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문> 제4장 강증산의 유언
21. 하늘의 병풍
용화는 다 식은 차 한 잔을 마시고 ‘증산 선생유서’ 막바지 해석에 박차를 가했다.
“해와 달, 오성은 동서로 다니니, 동서는 해와 달이 다니는 길인 고로 동서는 두 개의 수도로 나뉜다. 남쪽은 불, 북쪽은 물인 고로 남방은 삼리 화다. 불은 발음상 같은 불인고로 남쪽은 오(午), 병(丙)은 남이니 병오 남에 불의 상이 나타나리라. 어둠을 밝히는 데는 불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불도가 가장 왕성할 때 서양의 금(金)세력이 가라앉느니라. 나무아미타불.
여기선 남북이 서울, 평양으로 두 개의 수도로 나누는 천지공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도란 지금의 불도가 아니라 미륵이 출세하여 만든 새로운 신불도를 말하는 겁니다.
유교 사서삼경의 도는 덕을 빛나게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고, 지극한 선에 이르는데 있는데, 이를 있는 자(것)는 선이요, 이룩하여 완성하는 자(것)는 성이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하고 안과 밖이 서로 길러져야 하며, 그런 연후에야 가히 큰 도라 할 수 있느니라.”
1년 360일 점차 수련을 하라. 1년을 1440으로 나누어, 그 일일은 집집마다 장1/4일(자,축,인,시)를 하루로 삼아라. 그리하면 집집마다 누구나 장수할 것이다. 천지에는 무궁한 복, 무궁한 재주가 있으니 하늘은 그 때를 놓치지 않으리. 그러므로 친절한 신명(미륵)은 절기를 분명히 알아보는 이가 주인이 되게 하였느니라. 여기엔 평시에 꾸준히 도를 닦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책에 보면 예전엔 도인은 산에 났으나 천지도수가 바뀌면서 민중들 속에 도를 닦는 시대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도 친히 백성들 속에서 천지공사를 보신 것입니다.”
『갑진년 10월 8일 3일 공사 3인(甲辰年 十月 八日 三日公事 三人)
소만부(小滿符)
천병(天屛)
사(巳)
그림:미륵탄생일
정해 4월 8일 병오(丁亥 四月 八日 丙午)
“갑진년(1904년) 수제자 김형렬의 딸 김말순의 만 14세가 되는 해 10월 8일에 세 사람이 함께 공사를 보다. 하늘의 병풍을 쳐서 미륵출세를 가린다. 여기에 도수가 숨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던 지천태의 눈이 반짝였다.
“출세한 미륵이 정해년 4월 8일 생이란 뜻입니까?”
조기자와 지천태의 눈이 일제히 용화 쪽으로 향했다. 왠지 심드렁하던 차법사도 고개를 돌렸다.
“소만부는 소만절 탄생일인데……제가 더 이상은 밝힐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도수 대목에서 또 못하겠다니 좌중은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여기에 미륵에 대한 모든 도수가 요약되어 있지요. 하지만 천기누설입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사람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늘의 병풍을 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지천태는 쓴 입맛을 다셨다.
“연속극 잘 보고 있다가 마지막 회 못 보는 거와 다를 게 없네.”
조기자는 아예 시비조였다.
“괜스레 변죽만 올리시깁니까?”
“신장공사도에 더 구체적인 미륵 도수가 나와 있지요. 출세할 미륵의 생년월일과 성씨까지 명시해두셨으니까요.”
“그래요? 그럼 이미 미륵이 출세해 있다는 뜻입니까?”
용화는 아무 말 없이 눈을 지그시 감았지만 긍정의 표시였다.
“모든 천지도수는 결국 미륵의 출세를 위한 것이지요. ‘미륵탄생공사서’에 분명 ‘사람을 써서 천지공사를 이룬다’고 되어 있었지요. 유서에는 단주의 명령을 전하는 기러기의 뜻을 받드는 인물이 성장공사도의 장신궁(長信宮)에 있다고 했구요. 그러면 장신궁의 비밀을 잠시 풀어볼까요.”
용화는 이번에는 신장공사도를 펼쳤다. 점점 깊은 늪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신장공사도 우측 서문에는 청조전어 백안공서(靑鳥傳語 白雁貢書)라고 쓰여 있습니다. 청조와 백안이 전하는 소식이란 뜻입니다. 이에 대해선 이미 서두에 을유년 해방공사에서 해설 드렸고……. 이제 백안의 미륵탄생공사 차례군요.”
조기자가 조바심을 드러냈다.
“설마 여기서도 천기누설이라면서 스톱하기 없깁니다.”
용화는 빙긋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신장공사도에는 오로봉(五老峰) 안에 장신궁(長信宮)이란 글씨가 쓰여 있고 그 안에 불상이 서 있으며, 그 몸체에 21수리(數理)로 추정되는 21개의 점이 찍혀져 있습니다. 장신궁(長信宮)의 글씨는 33획수, 즉 33수리로 구성되어 있지요. 이것은 33천(天) 도솔천을 의미합니다. 장신궁 안에 서 있는 사람형태의 불상은 도솔천의 주인인 곧 미륵불임을 추정할 수 있지요. 좌우 도합 12개의 갈대가 펼쳐진 이곳은 금산의 금곡 저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불상이 서 있는 구조물은 여러 가지 수리(數理)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4그루의 소나무와 9개의 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21로 설계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시천주 주문 21자와도 일치합니다.”
“미륵이 거처한다는 장신궁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합니까?”
“생전 상제께서 동곡약방 주인 김형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나보다 나은 사람일세. 자네를 먼저 찾아야 나를 알게 될 것이니 말일세’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상제께서 큰 뜻을 일부러 이 집 깊숙이 감추시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천태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물었다.
“동곡약방에 숨겨 놓았다는 겁니까?”
“그 때문인지 동곡약방은 1,909년도에 상제 어천 후 차경석과 고부인이 찾아와서 약방의 벽지에 붙은 상제 시와 약장과 방바닥의 먼지까지 쓸어간 일이 있었죠. 이것은 동곡약방의 기운을 싹쓸이하여 대흥리로 옮겨가는 의미가 되지요. 그 기운으로 인하여 고부인은 대흥리에 초창기 종교단체를 만들었고, 훗날 차경석은 보천교를 만들었지요. 그러나 장신궁은 동곡약방이 아니라 출세한 미륵이 거처하며 천지공사를 보는 곳이라고 생각 됩니다. 결국 누가 미륵이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주인 없는 동곡약방은 헛껍데기일 뿐이지요. 지금도 서로 동곡약방을 차지하려고 애쓰고들 있지만 주인의 도수는 성장공사도(誠章公事圖)에 이미 정해놓으셨습니다.”
“출세한 미륵의 이름이라도 나와 있다는 겁니까?”
넘겨짚는 조기자의 예측에 용화가 흠칫했다. 몇 번 헛기침을 하고 해설을 이었다.
“생년월일이 나와 있지요. 성장공사도 우측 서문에 수양매월 만고유풍(首陽梅月 萬古遺風)이라 쓰여 있습니다. 수양(首陽)년 매화 월 생(生)에게 만고로부터 전하여 내려온 도맥(道脈)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이 8개의 글자에도 역시 도수가 설계되어 있지요. 글씨 전체의 획수는 79획이고, 앞의 4자는 36획이 나오는데 신장도 그림 백안(白雁)의 양 날개에 찍힌 36개의 점(點)과 일치하지요.”
“이 획수를 일일이 세어보셨다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상제님 한 획 한 획에 따라 천지도수가 좌우되니 한 점이라도 소홀히 할 수 있나요.”
“그 말씀은 만약 해석에서 한 획이라도 틀린다면 천문 해석이 틀린다는 뜻도 되겠네요?”
“물론이지요. 한 획도 어긋나지 않게 치밀하게 설계된 것이 천문입니다. 여기 연도와 월일이 나와 있습니다. 한번 찾아들 보시겠습니까?”
지천태가 몇 번을 훑어보았지만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보아도 숫자는 안 보이는데요?”
“눈앞에서 보아도 보이지 않게 하늘의 병풍을 쳐놓았다고 했지 않습니까. 때가 되어야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조기자는 안경을 벗더니 손수건으로 슥슥 닦았다. 용화는 의기양양해하게 해설을 늘어놓았다.
“수양(首陽)은 양(陽)기운, 즉 천간의 머리라는 뜻으로 왼쪽과 오른쪽 그림의 요철 돌출부분에 7개와 9개가 나오므로 천간지지로 계산하면 곧 경신년(庚申年) 도수가 산출됩니다. 즉 미륵불은 경신년 생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수양에 핀 매화와 반달은 월과 일입니다.”
“몇 월 며칠인가요?”
“매화는 4월이고 반달은 7.5일 즉 8일이 됩니다. 경신년 4월 8일 생이지요.”
“그래요? 혹시 증산 선생 유서 말미에 등장하는 4월 8일 그 일자와 같은 건가요?”
“미륵탄생공사서에 뭐라 되어 있었습니까. ‘천지인신 유소문, 문리접속 혈맥관통’이라. 그 문의 이치를 서로 접속하면 혈맥이 관통하여 흐른다. 모든 천문이 한 장이나 다름없다는 걸 사람들이 그동안 몰랐던 게지요.”
조기자와는 달리 지천태는 붙임성 있게 질문을 이어갔다.
“성장공사도 안에 비석과 글자는 무엇을 뜻합니까?”
“그 비석에는 천지사풍이제원(天地使風夷齊院)이라 쓰여 있지요. ”
“이제원이 뭡니까?”
“그건 일종의 암호문자입니다.”
“그래요?”
이번엔 용화가 천기누설 운운하며 빼지 않고 선선히 풀이를 했다.
“이제원(夷齊院)의 이제(夷齊)는 ‘사람의 목을 베어 끊고, 멸하여 없애는 집’으로 귀신을 제도하는 곳으로서 멸살 당함을 건지는 집이기도 합니다. 해원공사, 적멸공사를 보시는 곳이지요. 상제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시며 인류 선악을 심판하는 집이기도 했고, 장차 미륵불이 출세하여 억조창생들의 생사를 점고하는 옥황후비님의 거소라는 뜻이 됩니다.”
“땅위의 집은 아닌 갑네.”
조기자가 퉁명스럽게 추임새를 넣었다.
“천지사풍이제원(天地使風夷齊院)에도 도수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일곱 글자로 된 절문(節文)의 수리를 분석하여 종합하면 天(10數), 地(12數), 使(18數), 風(16數), 夷(14數), 齊(19數),院(17數) 모두 106수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106도수도 의미가 있나요?”
“7개의 암호 문자에는 미륵이 천명(天命)을 받는 시기가 들어 있습니다. 천명을 받는 연도, 날짜, 시간 등이 설계되어 있지요. 그러나……아직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밝힐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알 수가 있지요.”
“결국 본인이 풀어보라는 말씀이군요.”
용화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장신궁과 이제원은 같은 장소를 말합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제(夷齊)’의 절문 수리의 합은 33이 되는데, 신장도의 장신궁(長信宮) 절문 33수리(數理)와 서로 일치하고 있지요. 말하자면 장신궁과 이제원은 같은 장소가 되는 것이지요. 현재 이곳에는 많은 의통, 인패가 보관되어 있는데, 장차 병겁이 올 때 사용하려고 하늘에서 준비해 두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궁금하시겠지만, 그 장소 또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무슨 천기누설이 이다지 많은 겁니까?”
조기자가 참다참다 마침내 불만을 터뜨렸다. 지천태는 좀 더 끈기가 있었다. 조기자는 심드렁해 하는 반면 지천태는 흠뻑 빠져 있었다.
“예장공사도는 무엇이지요?”
“천지 성경신(誠敬信) 가운데 경(敬)에 해당하는 규범인데, 경은 예(禮)와 같아 예자가 되었지요. 우측에는 ‘낙출신귀 천지절문(洛出神龜 天地莭文)’이라 되어 있습니다. 천간지지 24절기의 역리법칙이 들어 있지요. 예장공사도는 일명 귀마일도(龜馬一圖)라 합니다. 그림 안에는 북현무를 상징하는 신귀(神龜)와 용마를 하나의 역상(易象)으로 만드는 법도가 계시되어 있지요. 그런데 귀마일도의 거북 등에 그려진 낙서도(洛書圖)와 그 아래 하도(河圖)는 기존의 것과는 다르게 배치되어 있어요. 낙서의 동방 3.8목이 3.6으로, 하도의의 3.8목이 4.8로 변경되어 있지요.”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러한 문을 천지절문(天地節文)이라고도 하는데 역리의 이치를 그린 것입니다. 역리가 변경되었다는 것이지요. 상제님께서 새로운 천지공사를 보았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설명 드린 천지공사가 바로 그것인데, 귀마일도는 천문을 요약한 총론쯤 된다고 할 수 있지요.”
“왜 변경했을까요?”
“우주의 가을로 들어서는 후천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지요. 후천 우주운행 도수가 선천과 같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절후를 바꾼 것이지요.”
“우리 같은 범부들은 아예 접근도 못하게 꽉꽉 잠가놓았군.”
“그러니 천문이지요. 인간이 하늘의 말을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