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열어둔 창문으로 스며드는 오렌지꽃 향기가 처음 받아든 연서처럼 가슴을 울렁이게 하고 겨우내 물주기 한 가지에서 보소소 돋는 연주홍의 포도 새순은 사노라니 쌓이는 시름을 한 순간에 걷어간다.
벌써 5 개월 째 내 가방 속 책갈피에는 낡은 기사 스크랩 한 장이 들어있다.
'진달래 국화 만발하고 번잡함 씻어내는 사색의 공간 얼번스 밀러 일본정원(Earl Burns japanese Garden)' 이란 제목을 달고 소개된 남가 주 대표적인 일본 정원이다.
이곳을 가보고 싶은 곳 첫 순위로 정하고 생각날 때마다 접어둔 종이만 꺼내 볼뿐이다.
어느 날 불쑥 가고싶은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자동응답기에 녹음 된 내용은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에 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당분간 개방하지 않는다는 안내만 들려왔다. 정원의 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말에는 오후 1시와 오후 3시, 수요일은 오후 1시 한차례만 개방하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여의치 않다.
벼르고 별렀던 기회를 거절당한 서운함보다는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중하게 방문을 거절한다는 것이 어찌나 신선하게 느껴졌던지 그저 부러울 뿐 이였다.
이민 역사를 거슬러보면 일본인들이 훨씬 앞서있지만 우리 역시 올해가 이민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네 산과 들에 피고 지던 그지없이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기와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당가에 우아하게 피고 지는 모습을 이곳에서는 볼 수 는 없을까? 200만이 넘는 한인들이 살고 있다는 이 미국 땅에 말이다.
이민 100주년 기념행사였던 로즈 퍼레이드를 보면서 단 하루 퍼레이드를 위해 적지 않은 금액을 쏟아 부어 의미 깊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민 100주년 기념으로 한국식 고택의 품위를 갖춘 작은 민속촌 하나 건립해보는 것도 좋을 텐데 하는 욕심을 품어 본다.
행사를 치룰 적마다 씁쓰레한 뒷소문 무성한 한인 단체 일원들의 행정적 생각이 폭넓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왜 꼭 하루만의 잔치를 위한 로즈 퍼레이드로 기념 행사를 해야만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보트 피플로 1990년 대거 이민이 시작된 베트남인들이 밀집해있는 웨스트민스터에 가보면 아-아 하는 나지막한 탄성이 나온다. 일년 내내 피고 지는 화사한 꽃으로 장식한 자신들의 민속신앙인 사원 앞에서 두 손 합장하고 깊이 절하는 모습의 베트남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민 역사로 따져본다면 십 수년 안팎인 그들이 그들만의 얼이 깃 든 사원을 중심으로 갓 이민 온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하고 모임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는 타운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일본인의 상징인 리틀 도쿄 역시 마찬가지.
리틀 도쿄 1st 에 있는 일본인의 거리를 가끔 가보게 되는데 일본인의 경제력과 인구 그리고 이민 역사를 견주어볼 때 리틀 도쿄는 홈리스가 즐비한 LA다운타운 한쪽 모퉁이에 붙어있어서 작아 보이고 초라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즈마 애이치로씨(일미 국립 박물관 일본인 해외이주사 연구원) 에게 왜 일본타운은 이렇게 조그만 하고 다운타운 한쪽 끝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가 라고 물어 보았다.
"리틀 도쿄는 남가주 일본인 커뮤니티에 있어서 다른 커뮤니티와 같이 비즈니스 장소로서의 의미가 아닌, 이민 세대간에 그리고 일본 본국과 이민자들 간의 정신적 뿌리를 연결해 주는 문화적인 역할이 더 크다" 고 말했다.
베트남 민족처럼 또는 리틀도쿄 처럼 거창한 바램은 아예 갖지 못할 처지기에 우리 사정(?)에 걸맞은 소박한 꿈 하나 제안한다면 한인단체들이 우리네 꽃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식물원 하나 정도는 가꿀 수 도 있지 않을까? 비가 적게 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풍부한 일조량과 양질의 토양이 제공되는 로스앤젤레스는 꽃가꾸기 천혜의 요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소망에 적은 욕심의 놀부 꼬리 하나 더 달아본다면 우리네 꽃나무의 묘목을 재배하여 원하는 동포들에게 무상 혹은 적은 비용으로 나눠주기까지 할 수만 있다면 삶의 고단함이 쉽게 가셔질 수 있는 처방으로는 더 할 나위 없는 금상첨화.
한국의 야생화 식물원을 만드는데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면 용인에 있는 민속촌처럼 토속 음식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공연과 전시회도 열고 근래에 이곳에서도 가끔 열리는 농협의 사업인 우리네 농산물 먹거리 시장도 자주 열고 하여 재정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본다.
로스앤젤레스는 타 주와 달리 한인동포들의 인구 비례로 보나 기초 생활비를 비교해보나 이민자들이 뿌리 내리기에 적당한 도시이므로 앞으로도 내내 초기 이민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이곳은 미국에 있는 작은 한국이기에 가능성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꽃에 얽힌 추억은 누구나에게 존재한다.
휘영청 달밤에 핀 보라와 흰 색의 도라지꽃은 아리고 아린 첫 사랑만 같고 우물가 한 쪽 키 작은 나무에 복성스레 달려있던 앵두하며 과일 전 망신을 도맡은 못생긴 모과. 그러나 모과는 만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과실중의 과실이기도하다. 어디 그 뿐이랴.
노루귀, 복수초, 금낭화, 미나리아재비, 천남성, 지천으로 피긴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그윽한 향기로 가슴에 꽂히는 쑥부쟁이, 꿩의 다리, 여뀌, 누리장나무, 꽃무릇 , 처녀치마, 며느리밥풀 꽃이라 부르기도 하는 금낭화등 이곳의 토양에 잘 자랄 수 있는 꽃나무를 꼽으려면 이 밤이 새도록 다 못할 것이다.
여름 꽃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똥나무라 이름 붙여진 '만리향', 너무 넉넉하고 친근해서 '박색'이 되어버린 호박꽃, 잎과 꽃이 서로를 보지 못해 그리워한다는 상사화, 남녀의 금실이 합쳐지는 합환의 꽃이 피는 자귀나무 등 여름 꽃·나무들.
수많은 시인들의 글감이 되기를 자처한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인연설화조」(서정주), 「복단여정」(박목월)의 모란, 「4월의 노래」(박목월)의 목련, 「사랑하고 싶은 날」(오탁번)의 앵두나무, 「상주 모심기노래」의 연(蓮), 「국화 옆에서」(서정주)의 국화 등 시를 통해서 되새겨보는 꽃은 더욱 향기롭다.
가능하다면 할 수만 있다면 내 작은 힘으로라도 우리네 꽃이 지천으로 피고 지는 작은 정원하나 만들고싶다.
강릉 오죽헌 뒷마당에 청정하게 서 있던 오죽 숲도 만들고 들여다보면 꽃속으로 빨려 들어 갈 것만 같은 작약 동산도 꾸미고 싶고 이미 사라진 강원도 깊은 산골학교 가마골 분교 뒷동산에 선녀처럼 피고있던 함박꽃도 피워내고 싶다. 새 각시 아미에 연분홍 수술 몇 자락 내려앉는 족두리 꽃을 피게 해 이곳 미국 땅에서 시집가는 처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가을이면 뒷마당에 놓여진 항아리에 모과 몇 덩이 숭덩숭덩 썰어 넣고 소주보다 싼 질 좋은 양주를 콸콸 부어두었다가 내 집에 오는 나그네들에게 표주박으로 한 잔 떠 올려 맛보기 해주고 싶다.
생각만 해도 울렁거리는 내 꿈의 첫 디딤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손바닥만한 뒷마당에 앵두와 납짝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조선 소나무, 백도라지, 풍성한 꽃잎의 수국, 꽃 얼굴 작은 국화, 마주보기 은행 두 그루, 무궁화, 개나리를 심었다. 새벽에도 한번 보아야 맘 놓이는 꽃 품위 드높은 작약도 거금을 주고 사다 심었다.
다음 해 늦가을 어느 때 이 글 보시는 독자 님들에게 대추 술 모과 술 한잔 맛보러 오라는 초대를 할 수 있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송강 정철의 풍류를 음미하면서..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옴세
백년 덧 시름 잊을 일 의논코자 하노라
La가 미국 속의 작은 한국이라면 이곳 청도도 중국속의 작은 한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스스로 지켜나갈 토양을 서서히 준비할 때가 온 듯한데... La의 웰셔 바베큐와 안전지대 생각이 납니다... 출장을 갈때 거기서 몇명의 친구들과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었는데,,, 그립군요... 지금도 있죠?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으며 아침 맞습니다. 왠지 황대권님의 야생초 편지를 다시 들쳐 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동감하는 부분 너무 많네요....오늘하루는 꽃에 얽힌 추억들 고이 꺼내봅니다..^^
입산중에 쑥~님의 글이 궁금해 하산합니다. 소녀틱한 마음을 엿볼수있어 어느분일지 궁금궁금, 필력과 글에서느끼는 예쁜마음이 더욱호기심을 갖게하네요. 그리고 쑥부쟁이가 꽃이름이었군요(에구 얼굴이 화끈화끈). 무시함의극치여.
"쑥부쟁이' 야생화란 사실 오늘에야 알았네요.그윽한 향기로 가슴에 꽂히는야생화라??? 모과주한잔 얻어마시러 가을쯤에 paramount에 가도될까요???
펜의 힘이 위대 하다는 것을 또, 새삼 느낍니다.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중에도 누군가 이 척박한곳에 마음부치며 살 수 있도록, 조용히 나서 주시기를 소망해 봅니다....
젊었을 때는 자연도 꽃도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가는지 이제는 꽃의 아름다움에 자주 마음을 뺏기곤 한답니다. 야생화는 잘 모르지만 님이 전해주시는 글을 통해 은은하고 소박한 향기를 느껴봅니다. 이 오후에 들꽃처럼 은은한 행복을 전해주시는 님께 감사합니다.
운영자로써 저희 카페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를 알려준 좋은 글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달리 드릴말씀이 없습니다... 누가 되었든 어느 사람이 되었든 이곳에 계신 모든분들에게서 좋은 꽃냄새가 만발하였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쑥부쟁이님~
La가 미국 속의 작은 한국이라면 이곳 청도도 중국속의 작은 한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스스로 지켜나갈 토양을 서서히 준비할 때가 온 듯한데... La의 웰셔 바베큐와 안전지대 생각이 납니다... 출장을 갈때 거기서 몇명의 친구들과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었는데,,, 그립군요... 지금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