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천교회는 1908년 당시 진천교회의 김우일 신부와 수원교회의 구세실 신부가 병천 지역을 답사하고, 4월 10일 수원 교회의 부재열 신부가 점촌에서 도자기 공장을 운영하던 정관서 교우 댁에서 가정교회로부터 선교가 시작되었다.
다음 해에는 아우내 장터 근처에 대지를 구입하여 임시 성당을 마련하였으며, 계속 교인들이 늘어나 1912년에 여러 교인들로부터 대지를 희사 받아 현재의 성당이 있는 자리에 성당과 사제관 그리고 부속 건물들을 세웠으며, 그 뒤에 지금은 없어졌으나 1998년까지 있었던 문화재 급 한옥 성당은 1921년에 짓고 조마가 주교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부속 건물로 2동의 회의실이 있었는데, 교인들이 남녀별로 회의를 가졌던 때이다. 현재의 성당은 조미카엘(용환)신부가 관할사제로 있으면서 신자들의 정성어린 헌금으로 건축하여 1998년 6월 14일에 윤환 주교 집전으로 축성하였다.
또한 3.1독립운동 때에는 성공회의 많은 신자들이 항일 투쟁에 나서 활약하였는데, 성공회가 운영하는 진명학교(1908년 11월 구 세실 신부가 설립)의 교사와 학생들과 성공회 교우들이 수많은 태극기를 그려 만세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당시 이 운동에 참여하였던 사람 중에는 고 김태순(엘리아)신부와 고 강준희(애단)신부(사제가 되기 전 청소년 시절), 그리고 그 사제들의 선친과 그 선친의 형제들이 3.1운동을 선봉에 서서 주도하였다고 한다.
병천교회는 설립 때부터 1930년대까지 참으로 많은 신자들이 있었고, 약 100년 전부터 그 옛날 시골에 교육과 신문화운동 등으로 이 지역사회에 엄청나게 큰 공헌을 하였는데, 1931년 10월 21에는 46명이 견진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번창하였다.
병천교회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복지 향상을 위하여 의료혜택을 주고자 1970년 8월 25일 고 김종희 한국화약 회장이 희사한 병원건물(대지 600평)과 미국 성공회 어머니회 재단의 후원금으로 의료시설을 갖추고 성모병원을 개원 주민들에게 실비로 혹은 극빈자들에게는 무료진료를 실시하는 등 인술을 펴왔는데, 의사들의 농촌 기피현상으로 병원 운영에 어려움이 많아 80년대 초에 의료사업을 중단하였다.
현재 우리 성공회 병천교회는 하느님께 아름답고 경건한 장엄 예배를 드리고 영성이 깊은 교회가 되어 복음을 뜨겁게 증거하며, 사회선교를 위하여 노인들을 위한 "아우내 은빛복지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병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사회의 소외된 모든 분들을 위하여 "병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발족하여 부모가 장애인이거나 본인이 장애인인 분들과 소년가장 등 가난한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자 한다. 또한 이 지역에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도 도움을 두는 일을 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교회의 사명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교회입니다.
창립 100주년을 준비하는 교회!
병천교회는 1908년 영국선교사 김우일 신부와 구세실 신부 그리고 부재열 신부가 세운 교회로 병천 제1호 교회이다. 구세실신부(나중에 주교가 됨)는 1908년 11월에 진명학교를 세워 100여 년 전부터 병천 땅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최초로 시작하기도 하였다. 사실은 유관순열사가 진명학교를 다녔으며 진명학교의 추천을 받아 이화학당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모두는 병천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평안과 위로를 받고 있다. 이제 2008년에 맞는 우리 병천교회의 100주년을 준비하는 우리 모든 신자들의 마음은 지금부터 분주하기만 하다. 샬롬
대한 성공회 봉황리 교회 약사
우 마가 신부
1908년 병천교회 선교교회로 설립된 성공회 봉황리교회는 대전교구 선교교회 중 가장 깊은 역사를 가진 교회이다.
이 봉황리 교회에서도 선교 초기부터 "신명학당"을 세우므로 병천 진명학교와 더불어 병천면 내에서 가장 먼저 생긴 교육기관이었다고 한다. 병천이 고향이기도 한 고 김태순(엘리아)신부와 고 강준희(애단)신부(사제가 되기 전 청년 시절)는 신명학당의 교사로 후에는 명예 전도사로 학당의 발전과 교회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00여 년 전 그 당시 학생 60여명에 4년 과정이었던 신명학당은 일제 하 3.1독립운동을 가능케 한 민족 교육의 산실 역할을 해 냈다고 할 수 있다.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평신도들에 의하여 교회가 유지되어 왔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