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달라졌어요.
내 나이 64세, 큰아들 나이 34세, 30년 차이가 난다.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들을 강하게 키운다며
초등학교 1학년 때도 2.5km를 걸어서 학교에 다니게 했다.
어떤 겨울에는 20cm 이상 눈이 쌓였는데도 걸어가게 했다.
아부지가 중도 장애인 되어 마음대로 걸을 수 없지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여 열심히 살아갔다.
아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우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면서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잔소리란, ‘맞는 말인데 기분 나쁘게 들리는 말’이라고 한단다.
사춘기를 ‘안된다. 해라.’ 이 말만 듣고 자랐고,
고등학교는 필리핀 바기오로 4년 유학을 갔었다.
유학을 마치고 왔을 때 아부지와 아들은 사이가 멀어졌다.
소통의 부재요 이해의 부재요 배려의 부재였다.
아부지가 하는 말에는 뭐든지 인상이었고 무시였다.
이때는 아부지가 아니라 꼰대였다.
속상해서 울면서 기도도 많이 했었다.
아내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
아들과 가교의 역할을 하면서 나쁜 말은 모두 빼고 전했다.
물론 아내는 매일 교회를 열 번 정도는 가서 잠시라도 기도한다.
어느 날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스며들었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어지간한 건 알면서도 넘어가고,
입을 닫고 사랑을 열었다.
책임감을 심어주고 그 일을 해결했으면 결과에 상관없이 칭찬했다.
아들 입에서 “엄마, 아빠가 달라졌어.”라는 말이 나왔다.
평소에는 목소리가 크게 올라갈 일도 입을 다물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가 저지르는 수많은 잘못을 나처럼 징계한다면
나는 아마 피골이 상접해 죽었을 것이다.
그런 내가 뭐라고….
내가 목사라고, 내가 아부지라고, 내가 조금 더 살았다고….
지금도 큰아들은 사회복지사로 나를 돕고 있고,
작은아들은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사이버대학에서 공부한다.
3학년이다.
자오쉼터에 입소하면 천국 갈 때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10인 이하 노인시설까지 완공하고, 사회복지법인까지 만들 계획이다.
가능하겠냐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가능하다고 말한다.
재산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두 아들.
사회복지법인이 된 후론 하나님을 이사장 삼고
두 아들이 잘 이끌어갈 것이다.
(사진에서 큰아들은 체구가 작고, 작은아들은 체구가 크다.)
첫댓글 바램[Wish]
아브지, 엄니는
아들들의 카톡 사진만 바뀌어도 신경 곤두섬이 당연함의 일상이다.
너희의 작은 몸짓에도 어떤 상황일지? 가늠하고 점치고 대화의 방향 결정함이 부모이다.
아브지, 엄니는
너희들과의 슴슴한 일상 대화에도 유쾌하고 도파민 분출됨은 기성세대라 칭하는 아비와 어미의 분명한 공통점임에 틀림잆다.
아브지, 엄니는
단 한번도 너희들을 그 누구와 비교 평가하려 하지 않음과 않았음을 알아두고 바란다.
아들만이 갖는 달라트의 절대값 쒸워 너희들만의 세상 살아가기 원함이 부모 마음이다.
아브지, 엄니는
부모만큼 아프지 않기를, 마음 상처 받지 않기를, 또 내내 평안하고 안온한 일상 보내기를 바라고 또 소원한다.
그 마음 노력으로 만들어짐 아닌 부모의 본능이다.
아브지, 엄니는
너희들이 아비와 어미를 극복의 대상이나 이해 해야하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극복의 대상이나 이해의 대상이라 함은 종적인 상하 관계나 횡적인 동정으로 느낄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아들들아
사랑한다.
아버지 친구이기에 곧 나의 아들들이기도 한 자식들에게 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