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등등 수탉에 암컷 두마리
조강지처는 새끼들 먹이 주고 첩실은 지아비 옆에 ‘착’ 붙어
비평가 강세황, 치밀한 묘사 극찬
화가 마군후, 오덕 치켜세우더니 삼계탕 만들어 먹겠다” 으름장
닭이 나오는 그림을 놓고 객쩍은 조선식 상황극 하나 만들어보자. 수탉 한마리와 암탉 두마리에, 딸린 병아리가 아홉마리다. 대가족이 되기에 족하다. 가장이 누군지 이미 알겠다. 오른쪽, 볏이 두툼한 수탉이 거들먹거린다. 조선 수컷의 ‘마초’다운 분위기가 꿈틀거린다. 쏘아보는 눈초리로 짐작건대 지금 내무 사찰할 참이다. 암컷 두마리 중 누가 조강지처일까. 왼쪽, 부리에 벌레를 물고 병아리에게 먹이는 갈색 닭이다. ‘독박 육아’를 오롯이 견딘다. 가운데, 구김 하나 없이 흰옷으로 단장한 첩실. 지아비 역성드는 꼴이 새초롬하다.
변상벽의 ‘수탉과 암탉(18세기, 종이에 채색, 30×46㎝,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닭들의 됨됨이를 실감나게 그린 이는 18세기 화원 변상벽이다. 오죽하면 당대의 ‘국수(國手)’로 꼽힌 그의 별명이 ‘변닭’이었겠는가. 그는 ‘디테일의 악마’답게 깃털을 하나하나 살려낸다. 와글대는 병아리들은 어떤가. 눈망울이 또랑또랑하다. 일제히 모이를 쳐다보는데 어미 뒤에 있는 한놈만 비켜섰다. 어라, 녀석 눈이 거물거물하다. 볕이 따스해서 끼니도 잊고 깜박 조는 꼬락서니다.
수탉은 검푸른 깃털에 꽁지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힘이 잔뜩 들어가 기세가 등등하다. 수탉은 모름지기 목청을 시원스레 뽑아 우는 것으로 새벽녘 존재감을 떨친다. 아닌 게 아니라 닭이 우짖는 그림은 별스런 상징을 지닌다. ‘공을 남겨 이름을 떨친다’는 뜻인 ‘공명’과 통한다. ‘수탉(公鷄·공계)이 운다(鳴·명)’는 뜻의 한자를 살짝 비틀어 ‘공명(功名)’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변상벽은 닭의 생태를 뚫어져라 관찰한 화가가 분명하다. 닭의 해부학적 구조가 몸놀림에서 그르침 없이 드러난다. 이 그림이 가관인 이유는 머리글 때문이다. 우선 오른쪽 귀퉁이 글부터 보자. 18세기 비평가인 강세황의 글씨다. 그는 변상벽의 솜씨에 놀랐다. “푸른 수탉과 누런 암탉이 일고여덟마리 병아리의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치밀한 솜씨가 신통해서 옛 사람도 그에 미치지 못할 바다.” 화가의 묘사력을 극찬한 말이다.
정작 웃음이 터지는 건 왼쪽 위에 써놓은 마군후의 글이다. 마군후는 변상벽보다 나이가 아래인 화가다. 뜻풀이해보자. “흰 털과 검은 뼈는 무리 가운데 우뚝하고 기질이 유독 별나지만 오덕(五德)은 남았구나. 의원에게 들었는데 묘약을 다릴 때는 아마도 인삼이 들어가야 너의 공이 기특해지겠지.”
뒤늦게 웃을 분을 위해 사족을 붙인다. 닭이 가진 ‘오덕’이 무얼까. 첫째, 닭은 머리에 관을 쓰고 있으니 당연히 글을 알 것이어서 ‘글월 문(文)’이다. 둘째, 발톱이 날카로워 무기가 될 만하니 ‘호반 무(武)’
다. 셋째, 싸움 잘하는 용기가 있으므로 ‘날랠 용(勇)’이다. 넷째, 먹을 것이 생기면 서로 불러 모으니 ‘어질 인(仁)’이다. 다섯째, 아침이 오면 때맞춰 울어주니 ‘믿을 신(信)’이다.
닭이 가진 덕목을 은근히 추어올리다가 뒤에 독한 소리를 내뱉는다. 묘약을 달일 때 인삼을 넣어야 한다는 말이 뭔가. 너를 삼계탕으로 만들어 먹겠다는 으름장이다. 닭들의 헌신이 새삼 눈물겨운 철이다.
첫댓글 저 수탉은 어째 수입산 냄새가...
수탉아. 걱정마라. 난 삼계탕 안 좋아한다.
난 닭을 좋아하면서 또 삼계탕도 좋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