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데바’
“시체 도굴범이 없었다면,
서양의학의 발전도 없었다.”
영국 BBC방송의 몇 해 전 특집방송 주제다.
18~19세기 천연두 백신과 조산(助産)기술,
치과 시술은 이들이 끊임없이 제공한
‘교육재료’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육재료가 의학용어로
‘카데바(Cadaver)’라고 부르는 시신(屍身)이다.
당시 영국의 유명한 ‘교육재료’ 공급책이
윌리엄 버크의 2인조다.
구매자는 에든버러 의과대학.
1구당 7파운드였다.
처음엔 방금 장사한 무덤을 노렸으나
감시가 심해지자 나중엔 직접 만든다.
한 해 16명을 연쇄살인한 것이다.
꼬리가 밟힌 것은 그가 제공한
매춘부 카데바를 학생이 알아본 것.
교수형에 처해진 버크의 시신은 에든버러대학교에
해부실습용 카데바로 넘겨진다.
인체해부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로 올라간다.
미라와 함께 발달했다.
‘파피루스-에드윈-스미스’는
기원전 17세기의 외과문헌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주로 동물,
특히 원숭이를 통해 인체를 추정했다.
‘해부학 지침’을 남긴 갈렌(129~199 BCE)도
동물을 이용했다.
최초의 공개 인체 해부는
1315년 이탈리아 볼로냐 의학자
몬디노에 의해 시행됐다.
이후 파도바 대학의 A 베살리우스가
1543년에 발간한 『인체의 구조』가
근대 해부학의 기초가 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의학이 아니라 예술로 접근했다.
남녀노소 30구의 시신으로
1750장의 해부도를 남겼다.
동양은 송(宋)나라 때
구희범오장도(歐稀範五臟圖)와
존진환중도(存眞環中圖)가 전해온다.
우리나라는 허준의 동의보감에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가 실려 있다.
하지만 드라마와 달리 실제 스승의 시신을
해부했는지는 설(說)이 분분하다.
근대적 해부 실습은
세브란스 의전에서 1910년부터 이뤄졌다.
카데바는 의학용뿐만 아니라
범죄수사용으로도 활용된다.
미국 테네시 메디컬센터의 인류학 연구시설에
‘시체농장(Body Farm)’이 있다.
통제된 자연 속에서 시신의 부패 과정을 관찰한다.
자료는 범죄수사기관(CSI)과 공유한다.
의학에서 시신 기증은
생명 연장과 의술 발전을 위한 진정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유교의 영향으로 시신 기증이 적다.
서울지역 의과대학의 경우 연간 30~80구 정도다.
이런 숭고한 시신으로 일부 대학생이 장난치는
모습이 인터넷에 올라 경악케 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일수록
‘인체의 존엄’을 되새겨야 한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