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10년 전인 1994년 11월에 고인이 된 신동우화백은 1936년 10월 함경북도 화령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 아현국교, 용산 중고교,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지만 만화가로서의 작가활동은 1953년 18세에 『땃돌이의 모험』으로 데뷔한 것이 시작이다. 고교시절 이미 작가로 데뷔를 한 것이다. 1966년까지 소년조선일보에 1200회에 걸쳐 장편만화 『홍길동』을 연재하였고 1968년에는 이것을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을 형인 신동헌씨와 함께 참가하였다.
실상 만화가로서의 신동우는 그가 세상을 뜨기 30년전이 피크였다.『차돌이』,『풍운아』,『홍길동』,『수호지』,『삼국지』,『공군졸병 날개보이』,『남대문 꼬마』, 『돌머리와 숙이』,『돌아온 날건달』,『머슴검객 돌거미』,『머슴검객 흰거미』,『제비검객』,『천하장사 꺽정이』,『날쌘돌이와 21세기』 등의 만화를 5, 60년대에 그렸고 70년대에는 각 소년지의 진주햄 광고를 통해서 독자들과 만나는 정도였으니까. 시대적으로 볼 때 그는 6.25 전쟁시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기당이나 김종래 등 제1세대 작가의 뒤를 잇는 1.5세대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0년대를 지나면서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만화가 아니라 풍속화였다. 풍속화라해도 전통적인 산수화나 민속화를 말함이 아니라 그의 만화캐릭터를 담담한 컬러로 그려내는 수채화였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발로 돌아다녔던 곳을 묘사하거나 혹은 고전작품의 표지를 그려내는 도구로 사용했다. 해군 훈련함인 한바다호를 타고 세계를 누빈 이야기나 중국만유기 등은 그가 조주청이나 고우영을 앞서 세계를 누볐던 만화가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금성출판사에서 발행했던 애장판 세계문학전집이 히트했던 이유에는 실상 신동우화백이 그렸던 표지 그림도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신동우라는 이름은 어쩌면 요즘 만화를 읽은 세대에게는 이름만이 남겨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만화가 신동우 대신 애니메이션 『홍길동』,『호피와 차돌바위』의 원작자로서의 명성만이 남겨진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그의 만화를 실시간으로 읽으며 자라난 세대로서는 그의 존재가 잊혀져가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만화가 신동우의 대표작은 토속적이거나 고전작품을 각색한 것이 많다. 그러나 그도 다른 장르의 작품을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테즈카 오사무의 『마그마 대사[マグマ大使]』를 각색한 작품이나 기타 SF만화도 상당수 그렸지만 현재 찾아보기는 힘들다. SF만화, 특히 40년전인 1962년에 그린 『나온다 날쌘돌이의 21세기』라는 작품을 보면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순진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예상과 달리 40년이 지난 지금도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무소음 호버크래프트가 도로를 질주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신동우 만화의 특징은 부드럽고 원만한 선에 있다. 누구 만화엔들 부드럽고 원만한 선이 없겠는가 마는 신동우의 만화에서 선은 단순히 선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 컷이 한장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구성하는 면의 일부분으로 참가하고 있다. 1969년 작품인 『제비검객』의 한 장면을 보면 이 때 이미 신동우의 작품형은 확실하게 확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3년전의 작품이건만 지금 당장 다시 출간을 한다 하더라도 다른 만화가의 어떤 작품도 압도할 수 있는 탁월한 화력이 거기에 있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을 추모하는 사이트가 최근 개장되었다. http://www.shindongwoo.com이니 고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한번쯤 찾아가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