌사자 이식은 로또와 같다는 얘기를 들었었기에 기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른 방안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러고 있는 동안 아버지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회진 돌 때 내과의사분 말로는 폐렴이나 다른 감염상태가 워낙 안좋아서 간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돌아가실 수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이식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이대로는 이식도 받지 못한다고…
더구나 아버지께서 간성혼수가 오신 것 같았습니다.
전날 새벽에는 링거를 뽑아버리고, 소변줄도 뽑아버릴라고 했다더군요.
침대 시트가 피투성이가 되고 난리가 났었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녁때는 간병인을 불러 부탁드리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24시간 계실수가 없었고, 저도 회사를 나가야 했고, 여동생도 이제 24개월 된 아이 때문에 항상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 상황과 상관없이 이식을 준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이식은 받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습니다.
일단 외삼촌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대안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나이 때문에 힘들 것이다라는 예측을 들었으니까요.
간 크기 관련해서 인터넷 카페에 문의를 드렸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다른 병원에도 문의해보라구 하시더군요.
거기서 희망을 얻었습니다. 희망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즉시 다른 병원 두곳 장기이식센터에 문의를 드렸더니, 아버지와 제 검사기록을 갖고 외래를 오라고 하시더군요.
일단 한 곳에 들러 외과의사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간 기증이 정말로 안되냐고 물어보았지요.
제 간사진을 살펴보시고는 안될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계산을 해보겠다고 하시더군요.
조금 후 측정 결과와 함께 코디네이터분과 상담을 했습니다.
말씀이 간절제 후 남는 부위가 딱 30%로 측정이 되었다더군요.
정말 뛸듯이 기뻤습니다. 한가닥 희망이 다시 생긴 것이니까요.
그런데 조금 걱정하던 지방간도 예전 측정당시 기록으로도 수술이 가능한 정도라고 하시더군요.
병원마다 기준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기증자 안전을 생각한 것이겠지만, 이렇게 기증자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금만 융통성이 발휘되어도,
환자 생명을 구할 수 있을텐데…
마침 같은날 외삼촌의 2차검사 결과가 어머님께 통지되었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저와 유사하게 간크기 문제로 불가하게 되었다고…검사 당사자인 외삼촌께는 병원에서 전화 한통도 가지 않더군요.
그래도 약 200만원 정도의 거금을 들여 검사하는 건데…
더 이상 그 병원에는 미련을 갖지 않고 기증이 가능하다고 한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앰뷸런스를 불러서 코디네이터분이 잡아주신 중환자실로 입원했습니다.
새로운 병원에서 입원한 아버지 상태를 보고는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가져갔던 기록과 제가 설명한 아버지 상태로 예상했던 것보다 상태가 너무 안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병원에서는 달지 않고있던 인공호흡기를 바로 연결했습니다.
역시 지금 상황으로는 폐렴과 다른 감염 때문에 수술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갔고 결국 신장상태까지 아주 안좋아져 투석기를 달았습니다.
겨우 기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수술도 못받고 돌아가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신 투석기를 달며 뇌사자 대기 응급도가 2A 레벨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1주, 연장 1주, 합계 2주 기간동안 뇌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응급도는 다시 내려간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초조하게 시간이 흘렀고 기다리던 중 5일만에 뇌사자가 나왔다는 연락이 코디네이터분으로부터 왔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아버지 상태가 안좋아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상태가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무조건 수술하시겠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태가 워낙 안좋아 수술중에 문제생길 가능성도 절반 정도는 된다는 것과,
뇌로 가는 혈류가 약해 수술후 의식이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주지시켜주셨고,
재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다시 확인시켜주셨습니다.
그날이 11월 23일 일요일이었는데도, 바로 수술팀이 소집되었고 오후 2시에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이식을 위해 그렇게 뛰어다녀도 안되다가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이식을 받으시게 될 줄이야…
마지막에 병원을 옮기기 직전에는 간성혼수가 오셔서 의식이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저하고 동생에게 사기꾼, 도둑놈이라고 하셨다는 말씀에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이식수술 받게 해준다고 중국을 그렇게 돌아다니며 고생하셨으니…
오후 2시에 수술이 시작되어 수수시간이 10시간 정도라고 했으니 12시에 무사히 수술이 끝나기를 바라며 대기실에 있었습니다.
비록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설명을 들어 마음을 졸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수술도 못받아보고 돌아가실 것을 걱정했는데…
중환자실에서 그냥 기다릴 때보다는 마음이 편했습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오후 10시경 갑자기 방송이 나오더군요.
OOO 환자 보호자분은 수술실 앞으로 오라구요.
여동생이 잠시 자리를 비웠기에 저와 어머님이 갔습니다.
어떤 말을 듣게 될 지 몰라 정말 얼굴이 사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분께서는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고 말해주시더군요…
그때의 안도감이란…
그렇게 결국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갔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뵈었더니 얼굴이 부어서 완전히 다른분이 되어계시더군요…
이제 수술후 열흘 정도가 지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의식은 하루만에 금방 회복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도 사이코시스 증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의식 회복후 처음 몇일은 안그러시더니 지금은 가족 눈을 안쳐다보고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잠도 안주무셔서 결국 수면제 처방을 받고 있구요…
아직 폐렴이 회복되지 않아 한동안은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지금까지 정말 힘든 순간들을 잘 견뎌내셨으니 다 이겨내시겠죠…
카페에서 많은 귀중한 정보들을 얻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장황하게 길게 글을 썼는데, 그간 겪은 일들이 너무 생생하고,
저도 다른 분들 경험 읽으며 도움이 많이 됐던 생각이 나서 저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간이식을 받기 위해, 그리고 간이식을 하고 나서 힘들어하시는 분들과 그 가족분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
중국 간이식에 대해서는 제 경험을 통해서는 부정적으로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저를 제외한 저희 가족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증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최근 외국인에 대한 수술 규제, 고환율 등으로 수술받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만,
국내에서 생체간이식 기증자를 구할 수 없는 경우 대안으로 기약없는 국내 뇌사자 이식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야 아버지 상태 때문에 어쩔수 없이 급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전 조사를 통해 충분히 검토하시고 알아본 후에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 시행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가족분들의 노력에 경외감마저 느낍니다. 그리고 최종 수술을 진행한 의료진에게도 찬사를 보냅니다. 병원 출입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타입의 의료진을 만납니다. 그들도 많은 환자를 만나느라 피곤하고 힘도 들겠지만, 언뜻언뜻 느끼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하고는 다른 행동을 보일때는 분노가 서립니다. 아무튼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기셨으니, 이제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식후의 길이 험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지난했던 시절을 상기하시고 인내하며, 쾌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글을 읽는 동안 제 눈시울이 젖네요.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잘 회복되시어 건강을 되찾으리라 믿습니다. 중국에서 수술받으려면 급하더라도 사전에 확실히 하고 가야겠군요. 그리고 국내 내과 진료시 이식수술에 대해 환자가 말하기전에는 전혀 얘기를 안하더라구요.참으로 잘못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씀드리려고 글을 올린 것은 아니구요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면 제가 겪은 일들도 참고가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식이 불가하다는 얘기는 아니었구요, 전이가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니 재발확률이 높다는 얘기였습니다. 조금더 자세히 얘길하면 예전 기록에 복벽에 유착되었다는 기록이있었다는데(동일병원 과거기록인데 가족은 처음듣는 얘기였습니다), 전이여부는 불확실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술후에는 병원에서 전이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구요. 중국의사의 말을 문의하신 것이라면 그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싶지 않습니다.
첫댓글 오빠글 읽고 있으니 같은 일을 겪었는데도 받아들이는 시각이 나랑은 정말 많이 틀리네. 예전 악몽이 되살아 나서 지금 이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한번 느껴. 정말 장황하게 자세히도 썼다..수고했어
한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가족분들의 노력에 경외감마저 느낍니다. 그리고 최종 수술을 진행한 의료진에게도 찬사를 보냅니다. 병원 출입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타입의 의료진을 만납니다. 그들도 많은 환자를 만나느라 피곤하고 힘도 들겠지만, 언뜻언뜻 느끼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하고는 다른 행동을 보일때는 분노가 서립니다. 아무튼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기셨으니, 이제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식후의 길이 험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지난했던 시절을 상기하시고 인내하며, 쾌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이제 수술 열흘 지났다니 모든게 시간이 갈수록 회복속도도 박차를 가할겁니다...님글에 저도 눈시울이 붉어지네요..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님의 이식 투병기의 내용 하나하나 가히 짐작해본 경험들이 많습니다. 고생의 보람이 곧 좋은 결실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힘내세요.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그래도 이식받았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대로 돌아가셨다면 평생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어요 천운으로 뇌사자 이식받게되셨네요 앞으로도 힘든일 잘이겨내시길 바랄께요
아이고 고생많으셨고 눔물나내요.저도 중국에서 기다리다 결국 받지못하고 국내에서 수술을 받았는데...이제 힘든 수술받으셨으니 재발 없기를 기도합니다.
글을 읽는 동안 제 눈시울이 젖네요.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잘 회복되시어 건강을 되찾으리라 믿습니다. 중국에서 수술받으려면 급하더라도 사전에 확실히 하고 가야겠군요. 그리고 국내 내과 진료시 이식수술에 대해 환자가 말하기전에는 전혀 얘기를 안하더라구요.참으로 잘못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이 너무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이제 수술 받으셨으니 모든 고생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고 위로받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아버님의 회복 과정이 순조롭기를 기원합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으셨습니다. 가족들의 고생이 얼마나 컷을지 마음이 아픕니다.수술을 받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 가족들이 옆에서 지켜주시니 아버님도 빠르게 왼쾌되시리라 믿습니다. 별안간 아빠살린 우리 착한 아들얼굴이 떠오릅니다.
이식이 불가능 하다고 예기를 들었음에도...왜 이식을 하신 건가요..?......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씀드리려고 글을 올린 것은 아니구요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면 제가 겪은 일들도 참고가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식이 불가하다는 얘기는 아니었구요, 전이가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니 재발확률이 높다는 얘기였습니다. 조금더 자세히 얘길하면 예전 기록에 복벽에 유착되었다는 기록이있었다는데(동일병원 과거기록인데 가족은 처음듣는 얘기였습니다), 전이여부는 불확실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술후에는 병원에서 전이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구요. 중국의사의 말을 문의하신 것이라면 그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싶지 않습니다.
힘내세요!! 가슴이 찡하내요...저두 아버지께 간이식을 한지 8일되서 병원에서 이 글을 읽는데 님정말 대단 하시내요!! 앞으로 아버님이 건강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대단하신것같아요...아버님이 빨리 쾌차하시길 바랄께요...저도 아빠이식수술이 10일정도 뒤에 예정이 되어있어서 정말 남의일 같지가 않네요...
가족 모두 너무도 고생을 많이하셨네요. 수술전 긴박했던 순간순간들이 너무도 생생하네요. 아버님 빨리 쾌차하셔서 오래토록 건강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신 아삽님! 앞으로 쭈~욱 행복한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꼭 건강 잘 회복하십시요....고생한 만큼.. 오래 사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