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소중했던 님이시여!
보고픔에 달려가면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물결로 흐르고만 있습니다.
흐르는 물결 사이로
어린 소년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흰머리가 듬성난 중년의 모습으로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웃음으로 담으며 흐르고 있습니다.
눈물 가득한 눈 들어
달과 별을 안고 흐르는 당신을 봅니다.
나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셨던 어머님이시여
바람이 잠들어 있다.
살며시 다리 난간을 잡으며 교각 사이로 흐르는 물결을 바라본다.
초등학교2학년 소년이 물빛 사이로 걸어가고 있다.
어머님의 손을 잡고 재잘 거리는 하루의 일과 가 어머님의 눈물 속에 지고 있다.
미군 군용차가 휑하니 달리고 있다.
뜀박질을 잘하던 그 소년이 차를 향해 뛰어 가고 있다.
“헬로우 기브미~~!”를 외치며 흑.백의 군인들이 그 소년을 향해 던지고 있다.
쵸코렛과 건빵을 냅따 달려가 쵸코렛과 건빵을 쥐고 돌아서면 5살 먹은 소년이 뛰어 온다.
“쌔아 나도 좀줘!”막내 동생이다. 동생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미군들이 던진 과자를
동생 손에 쥐어 주면 환하게 웃으며 먹다가 내게 묻는다.
“새아(형의 사투리)이 쵸코렛 어떻게 나는 걸까?”
“응 그것 어떤 식물에서 난다고 하던데 확실히 모르겠다 나중에 함 알아볼게”
“응 그러면 식물이니 이거 쪼메만 남겨두고 집 앞에 심을까 그러면 이기 열리면
나중에 우리 많이 묵을 수 안 있겠나 응“
“바보가 이걸 어떻게 심노 그리고 이건 씨앗도 아닌데 바보야”
하며 내 바로 밑의 동생이 말한다. 막내의 얼굴이 울먹거린다.
“이자슥 막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것 한번 생각해보자 안하고 무씬 말이 그렇노”하고
내가 타박을 주며 울먹이는 동생을 달래본다.
“그것 한번 연구해보자 그걸 심어서 쵸코렛이 열리면 우리 막내 억수로 많이 먹을 수 있고
넷째하고 먹는 것 가지고 다투지 않으니 좋다 그치“ 하고 말하니 그때서야 막내의 얼굴이
펴진다. 물결 사이로 어린 시절들이 흘러가고 있다.
좋나~~ 좋다~~ 하며 놀았던 찜뽕 놀이가 어린시절 친구들의 얼굴을 싣고 오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며 밤을 잊으며 놀았던 놀이들이 함께 실려온다.
중학생 까까머리 소년이 물결에 밀려오고 고등학생 대학생으로 변해 가는 모습들이
밀려오다 썰물 속에 다시 밀려간다.
달빛이 물결에 어른거리니 그 속에 어머님의 환한 얼굴이 보인다.
난간 밑으로 손을 내리며 어머님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만지고 싶어 허우적거려 보지만
그냥 웃으시며 그대로 있으라고 하신다.
부활절이 지났는데 우리 어머님과 나의 어린 시절들은 왜 다시 부활 할 수가 없는지
안타까워진다.
추억을 추억으로만 남기며 살아가는 지금.
나는 누구에게 이 영도다리의 추억을 넘겨줄지 넘겨줄때 넘겨 준이에게
어떤 아름다움을 줄 수가 있을지 물결에게 물어보지만 물결은 잔잔한 미소만 띠우며
내게 손짓을 하며 내 등을 떠민다.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삶을 살 때
그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바람이 몹시 부는 밤입니다.
안전에 항상 조심하시고 건강한 날들이 님들과
함께 하시길 빌어드립니다^^
첫댓글 박희정님의 상상속을 같이 헤매다가 영도가 나오니
오래전 영도 다리를 건너던 추억
근자에
영도 다리
들릴때
사진 찍으러 갔던 생각 💡 이 반짝입니다
저도 영도다리 다시 든다는 말과 사진은
접했지만 보지를 못했어요 언제 시간을 내어 꼭 함 볼 생각입니다
오후2시에 든다고 하니까요 ㅎㅎㅎ
저는 동대신동에서 태어났지만 초,중,고를 영도에서
다녔어요 아버님의 고향이며 어린날의 추억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박희정
아 그렇군요
더욱 반갑네요 영도라면 나도 젊은 날에
근 8년을 영도 다리를 왔다갔다
했답니다
@박희정
@동 백 처음으로
들리던 날에 사진 찍으러 갔드랬어요
아픈 역사 속의 추억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간직한 영도다리
옛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으니 .....
먼 후일의 세대에서는 마음 아팠던 시절이
조명 될런지~~~
가난했던 시절들의 이야기이지만
지금은 그 시절들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60년대 말의 추억인데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천양지차 이죠 우리 선배님들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헐벗은 나라를 오늘 선잔국으로 진입시킨 님들이니까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영도))~~ 워낙이 애 태우고 속타면
"영도다리 밑에서 줏어 와 키웠더니 저런갑다" 그렇게 일갈하며 발 동동 굴리시던
외할머니. 괘나 속 썩이며 자랐던 내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처음으로
영도다리 건너 가 본적이 있네요 다리 아래 유달리 점집(?)이 많았드랬읍니다
희정님, 우린 그렇게 추억 하나씩은 감추고 있나 봅니다 그래도
우린 지금 열심히 이 시대을 버텨 내고 있읍니다 화이팅 하십시요
점집과 넝아주이 짚이 영도쪽은 넝마 다리건너면점집들이 ㅎ 늘지나날의 꿈을잃지않으며삽니다
선배님의 보살핌 늘감사합니다
부산의 어린애들은 모두 영도다리 밑에서 쭈어 왔지요 ㅎㅎㅎ
ㅎㅎㅎ그리고 말안들으면 양아치(넝마쟁이)가 잡아간다고 했죠 ㅎㅎㅎㅎ
@박희정
울 엄마도 막내가 울고
떼짱부리면
이렇게 말했죠
말 안들으면
망태아저씨(넝마주이)가 잡으러 온다~~~
영도다리..
내추억의 최애의 공간이지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를 남성여중을 다니는바람에 영도다리를 처음 건넛는데..
서울에서 전학온 이뿐친구랑 일부러 영도다리를 걸어서 하교를 햇지요..
낮에는반짝이는
금물결속에서 마음에 새기고..
많이도 힘들엇을때는
한밤중에 심호흡을하면서 숨을 토해내기도 한
내 최애 공간..ㅎㅎ
선배님
고맙습니다.
아픔도 한세월흐르니
이렇게 고운추억으로 미소짓게 만들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엄머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영도 다리를
따라 걸으며 하룰 조잘 거리면 엄마는 내 머릴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셨죠 아픔에,,,,,,,
이젠 기쁨으로 다시 영도다리를 건너갑니다
그 이픔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어빠와 엄마를 그리워 한답니다^^
고향 동생을 보니 그냥 반갑고 좋내요 거기에다가 심성까지 좋으니
항상 건강하시고 잼나는 일들 많이 가지시며 사실길바래요^^
희정님 보러 가끔 오겠습니다.
다시 들리는 영도다리 구경가서 그옆 자갈치시장에서 소주한잔 한적있습니다
그렇군요 찾아와 주샤서 고마워요^^
자가치 시장은 곰장어가 유면한데
양파만 잔뜩 넣어주면 말하세요
아줌마 울 집이 영도요 장난 그만 치고 빨리 짱어나 더 넣으소 하면
됩니다 ㅎㅎㅎㅎㅎㅎ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