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성결교회에서 다시 불붙다
아현성결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습니다.
말씀을 전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 순간,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이 교회가 제게 그토록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령의 감동으로 자원하여 신학교에 입학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 바쳐진 자였고,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뿐, 도망칠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목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이 생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마음이 생긴 것은 신학교 도서관에서였습니다.
한국교회사 과제물을 준비하던 중, 한국 교회 부흥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1903년 하디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원산 부흥,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의 공개 회개를 기점으로 온 교인이 통곡하며 죄를 자백하던 강렬한 성령의 역사 후 한동안 잠잠했던 부흥의 열기가 1921년, 감리교신학교 근처에 있던 아현동 경성성서학원 신학생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기도회는 새벽 4시부터 오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으므로 제지할 사람도 없었고,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흘러갔습니다.
마치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제사장이 능히 들어가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를 성령께서 온전히 주장하셨습니다.
15일 동안 기도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회개와 자복의 눈물이 앉은 자리를 적셨고, 어떤 날은 각처로 발송된 자복의 편지가 200통에 달하였습니다.
인위적 조직도, 사전 계획도 없었습니다. 오직 성령의 주권적 역사였습니다.
그 기록을 읽던 날, 제 마음에 처음으로 이런 소원이 생겼습니다.
"이런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면, 목회해 보겠다."
그리고 오늘, 저는 바로 그 경성성서학원이 있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아현성결교회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저는 은퇴할 때까지 한국 교회에 그와 같은 부흥이 다시 임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솔직히 그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 역사도 행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놀라운 것을 주셨습니다.
처음에 저는 부흥이란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 사람들이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구나!" 고백하며 교회로 물밀 듯 몰려오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 주신 것은 달랐습니다.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바로 그 예수님께서 지금 제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러분, 기사와 이적이 큰 것입니까?
아니면 그것을 행하시는 예수님이 큰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후서 13:5)
이 말씀 앞에 서면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내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아니,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이 믿음이 진정으로 살아날 때, 무거운 짐이 내려지고,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며, 원수조차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은밀한 죄가 힘을 잃고, 고난마저 축복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담담하게 경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우리가 회개해야 할 죄가 음란이나 탐욕, 다툼이나 거짓말만은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그분을 무시하며 살아온 죄입니다.
왜 강력한 부흥이 임하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때가 아직 아니기 때문일까요?
오늘은 주님의 계획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 부흥회에는 한 주간 내내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기도원 집회 때 성령의 역사가 강력했던 것도, 먹고 자고 깨는 모든 시간을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잠깐 은혜 안에 거하다가 긴 시간을 세상 속에서 보내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니 부흥회에서 진정한 회개와 삶의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기까지, 120명의 제자들은 10일 동안 전심으로 기도하며 함께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지내다 보니, 성령의 역사에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고, 오순절의 강력한 성령 강림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가정과 직장을 다 버리고 10일씩 모여야만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면서도 항상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시선입니다.
우리만이라도 그렇게 살아갑시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인 것처럼,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위해서 부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날마다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해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감사하고,
그리스도 없는 세상 때문에 아파하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때문에 기뻐하는—
그 삶이 우리 가운데 퍼져 갈 때, 한국 교회는 반드시 영적 대각성을 맞이할 것입니다.
오늘 그 자리, 경성성서학원의 그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고 내려오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것은, 단순한 감격이 아니었습니다.
100년 전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울었던 신학생들의 기도가, 오늘도 응답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주님, 다시 한번 이 땅에 임하소서’
유기성 목사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