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 - 여행 6일째, 파리
파리에서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
우리는 작은 스튜디오를 빌려서 생활했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집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곤했다.
코딱지만한 (혼자서면 꽉차는)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만들어 먹고,
상큼하게 집을 나서서 지하철로 향하는 길은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황.
그냥 우리 동네 같은 포스가 쫘악 느껴지는 것이 파리에서 살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오래 머무른 만큼 사실 왠만한 관광지(내가 가보고 싶었던..)는 다 둘러본 상태.
오늘만큼은 여유를 즐기면서 파리지앵인 척을 해보고 싶었다.
관광지를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너무 파리의 겉모습만을 봤기 때문에
오늘은 눈도장 찍기에 바쁜 그런 여행이 아니라, 한국에서 휴일을 즐기는 듯한 기분으로 여행하기로 한다.
(그래서 오늘은 사진도 거의 없어효..ㅠ)
아침에 느지막하게 숙소를 나서서 근처에 있는 페르라세르 공동묘지를 향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슬슬 걸었더니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규모의 공동묘지가 공원처럼 자리하고 있다.
공동묘지의 규모도 클 뿐더러(파리에 있는 공동묘지 중 제일 크다고 한다.)
유명인들이 많이 묻혀있고, 공원처럼 잘 꾸며놓은 터라 파리 시민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그 유명한 사람들 중에는 쇼팽, 앵그르, 다비드,,,,,, 외에 정말 많은(생각이 안난다옹.ㅠ) 유명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무덤의 형태도 독특해서 잘 모르는 사람의 무덤이지만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다리도 아프고, 아무리 공원처럼 잘 꾸며놓았다고 해도, 무덤은 무덤인지라 왠지 으스스해서,
지도를 보고 쇼팽의 무덤만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찌나 많은 꽃들이 그의 무덤을 뒤덮고 있는지, 죽은 뒤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쇼팽님이셨다.
무덤이라기 보다는 동상같기도 한 이 아름다운 무덤앞에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쇼팽의 작품들을 떠올려보았다.
강아지 왈츠.............. 음..... 강아지 왈츠.................. 음...... 강아지 왈츠....................
맙소사!!!! 부끄럽게도 강아지 왈츠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멜로디도 모르겠고, 그저 제목만 기억난다.ㅠ
어린 시절, 잠깐 몸 담았던 피아노 학원의 피아노 소곡집인가 하는 피아노 책에
간단하게 편곡되어(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던...) 작은 글씨로 '쇼팽'이라고 적혀 있던 바로 그 곡!!!!!
어떤 사람은 쇼팽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아름다운 꽃다발을 그의 무덤에 바치는데,
나는 고작 강아지 왈츠 하나 기억해내고서 지금 쇼팽의 무덤앞에서 뭐하고 있는건지.
갑자기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졌다.
"나 쇼팽 무덤에 갔다 왔어!!" 라고 말하기엔, 허풍쟁이가 되어버릴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발걸음을 돌려 출구 쪽으로 슬슬 산책을 하기로 했다.
왠지 으스스하기도 하고, 왠지 신기하기도 한 파리 시민들의 무덤을 지나면서 천천히 걸었다.
(이 페르라세르 묘지에 묻히려면 지금도 엄청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가능하다고 한다. 완전 초 인기라고..))
아, 허리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숙소까지 걸어가는 그 15분이 너무너무 괴로웠다.

(여긴, 페르라세르 공동묘지를 오른편에 두고 걸어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약 50미터 쯤 가면 나오는 가게.
파리에서 손 꼽힐 정도로 신선하고 맛이 좋다는 왕샐러드를 팔아요. 그리고, 브런치 메뉴도 있구요.
우리는 시간이 안맞아서 못가봤는데, 여기 생활하시는 분이 추천해주신 곳이므로 페르라세르 공동묘지를 가게 된다면
이 곳에 앉아서 여유롭게 샐러드를 드셔보심이....)
숙소에 돌아오니 약 11시.
내일 아침 일찍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TGV를 타야하므로, 오늘은 동역 근처로 숙소를 옮기기로 계획했었다.
12시쯤 스튜디오 주인장님이 오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아픈 허리를 좀 쉬게 해 주어야지.

(여기가 파리에서의 6일을 보낸 우리 숙소. 아담한 스튜디오.)
그래도 6일동안 정든 숙소를 떠나야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동역 근처에 있는 숙소로 짐을 옮겨 놓고, (우리가 생활한 스튜디오에 비하면 엄청 열악한 환경의...)
천천히 걸어서 오페라 근처로 가보기로 했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우체국에 들러 한국으로 엽서도 보내고,
그 유명한 쁘랭땅 백화점에서 아이쇼핑도 즐기고(쇼핑을 하긴 했지만 ㅡㅡ;;;)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하고,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을 하며 골목 골목을 걷다보니,
왠지 나도 파리의 일부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그냥 파리를 두 발로 느끼면서 걸었다. 나도 마치 파리지앵인냥.....
여행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관광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왕 파리에 왔으니, 에펠탑도 보고 개선문도 보고 루브르도 가고 몽마르뜨도 가고, 어디가 유명하고 저기는 꼭가야되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빠서, 정작 아무것도 느끼는 것 없이 구경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런게 여행의 묘미일 수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까페에 앉아서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하루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골목 골목 숨어 있는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아이쇼핑을 하는 것이,
안되는 영어, 불어, 바디랭귀지 섞어서 노점상에서 가격 흥정을 해 보는 것이
뜨거운 햇살을 참아가며, 공원에 앉아 이어폰 귀에 꽂고 일광욕을 해 보는 것이 진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역시 남는건 사진뿐이긴 하지만, 이 먼 유럽땅에 왔으면, 가슴 속에 품어가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지 싶다.
아무튼, 그렇게 파리지앵인 척 거리를 활보하다가 우연히 내가 몰랐던 파리를 만났다.

생 라자르 역에서부터 숙소(동역쪽)로 천천히 걸어 오다가 정말 아주 우연히 발견!!!!!!
우리에게는 개선문보다, 에펠탑보다, 몽마르트 언덕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인데,
여행책 어느 한 구석에도 안내되지 않은 이 곳.
정말 아무것도 없이 저 작은 안내판과 파란 대문 뿐이지만, 하마터면 나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지만,
독립을 위해 이 파란 대문을 남몰래 드나 들던, 우리 조상님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해외나오면 애국자 된다더니, 그말이 정말 맞나보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고,
오늘은 정말 여행자가 아니라 파리지앵인 척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 놈의 지도만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면 정말 완벽하게 척 할 수 있었을텐데.... 고건 쫌 아쉽네.
내일이면 파리도 안녕이다.
두번째 안녕이지만, 세번째 반가워를 할 수 있을거라 믿으면서 미련없이 떠나주련다.
첫댓글 파리에 세 번째 가면 이런 여유가 생기나봐요..부럽네요..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파리도 사람사는 동네잖아요~ㅎ
우와... 멋져요..
어익후.. 감사해용^^
'까페에 앉아서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 무언가가 있어야지 싶다.' 이 멘트 완전 공감해요. 전 9월말에 떠나는데 맘껏 그렇게하고 올려구요 ㅎㅎ
정말.... 여행에는 그런 재미도 있어야지 싶어요~ㅋㅋ
숙소 정보 즘 알려주세요~! 스튜디오????
쪽지 보내드렸어요~^^
저도 너무 관광지만 봐서,,, 뭔가 느껴지는 부분은 많이 없었는데... 그래서 너무 아쉬워요. ㅎ 첫 여행이라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 그리고 저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저 건물 봤었는데 ㅎ
아~ 보셨구나~~~~.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그래서 여행은 다시가면 더 좋은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