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凡 김구 선생의 불교 · 기독교 · 천주교
김구선생의 키는 180cm다
저 시대에 180cm의 키는 상당히 장신에 속하는 키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키는 170cm로 당시의 대한민국에서 딱 평균키였다.
현재의 대한민국내에서도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또는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하지만 두 종교는 야훼 하느님 같은 신을 믿지만 약간의 방식과 교리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불교까지 섭렵했을수 있을까? 일단, 김구 선생의 호를 살펴보자. 김구선생의 호 백범 '백'자는 네 그 백정의 천할 백자가 맞다.
그리고 '범'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인을 평범하고 천한사람이라고 이름앞에 호를 둔것이다
김구선생이 백범이라는 호를 가진것이 30대의 어느날이라고 하는데,
그 즈음에는 김구선생이 기독교 교리에 심취했을 때다.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직접 천한 몸으로 마굿갓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본따서 만든 호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김구선생은 민족지도자로써의 넓은 아량과 포용력을 보여주는 분이다.
그리고 나라사랑과 오직 일생을 독립만을 추구하셨던 분이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소원을 묻거등 자신의 소원은 그저 조국의 해방이라고 세번이나 강조한 분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원래는 불교로 시작을 하였다. 마곡사 승려였다.
조선시대때는 천주교나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성인이 된 후 기독교 를 받아들인것이다 김구선생은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원불교 방문등 불교와의 연을 끊지 않고 지낸다. 김구선생은 아직 성인이 되기전 19세때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동학운동 당시 그의 도피를 도운 유학자 고능성이라는 사람에게 불교를 포교한다.
아니 가르침을 받는다.
그렇게 김구선생은 고능성에게 법경등의 교육을 받은 후 20세의 나이에 불교에 정식으로 귄의한다.
김구선생의 법명은 원종이다. 김구선생의 법명은 원종
김구 선생은 마곡사로 출가까지 했던 스님이다. 김구선생의 기독교 개종하게된 경위 그렇게 독립운동을 이어가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되고 약혼자도 급사를 하게된다.
그리고 그는 당시 서양문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번엔 우종서에게 감리교회의 소개와 전도를 받았고, 헌트 목사를 만나게 되며 세례까지 받게되었다.
이때 세례를 받으며 김구 선생은 기독교 교리를 받고 성경공부를 하게되었다.
김구 선생이 그뒤로도 기독교를 유지할 수 있었던것은 어디에서 나타나냐면
그가 11세 연하인 최준례와 혼인예식을 할시 주례를 미국인 목사가 섰고 예식 또한 기독교식으로 치렀다.
그랬던 김구선생이 어떻게 또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는가? 백범 김구선생은 모두가 알다시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선거이후 다음해 안두희에 의해 피살이 된다.
피살되어 죽어가던 김구선생에게 천주교 신부가 죽기전에 하는 대세 세례성사와 종부성사를 해주게 된다.
이렇게 김구선생의 마지막 순간의 종교는 천주교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냥 신부님이 세례성사를 준것은 아니다.
기록에 의하면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을 했던 김구선생에게 간호수녀들의 권고로 천주교 입교를 언약했다.
천주교에서는 죽음에 임박한자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즉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렸더라도 일말의 가능성을 두고 완전히 죽음에 이르지 않았음을
전제조건으로 세례를 준다.
즉 세례가 유효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포기하지않고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김구선생은 19세때 불교에 귀의를 하고
그 다음에 감리교로 개종을 하고
암살 당해 죽기전 천주교 신부에 의해 임종 세례를 받으며
최종 천주교로 마무리를 하게 된것이다. 현재 대한민국내 3대 종교인 불교-기독교-천주교를 모두 받아들였다. 하지만 김구선생이 암살로 죽기전 임종세례의 경우 그가 이미 자의적인 의지가 없는 상태여서
천주교 개종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도 있다.
김구선생이 감리교를 받아들였때쯤의 30대 추정 사진 하지만 김구선생은 그의 종교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알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종교를 숨기셨다.
그 이유는 자신은 종교에 걸림 없이 민족의 지도자로서 중도의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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