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기이성(下氣怡聲)
기(氣)를 낮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한다는 뜻으로, 자식이 부모님을 섬기는 도리를 이르는 말이다.
下 : 아래 하(一/2)
氣 : 기운 기(气/6)
怡 : 기쁠 이(忄/5)
聲 : 소리 성(耳/11)
출전 : 예기(禮記) 내칙(內則)
이 성어는 부모님을 모시는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雞初鳴, 咸盥漱, 櫛縰, 笄總, 衣紳.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머리 빗고 검은 비단으로 머리털을 싸매며 비녀 꽂고 비단으로 묶어 상투하고 옷을 입는다.
左佩紛帨刀礪小觿金燧.
왼쪽에는 그릇을 닦는 수건과 손수건과 작은 칼과 숫돌과 작은 뿔송곳과 금수(거울)를 찬다.
右佩箴管線纊, 施縏帙大觿木燧衿纓, 綦屨.
오른쪽에는 바늘 넣은 통과 실과 솜을 차되 반·질 속에 넣으며 큰 뿔송곳과 목수를 찬다. 향낭을 차고 신 신고 신 끈을 맨다.
以適父母舅姑之所, 及所, 下氣怡聲, 問衣燠寒, 疾痛苛癢, 而敬抑搔之.
그리고는 부모, 구고(시부모)가 계시는 곳에 간다. 부모, 구고의 침소에 가서는 호흡을 나직이 가라앉히고 말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옷이 너무 덥거나 차지 않는가를 묻고 앓거나 가려워 하면 조심하여 짚어 보며 긁어 드린다.
出入, 則或先或後, 而敬扶持之.
부모가 출입하실 때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공손히 붙들어 모신다.
(禮記/內則)
부모에 대한 예의 : 효(孝)
부모님은 내게 생명준 분이니, 낳고 키워준 은혜에 감사하며 섬기는 '효'를 해야 한다.
한국의 15~18세기 조선시대에 왕세자의 입학식(입학의, 入學儀)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소개한다. 왕세자가 스승에게 교육을 받는 의식에서 스승은 책상 위에 책을 펴놓고 강의를 하는데 왕세자는 바닥에 엎드려 책을 보는 장면이다. 왕세자는 장차 국왕이 될 중요한 존재였음에도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었다.
왕세자에게 왜 그렇게 하게 했을까? 장차 한 나라의 왕이 될 왕세자가 입학식에서 자신을 낮추고 스승을 높이며 예의를 표하는 것, 이는 바로 스승의 인격과 사상‧행위에 대한 존경과 공경의 자세를 왕세자부터 실천하여, 백성에게 본을 보이는 것이었다.
왜 우리는 부모에게 예의를 갖추고 효를 실천해야 할까?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가 없었다면 나라는 존재도 없었을 것이다.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하고 공경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이자 보편적인 가치이다. 일상생활에서 부모님께 예의를 갖추고 효를 실천해 보자.
1. 효 정신의 중요성
동양에서는 일찍이 수많은 성현들이 효를 강조했다. 공자는 '효는 모든 행동의 근본(孝者百行之本)'이라 설파했고, 퇴계는 '모든 행동의 근원(孝者百行之源)'이라 했고, 율곡은 '모든 행동의 바탕(孝者百行之道)'이라 했다. 효경(孝經)에도 '효는 덕의 근본이며, 교육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다(孝德之本也 敎之所有生也)'고 나와 있다.
이런 사상적 뿌리를 가진 한민족은 예로부터 효를 모든 행동의 근본으로 삼았다. 사람의 모든 행실의 근본을 효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를 다한 후에 이웃과 웃어른을 섬기고 국가에 충성하였다. 이 모습을 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한국에서 장차 인류 문명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효 사상'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효 사상은 비단 동양에서만 강조한 것이 아니다. 성경의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고 하여 인간이 지켜야 할 법을 제시하고 있다.
효는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중과 배려를 실천하는 것이다.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은혜를 알고,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 또 효는 인간 윤리의 바탕이며 우리 생활 속에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덕목이다. 나아가 효는 시간과 장소와 문화와 종교와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가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관계를 회복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효의 정신이 살아나야 한다.
2. 부모에게 효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
신성(神聖)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당시 과학자들과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프리드리히는 아기가 태어난 후 자라면서 가장 먼저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갓난아기 몇 명을 부모에게 빼앗아 보모(保姆)들에게 키우게 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씻어 주긴 하되 단 한마디도 말을 걸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이 가장 오래된 언어인 히브리어로 말하는지, 아니면 그리스어‧아랍어 또는 자기 부모의 언어로 말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기들은 말을 하기도 전에 모두 죽어 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에 대해 역사가 살렘베네는 "쓰다듬어 주지 않아서 아기들은 살 수 없었다"라고 적었다.
이렇듯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不在)는 아이의 생존을 위협한다. 인간은 장성하기 전까지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두 발로 서서 걷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인간다움의 모든 모습들은 부모로부터 가장 먼저 배운다. 부모는 우리를 낳아 생명을 주었고, 우리를 양육하기 위해 그분들의 삶의 일부를 희생하고 헌신했다. 이러한 부모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예를 실천하여 섬기는 것이 바로 '효(孝)'이다.
불교 경전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說)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에서는 부모가 베풀어 준 10가지 큰 은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으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라고도 한다. 이 경은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3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경의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가 들어 있다.
서분은 부처님이 왕사성 기사굴산에서 아난다의 청법으로 부처님이 경을 설한다. 먼저 부처님이 고골을 보고 부처님이 예배하는 것이 경을 설하는 동기가 되어, 부처님이 부모의 은덕을 설하고 아난이 어떻게 그 은혜에 보답하는지 질문하여 경을 조성하고 7월 15일에 우란분절의 공양을 올리며 경을 서사하라고 답한다.
이어 부모가 자식을 위해 애쓰는 내용을 설하고, 자식이 부모를 홀대하는 모습을 설한다. 부처는 부모를 위하여 '부모은중경'을 수지하면 죄를 멸하고 부모님이 해탈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유통분은 경을 주지하도록 하고 경명을 설하여 맺고 있다.
이 경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다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써,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설하였다.
이와 같이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이 경은 유교의 '효경(孝經)'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경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부모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십대은(十大恩)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십대은은 ①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주는 은혜[懷耽守護恩], ②해산 날 즈음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어머니 은혜[臨産受苦恩], ③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生子忘憂恩], ④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는 은혜[咽苦甘恩], ⑤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廻乾就濕恩], ⑥젖을 먹여서 기르는 은혜[乳哺養育恩], ⑦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 주시는 은혜[洗濁不淨恩], ⑧먼 길을 떠나갔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遠行憶念恩], ⑨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짓는 은혜[爲造惡業恩], ⑩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은혜[究意憐愍恩] 등이다.
둘째,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보아 매우 과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하여 10개월이 될 때까지를 1개월 단위로 나누어서 생태학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셋째,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어 유교의 '효경'이 아버지의 은혜를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점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넷째, 유교의 '효경'이 효도를 강조한 데에 비하여 이 경은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 경에서도 그와 같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방법의 제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보은의 방법은 부수적인 것이고, 근원은 은혜의 강조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은혜를 갚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7월 15일의 우란분재(盂蘭盆齋)에 부모를 위해서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이 경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부모를 위해서 이 경의 한 구절 한 게송을 잘 익혀 마음에 새기면 오역(五逆)의 중한 죄라도 소멸된다고 하였다.
이 경은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널리 보급되었고, 나라마다 많은 유통본을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 유통본은 대부분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이라는 명칭으로 불려 왔으며, 특히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이 경이 많이 간행되었다. 조선 초기부터 변상도를 곁들인 판본이 많이 간행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언해본이 출판되기도 하였다.
옛 이야기에 '어미의 먹이를 구하는 까마귀의 효성'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까마귀는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어미 까마귀의 보살핌을 받지만, 다 자라고 나면 반대로 어미 새를 극진히 보살피며 먹이를 물어다 준다.
고담(古談)에는 이런 까마귀의 모습처럼 자식이 자라서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부모은중경 십대은(十大恩: 10가지 큰 은혜)이나 어미의 먹이를 구하는 까마귀 이야기에는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와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담겨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로 부모가 자녀를 보살피는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 일로 바쁘고, 가정의 경제적 책임만으로도 벅찬 부모들도 있다. 그래서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사랑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부모의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렇다 하여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실천해야 할 도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내 존재의 근원이 되어 주신 분에게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이며, 우리가 부모님께 효를 실천해야 하는 근본 이유이다.
웃어른에게 어떻게 예의를 실천할 것인가?
예는 감사에서 시작된다. 부모에 대한 효와 스승에 대한 존경과 공경의 마음은 예로 나타난다. 예는 마음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예는 행동과 말로 드러나야 한다. 예는 가정과 사회에 질서와 조화를 회복시켜 평화를 이루는 밑거름이 된다.
1. 효와 공경의 구체적 실천으로서의 예(禮)
예라는 것은 부모를 포함한 웃어른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말투와 행동을 말한다. 예(禮)라는 한자를 살펴보면 '보일 시(示)'와 신에게 바치기 위해 그릇 위에 제사 음식을 가득 담은 모양의 '풍성할 풍(豊)'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제사 음식을 풍성하게 차려서 보이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제사는 자신을 있게 해준 근원, 즉 조상들께 드리는 것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동양의 '예'와 비슷한 개념의 에티켓은 프랑스어 에티케트(étiquette)로 부터 왔으며, 동시대의 규범이나 전통적인 관습에 의거하여 특정한 사회 집단이 보편적으로 취해야하는 사회적 행동을 가리킨다. 흔히 의식(儀式), 외교적 의정(議政)과 같은 공식적인 행사에서 요구되는 관습적인 행동이다.
에티켓이라는 단어는 벽에 붙인 쪽지(étiquette)에서 유래한다. 프랑스의 궁정에는 쪽지에 궁정에 입장이 허용된 사람들의 명단이 열거되어 있었다. 따라서 쪽지라는 뜻의 '에티케트'라는 단어가 '왕정의 규범에 걸맞도록 품위 있게 행동한다'는 의미로 전이된 것이었다.
'예'나 '에티켓'은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표현이며, 웃어른에 대해서는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다. '예'는 나를 낮추고 부모와 스승과 웃어른을 높이는 행동이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을 돌아보고 자신의 본분을 지킬 수 있게 한다.
'예'를 갖추고 예의 있게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사회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이를 통해 부모나 스승같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분들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한 단계 더 높은 인격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사회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만들어 가는 평화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한다.
2. 오늘날 예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
부모님과 웃어른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현인 예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그 형식은 다르더라도 근본 정신은 동일하다. 다음의 아이디어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맞는 예의 실천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해 보자.
① 보살핌 :
존경하는 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몸을 보살펴 드림으로써 섬기는 방법이다. 보살핌은 정서적인 보살핌과 물질적인 보살핌으로 나눌 수 있다. 정서적인 보살핌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기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해드리고 거리의 제약이 있을 때에는 자주 연락을 드리는 방법이 있다. 물질적으로 보살핌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식사나 집안일을 돌보아 드리거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돕거나 경제적으로 지원해 드리는 것 또는 공공단체와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를 연결해 드리는 것 등의 섬김의 방법이 있다.
② 순종 :
부모님이나 웃어른의 삶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여 말을 귀담아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 그분의 말을 따름으로써 그분의 뜻을 이뤄 드리는 섬김의 방법이다.
③ 의논 :
어른에게 여러 문제에 대해 자문과 충고를 청함으로써 섬기는 방법이다. 대화할 때는 어른들이 이해하실 수 있게 말해야 하며 공손한 음성과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중요한 요점은 메모해 두는 것이 좋고 질문이 있을 때는 질문을 해도 좋겠냐고 양해를 구한 후 겸손하게 질문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를 모실 때 세 가지 과실이 있을 수 있다. 말이 미치기(끝나기)도 전에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조급함이요, 말이 미쳤는데도(끝났는데도) 말하지 않음은 숨김이요, 안색을 살피지 않고 말함은 눈치가 없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주의해야 하는 언어 에티켓이라고 할 수 있다.
④ 먼저 대접하기 :
어른에게 음식‧도움‧편의‧서비스 등을 먼저 또는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방‧목욕실‧자동차‧승강기 등을 먼저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존경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부모가 자녀가 어릴 때 맛있는 것, 건강에 좋은 것을 우선적으로 주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녀를 돌보아 준 것처럼 식사를 할 때 먼저 어른이 자리에 앉도록 하며 어른이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는 등의 섬김으로 은혜를 갚아 드리는 것이다.
⑤ 인사 : 인사는 예(禮)의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것으로 웃어른을 반가워하고 중요하게 여기면서 섬기는 방식이다. 인사를 할 때는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른 자세와 똑똑한 목소리로 몸을 굽혀 인사한다.
⑥ 존댓말 : 어른과 대화하거나 편지를 쓸 때 존댓말을 사용해서 섬기는 방식으로 자신을 낮추는 말과 상대를 높이는 말로써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른과의 대화를 할 때는 호칭을 주의해서 써야 하며 존경의 정도에 따라 동사, 전치사, 단어, 구절, 문장을 달리 사용한다. (언어에 존비의 뜻이 담긴 경우에 해당하며 특히 동양권의 경우가 많음)
⑦ 외모를 단정하게 함 : 웃어른을 만날 때 옷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를 다듬어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또한 얼굴 표정도 부드럽게 하여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다.
하나씩 예를 실천해 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적용하고 배워 보자. 또 예의 실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의 근본 정신과 원리를 함께 생각하면서 실천하자. 예를 실천하면서 조화와 질서를 지키는 내 안의 양심을 깨우도록 하자. 선한 양심이 바탕이 된 예의 실천은 웃어른과 더불어 평화를 지혜롭게 만들어가는 힘이 될 것이다.
웃어른에 대한 예의 결론
나무가 숲속에 서듯이, 나무의 변화는 숲을 이룸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낙락장송이나 명목이 나무의 최고 형태가 아니라, 나무의 완성은 숲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의 경우도 같다. 사람들의 관계 속에 설 때 비로소 개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웃어른에 대한 예의는 관계 속의 질서를 지향한다. 부모에 대한 효와 스승에 대한 공경의 표현인 예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존재를 떠올리며 감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질서를 배우고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또 옳고 그른 가치를 분별하고 배우게 된다.
예의를 통해 우리는 사회 속의 나를 이루고, 나 자신의 인격을 세우게 되며, 후 세대에게 물려줄 모범을 만들게 된다. 평화를 이루어 가는 데 왜 이것이 필요할까?
감사, 배려, 희생, 용서의 가치는 개인의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 가는 핵심 요소들이다. 하지만 '웃어른에 대한 예의'부터는 평화를 사회의 질서에 따라 풀어 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우리가 먼저 부모에 대한 효와 스승에 대한 공경을 실천한다면 그것 자체가 평화를 앞당기는 길이요, 또 그것이 평화로운 세상의 한 모습이 될 것이다.
스승에 대한 예의 : 존경과 공경
스승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존경하고 공경해야 하는가?
스승은 삶의 지혜와 참된 지식을 전해주어 나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주신 분이다. 우리는 스승의 열심과 노고에 감사하고, 스승에게 배운 지혜와 가르침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또 우리는 항상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참된 스승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 스승에 대한 존경과 공경의 태도가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
한 포털사이트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인생의 스승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필요하다'고 답한 직장인이 응답자의 89.1%나 됐다. 우리는 각종 책, 방송, 유튜브에서 수많은 강연들을 접하고, 많은 가르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스승이나 멘토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면에서는 스승이 없다기보다 스승을 찾지 않고, 스승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 때문에 참된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17세기 조선시대의 학자인 서해웅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존경과 공경이 실종된 현실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백년 사이에 스승을 대하는 풍속이 나날이 허물어져, 제집으로 스승을 끌어들여 사육하듯이 하면서 그 제자를 가르치게 하고 있다. 그들의 자제는 평소 교만한데다 또 사육하듯 하는 권세를 가지고 스승을 대한다. 스승 또한 권위를 세울 수가 없으니 꾸짖을 수도 없고 회초리를 들 수도 없다. 그저 자기 일만 할 뿐이다. 자제들이 스승을 비하하면서 그 가르침을 받으니 진정 학업이 진보될 리가 없다. 그러면 또 스승의 힘이 없다고 책망하니, 이는 썩은 고삐를 주고서 사나운 말을 몰도록 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수없이 많은 교육자가 있지만, 배우는 이가 교육을 단순히 돈을 주고 사는 하나의 서비스 정도로만 인식할 때 스승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참된 스승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대학교 안에서도 학생들이 어떤 태도로 교수를 대하느냐에 따라 교수도 학생에 대한 열의나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교수를 단순히 학교에서 가르치는 직업인으로만 대하느냐 아니면 내 인생에 정말 귀한 가르침과 지혜를 전해 주는 분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교수가 학생에게 단순한 정보 전달자로 그칠 수도 있고, 인생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
한 연구 결과는 학생의 학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부모나 친구가 아닌 교사와의 관계라고 발표했다. 학생이 교사를 신뢰하고 교사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더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지만 교사와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 학업에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 온전한 배움을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존경과 공경은 가르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배우려는 사람에게 반드시 우선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자질이자 태도이다.
2. 공자와 안회 이야기
안회(顔回)는 배움을 좋아하고 성품도 곱기에 공자(孔子)가 사랑하는 제자 중 하나였다. 하루는 안회가 공자의 심부름으로 장에 들렀는데, 가게 주인과 손님이 시비가 붙었다.
손님이 주인에게 큰 소리로 "3×8은 분명히 23인데 당신이 왜 나한테 24전을 요구하느냐?"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안회는 손님에게 정중히 "3×8은 분명히 24인데 어째서 23입니까? 당신이 잘못 계산을 한 것입니다"하고 말을 했다. 손님은 목을, 안회는 관(冠)을 내놓겠다고 하며 공자의 판결을 기다렸다.
공자는 이를 듣고 웃으며 안회에게 "네가 졌으니 관을 내놓아라" 했고, 손님은 의기양양하게 관을 받고 나갔다. 안회는 공자의 판결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기 스승이 너무 늙고 우매하니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여 집안일을 핑계로 잠시 고향에 다녀올 것을 요청하였다.
안회는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공자를 찾아갔고 공자에게 의도를 물었다. 공자는 "잘 생각해 보아라. 만약 그날 내가 그 손님이 틀렸다고 했다면, 그 손님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지 않았겠냐? 관이 중요하냐,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하냐?"라고 설명했다. 안회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치를 깨닫게 되어 공자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이 이야기와 같이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하더라도 스승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시각에서 판단해 버리면 지혜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고 미처 헤아리지 못한 스승의 관점과 지혜를 구할 때 우리는 참된 배움을 얻을 수가 있다.
인생의 곳곳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한 숨은 고수들과 스승으로 삼을 만한 분들이 있다. 우리는 참된 스승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배울 점을 찾고 존경하며 신의와 공경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겸손한 자세로 나를 낮추고 배움을 청하고 진심으로 지혜를 얻으려 하면 우리는 그토록 찾던 인생의 스승을 만날 수 있다.
동몽선습(童蒙先習)
총론(總論) 1
此五品者, 天敍之典,
而人理之所固有者.
이 다섯 가지 도리는 하늘이 마련한 법칙이고,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도리이다.
人之行, 不外乎五者,
而唯孝爲百行之源.
사람의 행실이 이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是以, 孝子之事親也,
鷄初鳴, 咸盥漱, 適父母之所,
下氣怡聲, 問衣燠寒, 問何食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
出必告反必面.
이런 까닭에 효자가 부모를 섬김은, 첫닭이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부모가 계신 곳으로 가서, 숨을 낮추고 기쁜 소리로 옷이 따뜻한지 추운지를 묻고, 무엇을 잡수시고 마시고 싶은 지를 물으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물면 잠자리를 봐드리고 새벽에는 안부살피고, 나갈 때는 반드시 알리고 돌아오면 꼭 부모를 뵌다.
不遠遊, 遊必有方;
不敢有其身, 不敢私其財.
멀리 나다니지 않고, 나다니되 필히 장소를 알리며, 감히 자신의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감히 재물을 자기 것으로 차지하지 않는다.
父母愛之, 喜而不忘;
惡之, 懼而無怨.
부모가 나를 사랑해 주면 기뻐하고 잊지 않으며, 미워하거든 두려워하되 원망하지 않는다.
有過, 諫而不逆;
三諫而不聽, 則號泣而隨之;
怒而撻之流血, 不敢疾怨.
잘못이 있으면 간하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세 번을 간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으면 부르짖고 울면서 따르고, 화가 나서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치 않는다.
居則致其敬, 養則致其樂, 病則致其憂, 喪則致其哀, 祭則致其嚴.
부모가 계시면 극진히 공경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환이 나면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총론(總論) 2
若夫人子之不孝,
사람의 자식으로 효도를 하지 않는 것은,
不愛其親 而愛他人,
不敬其親 而敬他人.
자기 부모는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부모는 공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공경하며,
惰其四肢, 不顧父母之養;
博奕好飮酒, 不顧父母之養;
好貨財, 私妻子, 不顧父母之養;
從耳目之好, 以爲父母戮;
好勇鬪狠, 以危父母.
사지를 게을리하여 부모 봉양을 돌보지 않으며, 장기나 바둑,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부모에 대한 봉양을 돌보지 않으며,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식만을 사랑해서 부모에 대한 봉양을 돌보지 않으며, 눈과 귀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맹을 좋아하고 싸워서 부모를 위태롭게 한다.
噫 欲觀其人行之善不善, 必先觀其人之孝不孝, 可不愼哉 可不懼哉.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착한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필히 먼저 그 사람이 효자인지 아닌지 보아야 하니, 어찌 삼가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苟能孝於其親, 則推之於君臣也, 夫婦也, 長幼也, 朋友也, 何往而不可哉.
만일 그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을 군신, 부부, 장유, 붕우 간에 미루어 어떤 경우에 적용한들 옳지 않겠는가.
然則 孝之於人, 大矣, 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
그리하여 효도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지만, 멀고 높아서 행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然, 自非生知者, 必資學問而知之.
그러나 나면서부터 이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반드시 학문에 힘을 입어서 알 수 있다.
學問之道, 無他. 將欲通古今達事理, 存之於心 體之於身, 可不勉其學問之力哉.
학문하는 목적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고금의 사리에 통달하여
마음속에 간직하며 몸으로 실천하는 데 있으니, 학문하는 노력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玆用摭其歷代要義.
이제 역대의 중요한 것들을 추려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下略)
성학집요(聖學輯要)
第3 정가(正家)
臣按, 孟子曰: 身不行道, 不行於妻子, 使人不以道, 不能行於妻子.
신이 생각건대,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몸소 도(道)를 행하지 않으면 처자에게 도를 행하지 못하고, 사람을 부리는 데 도(道)로써 하지 아니하면 처자에게 행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朱子曰: 身不行道, 以行言之; 不行者, 道不行也. 使人不以道, 以事言之; 不能行者, 令不行也.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자신이 도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하는 것으로써 말하는 것이요,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을 부리되 도로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로써 말한 것이며, 행할 수 없다는 것은 영(令)이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蓋修己, 然後可以正家, 故正家次於修己. 此以下, 治人之道也.
대개 자기 몸을 닦고 난 다음에야 집안을 바르게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정가(正家)를 수기(修己) 다음 차례에 둔 것입니다. 이 아래는 사람을 다스리는 도리에 관한 것입니다.
第1章 총론정가(總論正家)
○ 臣按, 正家煞有節目, 今以論其大槪者, 著于首.
신이 생각건대, 집안을 바루는(正家) 데에는 뚜렷한 절목(節目)이 있기 때문에, 이제 대강의 줄거리를 논하여 첫머리에 밝힙니다.
○ 周子曰: 治天下有本, 身之謂也. 治天下有則, 家之謂也.
주자(周子; 周敦頤)가 말하기를,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는 근본이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두고 말한 것이요,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는 법도가 있다는 것은 집안을 두고 말한 것이다.
本必端, 端本, 誠心而已矣. 則必善, 善則, 和親而已矣.
근본은 반드시 단정해야 하는데, 근본이 단정하면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며, 법도는 반드시 선해야 하는데 법도를 선하게 하면 가족을 화목하게 한다'고 하였다.
(周子/通書)
○ 朱子曰: 則, 謂物之可視以爲法者; 猶俗言則例則樣, 是也. 心不誠則身不可正, 親不和則家不可齊.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칙(則)은 사물 가운데 보고 본받을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속어(俗語)로 칙례(則例)와 칙양(則樣) 같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마음이 정성스럽지 못하면 몸을 바룰 수가 없으며, 가족이 화목하지 아니하면 그 집안이 다스려질 수가 없다'고 하였다.
其家不可敎, 而能敎人者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衆也.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집안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서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룩하는 것이다. 효도(孝)는 임금을 섬기는 길이요, 공경(弟)은 어른을 섬기는 길이며, 자애(慈)는 여러 사람을 부리는 길이다'고 하였다.
(大學)
○ 朱子曰: 孝弟慈, 所以修身而敎於家者也. 然而國之所以事君事長使衆之道, 不外乎此. 此所以家齊於上, 而敎成於下也.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효도, 공경, 자애는 자기 자신을 먼저 수양하여 집안에서 가족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에서 임금을 섬기고, 웃어른을 섬기며, 여러 사람을 부리는 길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위로는 집안이 다스려지고 아래로는 가르침이 이루어진다는 이유이다'고 하였다.
○ 易曰: 父父子子, 兄兄弟弟, 夫夫婦婦, 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부모가 부모의 할 일을 하고, 자식이 자식의 할 일을 하며, 형이 형의 할 일을 하고, 아우가 아우의 할 일을 하며, 남편이 남편의 할 일을 하고, 아내가 아내의 할 일을 하면, 집안의 규범이 바로 서게 되고, 집안이 바르게 되면 천하가 안정된다'고 하였다. (周易/家人卦 彖辭)
○ 程子曰: 父子兄弟夫婦, 各得其道, 則家道正矣. 推一家之道, 可以及天下. 自古聖王, 未有不以恭己正家爲本. 故有家之道旣至, 則不憂勞, 而天下治矣.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부자, 형제, 부부가 각기 그 도를 지킬 수가 있다면, 곧 그 집안의 가도(家道)가 바로 서게 된다. 한 집안의 가도를 넓히면 천하의 모든 일에 미칠 수가 있다. 예로부터 성왕(聖王)은 자기를 공손하게 하고, 집안을 바르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지 않은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 집안의 가도가 지극해지면, 근심하거나 수고하지 아니하여도 천하가 다스려진다'고 하였다.
○ 程子曰: 正倫理, 篤恩義, 家人之道也.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윤리(倫理)를 바르게 하고, 은혜와 의리를 두텁게 하는 것이 집안사람이 해야 할 도이다'고 하였다.
(程子/易傳)
○ 葉氏曰: 正倫理, 則尊卑之分明, 篤恩義, 則上下之情合. 二者竝行, 而後處家之道篤矣. 然必以正倫理爲先, 未有倫理不正, 而恩義可篤者也.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윤리를 바르게 하면 신분의 높고 낮음이 분명해지고, 은혜와 의리를 두텁게 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이 두 일이 아울러 행해져야만 집안에 처하는 도가 돈독해진다. 그러나 반드시 윤리를 바르게 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하니, 윤리가 바로 서지 않고 은혜와 의리가 두터워진 적은 아직 없다'고 하였다.
○ 朱子曰: 人主之家齊, 則天下無不治; 人主之家不齊, 則未有能治其天下者也.
주자가 말하기를, '임금의 집안이 화평하면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고, 임금의 집안이 화평하지 못하면서 천하를 잘 다스린 사람은 없다.
是以, 聖賢之君, 能修其政者, 莫不本於齊家.
그러므로 성현(聖賢)이라 불린 임금으로서 그 정사(政事)를 잘한 이로 집안을 화평하게 하는 일을 근본으로 삼지 않은 이가 없다.
蓋男正位乎外, 女正位乎內, 而夫婦之別嚴者, 家之齊也.
대개 남자는 밖에서 그 위치를 바르게 하고, 여자는 안으로 그 위치를 바르게 함으로써 부부간의 분별을 엄격하게 하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요,
妻齊體於上, 妾接承於下, 而嫡庶之分定者, 家之齊也.
처(妻)는 윗자리에서 체통을 바로 세우고, 첩(妾)은 아래에서 이어받아서 적(嫡)과 서(庶)의 분별이 정해지는 것이 집안이 다스려지는 것이며,
采有德, 戒聲色; 近嚴敬, 遠技能者, 家之齊也.
덕이 있는 이를 본받고 성색(聲色)을 경계하며, 엄격하고 공경할 만한 사람을 가까이하며, 재주와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요,
內言不出, 外言不入; 苞苴不達, 請謁不行者.
집안의 말이 밖으로 새어 나지 않고 바깥 말이 집안에 들어오지 않으며, 뇌물 꾸러미가 통하지 않고 청탁하는 일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다.
家之齊也, 然閨門之內, 恩常掩義. 是以, 雖以英雄之才, 尙有困於酒色, 溺於情愛, 而不能自克者.
그러나 안방 안에서는 사랑이 의리를 가리곤 한다. 이 때문에 뛰어난 영웅의 재간을 가지고서도 오히려 술과 여자에게 곤욕을 당하고, 애정(愛情)에 빠져서 능히 스스로를 이겨 내지 못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苟非正心修身, 動由禮義, 使之有以服吾之德, 而畏吾之威, 則亦何以正其宮壺, 杜其請託, 檢其姻戚, 而防禍亂之萌哉.
참으로 자기의 마음을 바로잡고, 자신의 덕을 닦아서 예의로써 행동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덕에 심복하게 하고 나의 위엄으로 두려워하게 하지 않는다면, 또한 무슨 수로 후궁을 바르게 하고, 청탁을 막아 내며, 그 친척들을 단속하여 화란(禍亂)이 싹트는 것을 막을 수가 있겠는가'라 하였다.
臣按, 正家之道, 不出於正倫理篤恩義二者. 下文推此而爲說.
신이 생각건대,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도(道)는 바른 윤리(倫理)와 돈독한 은의(恩義)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음의 글에서는 이것을 미루어 말씀드리겠습니다.
第2章 효경(孝敬) 1
○ 臣按, 孝爲百行之首, 故正家之道, 以孝敬爲先.
신이 생각건대, 효도는 모든 행동의 으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도(道)에서 효도와 공경을 그 첫째로 삼았습니다.
사친(事親)의 도에 대한 총론
○ 子曰: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신체(身體)와 모발(髮)과 피부 등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며, 입신(立身)하여 도를 실천하고 후세에 이름을 떨쳐서 그것으로써 부모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효도의 마지막이다.
夫孝, 始於事親. 中於事君, 終於立身.
대체로 효도의 시작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고, 효의 중간은 임금을 섬기는 것이며, 효의 마무리는 입신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孝經, 下同.
'효경' 아래도 이와 같다.
○ 吳氏曰: 人子之身, 父母之所遺, 自愛而不敢虧, 所以爲孝之始也.
오씨(吳氏)가 말하기를, '사람의 신체는 부모가 물려준 것이니, 스스로 아껴서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能立身行道, 則己之名揚於後世, 而父母之名, 亦顯矣, 所以爲孝之終也.
입신하여 도(道)를 실천할 수 있다면 자기의 이름이 후세에 떨쳐지고, 부모의 이름까지도 세상에 드러날 것이니, 이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다'고 하였다.
愛親者, 不敢惡於人.
敬親者, 不敢慢於人.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다른 사람에게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다른 사람에게 거만하게 굴지 않는다.
愛敬盡於事親, 而德敎加於百姓, 刑于四海, 此天子之孝也.
사랑하고 공경하여 부모를 극진히 섬긴다면 덕과 교화가 백성에게 더해지고, 온 누리에 모범이 되는데, 이것이 천자의 효도이다.
○ 眞氏曰: 孝者, 不出乎愛敬而已, 推愛親之心以愛人, 而無所疾惡.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효도라는 것은 사랑하고 공경하는 데서 벗어나지 않을 뿐이니,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질투하고 미워하는 일이 없어지며,
推敬親之心以敬人, 而無所慢易,
부모를 공경하는 심정을 미루어서 다른 사람을 공경하면, 남을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기는 바가 없을 것이니,
則躬行於上, 而德敎自刑於下, 天下之人, 無不皆愛敬其親矣.
위에서 몸소 실천한다면 도덕과 교화가 자연 아랫사람의 본보기가 되어서,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在上不驕, 高而不危; 制節謹度, 滿而不溢; 然後能保其社稷, 而和其民人, 此諸侯之孝也.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높은 지위에 있어도 위태롭지 않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알고(制節) 법도를 존중하면 가득 차 있어도 넘치지 않으니, 그런 뒤에야 사직(社稷)을 잘 보존하고 백성을 화목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제후(諸侯)의 효도이다.
○ 陳氏曰:
制節, 自制禮節也.
謹度, 謹守法度也.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제절(制節)은 예절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요, 근도(謹度)는 법규와 제도를 삼가서 지키는 것이다'고 하였다.
非先王之法服, 不敢服.
非先王之法言, 不敢道.
非先王之德行, 不敢行.
然後能保其宗廟. 此卿大夫之孝也。
선왕(先王)이 법으로 마련한 의복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않고, 선왕의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道] 않으며, 선왕의 덕 있는 행동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으니, 그렇게 한 다음에야 종묘(宗廟)를 잘 보존할 수가 있다. 이것은 경(卿)과 대부(大夫)의 효도이다.
○ 陳氏曰: 法, 法度也. 道, 言也.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법(法)은 법도(法度)이며, 도(道)는 말한다(言)는 뜻이다.
宗, 言人宗於此而祭祀也.
卿大夫有廟, 故言保宗廟.
종(宗)이라고 함은 사람들이 여기에 근본 하여(宗)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경과 대부는 모두 사당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때문에 종묘를 보존한다고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以孝事君則忠, 以敬事長則順.
효도로 임금을 섬기면 충(忠)이요, 공경으로 웃어른을 섬기면 순(順)이 된다.
忠順不失, 以事其上, 然後能守其祭祀, 此士之孝也.
충과 순을 잃지 않고 그것으로 위를 섬긴 연후에야, 능히 그 제사 지내는 일을 잘 지켜 나갈 수가 있으니, 이것이 선비의 효도이다.
○ 陳氏曰:
移事親之孝以事君, 則忠矣.
移事親之敬以事長, 則順矣.
上, 卽君長也. 士有田祿, 以奉祭祀, 故言守祭祀.
진씨가 말하기를, '부모를 섬기는 효도를 옮겨서 임금을 섬기면 충성이 되며, 부모를 섬기는 공경을 옮겨서 웃어른을 섬기면 곧 순함(順)이 된다. 위(上)는 임금과 웃어른을 가리킨다. 선비는 전답과 녹(祿)으로 제사를 받들기 때문에, '제사를 지켜 나간다' 한 것이다'고 하였다.
用天之道, 因地之利, 謹身節用, 以養父母, 此庶人之孝也.
하늘의 도(道)를 따르고 땅의 이(利)를 이용하여, 몸가짐을 조심하고 씀씀이를 절약(節用)하여서 그것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일반 백성의 효도이다.
○ 吳氏曰: 用天之道, 謂順天之生長收藏, 而耕耘斂穫, 各依其時也.
오씨(吳氏)가 말하기를, '하늘의 도를 따른다는 것은 하늘이 낳아서 자라게 하고 거두어 간직하는 도리에 따라 밭 갈고 김매고 거둬들이는 일을 각각 그때에 맞게 하는 것을 말한다.
因地之利, 謂因地之沃衍臯隰, 而稻梁黍稷, 各隨其宜也.
땅의 이(利)를 따른다는 것은 토지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벼와 수수[稻粱], 기장(黍稷) 등을 각각 알맞게 심는 것을 말한다.
謹身, 謂守身而不妄爲.
節用, 謂儉用而不妄費.
몸가짐을 조심(謹身)한다는 것은 자신의 분수를 지켜서 망녕된 일을 하지 않는 것이요, 씀씀이를 절약한다는 것은 쓰는 일을 검소하게 하여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人能如此, 則身安力足, 有以奉養其父母矣.
사람이 능히 이와 같이 할 수만 있다면, 몸이 안정되고 힘이 넉넉하여 그것을 가지고 부모를 봉양할 수 있다'고 하였다.
故自天子至於庶人, 孝無終始, 而患不及者, 未之有也.
그러므로 위로는 천자(天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효도의 처음과 끝이 없이 환란이 미치지 않는 자는 없다.
○ 陳氏曰: 事親而不能有終有始, 災及其身, 必矣.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부모를 섬기는 데 처음과 끝이 없으면 재앙이 반드시 그 자신에게 미친다'고 하였다.
孝子之事親, 居則致其敬.
養則致其樂, 病則致其憂.
喪則致其哀, 祭則致其嚴.
五者備矣, 然後能事親.
효자가 부모를 섬기는 일은 그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즐거운 마음을 다하고, 편찮으실 때엔 그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그 슬픔을 다하고, 제사를 받들 때에는 그 엄숙함을 다할 것이니, 이 다섯 가지를 다 갖춘 연후에야 능히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다.
○ 陳氏曰: 致, 極也. 樂, 謂愉色婉容, 人子事親之心.
진씨가 말하기를, '다한다는 것은 지극한 것이다. 즐겁다는 것은 유쾌한 얼굴 표정과 상냥한 모습을 지니는 것을 말한다.
自始至終, 無一毫之不盡, 可謂孝矣.
자식으로서 부모를 섬기는 마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털끝 만큼이라도 미진한 것이 없어야 효도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맹의자(孟懿子)가 효도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기지 말라'고 하였다.
○ 論語, 下同.
'논어(論語)' 아래도 이와 같다.
○ 朱子曰: 無違, 謂不背於理.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어기지 말라고 한 것은 도리에 어긋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번지(樊遲)가 모시고(御) 가는데, 공자께서 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맹손(孟孫)이 나에게 효도에 대해 묻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어기지 말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 朱子曰: 夫子以懿子未達而不能問, 恐其失指, 而以從親之令爲孝, 故語樊遲以發之.
주자가 말하기를, '공자는 맹의자가 뜻을 깨닫지 못하여 묻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가리킨 뜻을 알지 못하고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라고 여길까 염려하여, 번지에게 말하여서 그 뜻을 일깨워 준 것이다'고 하였다.
○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번지가 말하기를,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 계실 적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로써 장사 지내고 제사 지내는 것이다'고 하였다.
○ 朱子曰: 生事葬祭, 事親之始終, 具矣.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살아 계실 때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 예로써 장사 지내고 제사 지낸다는 것은 부모 섬기는 일의 처음과 끝을 모두 갖춘 것이다.
禮卽理之節文也, 人之事親, 自始至終, 一於禮而不苟, 其尊親也至矣.
예는 이치를 알맞게 갖춘 것이니, 사람이 부모를 섬기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예로 일관하여 구차한 것이 없어야 그 부모를 지극히 존경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 胡氏曰: 人之欲孝其親, 心雖無窮, 而分則有限.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하는 마음은 끝이 없다고 하지만 분수에는 한도가 있다.
得爲而不爲 謂苟簡儉陋者. 與不得爲而爲之, 謂奢僭者. 均於不孝.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나, 구차하고 간략하며, 아끼고 누추한 것을 말한다. 할 수 없으면서도 하는 것이 사치하고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 같이 불효에 속한다.
所謂以禮者, 爲其所得爲者而已矣.
이른바 예로써 한다는 것은 그 할 수 있는 바를 하는 것일 뿐이다'고 하였다.
○ 右摠論事親之道.
이상은 부모를 섬기는 도에 대한 총론(總論)입니다.
第2章 효경(孝敬) 2
살아 계실 때 섬기는 도에 대하여
○ 凡爲人子之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 出必告, 反必面.
자식으로서 해야 할 예(禮)로는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 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 드리는 일, 저녁에 잠자리를 펴 드리고 새벽에 문안을 드리는 일, 밖에 나갈 때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뵙는 일이 있다.
所游必有常, 所習必有業, 恒言不稱老.
노는 곳에는 반드시 일정함이 있어야 하고, 배운 것은 반드시 이루어야 하며 평소 늙었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
禮記, 下同.
'예기(禮記)' 아래도 이와 같다.
○ 陳氏曰: 溫以禦其寒, 凊以致其涼, 定其衽席, 省其安否, 出則告違, 反則告歸.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따뜻하게 해서 추위를 막아 드리며, 서늘하게 해서 시원하게 해 드리며, 주무실 자리를 펴 드리고 그 안부를 살피며, 외출할 때는 나간다고 여쭙고, 귀가하면 돌아왔다고 아뢰어야 된다.
游有常, 身不他往也.
習有業, 心不他用也.
'노는 데에 일정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몸이 다른 곳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요, '익히면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마음을 다른 데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 曾子曰: 孝子之養老也, 樂其心, 不違其志; 樂其耳目, 安其寢處; 以其飮食忠養之.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효자가 노부모를 봉양할 때에는, 그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리고 그 뜻을 어기지 아니하며, 그 보고 듣는 것(耳目)을 즐겁게 해 드리고 그 잠자리를 편하게 해 드리며, 음식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한다'고 하였다.
○ 方氏曰: 養之以物, 止足以養其口體, 養之以忠, 則足以養其志矣.
방씨(方氏)가 말하기를, '부모를 봉양하는데 물질로 봉양하면 그 입과 몸을 봉양할 뿐이지만, 정성으로써 봉양하면 족히 그 뜻을 기를 수 있다'고 하였다.
是故, 父母之所愛, 亦愛之, 所敬亦敬之. 至於犬馬, 盡然, 而況於人乎.
그러므로 부모가 사랑하는 것을 자기도 사랑해야 되고, 부모가 존경하는 것을 자기도 존경해야 된다. 개나 말도 다 그렇게 하는데,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會子語止此.
여기까지가 증자(曾子)의 말입니다.
○ 吳氏曰: 孝子愛敬之心, 無所不至. 故父母之所愛敬, 亦愛敬之也.
오씨(吳氏)가 말하기를, '효자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씨는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바를 자기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孝子之有深愛者, 必有和氣; 有和氣者, 必有愉色; 有愉色者, 必有婉容.
효자로서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기운이 있고, 온화한 기운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는 안색이 있으며, 기뻐하는 안색이 있는 자는 반드시 상냥한 모습이 있다.
孝子如執玉, 如奉盈, 洞洞屬屬然, 如弗勝, 如將失之.
효자는 부모 섬기기를 옥(玉)을 잡는 것같이 하고, 가득 찬 것을 받드는 것같이 하며, 진심으로 공경하고 거짓없이 성실하면서도(洞洞屬屬)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이 하고, 장차 무슨 잘못이라도 생기지나 않을까 염려하듯이 한다.
嚴威儼恪, 非所以事親也.
엄숙하고 위엄 있게 행동하며 근엄한 모습으로 삼가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도리가 아니다.
○ 陳氏曰: 洞洞, 敬之表裏無閒也. 屬屬, 誠實無僞也. 勝, 當也.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동동(洞洞)이라 함은 공경함에 겉과 속의 차이가 없음이요, 촉촉(屬屬)이라 함은 성실하여 거짓이 없음이다. 승(勝)은 감당해 낸다는 뜻이다'고 하였다.
○ 陳氏曰: 和氣愉色婉容, 皆愛心之所發. 如執玉, 如奉盈, 如弗勝, 如將失之, 皆敬心之所存, 愛敬兼至, 乃孝子之道.
진씨가 말하기를, '온화한 기운, 기뻐하는 안색, 상냥한 모습 등은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요, 옥(玉)을 잡는 것 같고, 가득 찬 것을 받드는 것 같으며, 이기지 못하는 것 같고, 장차 무슨 잘못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모두 공경하는 마음에서 있는 것이니, 사랑과 공경이 함께 지극하면 그것이 바로 효자의 도(道)이다'고 하였다.
聽於無聲, 視於無形.
소리 없는 데에서 듣고 형상이 없는 데에서 본다.
○ 陳氏曰: 先意承志也.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부모의 뜻을 먼저 알고, 그 뜻을 이어받는 것이다'고 하였다.
○ 孔氏曰: 常於心想像, 似見形聞聲, 謂父母將有敎使己然.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늘 마음으로 생각하여 마치 형상을 보고 음성을 듣는 것과 같은 것은 부모가 자기에게 시킬 일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고 하였다.
父母有疾, 冠者不櫛, 行不翔, 言不惰, 琴瑟不御, 食肉不至變味, 飮酒不至變貌, 笑不至矧, 怒不至詈, 疾止, 復故.
부모가 편찮으시면 성인(冠子)은 빗질을 하지 않고 길 가는 데 팔을 내젓고 다니지 않으며, 말을 삼가고, 거문고와 비파를 타지 않으며, 고기를 먹어도 입맛이 변할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고, 술을 마셔도 용모가 흐트러질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으며, 웃더라도 잇몸(齒本)을 드러내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 노하더라도 욕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다가 병환이 나으면 다시 그전대로 돌아간다.
○ 陳氏曰: 此言養父母疾之禮.
진씨가 말하기를, '이 말은 부모의 병환을 봉양하는 예에 대해 말한 것이다.
不櫛, 不爲飾也.
不翔, 不爲容也.
不惰, 不及他事也.
빗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치장을 안 하는 것이요, 팔을 내젓지 않는다는 것은 모습을 꾸미지 않는 것이며, 말을 삼간다는 것은 다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食肉, 不至厭飫而口味變.
飮酒, 不至醺酣而顏色變耳.
고기를 먹더라도 실컷 먹어서 입맛이 변할 정도에 이르지 않게 하고, 술을 마셔도 얼큰하게 취하여 안색이 변할 정도에 이르지 않게 할 뿐이다.
齒本曰矧. 笑而見矧, 是大笑也.
치본(齒本)은 잇몸을 말한다. 웃을 때 잇몸이 드러나면, 이것은 크게 웃는 것이다.
怒罵曰詈, 怒而至詈, 是甚怒也. 皆爲忘憂故戒之.
성내어 꾸짖는 것을 욕설이라고 한다. 성이 나서 욕을 하는 데에 이르면 이는 대단히 노한 것이다. 이 모두가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한 것이다'고 하였다.
○ 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섬기는 데 은밀(幾)하게 간(諫)하고, 그 뜻을 살펴보아 따르지 아니하더라도 또 애써서 공경하고 어기지 아니하며 원망하지도 아니한다'고 하였다.
(論語)
○ 朱子曰: 此章, 與內則之言相表裏. 幾, 微也.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이 장(章)과 예기(禮記) 내칙(內則)의 말이 서로 표리가 된다. 기(幾)는 미(微)이다.
所謂父母有過, 下氣怡色, 柔聲以諫也.
'은밀하게 간한다'는 말은, 이른바 부모에게 잘못이 있으면 흥분을 가라 앉히고 안색을 부드럽게 하여 유순한 음성으로 간하는 것이다.
所謂以下, 皆內則文. 下倣此.
見志不從, 志, 謂父母之志.
이른바 이하는 모두 내칙(內則)의 글이다. 아래도 이와 같다. 그 뜻이 따르지 않는 것을 보면, 뜻은 부모의 뜻을 말한다.
又敬不違. 所謂諫若不入, 起敬起孝, 悅則復諫也.
또 '공경하고 어기지 아니한다'는 말은 이른바 간하여도 부모가 만약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공경하고 효도하여, 즐거워하게 되면 다시 간하는 것을 말한다.
勞而不怨. 所謂與其得罪於鄕黨州間, 寧孰與熟同, 諫, 父母怒不悅, 而撻之流血, 不敢疾怨, 起敬起孝也.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른바 부모가 그 고향 마을에서 죄를 얻느니 보다는, 차라리 간하고 또 간하여 부모가 노하여 기뻐하지 않거나, 종아리를 쳐서 피가 흐르게 하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다시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 公明儀問於曾子曰: 夫子可以爲孝乎.
공명의(公明儀)가 증자(曾子)에게 묻기를, '선생님(夫子)은 효성스럽습니다'고 하니,
曾子曰: 是何言與, 是何言與, 君子之所謂孝者, 先意承志, 諭父母於道, 參. 直養者也, 安能爲孝乎.
증자가 말하기를, '그것이 무슨 말인가. 그것이 무슨 말인가. 군자가 말하는 효도라는 것은 미리 부모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받들어, 부모를 도(道)로써 깨우쳐 드리는 것이다. 나는 다만 봉양만 하는 자이니, 어찌 효도를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禮記, 下同.
'예기' 아래도 이와 같다.
○ 眞氏曰: 諭者, 開說曉譬之謂, 爲人子者.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깨우쳐 드린다는 것은 말을 하여 일깨워 주는 것을 말한다.
平時能以理開曉其親, 置之無過之地, 猶臣之事君, 格其非心, 而引之當道也.
자식된 자는 평소에 사리로써 그 부모를 잘 깨우쳐 허물이 없게끔 모셔 두니, 이는 마치 신하가 임금을 섬길 적에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아 도(道)에 맞도록 인도하는 것과 같다.
其視有過而後諫者, 功相百矣, 故君子猶難之.
이는 그 허물을 보고 난 다음에 간하는 것에 비해 공(功)이 백배나 되는 것이기 때문에, 군자가 오히려 그렇게 하기를 어렵게 여긴다'고 하였다.
○ 臣按, 人子之孝, 有精有粗.
신이 생각건대, 사람의 자식으로서 효도에는 정밀한 것도 있고 간략한 것도 있습니다.
溫凊定省, 孝之粗也.
忠養愛敬, 孝之精也.
따뜻하게 해 드리거나 시원하게 해 드리거나, 잠자리를 보아 드리거나 문안을 드리는 일은 효도 중에서도 조촐한 것이고, 정성으로 봉양하고 사랑으로 공경하는 일은 효도 중에서도 정밀한 것입니다.
至於愉色婉容, 聽於無聲, 視於無形, 則精而又精矣.
안색을 즐겁게 하고 용모를 부드럽게 하며 소리가 없어도 듣고 형체가 없어도 보는 것은, 정밀하고도 정밀한 것입니다.
然此則道其平時奉養而已.
그러나 이것은 평소에 봉양하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若遇疾病, 則當致其憂.
若遇過惡, 則當熟其諫.
至於先意承志, 諭父母於道, 然後乃爲孝之至也.
만일 부모가 질병이나 우환을 당하면, 마땅히 그 근심을 다하여야 하고, 만일 부모가 잘못(過惡)을 저지르는 일을 당하면, 마땅히 충분히 간하여, 미리 부모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받들어 부모에게 도(道)를 깨우쳐 드려야만, 지극한 효도가 되는 것입니다.
由粗入精, 其序如此.
조촐한 것으로부터 정밀한 것에 들어가는 그 순서는 이와 같습니다.
精粗固有難易, 但能極其粗, 然後能致其精, 不可以其易而忽之, 亦不可以其難而自沮.
정밀한 것과 조촐한 것에도 본래 어렵고 쉬운 것이 있지만, 다만 그 조촐한 것을 극진히 다한 뒤에 그 정밀한 것을 다할 수가 있는 것이니, 그것은 쉽다고 해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어렵다고 해서 스스로 그만두어서도 안 됩니다.
下引文武虞舜之事, 以著實迹, 願留孝思焉.
다음에 문왕(文王)과 무왕(武王)과 우순(虞舜)이 한 일을 인용하여 그 실적을 드러내겠사오니, 바라옵건대 효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文王之爲世子, 朝於王季, 日三.
문왕(文王)이 세자로 있을 때, 왕계(王季)에게 문안하는 일을 하루에 세 번 하였다.
雞初鳴而衣服, 至於寢門外, 問內豎之御者曰: 今日安否何如. 內豎曰: 安. 文王乃喜.
첫닭이 울면 옷을 입고 침전(寢殿) 문밖에 이르러 번(番) 들고 있는(御) 내수(內豎)에게, '오늘 안부가 어떠하신가?'고 물어 내수가, '편안 하십니다'고 대답하면, 문왕이 곧 기뻐하였다.
及日中又至, 亦如之.
及莫暮又至, 亦如之.
대낮에 가서도 역시 그렇게 하고, 저녁에 가서도 그렇게 하였다.
○ 陳氏曰: 內豎, 內庭之小臣. 御, 是直日者.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내수는 궁 안 뜰에서 잔일을 보는 신하이다. 어(御)라 하는 것은 그날의 당직이다.
世子朝父母, 惟朝夕二禮.
今文王日三, 過人之行也.
세자가 그 부모에게 문안드리는 일은 아침저녁으로 두 번 하는 것이 예이지만, 문왕은 하루에 세 번씩 하였으니,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행실이었다'고 하였다.
其有不安節, 則內豎以告文王.
文王色憂, 行不能正履.
편하지 않은 일이 있으면 내수가 그것을 문왕에게 고한다. 그러면 문왕은 근심스러운 안색으로 신도 제대로 신지 않고 갔다.
王季復膳, 然後亦復初.
食上, 必在視寒煖之節.
食下, 問所膳.
命膳宰曰, 末有原, 應曰諾, 然後退.
그러고는 왕계가 보통 때와 같이 식사를 하게 된 연후에 자신도 평상시대로 행하였다. 식사를 올리면 반드시 온도가 알맞은 지를 살피고(在視), 식사를 물리면 반드시 얼마나 드셨는지를 물어 보고는, 음식 일을 맡아보는 이에게 명하기를, '그 음식을 다시(原) 올리지 말아라(末)'고 하고서 알겠다는 응답을 들은 뒤에야 물러났다.
○ 陳氏曰: 在, 察也. 問所膳, 問所食之多寡也.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재(在) 자는 살핀다는 뜻이요, 얼마나 드셨는지를 물어본다는 것은 그 식사 드신 양이 많은지 적은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末, 猶勿也. 原, 再也.
謂所食之餘, 不可再進也.
말(末)은 하지 말라는 뜻과 같고, 원(原)은 다시란 뜻으로, 드시고 남은 음식을 두 번 다시 올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武王帥而行之, 不敢有加焉.
文王有疾, 武王不說 脫 冠帶而養,
文王一飯, 亦一飯, 文王再飯, 亦再飯.
무왕(武王)도 그대로 따라서 행하고 감히 더할 수가 없었다. 문왕(文王)이 병환이 있으면 무왕이 그 갓과 띠를 풀지 아니하고 곧 병간호를 하였는데, 문왕이 밥 한 술을 들면 역시 밥 한 술을 들고, 밥 두 술을 들면 역시 밥 두 술을 들었다.
○ 莊氏曰: 天下之理極其至。則不可以復加.
장씨(莊氏)가 말하기를, '천하의 이치란 그 지극함을 다하면 다시 더할 것이 없는 것이다.
文王之事親, 豈一毫之不至哉.
문왕(文王)이 부모를 섬기는 데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지극하지 않은 것이 있었겠는가.
人之飮食, 或疏或數, 時其飢飽.
今以親疾, 志不在於飮食.
사람이 먹고 마시는 일은 혹 거를 수도 있고, 혹 자주 먹을 수도 있으니 배고프거나 배부른 정도에 따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의 병환 때문에 음식에는 전혀 뜻이 없다.
一飯再飯, 惟親之視, 不敢如平時私適其欲.
밥 한 술, 두 술이라 한 것은 부모가 하는 대로 할 뿐이요, 감히 평소와 같이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 書經曰: 虞舜, 父頑母嚚; 象傲, 克諧以孝, 烝烝乂, 不格姦.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우순(虞舜)의 아버지는 완악(頑惡)하였고 어머니는 간특(嚚)하였으며, 이복동생 상(象)은 오만하였는데, 그것을 효도로써 능히 잘 화합(諧)시키고, 점점 나아가(烝) 나쁜 데 이르지 않게 하였다.'
(書經/虞書 堯典)
○ 蔡氏曰: 舜父號瞽叟, 心不則德義之經爲頑.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순(舜)의 아버지를 고수(瞽叟)라고 부른다. 마음으로 덕과 의(義)를 헤아리지 않는 것을 완악하다고 한다.
母, 舜後母也. 口不道忠信之言爲嚚.
어머니는 순(舜)의 계모이다. 입으로 충실하고 미더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간특하다고 한다.
象, 舜異母弟名. 傲, 驕慢也.
諧, 和. 烝, 進也.
상(象)은 배다른 동생의 이름이다. 방자하다는 것은 교만하다는 말이다. 해(諧)는 화목한 것이요, 증(烝)은 나아간다는 것이다.
言舜不幸遭此, 而能和以孝, 使之進進以善自治, 而不至於大爲姦惡也.
순(舜)이 불행히도 이들을 만났지만 효도로써 화목하게 할 수 있었고, 그들을 점점 선으로 나아가 스스로 다스리게 하여, 크게 간특하거나 포악한 데에까지 이르게 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 孟子曰: 舜盡事親之道, 而瞽瞍底豫, 而天下化. 瞽瞍底豫, 而天下之爲父子者定. 此之謂大孝.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순(舜)이 부모 섬기는 도(道)를 다하자(底) 고수(瞽叟)가 기뻐하게(豫) 되었고, 고수가 기뻐하게 되자 천하의 부자(父子)의 도가 안정되었으니, 이것을 일러 대효(大孝)라고 한다'고 하였다.
(孟子)
○ 朱子曰: 底, 致也. 豫, 悅樂也.
주자가 말하기를, '저(底)는 다한다는 것이요, 예(豫)는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瞽瞍至頑, 嘗欲殺舜, 至是而底豫焉, 書所謂不格姦, 亦允若, 是也. 允若, 信而順之也.
고수는 지극히 완악하여 순을 죽이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이에 이르러 기뻐하게 되었으니, 서경(書經)에 이른바, '간악한 데 이르지 않게 하였다(不格姦)'는 것과 '또한 순순히 믿고 따랐다(亦允若)'는 것이 이것이다. 윤약(允若)은 믿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蓋舜至此而有以順乎親矣. 是以, 天下之爲子者, 知天下無不可事之親, 顧吾所以事之者未若舜耳.
순은 이러한 경우에 놓여서도 어버이를 거스르지 않음이 있었다. 그리하여 천하의 자식 된 자가 천하에 섬기지 못할 부모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부모를 섬기는 것을 돌아볼 때 순이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於是, 莫不勉而爲孝, 至於其親亦底豫焉, 則天下之爲父者, 亦莫不慈, 所謂化也.
이 때문에 힘써서 효도하지 않음이 없어 그 부모된 이도 기뻐하게 되어, 천하의 부모된 자가 자애롭지 아니한 자가 없게 되었으니, 이른바 감화(感化)라고 하는 것이다.
子孝父慈, 各止其所, 而無不安其位之意, 所謂定也.
자식은 효도하고 부모는 자애롭다는 것은 각각 그 처할 곳에 처하여 그 처한 곳을 편안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다는 의미이니, 이른바 안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非止一身一家之孝而已, 此所以爲大孝也.
이는 천하의 본보기가 되어 후세에까지 전할 수 있고, 내 한 몸 한 집안에만 그치는 효도가 아니니, 이것이 이른바 대효(大孝)라고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 李氏曰: 舜之所以能使瞽瞍底豫者, 盡事親之道, 共恭爲子職, 不見父母之非而已.
이씨(李氏)가 말하기를, '순(舜)이 고수를 크게 기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다하였고, 자식으로서의 직분을 공손히 다하고 부모의 잘못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昔羅仲素語此云; 只爲天下無不是底父母. 了翁聞而善之曰; 唯如此而後, 天下之爲父子者定. 彼臣弒其君, 子弒其父者, 常始於見其有不是處耳.
옛날에 나중소(羅仲素)가 이에 대해 말하기를,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다'고 하자, 요옹(了翁)이 듣고 그 말이 좋다고 하면서, '오직 이와 같이 해야만 천하의 부자 사이가 안정되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거나 아들이 그 아비를 죽이는 것은 항상 옳지 않은 것이 있음을 보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 臣按, 文武處其常, 虞舜處其變, 處常易, 處變難. 處變而盡其道, 然後尤見其大孝. 故以虞舜之事終之.
신이 생각건대,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은 그 정상적인 상태에서 처신을 하였고, 우순(虞舜)은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처신을 하였는데, 그 정상적인 상태에서 처신하는 일은 쉽지만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처신하는 일은 어려운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상태에 처하여 그 도(道)를 극진히 한 뒤에야 대효(大孝)임을 더욱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순이 한 일을 가지고 끝을 맺었습니다.
○ 右言生事之道.
이상은 살아 계실 때 섬기는 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第2章 효경(孝敬) 3
돌아가셨을 때 장례 지내는 도에 대하여
○ 子曰: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식은 태어난 지 3년이 되어서야 부모의 품(懷)에서 벗어나니, 삼년상을 지내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상례(喪禮)이다'고 하였다.
(論語)
○ 朱子曰: 懷, 抱也.
주자가 말하기를, '회(懷)는 안는(품는) 것이다'고 하였다.
○ 孟子曰: 三年之喪, 齊疏之服, 飦饘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삼년상을 지낼 때에, 아랫단을 혼(齊) 거친 베옷(疏)을 입고 미음이나 죽(飦]을 먹는 것은 천자(天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예이다'고 하였다.
(孟子)
○ 朱子曰: 齊, 衣下縫也. 不緝曰斬衰, 緝之曰齊衰.
주자가 말하기를, '제(齊)는 옷의 아랫단을 호는(縫) 것이다. 도련을 달지 않은 상복을 참최(斬衰)라고 하고, 도련을 단 것을 자최(齊衰)라고 한다.
疏麤也, 麤布也. 飦, 糜也.
喪禮, 三日始食粥; 旣葬, 乃疏食.
소(疏)는 거칠다는 뜻인데, 올이 굵고 바탕이 거친 생베를 말한다. 전(飦)은 죽이다. 상(喪)을 당했을 때, 3일 만에 죽을 먹기 시작하고 장례를 마치고 난 다음부터 소사(疏食)를 먹는다.
此古今貴賤通行之禮也.
이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신분의 귀천을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행해지는 예이다'고 하였다.
○ 禮記曰: 創鉅者, 其日久; 痛甚者, 其愈遲. 三年者, 稱情而立文也.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상처가 크면 오래가고, 아픔이 심하면 더디 낫지만, 3년이라고 한 것은 정리(情理)를 헤아려서 예문(禮文)을 만든 것이다.
哀痛未盡, 思慕未忘, 然而服以是斷之者, 豈不送死有已, 復生有節也哉.
애통한 것이 아직 다 가시지 않고, 사모하는 정이 아직 잊혀지질 아니 하였더라도, 복 입은 일을 그만 끊는 것은, 죽은 이를 보내는 일에 한도가 있고, 산 사람이 다시 살아가는 절도가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凡生天地之閒者, 有血氣之屬, 必有知, 有知之屬, 莫不知愛其類.
무릇 천지간에 사는 것 중에 혈기(血氣)가 있는 것들은 반드시 지각(知覺)이 있고, 지각이 있는 것들은 같은 족속끼리 사랑할 줄 모름이 없다.
今是大鳥獸失喪其羣匹, 越月踰時焉, 則必反巡過其故鄕, 翔回焉, 鳴號焉, 蹢躅焉, 踟躕焉, 然後乃能去之, 小者, 至於燕雀, 猶有啁噍之頃焉, 然後乃能去之.
가령 지금 큰 새나 짐승들의 무리도 짝을 잃게 되면, 달(月)이 지나고 철이 바뀌어도 반드시 돌아와서, 그 고향을 지나가면서 빙빙 돌고, 울부짖으며 제자리에서 망설이고 머뭇거린 뒤에야 그곳을 떠나는데, 작은 것으로는 제비와 참새에 이르기까지도 잠깐이나마 지저귀면서 슬피 울다가 떠난다.
故有血氣之屬者, 莫知於人, 故人於其親也, 至死不窮.
혈기 있는 종족 중에 사람보다 더 잘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사람으로서 그 부모를 대하는 심정은 죽어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邪淫之人, 則彼朝死而夕忘之.
然而從之, 則是曾鳥獸之不若也.
夫焉能相與羣居而不亂乎.
그러나 마음이 못되었거나 음탕한 사람은, 그 부모가 아침에 돌아가시면 저녁에 그것을 잊는다. 그런데도 그것을 따른다고 하면, 오히려 새나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그 어찌 능히 서로 무리를 지어 살면서 문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修飾之君子, 則三年之喪, 二十五月而畢, 若駟之過隙, 然而遂之, 則是無窮也.
몸가짐을 잘 닦는 군자는 삼년상을 지내는 25개월이 마치 빠른 사마(駟馬)가 문틈으로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질 텐데, 그대로 따른다면 이것은 끝도 없을 것이다.
故先王爲之立中制節, 一使足以成文理, 則釋之矣.
그러므로 선왕(先王)께서 그것을 위하여 중도(中道)를 세우고 알맞은 절도를 제정하여 한결같이 형식을 이루면 그 상복을 벗도록 한 것이다'고 하였다.
○ 子思曰: 喪三日而殯, 凡附於身者, 必誠必信, 勿之有悔焉耳矣.
자사(子思)가 말하기를,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염(殮)을 하는데, 대개 시신에 부치는 것들은 반드시 정성스럽게 하고 확실하게 하여,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三月而葬, 凡附於棺者, 必誠必信, 勿之有悔焉耳矣.
석 달 만에 장례를 하는데, 대개 관(棺)에 부치는 것들을 반드시 정성스럽게 하고 반드시 확실하게 하여, 후회를 남기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禮記, 下同.
'예기' 아래도 이와 같다.
子思語止此.
여기까지가 자사의 말이다.
○ 陳氏曰: 附於身者, 襲斂衣衾之具. 附於棺者, 明器用器之屬也.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몸에 부치는 것이란 염습하는 데 갖추어야 할 겉옷과 이불 등을 가리키는 것이요, 관(棺)에 부치는 것이란 같이 묻는 명기(明器)와 소용되는 기구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 金華應子氏曰: 附於棺者, 若卜其宅兆, 丘封壤樹之事. 不獨明器之屬也。
금화 응씨(金華應氏)가 말하기를, '관(棺)에 부치는 것이란 그 무덤의 자리나 봉분(封墳) 등을 가려서 정하는 일과, 흙을 북돋우고 나무를 심는 일 같은 것이요, 다만 명기(明器)로 쓰이는 기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 臣按, 天子, 七日而殯, 七月而葬. 諸侯, 五日而殯, 五月而葬.
신이 살피건대, 천자(天子)는 7일 만에 염습하고, 7개월 만에 장례를 치릅니다. 제후(諸侯)는 5일 만에 염습하고, 5개월 만에 장례를 치릅니다.
此則言大夫之禮, 天子諸侯之禮, 推此可知.
위에 말한 것은 대부(大夫)의 예법인데, 천자와 제후의 예법도 이것을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 程子曰: 卜其宅兆, 卜其地之美惡也, 地美則神靈安, 其子孫盛.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그 묏자리를 정한다 하는 것은 그 묏자리의 지세가 좋은가 나쁜가를 가려서 정한 것인데, 만일 그 지세가 좋으면 신령(神靈)이 편안해서, 그 자손이 번성하게 된다.
然則曷謂地之美者.
土色之光潤, 草木之茂盛.
무엇을 두고 지세가 좋다고 하는가? 흙의 빛깔에 윤택이 나고 초목이 무성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乃其驗也, 而拘忌者惑, 以擇地之方位, 決日之吉凶.
그런데 지세에 구애받는 자는 지세의 방위를 가리거나 날의 길흉을 가지고 결정하기도 한다.
甚者, 不以奉先爲計, 而專以利後爲慮, 尤非孝子安措之用心也.
심한 경우 조선(祖先)을 받들 계획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손에게 이로울까만을 염려하니, 효자로서 편안하게 모시려는 마음과는 너무도 다르다.
惟五患者, 不得不愼, 須使異日不爲道路, 不爲城郭, 不爲溝池, 不爲貴勢所奪, 不爲耕犂所及.
오직 염려되는 것 다섯 가지는 삼가지 않을 수가 없으니, 뒷날 도로나, 성곽(城郭)이나, 도랑 또는 연못이나, 지위 높고 세도 있는 자에게 빼앗길 자리나, 농지가 될 땅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고 하였다.
○ 臣按, 地之爲美, 惟在藏風向陽, 土厚水深而已, 不係於方位水破之說.
신이 생각건대, 지세가 좋다는 것은 오직 바람을 막을 수 있고 양지바른 것, 흙이 두터워서 물이 땅속 깊이 있는 것뿐이며, 방위(方位)나 수파(水破) 등의 풍수설(風水說)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今之卜兆者, 偏信相地之書, 有廣搜未定, 久不葬親者, 惑之甚矣.
지금 묏자리를 가리려는 자는 지세의 길흉을 판단하는 상지서(相地書)를 지나치게 믿고는, 널리 그것을 찾아 다니느라 묏자리를 정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그 부모를 장례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몹시도 미혹한 사람입니다.
至如國家玄宮, 必卜新域, 曆數綿遠, 畿甸將盡爲山林鳥獸之窟, 殊非可繼之道.
국가의 현궁(玄宮; 임금의 재궁梓宮을 묻는 광壙) 같은 경우도 반드시 새로운 곳을 가려서 정한다면, 역대(歷代) 임금의 수(數)가 오래 이어 가면 기전(畿甸)의 땅이 앞으로 모두 산림이 되어 새나 짐승 소굴이 될 것이니, 더욱 계승할 만한 도리가 아닙니다.
中朝列聖衣冠之藏, 卜于一山, 傳之無窮, 此可爲法.
중국에서는 역대 임금의 의관(衣冠)을 묻기 위하여 산 하나를 선정하여 그것을 무궁토록 전승(傳承)하게 하였는데 이는 본받을 만한 일입니다.
始死, 充充如有窮,
旣殯, 瞿瞿如有求而弗得,
旣葬, 皇皇如有望而弗至.
처음 돌아가셨을 땐 근심으로 마음이 꽉 막힌 듯하고, 염습하고 나면 초조하여(瞿瞿) 구(求)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같이 하며, 장사 지내고 나면 허둥지둥하여(皇皇) 마치 바라만 볼 뿐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
練而慨然, 祥而廓然.
연복(練服; 소상을 지나고 나서부터 담제 전에 입는 상복)을 갈아입고 나서는 슬프게 탄식하고, 대상(大祥)을 마치고 나서는 속이 텅 빈 것같이 허전해한다.
○ 疏曰: 事盡理屈爲窮. 親始死, 孝子匍匐而哭之, 心形充屈, 如急行道極, 無所復去. 窮急之容也.
소(疏)에 말하기를, '할 일을 다 했는데 이치가 막히는 것을 궁(窮)이라 한다. 부모가 처음 사망했을 적에 효자는 땅에 엎드려 통곡하니, 마음은 답답하고 몸은 구부러져 마치 급히 가는데 길이 막혀 다시 더 갈 곳이 없는 것과 같다. 궁(窮)은 급한 것을 형용한 것이다.
瞿瞿, 眼目速瞻之貌, 如有所失, 而求覓之不得然也.
구구(瞿瞿)란 눈으로 빨리 움직여 보는 모양으로, 마치 잃어버린 것이 있어서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皇皇, 猶棲棲也, 親歸草土, 孝子心無所依託, 如有望彼來而彼不至也.
황황(皇皇)이란 허둥지둥이란 말과 같은 것인데, 부모가 초토(草土)로 돌아 가셨으므로 효자의 심정이 의탁할 곳이 없어서, 마치 부모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데도 이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至小祥, 但慨嘆日月若馳之速也.
至大祥, 則情意寥廓, 不樂而已.
소상(小祥)에 이르면 다만 세월이 말 달리듯 빨리 가는 것을 슬피 탄식할 뿐이며, 대상(大祥)에 이르면 곧 감정과 생각이 쓸쓸하고 텅 빈 것 같아 즐겁지 아니할 따름이다'고 하였다.
○ 子路曰: 吾聞諸夫子, 喪禮, 與其哀不足而體有餘也,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祭禮, 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
자로(子路)가 말하기를, '내가 선생(夫子)에게 듣기로, '상례(喪禮)는 슬픔이 부족하되 예가 넉넉한 것보다는, 예가 부족하더라도 매우 슬퍼하는 것이 나으며, 제례(祭禮)는 공경이 부족하되 예가 넉넉한 것보다는, 예가 부족하더라도 공경이 여유가 있는 것이 낫다' 하였다'고 하였다.
○ 陳氏曰: 有其禮而無其財, 則禮或有所不足, 哀敬則可自盡也.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예법을 알면서도 재물이 없으면 예에는 부족함이 있겠지만 슬퍼하는 것이나 공경하는 심정은 스스로 다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 右言死葬之道.
이상은 돌아가셨을 때 장사 지내는 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第2章 효경(孝敬) 4
제사(祭祀) 지내는 도에 대하여
○ 祭不欲數, 數則煩, 煩則不敬.
제사는 자주 지내려고 하지 말아야 하니, 자주 지내게 되면 번거로워 지고 번거로워지면 공경하지 않게 된다.
祭不欲疏, 疏則怠, 怠則忘.
또한 제사는 드문드문 지내려고 하지도 말아야 하니, 드문드문 지내게 되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잊어 버리게 된다.
是故, 君子合諸天道, 春禘當作禴.
그러므로 군자는 천도(天道)에 맞추어서 봄에는 체(禘) 약(禴) 자가 되어야 한다.
秋嘗. 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상(嘗) 제사를 지낸다. 가을에 내린 서리와 이슬을 군자가 밟는다면 반드시 구슬픈(悽愴) 심정이 있을 것이니, 이는 추워서가 아닐 것이며,
春, 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
봄에 촉촉이 적시는 비나 이슬을 군자가 밟으면 반드시 두렵고 삼가는 마음이 생길 것이니, 마치 부모를 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禮記, 下同.
'예기' 아래도 이와 같다.
○ 輔氏曰: 君子於親, 終身不忘. 故氣序遷改, 目有所見, 則心有所感焉。
보씨(輔氏)가 말하기를, '군자는 그 부모를 종신토록 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계절이 바뀌는 것이 눈에 들어오면, 마음에 느낌이 이는 것이다'고 하였다.
致齊於內, 散齊於外, 齊之日, 思其居處, 思其笑語, 思其志意, 思其所樂, 思其所嗜, 齊三日, 乃見其所爲齊者.
안으로 치재(致齊)를 하고 밖으로 산재(散齊)를 하되 재계하는 날, 부모가(其) 거처하시던 일을 생각하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뜻하신 것을 생각하고, 그 즐거워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그 즐겨 잡수시던 것을 생각하여, 3일을 재계하면 부모를 보는 것 같아질 것이다.
○ 陳氏曰: 致齊於內, 若心不苟慮之類, 散齊於外, 若不飮酒不茹葷之類.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안으로 치재를 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구차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며, 밖으로 산재를 한다는 것은 술을 마시지 않고 매운 채소를 먹지 않는 유이다'고 하였다.
○ 疏曰: 先思其粗, 漸思其精. 故居處在前, 樂嗜居後.
소(疏)에 말하기를, '먼저 그 간략한 것부터 생각할 수 있어야 점차 그 세밀한 것까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처하시던 일을 먼저 놓고 즐거워하시고 좋아하시던 일을 나중에 놓은 것이다'고 하였다.
○ 陳氏曰: 五其字及下文所爲, 皆指親而言.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다섯 개의 '기(其)' 자와 그 아랫글의 '소위(所爲)'라는 것은 모두 부모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 毗陵慕容氏曰: 心之官曰思, 思有所至, 則無所不達.
비릉모용씨(毗陵慕容氏)가 말하기를, '마음의 직분(職分)은 생각하는 일인데, 생각이 지극하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夫不二其心, 而致一於其所祭, 故無形之中, 視有所見; 無聲之中, 聽有所聞.
그 마음을 둘로 하지 않고 그 제사 지내는 대상에 온 마음을 다하기 때문에, 형체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보면 보이는 바가 있고, 소리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들으면 들리는 바가 있는 것이다.
皆其思之所能達, 親之居處笑語志意樂嗜.
이는 모두 생각이 부모가 거처하시고, 웃으며 말씀하시고, 뜻을 두시고, 즐거워하시고 즐겨 드시는 데 통할 수가 있어서이다.
往而不反, 非有實也, 夫豈形體之所能交哉. 思之所至, 足以通之矣.
한 번 가시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데, 어찌 형체로 서로 만날 수 있겠는가. 지극히 생각하여 통할 수 있는 것이다.
齊三日, 乃其所爲齊者, 言思之至, 則如見其存, 微之顯, 誠之不可揜也如此.
3일 동안 재계하면 부모를 보는 것 같을 것이라는 말은 생각이 지극하면 마치 그가 살아 있는 듯하다는 것이니, 은미한 것이 드러나고 정성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고 하였다.
祭之日, 入室, 僾然必有見乎其位, 周還 旋 出戶, 肅然必有聞乎其容聲, 出戶而聽, 愾然必有聞乎其歎息之聲.
제삿날 방에 들어서면 그 자리에 모신 분의 모습이 어렴풋이(僾然) 보이며, 두루 돌아보고 방문을 나서면 숙연(肅然)히 그 움직이시는 소리가 들리며, 문밖에 나가 들어보면 개연(愾然)히 그 탄식하시는 소리가 들린다.
○ 陳氏曰: 入室, 入廟室也.
僾然, 髣髴之貌.
肅然, 儆惕之貌.
容聲, 擧動容止之聲也.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사당의 재실(廟室)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애연(僾然)하다는 것은 비슷한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요, 숙연(肅然)하다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고 공경하는 모양이다. 움직이는 소리라는 것은 몸가짐을 움직이는 소리이다'고 하였다.
是故, 先王之孝也, 色不忘乎目, 聲不絶乎耳, 心志嗜欲, 不忘乎心.
이 때문에 '선왕(先王)의 효도는 곧 그 부모의 모습이 눈에서 잊혀지지 않고, 그 음성이 귀에서 떠나지 않으며, 마음과 뜻으로 즐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바를 내 마음속에서 잊지 않는다.
致愛則存, 致慤則著.
著存不忘乎心, 夫安得不敬乎.
사랑을 극진히 하면 계시게(存) 되고, 정성을 극진히 하면 나타나신다(著). 나타나시거나 계시게 되는 것은 내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니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고 하였다.
○ 嚴陵方氏曰: 色不忘乎目, 常若承顏之際也. 聲不絶乎耳, 常若聽命之際也。
엄릉 방씨(嚴陵方氏 방각(方慤))가 말하기를, '그 모습을 눈에서 잊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그를 직접 뵙고 있을 때 같다는 것이요, 그 음성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그 분부를 들을 때 같다는 것이다'고 하였다.
○ 陳氏曰: 致慤, 極其誠也.
存, 以上文三者不忘而言.
著, 以上文見乎其位以下三者而言.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그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계신다(存)는 것은 위의 글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 세 가지를 말한 것이요, 나타난다(著)는 것은 위의 글에서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이 보인다고 한 것 이하의 세 가지를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 詩曰: 念玆皇祖, 陟降庭止, 維予小子, 夙夜敬止.
시경에 이르기를, '우리 황조(皇朝)께서 뜰에 오르내리던 모습을 생각하여, 나[小子]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경건하게 지낸다'고 하였다.
(詩經/周頌 閔予小子)
○ 朱子曰: 皇祖, 文王也. 此是成王時詩. 言武王之孝, 思念文王, 常若見其陟降於庭, 猶所謂見堯於牆. 見堯於羹也.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황조는 문왕(文王)이다. 이것은 성왕(成王) 때의 시이다. 이는 무왕(武王)의 효도를 말한 것인데, 문왕을 생각하기를 그가 항상 뜰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뵙는 것같이 하였으니, 이른바 '담장에서도 요(堯)를 보고 국(羮)에서도 요를 본다'는 말과 같다'고 하였다.
○ 又曰: 湯孫奏假, 格綏我思成.
또 말하기를, '탕(湯) 임금의 손자가 연주하여 오시게 하니[格] 우리를 편안하게[綏] 함은 생각한 대로 나타나셔서이다'고 하였다.
(詩經/商頌 那之)
○ 朱子曰: 綏, 安也. 思成.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수(綏)는 편안한 것이다. 생각한 대로 나타난다(思成)'고 하였다.
○ 鄭氏曰: 安我以所思而成之人, 謂神明來格也. 蓋齊而思之, 祭而如有見聞, 則成此人矣.
이에 대해 정씨(鄭氏)가 말하기를, '생각한 대로 나타나시어 우리를 편안케 했다는 것으로 신명(神明)이 나의 마음속에 와서 다다르는 것을 말한다. 대개 재계하며 그를 생각하고 제사 지내며 그를 보고 듣는 것같이 한다면 그분을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 하였다.
○ 右言祭之之道.
이상은 제사 지내는 도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 臣按, 祭先以誠敬爲主, 不以煩數爲禮.
신이 생각건대, 제사는 먼저 정성과 공경을 주로 해야 하며, 번거롭게 여러 번 자주 지내는 것을 예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故周制, 宗廟止於月祭, 一月一祭, 傅說以黷祭弗欽戒高宗.
그러므로 주(周)나라의 제도에 천자(天子)의 종묘에 제사 지내는 일은 월제(月祭; 한 달에 한 번 제사 지내는 것)에 그쳤고, 부열(傅說)은 번거롭게 자주 지내는 것은 제사를 모독하는 것이며, 경건하지 않은 일이라고 고종(高宗)에게 경계하였습니다.
後世設原廟, 已乖禮意, 而享祀之煩, 至於日祭, 有司疲倦, 誠敬俱乏, 可謂禮煩而亂矣.
후세에 원묘(原廟)를 다시 설치한 것도 예(禮)의 뜻에서 벗어난 것인데, 향사(享祀)는 날마다 지낼 정도가 되어, 제사를 맡아보는 유사(有司)가 피로하고 싫증이 나서 정성과 공경이 모두 결여되었으니, 예가 번거롭고 어지럽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必有聖王深達孝道, 力復古禮, 然後祀典可正矣.
그러하오니, 반드시 성왕(聖王)께서는 효도에 대해 깊이 깨달으시어 힘써 고례(古禮)를 회복하셔야만 제사 지내는 법도를 바로잡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第2章 효경(孝敬) 5
효로써 몸을 지키는 데에 대하여
○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병에 걸릴까를 염려한다'고 하였다.
○ 朱子曰: 父母愛子之心, 無所不至, 唯恐其有疾病, 常以爲憂也.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이 지극하지 않은 일이 없겠으나, 특히 자식이 질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여, 항상 그것 때문에 근심한다.
人子體此, 而以父母之心爲心, 則凡所以守其身者, 自不容於不謹矣, 豈不可以爲孝乎.
자식된 자가 이것을 알고 부모의 심정으로써 마음을 쓴다고 할 것 같으면, 그 몸을 지키는 데 스스로 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어찌 효도가 되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事親者; 居上不驕, 爲下不亂, 在醜不爭.
부모를 섬기는 자는 윗자리에 있을 때는 교만하지 아니하고, 아랫자리에 있을 때는 소란(騷亂)을 피우지 아니하며, 같은 무리(醜) 중에 있을 때에는 다투지 않는다.
居上而驕則亡, 爲下而亂則刑, 在醜而爭則兵.
윗자리에 있으면서 교만하면 망하게 되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소란을 피우면 형벌을 받게 되고, 같은 무리 속에서 다툰다면 다치는 일이 생길 것이니,
三者不除, 雖日用三牲之養, 猶爲不孝也.
이 세 가지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비록 삼생(三牲)으로써 봉양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불효가 될 것이다.
(孝經)
○ 陳氏曰: 醜, 同類. 兵, 謂以兵刃相加.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추(醜)는 같은 무리이고, 병(兵)은 칼을 가지고 서로 찌르고 치는 것을 뜻한다.
三牲, 牛羊豕也.
三者不除, 災將及親, 其爲不孝大矣.
口體之奉, 豈足贖哉.
삼생(三牲)이란 소, 양, 돼지이다. 이 세 가지를 제거하지 않으면, 그 재앙이 장차 부모에게 미칠 것이므로 큰 불효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음식을 올려 몸을 봉양하는 것으로써, 어찌 그 큰 죄를 씻을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 曾子曰: 身也者, 父母之遺體也, 行父母之遺體, 敢不敬乎.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신체는 부모가 물려주신 몸(體)이다. 부모가 물려주신 그 몸을 받드는(行) 데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居處之莊, 非孝也.
事君不忠, 非孝也.
涖官不敬, 非孝也.
朋友不信, 非孝也.
戰陳無勇, 非孝也.
거처가 단정하지 않은 것도 효도가 아니고, 임금을 섬기는 데 충성스럽지 못한 것도 효도가 아니며, 벼슬자리에 임하여 공경하지 못한 것도 효도가 아니고, 친구 사이에 신의가 없는 것도 효도가 아니며, 전쟁터에 나아가서 용기가 없는 것도 효도가 아니다.
五者不遂, 災及於親, 敢不敬乎.
이 다섯 가지를 수행하지 않으면, 재앙이 그 부모에게 미치게 되니,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禮記, 下同.
'예기' 아래도 이와 같다.
○ 吳氏曰: 行, 猶奉也.
오씨(吳氏)가 말하기를, '행(行)한다는 것은 받드는 것과 같다.
或疑奉遺體, 而曰戰陳無勇, 何哉, 蓋殺身成仁, 而孝在其中矣.
어떤 이가 부모가 물려주신 몸을 받드는 것인데 전쟁터에서 용기가 없다고 하는 것은 왜인가 하고 의심하기도 하나, 대개 제 몸을 죽여서 인(仁)을 이룩한다면, 효도는 곧 그 속에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樹木以時伐焉, 禽獸以時殺焉.
수목은 그 시기를 가려서 벌목해야 하고, 새나 짐승도 그 시기를 가려서 잡아야 한다.
夫子曰: 斷一樹, 殺一獸, 不以其時, 非孝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무 한 그루 자르고 짐승 한 마리 죽이는 데도, 그 시기를 가리지 않으면 이는 효도가 아니다'고 하였다.
○ 孟子曰: 君子, 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그 부모를 섬김으로써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함으로써 만물(萬物)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증자가 병이 들자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이불을 들쳐서(啓) 내 발을 보고 내 손을 보아라.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시경'에 이르기를, '매우 두려워 하고 조심하라. 마치 깊은 물가에 서 있는 것 같고, 엷은 살얼음을 밟는 것 같다' 하였는데, 이제야 내가 그런 데서 벗어나게 되었구나. 내 제자들아' 하였다.
(論語)
○ 朱子曰: 啓, 開也. 曾子平日, 以爲身體受於父母, 不敢毀傷.
주자가 말하기를, '계(啓)는 '헤친다'는 것이다. 증자는 평소(平素)에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감히 다치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故於此, 使弟子開其衾而視之, 以其所保之全, 示門人.
그러므로 이처럼 제자들로 하여금 이불을 헤쳐서 보게 하고 신체를 완전하게 보존했다는 것을 문하 사람들에게 보인 것이다.
而言其所以保之之難, 至於將死而後, 知其得免於毀傷也.
그리고 그 신체를 보존하는 것이 어려운데, 죽게 된 뒤에야 비로소 그 다치고 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고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 范氏曰: 身體猶不可虧也, 況虧其行, 以辱其親乎.
범씨(范氏)가 말하기를, '신체도 오히려 다치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그 행실이 어긋나서 부모를 욕되게 할 수가 있겠는가'고 하였다.
○ 樂正子春曰: 天之所生, 地之所養, 惟人爲大.
악정자춘(樂正子春)이 말하기를, '하늘이 낳아서 땅이 기르는 것 중에서 사람이 가장 위대하다.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
부모가 온전하게 낳아 주신 대로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간다면 효도라고 할 수 있다.
不虧其體, 不辱其身, 可謂全矣.
그 몸을 다치게 하지 않고 그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면 온전하다고 할 수 있다.
故君子頃 跬 步而弗敢忘孝也, 一擧足而不敢忘父母.
그러므로 군자는 반걸음을 내딛는 동안에도 감히 효도를 잊을 수 없고, 한 발자국을 옮길 적에도 감히 부모를 잊지 못한다.
是故, 道而不徑, 舟而不游, 不敢以先父母之遺體行殆.
이 때문에 큰길로 가고 좁은 지름길로 가지 않고, 배를 타되 헤엄치지 아니하여, 감히 돌아가신 부모가 물려주신 몸으로써 위태로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
一出言而不敢忘父母, 是故, 惡言不出於口, 忿言不反於身.
한 번 말을 하는 동안에도 감히 부모를 잊지 않기 때문에 나쁜 말이 입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고, 분한 말이 내 몸에 돌아오지 않게 한다.
不辱其身, 不羞其親, 可謂孝矣.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고 그 부모를 수치스럽게 하지 않으면, 효도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 右言以孝守身.
이상은 효도로써 자신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第2章 효경(孝敬) 6
효도를 천하에 이루어 가는 것에 대하여
○ 伊尹曰: 立愛惟親, 立敬惟長. 始于家邦, 終于四海.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사랑을 심을 곳(立)은 오직 부모이고, 공경을 심을 곳은 오직 웃어른입니다. 처음에 집안과 나라로부터 시작해서 온 천하에 미치게 하십시오' 하였다.
(書經/商書 伊訓)
○ 伊尹訓太甲之辭.
이윤이 태갑(太甲)을 훈계한 말이다.
○ 蔡氏曰: 立, 植也. 立愛敬於此, 而形愛敬於彼. 親吾親以及人之親, 長吾長以及人之長, 始于家, 達于國, 終而措之天下矣.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입(立) 자는 심는 것이다. 이쪽에서 사랑하고 공경하면 저쪽에서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 드러난다. 나의 부모를 섬겨 남의 부모에게 미치고, 나의 웃어른을 공경하여 남의 웃어른에게도 미치니, 집안에서 시작하여 나라에 도달하고, 끝내는 그것을 온 천하에 베푸는 것이다'고 하였다.
○ 孔子曰: 立愛自親始, 敎民睦也; 立敬自長始, 敎民順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랑하는 것이 부모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백성에게 화목(和睦)함을 가르친다는 것이요, 공경을 심을 곳이 웃어른으로 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백성에게 따르도록 가르친다는 것이다.
敎以慈睦, 而民貴有親; 敎以敬長, 而民貴用命.
자애와 화목으로 가르치면 백성들은 부모를 모시기를 좋아할 것이요, 어른을 공경함으로써 가르치면 백성들은 명령을 받들기를 좋아할 것이다.
孝以事親, 順以聽命, 錯措諸天下, 無所不行.
효도로 부모를 섬기고 순리로 명령을 받든다면, 그것을 천하에 베풀더라도 행해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증자가 말하기를, '돌아가신 이를 신중하게 모시고 먼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해질 것이다'고 하였다.
(論語)
○ 朱子曰: 愼終者, 喪盡其禮; 追遠者, 祭盡其誠.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돌아가신 이를 신중하게 모신다는 것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극진히 지내는 것이요, 먼 조상을 추모한다는 것은 조상의 제사를 정성을 다해 극진히 지내는 것이다.
終者, 人之所易忽也, 而能愼之; 遠者, 人之所易忘也, 而能追之, 厚之道也.
돌아가셨을 때에는 예를 소홀히 하기가 쉬운데도 그것을 신중히 할 수 있고, 먼 조상은 잊기가 쉬운데도 잘 추모하는 것이 후하게 하는 도(道)이다.
故以此自爲, 則己之德厚; 下民化之, 則其德亦歸於厚也.
그러므로 이것을 스스로 행하면 곧 자기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고, 아래로 백성들이 감화되면 그 덕도 후해질 것이다'고 하였다.
○ 子曰: 治國者, 不敢侮於鰥寡, 而況於士民乎. 故得百姓之懽心, 以事其先君,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홀아비나 과부도 감히 업신여기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민(士民)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백성의 환심을 얻음으로써 돌아가신 임금을 섬기는 것이다.
治家者, 不敢失於臣妾, 而況於妻子乎. 故得人之懽心, 以事其親.
집안을 다스리는 자는 그 하인과 첩에게도 감히 실수를 하지 않는데, 하물며 처와 자식에게야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의 환심을 얻어 그 부모를 섬기는 것이다.
夫然故, 生則親安之; 祭則鬼享之, 災害不生, 禍亂不作.
대개 그러하기 때문에 살아 계실 땐 어버이가 편안해 하시고, 제사를 지내면 귀신이 흠향하여 재해가 생기지 않고, 화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孝經, 下同.
효경 아래도 이와 같다.
○ 眞氏曰: 人和則天地之和亦應.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사람이 화목하면 곧 하늘과 땅도 역시 화목해진다.
其始推愛親之心以及人, 其終享愛人之福以及親, 所謂以孝治天下者也.
처음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심정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고, 마지막에는 남을 사랑하여 복을 누려 부모에게 미치게 하니, 이른바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이다.
後世人君, 蓋有暴虐其民, 結怨稔禍, 至於危其親以及宗廟者.
후세의 임금은 그 백성에게 포학하기 때문에, 원수를 맺거나 재화(災禍)를 쌓아서 그 부모를 위태롭게 하고, 다시 종묘에까지 미치게 한다.
然後知聖人之言, 眞百世之蓍龜也.
그런 뒤에야 성인의 말씀이 진실로 백세(百世)의 밝은 귀감(龜鑑)인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昔者, 明王事父孝, 故事天明. 事母孝, 故事地察. 長幼順, 故上下治.
옛날 밝은 임금은 아버지 섬기기를 효도로써 하였기 때문에, 하늘을 섬기는 데 밝았고, 어머니를 섬기기를 효도로써 하였기 때문에 땅을 섬기는 데 분명하였으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차례가 있었기 때문에 위아래가 잘 다스려졌다.
天地明察, 神明彰矣.
宗廟致敬, 不忘親也.
修身愼行, 恐辱先也.
하늘이 밝아지고 땅이 분명해지면 신명(神明)이 나타나는 것이다. 종묘에 공경을 다하는 것은 부모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요, 몸을 닦는 데 행동을 신중하게 한다는 것은 그 조상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宗廟致敬, 鬼神著矣.
孝弟之至, 通於神明.
光于四海, 無所不通.
종묘에 공경을 다하면 귀신이 나타나고, 효도하고 공경하는 것이 지극해지면 신명에 통달하여 온 천하를 비추어 통하지 않는 데가 없다.
○ 眞氏曰: 天地者, 人之父母. 故事父孝, 則事天之理明. 事母孝, 則事地之理察.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하늘과 땅은 사람의 부모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효도로써 섬기면 곧 하늘을 섬기는 이치가 밝아지고, 어머니를 효도로써 섬기면 땅을 섬기는 이치가 분명해진다.
明察云者, 謂昭然顯著, 洞悟於心也.
밝아지고 분명해진다고 한 것은 밝고 뚜렷이 드러나서 마음 깊이 깨닫는 것이다.
事父母, 事天地, 豈有二道乎.
부모를 섬기는 일과 하늘과 땅을 섬기는 일에 어찌 두 길(道)이 있을 수 있겠는가.
故孟子曰;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그러므로 맹자(孟子)께서는, '그 마음을 잡고 성품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길이다'고 하였다.
孝弟一心, 孝旣至, 則弟亦至矣.
효도와 공경은 한마음이기 때문에, 효도가 지극해지면 공경도 지극해질 것이다.
天人一理, 通乎神明, 則亦光乎四海矣.
하늘과 사람은 한 가지 이치이기 때문에, 신명(神明)에 통하면 온 천하에 빛나는 것이다.
此推言孝弟之極功, 爲人君者所當深體也.
이것은 효도와 공경의 지극한 공을 미루어서 말한 것이니, 임금 된 이는 깊이 체득해야 한다'고 하였다.
○ 右言以孝推於天下.
이상은 효도를 천하에 이루어가는 것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 臣按, 人子之身, 父母生之, 血肉性命, 皆親所遺.
신이 생각건대, 자식된 이는 부모가 낳아 주셨으니, 피와 살과 성명(性命)이 모두 부모가 물려주신 것입니다.
生成之恩, 昊天罔極. 是故, 孩提之童, 莫不知愛其親, 天性然也.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은혜는 하늘만큼 지극합니다. 어린이들도 그 부모를 사랑할 줄 아는 것은 천성(天性)이 그러해서 입니다.
惟其物欲交蔽, 失其本心, 故父母遺體, 認爲己有, 父子之閒, 便分物我, 罔念生育之劬勞, 只怨一時之少恩.
다만 물욕에 가려서 그 본심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부모가 물려주신 몸을 자기의 소유인 것으로 알고는, 부자간에도 상대와 나를 구분하여 낳으시고 기르신 수고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만 한때 섭섭한 것만 가지고 원망합니다.
故孝愛之根不植, 自私之萌易長, 多有先己而後親者.
그러므로 효도와 사랑의 뿌리는 심지 않은 채, 자기의 사사로운 싹이 쉽게 자라서 자기를 먼저 내세우고 부모를 뒤로 하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殊不知此身生於父母, 非父母則無此身矣, 身非己有, 乃父母之所有也.
자기가 부모에 의해 태어났으며 부모가 아니면 이 몸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모릅니다. 몸은 나의 소유가 아니고 부모의 소유입니다.
遺之以物, 人亦知感, 況遺之以身者乎.
남에게 물건을 주어도 역시 감격할 줄을 알 것이니, 하물며 몸을 물려주신 이에 대해서야 어떻겠습니까.
竭力盡命, 未足酬恩.
힘을 다하고 목숨이 다한다 하여도 은혜에 보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爲人子者, 能知此理, 則於愛敬之道, 思過半矣.
자식된 자로서 이 이치를 알 수 있다면, 사랑하고 공경하는 도(道)에 있어 그 반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世人之所謂孝者, 或能愛而不能敬, 或能愛敬, 而不能盡其道.
세상 사람들이 효도라 하는 것에는 혹 사랑할 줄은 알면서도 공경할 줄은 모르고, 혹 사랑하고 공경할 줄은 알면서도 그 도(道)를 극진히 할 줄을 모르기도 합니다.
必也愛至於全其仁, 敬至於全其義, 然後可謂無忝所生矣.
반드시 사랑은 그 인(仁)을 완전하게 하는 데 이르고, 공경은 그 의(義)를 완전하게 하는 데 이른 뒤에야 낳아 주신 분을 욕되게 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嗚呼, 人之性命, 受於父母, 而性命之中, 萬理具備, 一理未明, 一理未踐, 則吾之所受於父母之本體, 有所欠缺.
아!, 사람의 성명(性命)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며, 그 성명 가운데 모든 이치가 다 구비되어 있는데, 한 가지 이치라도 밝혀지지 아니했거나 실천되지 못했다면 내가 부모에게 받은 본체(本體)에 결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直至踐其形而無歉, 然後本體全矣.
바로 타고난 본 모습을 부족한 것 없이 실천하여야만 본체(本體)가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然則非聖人之盡人道, 不足以盡孝矣.
그러니 성인처럼 인도(人道)를 지극히 하지 않고서는, 효도를 다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人惟無愛敬父母之心, 故持身不謹, 往往流於汚穢之境.
사람은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 몸가짐을 근신하지 않게 되고 왕왕 더러운 지경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若於此心, 恒念父母, 一有所失, 悚然驚懼, 若有傷於父母.
만일 마음으로 항상 부모를 생각하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송연(悚然)히 놀라고 두려워하여, 마치 부모를 상하는 일이 있는 것같이 할 것입니다.
則父母之遺體, 恒立於淸明正大之域, 仰法行健, 而足以事天; 俯則厚德, 而足以事地. 推而達之四海, 而無不準也.
부모가 물려주신 몸이 항상 청명정대(淸明正大)한 경지에 서서 위로는 쉬지 않고 운행하는 것을 본받아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두터운 덕을 본받아 땅을 섬길 수 있으니, 이것을 미루어 온 천하에 이르게 한다면 준칙(準)이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準, 人以是爲準也. 於人子之心, 豈不恔乎.
준(準)은 사람이 이것으로 준칙(準則)을 삼는 것입니다. 사람의 자식으로 어찌 마음이 유쾌하지 않겠습니까.
且帝王之孝, 與匹夫有閒. 繼述先業, 尤當盡誠.
또 제왕의 효도는 필부의 효도와 차이가 있습니다. 조상의 유업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더욱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匹夫以十金之產, 貽厥子孫, 子孫猶思善守.
한낱 필부가 자손에게 십금(十金)의 재산을 물려주더라도, 그 자손은 오히려 잘 간직할 것을 생각합니다.
況百年社稷, 千里封疆, 擧以相遺者乎.
하물며 백 년의 사직(社稷)과 천 리의 봉강(封疆)을 다 물려주신 경우야 어떻겠습니까.
若有一毫自暇自逸之念, 則孝思有缺, 而先業有虧矣.
만일 털끝만치라도 스스로 여유 부리고 편히 지내려는 생각이 있다면, 곧 효도하는 생각에 흠이 되고 선왕의 사업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尙敢肆然自放, 以危宗祊, 以辱先君乎.
그런데도 감히 방자하게 내키는 대로 하면서 종묘를 위태롭게 하거나, 선군(先君)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至如國君, 多事母后, 而宮壺之中, 禮嚴情阻, 非若家人母子之愉婉于朝夕.
한 나라의 임금은 흔히 그 모후(母后)를 섬기는 데 있어서도, 궁중의 예의가 엄격하여 정을 나누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반 사람의 모자가 아침저녁으로 유쾌하고 유순하게 지내는 것 같지 않습니다.
故宦寺婦人詐忠之徒, 易售讒閒, 使明王損其孝, 哲母減其慈.
그러므로 환시(宦侍)나 부녀자 중 충성스러운 척하는 무리들이 쉽게 참소와 이간질을 하여, 명철한 임금의 효행을 손상시키고 현철한 모후(母后)의 자애로운 심정을 덜어 버립니다.
若非孝敬素孚感于神明, 則萋斐之說, 亦可虞也.
만일 효도와 공경이 본래 미더워 신명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화려하게 꾸민 말 또한 우려할 만한 것입니다.
此是古今宮中之通患, 伏惟殿下深省焉.
이것은 고금으로 궁중의 공통된 우환이니, 삼가 전하께서는 깊이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 下(아래 하)는 ❶지사문자로 丅(하)는 고자(古字)이다. 밑의 것이 위의 것에 덮여 있는 모양이며, 上(상)에 대한 아래, 아래쪽, 낮은 쪽, 나중에 글자 모양을 꾸며 지금 글자체가 되었다. ❷지사문자로 下자는 '아래'나 '밑', '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下자는 아래를 뜻하기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下자의 갑골문을 보면 윗부분은 오목하게 아랫부분은 짧은 획으로 그려져 있었다. 윗부분의 오목한 형태는 넓은 대지를 표현한 것이다. 아래의 짧은 획은 땅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下자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하여 '아래'나 '밑'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금문에서 숫자 二(두 이)자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에 소전에서는 아래의 획을 세운 형태로 바꾸게 되면서 지금의 下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下(하)는 (1)아래. 밑 (2)품질(品質)이나 등급(等級)을 상(上)과 하(下), 또는 上, 中, 下로 나눌 때의 가장 아랫길(끝째). (3)일부 한자로 된 명사(名詞) 다음에 붙이어 ~밑에서, ~아래서의 뜻으로, 그 명사가 조건이나 환경 따위로 됨. 나타냄. ~하에, ~하에서, ~하의 형으로 쓰임 등의 뜻으로 ①아래 ②밑(물체의 아래나 아래쪽) ③뒤, 끝 ④임금 ⑤귀인(貴人)의 거처(居處) ⑥아랫사람 ⑦천한 사람 ⑧하급(下級), 열등(劣等) ⑨조건(條件), 환경(環境) 등을 나타내는 말 ⑩내리다, 낮아지다 ⑪자기를 낮추다 ⑫못하다 ⑬없애다, 제거하다 ⑭물리치다 ⑮손대다, 착수하다 ⑯떨어지다 ⑰항복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낮을 저(低), 낮을 비(卑), 내릴 강(降), 항복할 항(降), 낮출 폄(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존(尊), 높을 고(高)이다. 용례로는 공중에서 아래쪽으로 내림을 하강(下降), 값이나 등급 따위가 떨어짐을 하락(下落), 어떤 사람의 도급 맡은 일을 다시 다른 사람이 도거리로 맡거나 맡기는 일을 하청(下請), 아래쪽 부분을 하부(下部), 강이나 내의 흘러가는 물의 아래편을 하류(下流),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낮은 자리를 하위(下位), 공부를 끝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옴을 하교(下校), 한 달 가운데서 스무 하룻날부터 그믐날까지의 동안을 하순(下旬),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하오(下午), 차에서 내림을 하차(下車), 위에서 아래로 향함을 하향(下向), 보호를 받는 어떤 세력의 그늘을 산하(傘下), 일정한 한도의 아래를 이하(以下), 치적이 나쁜 원을 아래 등급으로 깎아 내림을 폄하(貶下),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을 귀하(貴下), 끌어 내림이나 떨어뜨림을 인하(引下), 원서나 소송 따위를 받지 않고 물리치는 것을 각하(却下), 낮아짐이나 내려감 또는 품질 따위가 떨어짐을 저하(低下),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라는 뜻으로 임기응변으로 어려운 일을 처리함을 일컫는 말을 하석상대(下石上臺), 붓만 대면 문장이 된다는 뜻으로 글을 짓는 것이 빠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필성장(下筆成章), 아랫사람의 사정이나 뜻 등이 막히지 않고 위에 잘 통함을 일컫는 말을 하정상통(下情上通), 어리석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하우불이(下愚不移), 아래로 아내와 자식을 기름을 일컫는 말을 하육처자(下育妻子), 아래를 배워서 위에 이른다는 말로 낮고 쉬운 것부터 배워 깊고 어려운 것을 깨달음을 이르는 말을 하학상달(下學上達), 아랫사람의 뜻을 윗사람에게 전달함을 일컫는 말을 하의상달(下意上達), 아랫사람에게 후하고 윗사람에게 박함을 일컫는 말을 하후상박(下厚上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가하여 윗사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세상이 어지러움을 이르는 말을 하릉상체(下陵上替),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든지 물어서 식견을 넓히라는 말을 하문불치(下問不恥) 등에 쓰인다.
▶️ 氣(기운 기, 보낼 희)는 ❶형성문자로 気(기)의 본자(本字), 气(기)는 간자(簡字), 炁(기), 餼(희), 饩(희)는 동자(同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기운기 엄(气; 구름 기운)部는 공중에 올라가 구름이 되는 것, 굴곡하여 올라가는 수증기, 목에 막히어 나오는 숨을 뜻하고, 米(미)는 쌀을 뜻하므로 김을 올려서 밥을 짓다, 손님을 위한 맛있는 음식을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氣자는 '기운'이나 '기세', '날씨'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氣자는 气(기운 기)자와 米(쌀 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본래 氣자는 米자가 없는 气자가 먼저 쓰였었다. 气자는 하늘에 감도는 공기의 흐름이나 구름을 표현한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획을 세 번 그린 것으로 하늘의 기운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숫자 三(석 삼)자 혼동되어 위아래의 획을 구부린 형태로 변형되었다. 여기에 米자가 더해진 氣자는 밥을 지을 때 나는 '수증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气자와 마찬가지로 '기운'이나 '기세', '날씨'와 관련된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氣(기)는 (1)숨 쉴 때에 나오는 기운 (2)생활이나 활동하는 힘으로 원기, 정기, 생기, 기력 따위 (3)동양 철학의 기초 개념의 하나6로 만물을 생성, 소멸 시키는 물질적 시원(始原) (4)옛날 중국에서 15일을 일기로 하는 명칭으로 이것을 셋으로 갈라 그 하나를 후(候)라 했음 (5)느낌, 기운의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기운(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오관(五官)으로 느껴지는 현상) ②기백(氣魄) ③기세(氣勢: 기운차게 뻗치는 형세) ④힘 ⑤숨(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 ⑥공기(空氣) ⑦냄새 ⑧바람 ⑨기후(氣候) ⑩날씨 ⑪자연(自然) 현상(現狀) ⑫기체(氣體) ⑬가스(gas) ⑭성내다 ⑮화내다(火--) 그리고 ⓐ(음식을)보내다(=餼)(희) ⓑ음식물(飮食物)(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대기의 온도를 기온(氣溫), 바야흐로 어떤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분위기를 기운(氣運), 바람, 비, 구름, 눈 등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기상(氣象), 마음에 생기는 주관적이고 단순한 감정 상태를 기분(氣分),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정신과 육체의 힘을 기력(氣力), 사람의 타고난 성품과 몸가짐을 기상(氣像), 기운과 세력을 기세(氣勢), 대기의 유동을 기류(氣流), 바탕을 이루는 성질을 기질(氣質),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를 기개(氣槪), 타고난 기질과 성품을 기품(氣稟), 기운이 만장이나 뻗치었다는 뜻으로 펄펄 뛸 만큼 크게 성이 남 또는 일이 뜻대로 되어 나가 씩씩한 기운이 대단하게 뻗침을 일컫는 말을 기고만장(氣高萬丈), 의기가 관중을 압도한다는 뜻으로 의기 왕성함을 이르는 말을 기개관중(氣蓋關中), 기운이 없어지고 맥이 풀렸다는 뜻으로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버림을 일컫는 말을 기진맥진(氣盡脈盡), 인간의 성질을 본연지성과 기품지성의 두 가지로 나눈 중에서 타고난 기질과 성품을 가리키는 말을 기품지성(氣稟之性), 기세가 대단히 높음을 일컫는 말을 기염만장(氣焰萬丈), 생각하는 바나 취미가 서로 맞음을 일컫는 말을 기미상적(氣味相適), 생각하는 바나 취미가 서로 맞음을 일컫는 말을 기미상합(氣味相合), 글씨나 그림 등의 기품과 품격과 정취가 생생하게 약동함을 일컫는 말을 기운생동(氣韻生動), 기세가 매우 높고 힘찬 모양을 일컫는 말을 기세등등(氣勢騰騰), 놀라서 정신을 잃음을 일컫는 말을 기급절사(氣急絶死), 모두가 운수에 달린 일이라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을 기수소관(氣數所關), 기운은 산과 같이 높고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다는 의미의 말을 기산심해(氣山心海) 등에 쓰인다.
▶️ 怡(기쁠 이)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台(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怡(이)는 ①기쁘다 ②즐거워하다, 기뻐하다 ③기쁘게 하다 ④온화하다(溫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쁠 희(僖)이다. 용례로는 부드러운 소리나 기쁜 목소리를 이성(怡聲), 기쁜 낯을 함이나 안색을 부드럽게 함을 이안(怡顔), 즐겁고도 기쁨을 이열(怡悅), 기뻐하고 화락함을 이화(怡和), 기쁘고 좋음을 이연(怡然), 즐거워하고 화목함을 이목(怡穆), 즐겁고 기쁨을 이유(怡愉),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일컫는 말을 화안이성(和顏怡聲), 마음이 확트이고 기분이 좋아짐을 일컫는 말을 심광신이(心廣神怡) 등에 쓰인다.
▶️ 聲(소리 성)은 ❶회의문자로 갖은등글월문(殳; 치다, 날 없는 창)部인 악기(樂器: 声)를 손으로 쳐서 귀(耳)로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소리'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聲자는 '소리'나 '노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聲자는 声(소리 성)자와, 殳(몽둥이 수)자, 耳(귀 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声자는 '석경(石磬)'을 그린 것이다. 석경이란 고대 아악기의 일종으로 돌로 만든 경쇠를 말한다. 두들겼을 때 맑은소리가 나기 때문에 이전에는 악기의 일종으로 사용했었다. 이렇게 석경을 그린 声자에 몽둥이를 든 모습의 殳자가 결합한 것은 석경을 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귀를 더한 聲자는 악기 소리를 듣는 모습으로 '소리'나 '노래'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갑골문에서는 口(입 구)자까지 있었지만, 후에 생략되었다. 그래서 聲(성)은 ①소리 ②풍류(風流) ③노래 ④이름 ⑤명예(名譽) ⑥사성 ⑦소리를 내다 ⑧말하다 ⑨선언하다 ⑩펴다 ⑪밝히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리 음(音), 운 운(韻)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실이나 문제에서 취하는 입장과 태도 등을 여러 사람에게 밝혀서 말함을 성명(聲明), 옆에서 소리를 질러 응원함을 성원(聲援), 국가나 사회 또는 어떤 조직의 잘못을 여러 사람이 모여 폭로 또는 비판하며 규탄함을 성토(聲討), 목소리의 가락을 성조(聲調), 사람의 목소리에 의한 또는 목소리를 중심한 음악을 성악(聲樂),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의 크기나 또는 강한 정도의 양을 성량(聲量), 세상의 좋은 소문이나 평판을 성가(聲價), 우는 소리와 흐르는 눈물을 성루(聲淚), 모습은 나타내지 않으며 목소리만으로 출연하는 배우를 성우(聲優), 소리의 울림을 성향(聲響), 음악에 관한 재주를 성기(聲技), 말소리와 얼굴 모습을 성모(聲貌), 노래 부를 수 있는 음성의 구역을 성역(聲域),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지르는 고함 소리를 함성(喊聲), 세상에 떨친 이름을 명성(名聲), 소리를 냄을 발성(發聲), 목소리를 음성(音聲), 탄식하거나 감탄하는 소리를 탄성(歎聲), 높은 소리를 고성(高聲), 하나의 소리를 일성(一聲), 슬피 우는 소리를 곡성(哭聲), 원망하는 소리를 원성(怨聲), 칭찬하는 소리를 예성(譽聲), 천둥 소리를 뇌성(雷聲), 노래에서 특수한 발성 수법으로 되는 가장 높은 남자 소리를 가성(假聲), 같은 소리나 함께 내는 소리를 동성(同聲), 기뻐서 외치는 소리를 환성(歡聲), 부르짖는 소리나 외치는 소리를 규성(叫聲),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동쪽을 치는 듯이 하면서 실제로는 서쪽을 치는 병법의 하나로 상대를 기만하여 공격함의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성동격서(聲東擊西), 소식이 서로 통함 또는 마음과 뜻이 서로 통함을 일컫는 말을 성기상통(聲氣相通), 크게 외쳐 꾸짖는 한마디의 소리를 일컫는 말을 대갈일성(大喝一聲),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죄를 일제히 꾸짖음을 일컫는 말을 제성토죄(齊聲討罪),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는 뜻으로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로만 떠벌림을 일컫는 말을 허장성세(虛張聲勢), 입은 다르지만 하는 말은 같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말이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이구동성(異口同聲), 같은 소리는 서로 응대한다는 뜻으로 의견을 같이하면 자연히 서로 통하여 친해짐을 일컫는 말을 동성상응(同聲相應), 책상을 치며 큰 소리를 지름을 이르는 말을 박안대성(拍案大聲), 두려워서 움츠리고 아무 소리도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감출성(不敢出聲), 큰 소리로 목을 놓아 슬피 욺을 일컫는 말을 대성통곡(大聲痛哭), 울림을 미워하여 입을 다물게 하려고 소리쳐 꾸짖으면 점점 더 울림이 커진다는 뜻으로 근본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것을 다스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궁향이성(窮響以聲), 소문을 미리 퍼뜨려 남의 기세를 꺾음 또는 먼저 큰소리를 질러 남의 기세를 꺾음을 일컫는 말을 선성탈인(先聲奪人), 멸망한 나라의 음악이란 뜻으로 곧 음탕하고 슬픈 음악을 일컫는 말을 망국지성(亡國之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