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과 만자문>
두 친구가 금강산에 있는
유명한 스승을 찾아가
글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스승은 두 젊은이에게
천자문을 주면서
일 년 동안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한 친구는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
천자문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책이 다 닳아 헤어지도록
반복해서 읽다보니
어느새 천자문에 환해졌습니다.
무슨 글자가 앞에서
뒤에서 몇 번째
나오는지 알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친구 역시
열심히 천자문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읽고 나니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책을 덮고
금강산 유람길을 나섰습니다.
길을 가다보니
두 아이가 떡 한 조각을 놓고
반으로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
떡 한 가운데를
막대기로 대고 "됐지?, 됐지?" 하며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젊은이는
"아하, 가운데 '중' 자는
저런 거였구나...
누구에게도
공평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또 하루는
논을 지나다보니 사람들이
새참을 먹고 있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고
젊은이가 인사를 하자
"우리 같은 남정네들은
그저,,.
머리에 논 밭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지요" 하고
대답을 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젊은이는
아하 사내 '남' 자의 뜻은
그런거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이런식으로 그는
천자문의 글자 뜻을
하나 하나 익혀갔습니다.
일년이 되자
스승은 두 젊은이를 불렀고
그 동안의
어떤 공부를 했는지 물었습니다.
한 젊은이는
천자문을 자신있게 외웠고,
다른 한 젊은이는
천자문의 이치를 깨친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껄걸 웃으며
두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천자문을 배웠지만,
너는 만자문을 배웠구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말씀이신 예수님이 천자문으로 계셨으면 한 영혼도 영원한 생명(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자문으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예수)를 믿음으로..
신약은 오신 예수(메시야)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 방식은 똑같이 우리에게 적용이 됩니다.
이 은혜(구원)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내주하시니 당연히 만자문으로 살게 되고 풍성한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자문으로 사는 사람들은 눈으로 보기에 큰 업적(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인 영원한 생명과는 무관합니다.
주님의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성경에 능통한다 해도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천자문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7~8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 말은 지식으로 알 뿐 가슴으로 알지 못한다는 말로 구원과 관계가 없는 신앙이 아닌 종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