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간 월요일(마태12,38-42)
마음의 문을 열어라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기적이나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것을 보면 믿음이 더 성장하고 굳게 다져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적이 믿음을 가져오기보다 믿음이 기적을 낳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표징을 요구하기에 앞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도 한때는 표징을 많이 요구했습니다. 그러다가 ‘표징을 요구하지 마라. 말씀 안에 머물러라’는 주님의 강한 음성을 듣고 이제는 초연해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보고라도 믿어야 합니다. 보여 주실 때는 보십시오. 그리고 삶을 바꾸어 증인이 되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부터 굳건한 믿음이 있어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다 보니 믿음이 성장하였고, 성령을 체험한 후 목숨을 내 놓고 주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알기 위해서라도 먼저 믿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실행할 때 표징을 넘어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자기 뜻에 맞추려 하는 한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표징을 요구하거나 기적을 멀리서 찾지 말고 내 삶의 자리를 기적의 자리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의 터를 믿음의 자리로 만들어 주님을 자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6,14). 우리가 완고한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가슴에 모신다면 어디서나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내 삶의 깊은 곳에 주님께서 개입하실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회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 라고 하셨습니다. 악하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이요, 절개 없다는 것은 충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입니다. 우리는 선하고 절개 있는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내 즐길 것 다 즐기고 시간이 남아야 겨우 미사참례하고는 ‘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지녀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누가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 만큼 성장 과정 안에서의 진통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쉽게 이루려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성장을 오히려 더디게 하고 맙니다.
사람들이 지혜롭고 명철하다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 곧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주신 표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표징을 요구하고 그 틀에 꿰맞추려는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귀를 막으면 비오는 소리뿐 아니라 천둥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믿을 마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표징을 아무리 많이 보여줘야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준비 없이 심판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던 완고한 마음을 돌려 주님을 향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마음을 열면 살아있음이 기적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마사초의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베드로>, 1424-25, 카르미네 성당 내 브랑카치 경당, 피렌체.
마사초가 그린 이 그림은 성 베드로가 개종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단단한 몸매의 젊은이가 물속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세례를 받고 있다. 고대 이래 천년 동안 사라졌던 사실적인 인간의 육체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등장하는 순간이다. 세례를 받고 있는 청년의 뒤에는 오돌오돌 떨면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 이제 막 상의를 벗으며 또 그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젊은이도 보인다. 이들은 없어도 그만인 일종의 엑스트라이지만 그림에 생기를 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점의 성화 속에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찍듯이 많은 사람들을 등장시켜서 사실적인 그림을 탄생시켰다.
우리는 어떤 표징에 앞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사람들이 지혜롭고 명철하다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 곧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주신 표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표징을 요구하고 그 틀에 꿰맞추려는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던 완고한 마음을 돌려 주님을 향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마음을 열면 살아있음이 기적입니다. 아멘.
기적이 믿음을 가져오기보다 믿음이 기적을 낳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