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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선생이 가장 사랑한 쪽빛 계곡
백운계곡을 말할 때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남명 조식(曺植 1501~1572년)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영남 사림파의 거두였던 조식 선생은 합천에서 태어나 61세 때 백운계곡 부근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후학 양성에만 전념한 전형적인 선비다. 나라가 어려울 땐 상소를 올리며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명종과 선조 등은 그의 학덕을 높이 사 조정으로 거듭 불렀으나, 끝내 대자연에 묻혀 산 ‘산림처사’였다. 덕산에 살던 시절 조식 선생은 이 백운계곡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계곡 곳곳에 놓인 널찍한 바위에 앉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수려한 경치를 즐기며 풍류에 젖기도 하고, 나라 걱정에 시름에 잠기기도 했으리라. 완만한 계곡을 오르다 보면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영산펜션 간판 아래 바위에는 ‘龍門洞天(용문동천)’이라는 글씨가, 펜션 안쪽에는 ‘白雲洞(백운동)’이라 쓰여져 있다. 물줄기를 거슬러 가다 보면 ‘嶺南第一泉石(영남제일천석), 登天臺(등천대)’라는 글씨도 잇따라 만나게 된다. 용문천이라 쓰인 바위 왼쪽으로 조금 더 돌아가보면 ‘남명선생장구지소(南冥先生杖之所)’라는 글귀가 새겨진 바위도 볼 수 있다. 이는 남명 선생이 물에 발을 담그며 즐길 때 지팡이를 짚고 신발을 끌며 왔던 곳이라는 의미다. 조식 선생이 생전에 가장 즐겨 찾는 장소였으리라 추측된다. 조식 선생 사후 300여 년이 지난 19세기 말께 유림(儒林)들이 새겼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이곳에서 조식 선생은 ‘푸른 산에 올라보니 온 세상이 쪽빛과 같은데, 사람의 욕심은 그칠 줄 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도 세상사를 탐한다’라는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단성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집결 백운동 계곡 길 운리-마근담-백운동 삼거리 지리산 둘레길 마근담 가는길 정상 표지목 마근담 8각정 점심 백운동 계곡 빽-등물하기 백운동 계곡 폭포 들,, 용문동천-조식선생 흔적 용문천 남명선생 장구지소-지팡이 신발 벋은 자리 영남제일천석-남명 조식선생 흔적 “등천대(登天臺)” 신선이 되어 올라간다는 <등천대>이다. <등천대> 각자는 계곡바위 낙서의 그냥 쓰여 진 것처럼 흰 페인트 덧칠을 하지 않았더라면 전혀 알아볼 수 없어 손가락 끝으로 겨우 촉감을 느낄 정도로 글자의 마모가 아주 심하다. (고도 230m 정도, 계곡 우측 편에 있음) 같이 간 일행 중 제 눈에만 발견될 정도로 <등천대>라는 글자를 발견하지 못하면 주변의 각자 두 판은 눈에 잘 띄지 않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바위 색깔로 퇴색된 글자의 음영이 뚜렷하지 않는다. 등천대, 영남제일천석, 용문계원 3개의 각자가 있는 등천대의 계곡 풍경이다. (사진 중 계곡 우측 상부 돌출바위에 용문계원각자가 있음) 등천대 주변의 각자가 있는 위치 삼거리 다리-운리-마근담 산청 오부 선들재 식당 점심 선들재 인증샷 다음달을 약속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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