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부처님이다 두두가 부처님이다”
덕숭총림 방장 달하대종사
시원하게 터진 하늘 끝 모를 깊이. 둥실 달이 밝았습니다. 아, 웅장하다. 이 생명덩어리! 이 새벽, 대종소리, 온통 한 덩어리 이 물건. 응연일상원(凝然一相圓)! 웅장하다, 과연 쉬어지네.
눈 뜨면 시방세계, 눈 감으면 이~뭘까! 일어나고 멸하는 생멸 전(前), 이 구슬, 만고의 휴식처. 저절로 굴려지고 있나? 머리, 머리, 원동력, 찬란한 생기. 아~ 벗어났네! 만고의 이 자유. 주는 마음 베푸는 마음. 대자대비 사랑의 한 덩어리 일색 에너지. 대중시봉, 주고 베푸는 열린 마음. 관세음보살 부를 수 있게 해주는 힘이고, 이놈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고, 하늘이 덮을 수 없고 땅이 실을 수 없는 복력이더라. 이 공부의 첫 단계가 이 지심(至心)이요, 이 보시입니다. 육도문중에 행단이 거수(六度門中 行檀居首). 수행자 일번지는 베푸는 마음, 보시!
대중을 부처님으로 시봉하자.
목탁소리 이놈이요, 대종소리 이놈이요. 시심마(是甚麽)요, 관세음보살이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以生其心). 그때그때 새롭게, 새롭게! 이 몸은 피고 지고 법계의 속성입니다. 마음이 개운해졌나? 공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보고 듣는 이놈, 엉뚱한데 헤맬 일이 없습니다. 이탈할 일이 없습니다. 구름 걷힌 푸른 하늘 이뭘까가 답입니다. 이 물건 놓치면 진기 빠진다. 이탈하지 마라. 하늘땅이 등 돌린다. 다 제쳐두고, 도방하(都放下)하고 결심한 이 안거. 이보다 통쾌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안 난 셈치고 얼마나 여유롭습니까! 이보다 큰 발심법문이 어디 있습니까? 관세음보살 부르는 이놈, 한 덩어리 이 물건. 바탕이 확실해지면 코 꿰일 일이 없더라.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이놈이요, 유아독존이요, 내 책임이더라. 예불할 수 있을 때, 팔다리 쓸 수 있을 때, 밥맛 있을 때, 관세음보살 부를 수 있을 때가 하늘이 이 하늘이고, 땅도 산도 바다도 모두 이놈입니다. 지심귀명례, 이 자리, 지심이요, 응관(應觀)입니다. 온통 산하대지가 일색 에너지로 둘러꺼지게 몰아주고 있습니다. 체껴주고 있습니다. 움직이니 이놈이요, 꿈틀거리니 이 물건이로다. 놀랍다, 이 물건이여, 이 맛이여! 하늘땅을 안고 있는 대적(大寂)삼매 온통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응관! 부처님의 화두입니다. 나무 가지가지 끝끝마다 만경창파 물결마다, 끝 파도요 응관법계성이요 절절이 감동입니다. 대자대비 사랑으로 팔을 벌려 다 안아주는 부처님의 화두, 응관. 거룩하다, 이 은혜 어떻게 갚을까? 예불할 때마다 맹세합니다. 걸음걸음 맹세합니다. 상어반야불퇴전(常於般若不退轉), 퇴전하지 않겠습니다. 이~뭘까?
불식(不識), 알 수 없다. 통틀어 알 수 없다. 알지 못한 줄 알면 견성이다. 달마스님 화두 불식입니다. 달마스님 불식 이 한마디에 납자의 공부 양식이 철철 넘칩니다. 이 공부 살림살이 안심입니다. 무수한 선지식이 달마스님 불식에서 상봉하고 있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오? 무슨 물건이냐? 응무소주 이생기심, 걸음걸음 육조스님이 도와줍니다. 시회대중 법맥이 육조스님입니다. 응무소주, 보고 듣는 응하는 이놈. 무엇에도 점령된 적이 없는 주(住)한 바가 없는 걸린 적이 없는 응무소주 이생기심, 그때그때 반응! 어디에도 점령되지 않는 주한 적이 없는 통쾌한 이놈이 그때그때 반응하네. 두두물물 둘러꺼지게 몰아 체껴주네.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 한 구절에 육조스님은 철커덕 계합이 되어 알아버렸습니다.
일 잘하는 소가 되어도 코 꿸 구멍이 없다. 이 한 마디에 경허스님은 돈각삼천 시아가 확철대오 하셨습니다.
삼천대천세계가 이놈이다. 세세생생 억천만 년 몽매(夢昧)가 순식간에 녹아졌습니다.
우렁찬 법맥을 이어받은 선객들. 몽중일여를 묻는다면 미달입니다. 오매일여를 다그치면 갓난아기 같은 소리입니다. 이 일은 오매가 붙기 훨씬 전, 망상 일어나기 전. 철커덕 계합, 대적삼매, 유유자적 앞. 오직 이~뭘까?
작은 쪽배로 간월도에서 안면도로 가는 물결치는 뱃길에서 흔들리면서 만공스님이 물었습니다. “산이 가느냐, 배가 가느냐?” “배가 가는 것도 산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가느냐?” “해상 돌풍에 피해가 크다.” 말없이 서있다. 손수건을 번쩍 들어 보였다. 만공스님이 말씀하십니다. “자네 살림살이 언제부터 그러한가?” “오래전부터 그러합니다.” 만공스님이 점두하셨습니다. 어느 답인가? 어느 답에 만공스님이 고개를 끄떡이셨을까? 접시물은 얕아 생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이 세상 모든 가지가지 존재는 반야의 가지가지 반(般). 세상천지 가지가지, 하나로 한 덩어리로 같을 야(若). 반야심경의 반야(般若) 이뭘까입니다. 세상 만사는 이뭘까로 돌이키는 부처님이더라! 반야심경은 부처님 친설법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일어나기 전(前), 바탕, 응하는 응관, 응관법계성. 바탕이 본래 청정으로 회복하는 것이 참선입니다. 화엄경도 반야심경도 바탕, 선(禪), 참선이 골수입니다. 참선이 기본입니다. 화엄경 제 일계가 응관법계성입니다. 극도의 성성(星星), 극도의 고요, 확철대오. 법계가 한 부처님, 세상이 일불(一佛), 세계가 한 생각, 한 부처님. 선(禪), 바탕, 만고의 생명덩어리. 이뭘까가 뚜렷하니 황무지가 황금덩어리. 끝없는 하늘이 포근한 숨결. 두두가 부처님 펄펄 살아 신바람. 명상, 이 단어는 납자의 가풍이 아닙니다. 납자의 기백이 아닙니다.
하늘땅은 이 고요의 탄력입니다. 천지는 하나가 살면 전체가 살고 천지는 탄력, 참선은 힘의 원천. 대자대비 사랑으로 팔을 벌려 다 안아 줘라. 이~뭘까? 대중이 부처님이다. 두두가 부처님이다. 상주일체가 부처님이다. 부처님 시봉 얼마나 흐뭇한 명분인가! 납자의 여유, 납자의 촉촉한 눈길에 향기가 진동합니다.
드러난 세상만사 반(般)! 만고의 이 고요 야(若)! 물 흐르고 꽃 피네. 산 소식 이글이글, 법계가 신바람입니다.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고불이요, 미생전이요, 응연일상원. 석가도 알지 못한 것을 가섭이 어떻게 능히 전한다고 하는가!
오직 이놈! 부처님 친설 반야. 반야가 이~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