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로 제철이 긴 채소입니다. “가을철의 ‘나’는 남 안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을에 달리는 내 맛이 남 주기 싫을 만큼 기막혀서입니다. 요즘은 사철 맛볼 수 있지만 과거엔 겨울엔 구경하기 힘들었어요.
원산지는 인도입니다. 인도인들은 각종 요리에 나를 다양하게 이용해요. 중국 요리에서도 두루 사용됩니다. 현재 중국이 세계에서 나를 가장 많이 생산해요. 영문명은 ‘eggplant’(계란 식물)입니다. 나를 처음 본 유럽인들이 계란과 비슷하다고 여긴 것 같아요. 한반도엔 중국을 거쳐 전래됐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것은 외양이 수컷의 성기 모양을 닮았어요. “재수 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내’ 밭에 넘어지고 재수 없는 년은 넘어져도 꼭 밤나무 밭이더라”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온 것은 이래서입니다.
내 영양상의 장점은 저열량ㆍ고식이섬유ㆍ고칼륨 식품이란 것입니다. 생것 100g당 열량이 19㎉(삶은 것 19㎉, 마른 것 241㎉)에 불과해 다이어트 중인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요. 게다가 식이섬유가 풍부해 금세 포만감을 느끼게 해 체중 감량에도 효과적입니다.
식이섬유와 칼륨이 제법 많이 든 덕분인지 나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식품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어요. 대표 웰빙 성분은 보라색 색소 성분인 안토시아닌입니다. 안토시아닌은 노화의 주범인 유해(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물질로 항암 효과도 기대되는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 식물성 생리활성물질)예요. 주로 꼭지와 껍질에 들어 있으며 가열해도 잘 파괴되지 않습니다.
내 안에 든 성분 가운데 일반인이 의외로 받아들이는 것은 스코폴라민ㆍ니코틴ㆍ히스타민입니다. 스코폴라민은 귀에 붙이는 멀미약의 주성분입니다. 경련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독성도 있어요. 최근 어린이용 귀에 붙이는 멀미약이 일반 약에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 약으로 바뀐 것은 이래서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담배의 독성 물질 중 하나인 니코틴이 어떤 식물의 열매보다 많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극소량(100g당 0.01㎎)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나를 족히 9㎏은 먹어야 담배 1대를 피웠을 때의 니코틴을 섭취하게 됩니다. 히스타민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으로 나를 먹은 뒤 극소수에서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 성분 탓입니다.
한방에선 나를 자자(茄子)라고 부르며 약재로 씁니다. 오이처럼 몸을 차게 하는 성질이 있다고 여깁니다. 임산부나 젊은 여성, ‘얼음공주’ 같은 냉증 환자에게 나를 권장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한의사들은 내 찬 성질을 이용해 열을 내리고 통증을 멎게 하며 부종(부기)을 빼는 데 처방합니다. 또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 섭취를 권해요. 중국의 고의서 ‘본초강목’엔 “피를 맑게 하고 통증을 완화시키며 부기를 빼 준다”고 내가 언급돼 있어요. 나는 떫은 맛이 강해 물에 잘 헹군 뒤 조리해야 합니다. 잎은 독성이 강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토마토처럼 실온에 두는 것이 나를 가장 잘 보관하는 방법입니다. 나도 사람처럼 추위를 타서 장기간 냉장고에 보관하면 냉해를 입을 수 있어요.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중간 크기가 상품입니다. 껍질이 윤택이 나고 부드러우면서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신선해요.
섭취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기름(식용유)에 튀겨 먹으면 열량이 엄청나게 오른다는 사실입니다. 내 지방 함량은 여느 채소와 마찬가지로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지만 무작정 안심해선 안 됩니다. 호주의 연구진에 따르면 다른 채소보다 지방을 훨씬 잘 흡수합니다. 식용유를 두른 나를 볶으면 70초 만에 지방을 83g이나 빨아들이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조리한 요리의 열량은 700㎉가 넘습니다. 나는 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