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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정보원
 
 
카페 게시글
공통 게시판 자주, 자주성을 사회사업의 목표나 책무라 할 수 있는가?
한덕연 추천 0 조회 324 11.01.09 16:51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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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1.10 08:20

    첫댓글 '자주케 하는 일이 사회사업가의 책무.본분 혹은 사회사업의 목표'라 할 수 있는가?

    평창에서 시골팀 합동연수를 할 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특정 프로그램이나 아동사업에서는 목표가 될 수도 있겠으나,
    사회사업의 목표라고 하기는 부담스럽다.
    정일형이 하는 어르신 사업의 목표로, '어르신의 자주성을 기른다'고 할 수 있을까?
    특정 활동이나 과업에서 당사자가 그 일의 주체로 참여하여 자주토록 도울 수는 있으나,
    사회사업의 목표나 사회사업가의 본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내용이었습니다.

  • 11.01.10 08:30

    '아동사업을 구실로 당사자의 자주성과 지역사회의 공생성을 살린다.'
    철암에서 아동사업의 목표로 자주성과 공생성을 오래 써 왔기에,
    평창에서 선생님 말씀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게시판 글을 읽으니,
    '당사자의 자주성'은 특정 분야나 과업으로서 목표가 될 수도 있겠으나,
    사회사업의 목표나 이상, 사회사업가의 본분이라기는 부담스럽다는 말씀을 알겠습니다.

  • 11.01.10 08:40

    "당사자와 지역사회로 하여금 복지를 이루게 돕는 일이요 또한 더불어 살게 돕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회사업의 개념은, 사람다움과 사회다움을 궁구하여 정의했습니다.

    사람다움-인격적 가치-자주성
    사회다움-사회적 가치-공생성

    [당사자와 지역사회로 '하여금' 복지를 이루게 돕는 일] = 자주성
    [또한 더불어 살게 돕는 일] = 공생성

    이렇게 보면, 자주성과 공생성은 동등한 수준의 목표로 보입니다.
    여태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단 개념과 근본 개념으로 보면,
    자주성과 공생성이 동등한 수준의 목표는 아니겠습니다.

  • 11.01.10 08:54

    아동사업에서 '당사자의 자주성'을 목표로 삼았고,
    마땅하다고 보았지만,
    특정 시기나 특정 프로그램에 한정한 것이지,
    사회사업 전체로 확장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부담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사회사업가로서 '지역사회의 공생성을 살린다', '더불어 살게 돕는다'는 기꺼우나

    특정 활동이나 사업을 넘어서서, '당사자의 자주성을 살린다'고 하면,
    지나치게 참견하는 것 같고, 부모 노릇, 선생 노릇 하는 듯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 11.01.10 09:03

    아동사업에서 '당사자의 자주성'을 목표로 삼지만,
    특정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그러한 것이고,
    나아가 아이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라는 것이지,
    사회사업의 목표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 듯 합니다.

    '자기주도적인 삶'은 교육자의 사명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지금, 철암에서 아동사업은
    당사자의 자주성을 지역사회의 공생성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11.01.10 23:14

    당사자가 변화하고 자주하는 것. 그 건 그 사람의 인생 살아가는 몫이겠지요. 그 사람이 지역사회내에서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렇게 자신의 살림살이를 재구성하거나,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사회복지사가 해야할 역할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충분히 자신의 삶의 선택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기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정신장애인을 만나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우리가 일으켜세워 걷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도움이 그 사람의 삶의 회복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요. 당사자가 자주 해야한다는 생각이 시작이 그들은 자주 할 수 없다는 것에서

  • 11.01.10 23:21

    출발한 거라고 한다면, 우리가 큰 오해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비록 삶을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상황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갑니다.(자주) 그 어려움을 풀어나가고 살아가는데, 우리가 이웃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끄럽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배움이 짧은 제가 두서없이 글을 썼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세요.

  • 어려운 질문입니다.
    머리에서 돌아돌아....계속 빙빙거리는 의미입니다.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자주성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냥...쓰고 있습니다.
    사례관리를 할때 더더욱 자주성이라는 말을 합니다.
    지역복지일을 할때 공생성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의 책무로서의 자주성....

    물리치료사가 환자를 케어할때 자주성을 목표로 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케어할때 자주성을 목표로 하여 완치를 하고자 합니다.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지역주민, 시설장애인, 센터아동, 북한이탈주민)를 케어하기 위해 자주성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한다면....왠지....사회사업이 대상화되는 느낌이 듭니다.

  • 11.01.11 22:59

    2월말까지 복지생각 다듬는 것에 매진하려 합니다.
    복지생각 다듬을 때 말씀하신 이 내용도 깊이 궁리하겠습니다.

  • 11.01.12 00:21

    다른 사업은 잘 모르겠으나 제가 하는 '아동사업'은
    대상이 아이라는 이유로 준비, 진행 과정에서
    '대상'으로만 머무르기 쉬운 면이 있습니다.

    다만, 요즘은 '자주'가 목표라기보다
    '자주'가 실천의 소중한 '원칙'으로 여기고 일합니다.

  • 작성자 11.01.13 09:00

    "자주하는 당사자의 삶, 공생하는 지역사회 사람살이 - 이렇게 자주.공생하는 인간.세상이 사회사업 이상입니다." - 복지심서 8쪽

    이렇게 쓴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주성 살리는 것을 사회사업의 목표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단정 아님)

    자주성을 (지키고) 살린다는 것은 돕는 과정에서 사회사업가가 지켜야 할 윤리이며, 자주성은 바로 그 윤리의 준거가 되는 "가치"입니다.

    더 궁리해 보겠습니다.
    현재는, "살린다"는 말이 불러오는 혼선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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