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에서 득도한 최초의 미국인 승려 데이비드 쥬니가(법명 大日)스님이
한국불교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미국 텍사스주의 오스틴에서
한국불교를 전하는 전법포교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어 불교계에 귀감이 되고 있다.
대일스님은 열린선원 원장 법현스님을 은사로
2005년 태고종의 28기합동득도 수계산림에 참가해
태고총림선암사에서 매일 1,000배의 수련과
한국불교역사 및 승려의 기본의식 등을 배우고 사미 10계를 받았다.
대일스님은 태고종 법현스님에게 득도하기 전에
미국에서 태권도를 배우면서 한국불교를 알게됐다.
스님은 하버드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하며
당시 유학중이던 일미스님(하버드대 박사과정 수료)에게
한국불교를 소개받았다.
일미스님에게 법현스님을 소개받은 대일스님은
한국에서 법현스님에게 기초교육을 배운 후 합동득도에 참여,
한국인 행자와 똑같이 수행해 도반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대일스님은 득도 후 미국으로 돌아가 Hospice Austin에서 일하고 있다.
Hospice는 의학진단으로 6개월 미만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이곳은 의사, 간호사, 시회봉사자, 목사, 자원봉사자들이 근무중이다.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지막 삶을
평화적으로 살 수 있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일 스님은 420명의 직원과 인턴, 자원봉사자들을 감독하고 있다.
대일 스님은 자원봉사자부와 사별부(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은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상담해주는) 등의 프로젝트와 메스컴관련 마케팅을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스님은 붓다의 말씀을 병자와 주민들에게 전하며,
마을과 환자들을 직접 돌보기도 한다.
아직까지 독립된 법당은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대일스님의 사택에 작은 법당을 마련해
한국식으로 예불하며, 간화선 방식으로 참선하고 있다.
대일스님은 하버드대학에서 불교학생반 활동을 했으며
7년여동안 위빠사나수행체험도 했다.
대일 스님은 가끔 지방 불교 신문에 칼럼을 쓰곤했다.
정치와 종교의 라디오 쇼에도 정규적으로 출연,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알도록 노력하고 있고
종교적인 대화의 중간 역할에 종사하고 있다.
Linda Mosher 라는 이름의 뉴욕 학자는
그녀의 4권째 책에서 미국에 있는 종교의 비교와
어떻게 종교들이 고통을 취급하고 있는지를 연재중이다.
그녀는 곧 출판할 <이웃사람속의 믿음>이라는 책에
광범위하게 대일스님을 인용하고 인터뷰했다.
대일스님은 법현스님의 유일한 상좌이다.
대일스님이 한국불교와 태고종 그리고 참선을 알리는 홈페이지 주소 http://www.sonbuddhism.org/
다음은 대일 스님이 지방 신문(The Austin American Statesman)에 썼던 기사이다
(선일여상 김미숙교사와 법현스님 번역).
부처가 되는 첫 걸음(The First Step in Becoming a Buddha)
"이때 붓다가 아난다에게 말씀하시기를: ‘충분하다 아난다야! 슬퍼하지 마라.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변하고 헤어지고 끊어짐이 있다고 애초에 가르치지 않았느냐?’ (Maha-parinibbana Sutta, V. 32. 35). 붓다가 돌아가시려 누워 있으면서 아난다에게 주신 조언과 똑같이 13살의 마야가 저에게 조언 하였습니다: “부처가 되는 첫 걸음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36시간의 대화 후에 마야는 백혈병의 합병증으로 죽었습니다. 어떻게 이 어린 사람이 죽으면서 이러한 마음의 평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니체 (Friedrich Nietzsche)가 전에 이야기한 유명한 말에: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도 알고 있다.” 이 똑같은 감정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심리학자 빅토 프랭클의 언어치료에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Nietzcheand Frankl은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상황이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견디고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근원은 또한 아주 중요합니다. 붓다는 우리 스스로 경험하고 그것이 개인적인 진실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통탄하게도, 사람들 모두 너무 자주 단순하게 경험의 고난에 대항해서 그들에게 전했던 믿음을 인정합니다. 경험의 고난에 대항해서 테스트도 안 해보고 말입니다. 그리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불가피하게 일어났을 때, 이 시험을 거치지 않은 믿음은 산산이 무너집니다. 무시무시한 고통을 유발하면서.
그러나 정상적인 연구에 기초를 둔 가치 있는 믿음과 사상들은 아직 그것들 스스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한 참고 견딜 수 있는 도움이 될 만한 숙련된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려움을 다루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중, 참선(Zen)에는 명상의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명상은 우리의 주기적인 감정과 생각의 패턴을 광범위하게 발전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상태의 반응보다 도전하는 위치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서 두려움, 열망, 집착, 마음비우기에 관계없이 우리는 진실이 진짜 진실인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의 문제에 능숙하고 유일하게 대답하여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같이 견디기 위해서 sangha(정신적인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이 육성되는 공동체들은 아마도 많은 다른 형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섬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습니다. 우리 모두 무엇인가 배울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와 같이 누군가 단순히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같이 있다는 것).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고요함(침묵) 속에서 누군가와 같이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일을 합니다. 우리가 고난에 처해 있을 때, 말이나 쓸모없는 수다로 고요함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우리가 붙잡고 있는 끝없는 마음의 고리일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일들을 직접 보는데 도움이 안 됩니다. 그것은 단지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또 다른 여과의 장애일 뿐입니다. 분명히 조언해주는 현명한 말들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와 침묵 속에 있을 때, 그때 그들을 정말로 알게 됩니다. 말은 결코 그 자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이정표일 뿐입니다.
몇 년 전에 나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비록 몇 년 동안 건강하게 일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건강하게 일 해왔기 때문에 나는 더욱 놀랐습니다. 암 환자의 많은 친척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나의 걱정은 높아만 갔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나를 격려하기 위해 나에게 의학적인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제 아내의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의학적인 전문가가 아닙니다. 나에게 거짓 희망도 주지 않았고 편안한 말을 나에게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그녀가 기꺼이 아무 말 없이 저와 같이 앉아 있어 준 것이었습니다. 꼬박 나와 걱정을 같이 나누려 했습니다. 이런 선물은 실로 드문 것이었습니다.
Zen은 정신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어떻게 죽는 것도 가르쳐 줍니다. 마야는 우리 대화를 상기시키며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누군가가 슬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아마도 마지막에 가더라도, 죽음은 우리가 깨달고 수련하고 견디어 내는 것을 공유할 때 바꿀 수 있습니다.
(대일스님=데이비드 쥬니가는 한국선의 태고종의 첫 번째 미국인 성직자이며 Austin의 참선센터의 설립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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