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인터넷에 떠오른 미디어 뉴스 중에 나의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머리글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거> 장례식에 이르기까지의 며칠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향한 추모 물결이 전 세계를 덮었다.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
부활 2주를 맞이하던 그날, 성당에서는 교황님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되었고 연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4월 8일, 교황청 앞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치러진 교황님의 장례식에는 각국의 정상과 주요 인사들이 모였고, 약 400만 명에 이르는 추모객들이 모였으며 지구촌 곳곳에서도 수천만 명이 모여 TV로 생중계되는 장례행사를 지켜보면서 교황님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특히,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과 시리아, 짐바브웨와 영국의 국가수반들이 교황 추모를 위해 한자리에 서 있는 모습이 세계 매스컴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나 또한 이 분의 장례미사에 참석했고 연일 이어지는 미디어 공세에 이 분의 존재감과 이 분이 생전에 품으셨던 삶의 가치관과 신앙에 대해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자연스레 가졌다.
어떻게 보면, 단지 한 종교의 우두머리일 뿐인 그에게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애도의 마음을 전하는 걸까? 그가 주님 곁으로 떠난 지금, 인종과 종교를 불문한 각계의 사람들은 그의 빈자리가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 있다. 그는 최초의 비이탈리아 출신 교황으로 냉전을 종식시켜 세계평화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생애를 돌아보면, 그는 종교지도자로서 뿐 아니라 평화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정신적 지도자로서‘이웃사랑을 실천’하는데 삶의 가치관을 두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며, 나의 가치관과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리고 짧은 생이나마 어떤 인생을 살아 왔는지... 또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살아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
나는 교황님처럼 세계평화에 가치를 두거나 인류애에 가치관을 둔 사람은 아니다. 단지 이 세상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며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생애’에서 나에게 주어진 ‘나의 몫’이라 생각한다. 때론, 내 젊음이 어둡고 갑갑한 도서관의 한 구석에서 줄어만 가는 것이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건 미래를 위한 나의 땀이고, 어느 광고에서처럼 이 순간의 땀 한 방울이 10년 후엔 나의 명함이 되어 있을 것임을 난 알고, 그것을 믿는다. 따라서 ‘지금의 나’란 존재는 현재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노력하고 땀 흘리는 나’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삶의 근거를 두고 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고 그것을 향해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내’가 있기에 지금의 현실에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목표의식 없는 가운데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에 대해 느끼지도,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더 오래전엔 ‘수능’이라는 명목아래, 하고 싶지도 원하지도 않는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의 ‘암흑기’고 ‘어둠’이었으며, 빛으로 나아가는 통로를 제시하는 시련이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가 뜨기 바로 직전이다” 나는 ‘연금술사’에서의 이 말을 되새기며, 암흑이었던 지난 몇 달 동안을 이겨내는 교훈으로 삼았다.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단계’에 따르자면, 나는 5단계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는 시기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방황과 시련에서 얻은 나의 목표는 3학년이 된 지금 특별한 계기와 노력으로 조금은 잡힌 듯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전처럼 비관론에 사로잡혀 있거나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찬 불행한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꿈을 가지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의 신께 감사드린다. 니체는“절실한 삶의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참아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나의 존재이유는 내가 어디에 쓰임을 알고,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이며, 사랑하기 위한 존재인지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 닥쳐올 내 미래의 어떤 상황도 참아 낼 수 있는 근원이 될 것임을 믿는다.
사람은 어느 노래 말처럼‘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그러므로 너와 내가 모두 소중한 존재이며 어느 쪽으로도 일방적이지 않은, 사랑받기 마땅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며,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우리가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면 안 되는 이유인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교만에 가득 찬 잘난 척 쟁이 여학생이었다. 나 자신은 항상 소중하며 남들보다 우월하다 생각했고, 남들보다 공부를 좀 잘한다는 이유로 도도한 척 나보다 못한 아이들을 멸시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신께선 이런 이기적인 나에게도 신앙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들을 주셨고, 시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오랜 마모 끝에 둥글둥글해진 어느 강가의 돌처럼 조금은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고, 꽁꽁 싸매 놓았던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신께서 변하게 한 지금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과 존재는 없다”고... 그래서 변화의 과정을 거친 내가 이처럼 참회의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선택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이 길도 이런 참회하는 의미의 한 부분으로 택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에 감사하며, 이 일이 나이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봉사하며 사랑하고 싶기에 이 꿈을 꼭 이루고자 한다...
에릭슨의 말처럼 사람은 여행에서 인생의 소스를 얻기도 하고, 어떤 간단한 문구나 말한 마디에도 감동을 받아 인생의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전환점의 기회는 나에게도 주어졌었다.
지난 여름방학, 나는 우연한 기회로 삼랑진‘평화의 마을’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고, 그 가운데 내 자신을 각성할 수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소위, 우리가 말하는 뇌성마비로 두 발 ․ 두 손을 성히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들을 위해 식판을 나르고 청소를 하며 봉사하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은 어떤 영화의 로맨스보다도 더 감동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나보다 못하고 불쌍하다고 여겼던 그 사람들은 결코 나보다 못하거나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결코!
그리고 그해 다음 학기에 특수교육학과 수업을 들으며 많은 장애아동들을 만나오고 있는 지금, 세상엔 정말 하나하나가 소중한 꽃임을 깨닫고 있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으며, 사회적으로 외면당하는 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걸 배우고 있다. 이 계기로 나는‘특수교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위해 현재의 나는 최선을 다하며 젋음의 열정을 받치고 있다. 때론,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비바람이 치고 거센 파도가 되어 나에게 시련을 안겨주고 마음의 상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지만, 내 자신은 불행하지 않다. 적어도 내가 선택한 이 길은 나의 성숙을 일궈내는 과정이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리번 선생님이 삼중고의 헬러켈러를 교육하고 그녀의 잠재력을 끌어올린 것처럼 나도 그런 스승이 되어 우리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내일이면 장님이 될 것처럼 당신의 눈을 사용하십시오. 내일이면 귀머거리가 될 것처럼 말 소리와 새소리, 오케스트라의 힘찬 선율을 들어보십시오.
하지만 모든 감각 중에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귀머거리요, 장님이었던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시각’이란 감각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경이로움을 볼 수 있는 축복을 가졌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우리는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런 그녀에게 빛이 되고 친구가 되어 준 사람은 바로 그녀의 스승, 설리번이었다. 누가 그녀에게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 알아보았겠는가? 설리번,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꽃은 소중하며, 각자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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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민들레
세상엔 소중한 꽃들이 많다. 그리고 나는 그 중에 아주 작고 작은 꽃들 중의 하나이다. 아직 나는 비상하지 않았다. 나는 꿈을 가지고 있는, 꽃봉오리가 아직 피지 않은, 봄의 향기를 간직한 민들레이다. 한때, 나는 내가 장미라 생각했고 그렇게 되길 간절히 원했지만 이제는 길가에 지나다 보이는 꽃 하나하나도 소중한 꽃이며, 가치있음을 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꽃이기를 원한다. 똑같이 대량생산되어 팔리는 수많은 장미이기보다 길가에 문득 피어있는 한 송이의 꽃이길... 언젠가는 바람이 되고, 흙이 되어 대자연으로 돌아갈... 그런 소중한 단 하나의 꽃이길 자청한다.
첫댓글 흐미;;;;;;;;;;;;;;; 어제는사진이 나왔는데...ㅡㅜ 오늘은 사진이 보이질 않네....;;;;; 어찌이론~~~ㅡㅜ
[3] 꼭 소중한 사람이 되세요 ^^*
[3] 가치의 소중함을 알아가시는 모습이 참 보기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의 서론부분이 필요이상으로 너무 길지 않았나 싶네요. 글 잘읽었구요, 수고하셨습니다.
[3+3+2] 사람은 대상이 아니란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이란다. 쉽지 않은 이야기다만, 사회복지, 특수교육 등과 같은 일은 심하게 말하면 봉헌하고 봉사하는 삶이라기 보다는 그들에게 기생하는 삶이라고 할 수도 있단다. 그리고 겸허하게 그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들과 더불어 살 수 있게 된단다. 심성이 고운 사람은 쉽게 다치고, 쉽게 낙심하기 쉬운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니, 그것은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최전선에 있는 삶이기 때문이란다. 앞으로의 삶에 힘겨워 하는 일이 조금 덜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