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수 ~~~~~
1930 년대 중반에 . 조선 가요사상 불멸의 기린아라고 일컬어지는 가수 남인수가 데뷔했다.
남인수는 1918 년 진주 태생으로. 본명은 최창수 (崔昌洙) 이다. 어려서 어머니가 재가해 강씨
집안 호적에 올랐기에 강문수로 이름을 고쳤음
보통학교 출신으로 전문적인 교육도 전혀 받지 못했으나 천부적인 미성에 더하여 노래에 대한
센스가 뛰어났다. 가수를 지망한 강문수는 서울로 올라와 레코드사를 찾아가 그자리에서 채용
되었다.데뷔곡은 " 눈물의 해엽 "이다.
레코드 판매가 대단하지 않았으나 강무수의 노래에 주목한 오케이레코드의 이철과 강사랑은 그를
설득해 스카웃트해 박영호.작사 손목인 작곡의 범벅 서룰. 돈도 싫소 사랑도 싫소데뷔 시켰다.
남인수라는 예명으로 등장한 그의 첫 히트곡은 1937 년 3 월 신보로 발매된 이생극장과 물방아 사랑 이었다.
세상이란 백사지 인생은 나그네/ 울며 웃는 한평생 야속스럽소/ 언제나 속절없는 설마에 속아서/
휘덤듬는 신세가 설기도 하외다/ 2~3절 약함,
달 쓰는 저녁에 지은 맹서가/ 꽃피는 아츰에 시드럿구려/ 쓴 세상 인정은 어린 것이냐/
울어야 오르냐~ 춘홍씨 웃어야 하랴/ 2~3 절 약함
남인수는 1937년 5 월 신보에서 유랑마차. ( 박영호작사. 손목인작곡) 천리타령 을 냈고. 그 해 말에는
북극의 오른손을 히트시켰다. 그리고 1938년 정월 신보에서 그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든
" 애수의 소야곡 " 발표 하기에 이른다.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 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차라리 잊으리다 맹세하것만/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 가슴에 손을 언고 눈을 감으면/
애타는 숨결마져 싸늘아고나/ 3 절 약함
애수의 소야곡의 판매는 놀라울 정도여서 매진된 레코드를 구하기 위해 레코드 회사 앞 여관은 전국에서
모여든 레코드 상인들로 만원을 이루웠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박시춘 남인수와 콤비로 "가거라 삼팔선"을 발표해 분단된 민족의 한을 노래했다.
이승만 정권 때는 연에게를 휩쓴 반공단체에 참가하지 않았고 1961 년 부터 시골에서 살았다. 만년에는
가요사 정리에 몰두했다고 하며. 1982 년 1월 22일에 68 세로 세상을 떠났다.
애수의 소야곡에 이어 1938년 3월에 "꼬집힌 풋사랑"이라는 인기곡 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