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시 고 기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입니다.」
우리 아빠는 멍텅구리 아빠입
니다.
지금도 밖에서 비를 맞고 있습
니다.
내겐 비오는 날에 창문도 못 열게 하면서, 왜냐고 이유를 물으면
“아빤 어른이고 다움이는 꼬마
이기 때문이지...” 저는 많이 아픕
니다. 선생님이 백혈병이래요.
감기로도 죽을 수 있다고 하죠.
그래서 아빤 절대 비오는 날엔 창문도 못 열게 하죠.
오늘도 전 방사선 치료를 받았
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너무 싫습니다.
어두운 관 속 같은 곳에 나 혼자 있어야 하니까요.
밖에서는 많이 아프지만 아빠가 제 손을 꼭 잡아주거든요.
하지만 오늘 치료는 너무 아팠
어요.
그래서 전 벙어리가 됐죠.
어찌된 일인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앞을 볼 수도 없어요.
괜찮아질 거라고 아빠가 말했
어요.
그래서 걱정은 없습니다.
아빠는 한 번도 내게 거짓말 한 적이 없으니까요.
아빠가 이제 제가 다 나아서 퇴
원하게 되었대요.
너무 기뻐요. 제가 그렇게 퇴원하
기를 바랐거든요.
아빠는 제 소원을 들어줬어요.
역시 우리 아빠입니다.
이제 더 이상 아픈 치료를 안 받
아도 된데요.
내일 퇴원하게 됩니다.
2년의 병원생활은 끝났고 이제 아빠와 저는 함께 영원히 행복
하게 살 거예요.
아빠도 그렇게 말했고요.
그래서 우린 아주 행복하게 지내
고 있답니다.
제가 또 아팠어요.
아빠가 병원에 전화를 했어요.
제 병이 또 재발했대요.
아빠가 그래서 다시 서울로 가제
요.
이제 다시는 아프지 않는다고 아빠가 말했는데, 아빠가 제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어요.
병원 선생님이 말했어요.
이제 한번만 더 치료를 받으면 완전히 완치될 수 있을 거라고,
예전보다 더 아프고 힘든 치료가 있을 거라지만. 하지만, 전 하나
도 안 무서워요.
왜냐면 아빠가 언제나 제 옆에 있어주거든요.
제에게 골수를 나눠 줄 사람이 생겼대요.
미도리라는 일본 누난데 정말 착한 누나인 거 같아요.
저를 위해 먼~ 일본에서 여기까
지 왔잖아요.
내일 골수이식을 받는데요.
하지만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아빠가 제 곁에 있어주니까요.
골수이식 수술이 아주 잘됐대요.
아빠가 밖에서 이쪽을 쳐다봐요.
근데 왼쪽 눈을 붕대로 감았어요.
많이 지쳐서 쉬라고 막아놨대요.
꼭 레고 만들기에 나오는 해적선
장 같아요.
이제 일주일 후면 다 나아서 보통 아이들처럼 생활 할 수 있데요.
근데 아빠는 이제 따로 살자고 해요.
엄마 따라 프랑스로 가래요.
이제 제가 싫어졌나 봐요.
아빠가 화내는 건 처음 봐요.
엄마가 떠날 때 술도 마셨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
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
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아빠예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잊었을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말이에요.
만약 내가 엄마 따라 프랑스로 가게 되면 아빠가 조금만 슬퍼했
으면 좋겠어요.
조금만 슬퍼하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아빠 가시고기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아이가 또 재발했다.
아이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병원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오고 있지만, 밖에 있고 싶었다.
1년 반쯤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아이에게 미안했다.
더욱 더 힘든 건 이제 더 이상 아이의 치료비가 없는 빈털터리 아빠가 되었다는 거다.
“선생님 얼마나 더 아파야 죽게 되나요.”
타 들어간 입술로 아이가 말했다.
“이젠 그만 아팠으면 좋겠어요.”
아이의 말이 사무치도록 가슴 아팠다.
아이 대신 아파해 줄 수 있다면,
아이를 위해 그 무엇이라도 대신
할 수 있었으면....
아무 것도 대신할 수 없다.
그게, 참 견디기 힘들다.
아이는 치료가 견디기가 어려웠
는지 시력을 잃었다.
말도 하지 못했다.
일시적 현상이라서 다행이지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이가 가망이 없다는 소릴 들었
다.
길어야 6개월을 넘기기가 힘들다
고 한다.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형제 하나 없는 아이이기 때문에 마지막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더 이상의 고통 받는 치료를 하는 것보다 남은 짧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살고 싶다.
사실 병원비가 없기도 하지만,
그래서 퇴원하기로 했다.
아이가 또 쓰러졌다.
아이가 또 재발하면 바로 병원으
로 연락하라고 해서 연락을 해봤
다.
왜 연락이 이렇게 늦었냐고 한다.
기적적으로 다움이에게 맞는 골수를 찾았다는 것이다.
다움이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골수가 완벽히 일치해서 수술만 하면 거의 완치할 수 있다고 한다.
갑자기 왼쪽가슴이 아파온다.
어서 다움이를 서울로 데려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아이의 골수이식 수술, 약 4천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내겐 지금 당장의 치료비조차 없는데, 그래서 내 간을 팔기로 했다.
간을 팔면 2천만 원 정도 받는
다고 한다.
4천만 원은 안 되지만 골수이식 수술 받기 전까지 병원비는 마련
이 된다.
간을 팔기 위해 검사를 받았다.
“간 이식을 포기하십시오.”
간암 말기입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이것 말고는 어마어마한 병원
비가 나올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각막을 팔게 되었
다.
외눈으로 아이를 봐야 하지만 그게 대수냐.
아이를 위해서라면 양쪽 눈을 다 팔 수도 있다.
각막을 팔아 6천만 원을 받았다.
아이의 건강은 이제 문제없다.
아이의 병원비 4천만 원 내고도 엄청 많이 남는다.
하지만 더 이상 아이와 함께 할 수 없다.
이제 곧 난 죽기 때문이다.
간암말기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왜 이지경이 되도록 있었냐고 한다.
아프지 않았냐고. 가끔 옆 가슴이 아프긴 했었다.
하지만 아이의 고통으로 그런 것들을 아파할 시간조차 없었다.
아이의 공수이식은 아주 성공적
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아이와 함께할 수 없다.
난 죽기 때문에...
아이를 고아로 만들긴 싫다.
다움이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다움이 양육권을 포기하겠다고.
다움이를 잘 부탁한다고.
사람은... 자식을 낳으면 죽어도 진짜 죽은 게 아니다.
영원히 영원히 다움이 안에 살아
있을 거다.
세상을 사랑하고 또 세상으로부
터 사랑 받는 다움이가 되길 바란
다.
- 아빠가 -
가시고기 : 주로 하천 중하류에 서식하는 물고기로 교미 후에 암컷은 알을 낳고 곧바로 죽어
버리고, 수컷이 알을 보호하며 키운 뒤 새끼가 부화하면 바위 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새끼들은 어버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비의 시체를 첫 먹이로 삼는다고 해서 부성애
의 상징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