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청 흙내음에서
십일월 하순 넷째 목요일이었다. 가끔 고향의 큰형님 내외분과 내가 먼저 전화를 넣어 안부를 나누는데 이번엔 이른 아침 형수님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지난달 하순 대봉감 따는 일손을 돕고 와서 전화를 넣지 못했더랬다. 형수님은 시동생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와 바쁜 나날이라고 했더니 선뜻 이해가 가질 않는 듯해 산책하고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다고 했다.
성혼 분가시킨 조카들도 있는데 통화에서 시동생댁의 김장을 염려하고 흙내음 물씬한 푸성귀라도 좀 가져갔으면 하는 깊은 뜻이 담긴 듯했다. 나는 먼저 눈치채고 한 달 뒤 해가 가고 오는 즈음 고향을 한번 찾아뵙겠노라는 얘기를 드렸다. 이후 형수님은 추수 이후 메주콩을 쑤어 디뎠는데 올해는 우리 집에도 보낼 여분이 되도록 넉넉하게 띄우고 있다고 해서 고맙기가 그지없었다.
아침나절은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펼쳐 읽고 인터넷 뉴스 검색으로 보냈다. 자연학교로 등교하려면 점심 급식이 신경 쓰여 도시락을 준비하기 일쑤였다. 계절로는 보온도시락을 준비함이 맞으나 올해는 아직 겨울 들머리 이르도록 날씨가 포근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찬밥이 밀려 아침밥을 데워 먹었더니 도시락을 준비 못해 점심까지 해결하고 오후반 학생이 되어 자연학교로 갔다.
며칠 전 살짝 가볍게 내린 비로 시들던 가을 푸성귀들이 생기를 되찾았다. 올해 우리 지역은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이 가도록 비가 무척 귀했다. 냇물이 넉넉하게 흘러가질 않았고 어디든 농업용 저수지는 수위가 낮아져 바닥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음 주 초반에 한 차례 강수가 예보되어 비가 얼마나 내려줄지 기대가 앞선다. 그 비가 내리고 나면 겨울다운 추위가 닥쳐오지 싶다.
행선지를 도심 근교 들녘으로 정하고 아파트단지를 나서니 거리에 뒹구는 낙엽에서 만추의 서정이 물씬했다. 외동반림로 메타스퀘이아 가로수는 새털 같은 잎이 시나브로 떨어졌다. 반면에 곳곳에 즐비한 은행나무의 샛노란 잎이 도심 거리를 황금빛으로 장식했다. 명곡교차로와 도계동과 소답동 거리는 온통 은행잎으로 넘쳤다. 동정동에서 2번 마을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면 낙동강 강변 수산이나 한림 술뫼 강둑을 트레킹해도 좋으나 반나절 산책이라 멀리 나가지 못했다. 동읍 용잠삼거리를 지난 자여 근처에서 타고 간 마을버스에서 내렸다. 남해고속도로가 동창원 나들목에서 국도와 접속되는 곳이었다.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들녘 가운데 봉긋한 동산을 등진 사산마을 앞으로 가니 진영읍으로 넘는 여래고개가 가까울 듯했다.
겨울에 드는 길목인데도 날씨는 춥지 않아 포근한 오후 햇살이 비치어 일광욕으로 삼았다. 연전에 남해고속도로 진영휴게소를 분기점으로 부산 외곽 순환 고속도로가 뚫렸다. 김해 신어산과 부산 금정산을 터널로 통과해 곧장 기장에 닿는 길이었다. 사산마을에서 진영휴게소 부근 굴다리를 지나 우동리로 향했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녘은 뒷그루를 심지 않는 벼농사 일모작 지대였다.
우동마을 앞에서 남해고속도로와 진영 일대의 산과 들을 바라봤다. 평소 찾지 않던 곳이라 지형지물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우동마을에서 서천마을로 건너와 우곡저수지 둑으로 올라섰다. 우곡사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을 가둔 농업용 저수지였다. 데크를 따라 저수지 둘레길을 걸으니 가장자리 갯버들 아래는 북녘에서 선발대가 되어 날아온 고방오리와 원앙이 오글거리고 있었다.
우곡저수지 둘레길 쉼터에서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가 자여마을로 나가 시내로 들어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늦가을 짧아진 해는 서녘으로 기우는 즈음이었다. 아파트단지에 이르니 같은 생활권에 사는 친구가 시골에서 심어 가꾼 무를 뽑고 무청을 보내왔다. 내가 텃밭에 가꾼 무는 가뭄으로 생육이 부진한데 그것보다 싱싱했다. 아침에 큰형수님과 통화에서 떠올린 고향의 흙내음이었다. 22.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