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허리아파흑
때는 명나라
당시 왕실이나 황가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건 궁녀들의 역할이었음. 10살의 태자 주견심도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살아 있었지만 주로 궁녀들 손에 키워짐. 그 중 한 명이
만정아 라는 궁녀였음.
만정아는 황자보다 19살 많았음. 지금도 물론 나이차이가 많은 거지만 이 때는 15세기 중반임. 10대 초반에 혼인하던 시기기 때문에 만정아는 황자에게 그냥 어머니 뻘임. 실제로 황자의 생모인 귀비가 만정아보다 어림.
친어머니와 거의 보지 못하고 태자 교육을 받던 어린 주견심은 매일 곁에서 자길 돌봐주는 만정아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고, 그게 연모로 발전함. (.....?)
야사에 따르면 만정아는 미래의 황제인 태자의 환심을 사면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해 주견심의 애정 공세를 받아주고 더 나아가 유혹했다는데 정말 그게 전부였는지, 아님 만정아도 주견심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음. 타임머신 개발되면 가서 알아보겠음.
이후 1464년, 정태제가 죽자 주견심은 19살의 나이로 황제가 됨. 젊은 황제는 제일 먼저 만정아를 황후로 책봉하려고 하지만 주변의 반대가 심했음. 결국 황제는 만정아를 귀비로 책봉하는데 만족해야했음.
물론 황제가 만귀비를 총애했기 때문에 황궁 실세는 만귀비였음. 만귀비는 다른 후궁들 괴롭히는 건 물론이요 자기보다 윗 사람인 황후까지 무시함. 황후 입장에서는 존나 자존심 상할 일임.
보다 못한 오 황후는 만귀비를 불러 군기를 잡음. 뺨을 때렸다는 썰도 있고 채찍을 들었다는 썰도 있음.
수모를 당한 만귀비는 엉엉 울며 황제를 찾아가고, 황제는 극대노하며 바로 황후를 폐위시켜 내쫓아버림. 황후 책봉 한 달만에 일어난 일이었음. 이후 새로운 황후가 된 왕 황후는 만귀비한테 찍 소리도 못하고 설설 기었기 때문에 만귀비는 완전히 비선실세가 됨.
그러던 중 만귀비가 황제의 아들을 낳음. 황제의 첫 아이기도 했음. 황제는 뛸 듯이 기뻐하며 온 중국 명산에 사람을 보내 황자의 건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게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아기는 요절함.
황자가 요절했을 때 만귀비의 나이는 39살이었음. 지금 기준으로도 노산인데 저 시대는 어떻겠음. 만귀비가 건강한 아이를 또 낳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였음. 하나 뿐인 아이를 잃고 절망한 만귀비는 흑화해서 온 후궁이란 후궁은 다 괴롭힘. 그러다 현비가 황제의 차남인 주우극을 낳고 주우극이 태자가 되자 네 살짜리 태자와 현비를 독살해버림(.......)
당시 황궁에는 기씨 성을 가진 말단 후궁이 있었음. 요족이라는 소수 민족 출신으로 요족의 반란이 진압 당한 후 황궁으로 끌려와 서고를 관리하는 사람이었음. 황제는 어느 날 우연히 기씨를 보고 하룻밤을 보내고 이내 까먹는데, 문제는 이 하룻밤 사이에 아이가 생겨버림.
만귀비는 기씨를 유폐 시키고 낙태 약을 먹이려고 했지만 만귀비의 악행에 진절머리가 난 환관이 몰래 약을 버려서 무사히 황자가 태어남. 하지만 만귀비의 악명을 알고 있던 기씨는 장민 이라는 내관을 불러 "(어차피 만귀비가 죽일 테니) 아이를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게 낫다" 고 말함.
위에서 말했듯 만귀비가 낳은 장남은 요절했고, 둘째 주우극은 만귀비가 독살해버려서 황실에 후사가 없는 상태였음. 장민은 아이를 숨겨서 6년간 키우다가 어느 날 황제가 "짐도 이제 서른인데 후사가 없으니 큰 일이다..." 한탄하자 사실 기씨가 낳은 황자가 있다고 고백함.
이렇게 해서 기씨의 아들 주우탱은 황자로 인정 받고 태자가 됨. 물론 만귀비는 이 아이도 죽이려고 했지만 보다 못한 태후가 주우탱을 자기 처소로 데려가 보호하고 키워서 아이를 죽일 수 없었음. 분노한 만귀비는 주우탱의 생모인 기씨와 주우탱을 숨겨 키운 장민을 독살해버림(....) 태후의 비호를 받는 주우탱을 해칠 방법이 없단 걸 인정하자 허탈해진 건지 뭔지 그 다음부터는 황제가 다른 후궁에게 잠깐 관심을 보이거나 아이를 낳아도 안 죽였다고 함.
이후에도 만귀비는 황궁의 비선실세로 군림함. 조정의 중신들도 만귀비에게 굽신거렸고, 만귀비의 남동생은 금의위지휘가 되어 황궁 군권을 가지게 됨.
사실 황제가 병신도 아니고 만귀비의 이런 악행을 모를 리 없었음. 근데 황제는 만귀비를 너무 사랑한 건지 뭔지 다 묵인했다고 함;;;;
하지만 이런 만귀비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세월이었음. 1487년 봄, 만귀비는 60세의 나이로 사망함. 썰에 따르면 만귀비는 젊어서부터 뚱뚱하고 혈압이 높았는데 노령의 나이에 궁녀 붙잡고 화내다가 쓰러져 죽었다고 함(;;;)
슬픔에 빠진 황제는 법도를 어기고 7일 동안 조정 회의를 취소하고, 대신들이 뭐라하는 거 다 씹어버리고 천수산에 만귀비의 무덤을 만듬. 천수산은 원래 황제만 묻힐 수 있는 곳인데 거기서도 가장 터가 좋은 자리를 골라 묻었다고 함. 물론 지금은 도굴 당해 몇몇 부장품만 전해지고 전부 폐허가 됐지만 극도로 호화로운 무덤이었다고...
만귀비의 무덤에 함께 들어갔던 부장품 중 하나인 '황후의' 봉관.
이후 황제는 슬픔에 빠져 "만귀비가 세상에 없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 하겠냐...." 라며 시름시름 앓다가 그 해를 못 넘기고 죽음.
성화제의 뒤를 이어 주우탱이 즉위하는데, 얘가 홍치제임. 사실 홍치제는 만귀비를 부관참시해도 모자랄 처지였음. 어머니를 만귀비 손에 잃은데다 본인도 죽을 뻔 했으니까 ㅇㅇ
하지만 홍차제는 아버지를 생각해 만귀비에 대한 일을 전부 불문에 부침. 성화제와 만귀비가 트라우마가 된 건지 당대 군주로서는 드물게 후궁을 하나도 들이지 않았음. 동시대 조선을 봐도 양반 이상은 첩을 들이는 게 당연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가 평생 황후만 보고 살았으니 아주아주 드문 일임. 당연히 자식도 황후에게서 낳은 2남 1녀가 전부.
명나라 최후의 명군으로 평가 받는 홍치제답게 나라 잘 다스리다 갔다고 함.
- 끗 -
첫댓글 악에 받쳐살다 갔구먼..
프로이트가 환장할 스토리네
와우... 열아홉살 차이... 거기에 유모... 서로 죽고 못살면 둘이서 쪽쪽대고 살지 왜 다른 여자는 데려와서 고생시키냐...
권선징악을 기대했는데…… 없네 ㅜㅜ
그렇게 죽고 못살고 사랑해도
이여자 저여자 후궁삼고 자고다녔네
사랑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