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탈출하면서 ‘일상탈출’이란 카페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카페에서 추진한 여행에 함께 따라나섬)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나서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 그리고 자연을 만나면서 그 속에서 좀 더 깊은 사색으로 나를 찾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다.
나를 찾아 나서기 위한 작은 몸짓은 지나간 겨울에 남편의 제지로 한차례 늦추어 졌다. 둘째 아들의 대학이 결정되기 전이었는데 내가 계획한 여행은 아들의 대학문제로 내 욕심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그냥 내려놓기가 아쉬워서 난 이렇게 반항마저 했었다.
“아들은 아들의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것이란 말야~!”
무산된 겨울여행은 여름을 한없이 기다리게 했고 휴가가 주어지자 나는 곧장 일상을 벗어나 나를 찾아 나섰다.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에 비해 이동수단으로 배를 선택했다는 것은 또 다른 감흥을 주었다. 푸른 대한해협&현해탄을 속도를 거스르는 여행이 되어 여유를 더해주고 있었다. 느린 여행이다. 일상탈출은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하는 흥분제였으니 넓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마음을 가라앉혀 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이왕 느린 여행을 하기로 했으니 문명의 이기이자 때로는 구속이 되어버리는 전자기기 휴대전화도 쉬도록 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로 여유로운 여행길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로밍을 해오지 않았던 점을 스스로 높이 사본다. 여행은 익숙한 것과 이별을 하고 낯선 것과의 만남이 되어야 한다. 부산~후쿠오카를 잇는 카멜리아호에서 내리니 아침부터 더위가 일본을 삼켜버릴 듯이 햇볕이 뜨겁게 쏟아졌지만 즐거운 여행이 되고자 하는 마음들이 더욱 뜨거웠기에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우리에게 일본은, 일본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
이 풀리지 않는 난제 앞에서 해답에 힌트를 적절하게 주셨던 최??가이사님은 재미있고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일본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제시하게 했다.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카멜리아호를 기다리는 동안에 ‘조선통신사’라는 소식지를 읽었다. 조선통신사를 재현하는 모습과 관련 유적지들이 실려 있었다. 조선통신사의 뜻을 기리는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에서 발간한 책이다. 올해가 조선통신사 400주년이 되는 해란다. 일본 문화의 뿌리는 분명코 한국이지만 일본민족은 한국에서 얻어갈 것과 배워갈 것을 철저하게 챙겨서 일본에 맞도록 연구하여 확실하게 일본 것으로 만들어 오늘날의 강대한 일본을 만들었다. 배에 오르며 조선통신사의 기상을 생각하니 일본으로 향하는 기분이 왠지 우쭐해졌다. 아무리 현재상황이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더라도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질 않은가! 나는 조선통신사의 마음으로 일본을 내려다보리라.
일본은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 가서, 도자기 산업을 일으켰고 일본 도자기는 100년도 안 돼 유럽의 식탁을 점령할 정도로 번성하여 도자기 무역으로 일본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줬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2년 전부터 북유럽 여행을 목적으로 매달 일정금액을 나에게 모으며 송금해 오던 친구로부터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며 그동안 모은 돈의 전부를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를 알게 된 나는 친구에 대한 실망과 섭섭함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냈다. ‘겨우 가방을 사려고 그 돈을 깨고 그러냐!’ 고….
요즈음 일본 백화점의 ‘70%세일’ 정보는 일본사람보다 한국 사람들이 먼저 알고 달려온단다. 엔화가 떨어지면서 쇼핑관광이 넘쳐난다고 하더니 내 주변 사람도 동참한다는 사실에 조금 슬프기까지 했던 것이다. 일본 백화점 세일 상품까지 휩쓸어 가며 일본에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에 못마땅해 하면서 떠난 일본여행이라 더운 날씨에 음료수 하나 빼먹으면서도 왠지 아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도자기나 가방 같은 형이학적인 물질들은 좋은 것을 취하고 싶은 마음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되니 더 이상 속상해하지 않기로 하자. 어차피 문화는 우수한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있다. 문제는 정신이다. 정신은 돈으로 살수 없는 소중한 우리의 것이니까 말이다.
일본 여행 중에 텔레반에 인질로 잡혀있던 목사1명이 살해되었다는 슬픈 소식은 종교나 이념 같은 형이상학은 수천 년이 흘러도 동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혹여 머리 아프게 여행후기에 머리 복잡한 철학적인 말이 등장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에 철학은 중심을 잡고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해 주는 중요한 것인데 이번 여행에서 운 좋게도 멋진 가이사를 만났다. 우리의 귀를 처음부터 끝까지 열어준 가이사 님은 철학을 전공한 분이었고, 역사와 문화에도 박식하여 즐거운 여행길에 알찬 동반자가 되어주셨다.
우리가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은 현재에서 과거를 만나는 일이다. 단순히 과거를 만나는 것에서 끝난다면 높은 점수의 여행이 되지 못한다. 과거를 통해 가깝거나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어야한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게 보는 것이다.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만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면 값진 여행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유행처럼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는 역사를 접할 때가 있다.
튼튼한 과거의 토대위에 현실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하루하루 접하는 문제들을 허술하게 넘겨버려선 안됨을 절감한다. 늘 아쉬운 점이 토론문화가 발달하지 못하고 토론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우리나라는 협상에서 줄 것 다 내어주고도 제대로 챙겨오지 못하는 것을 보며 속상해하곤 했다. 협상의 귀재들을 길러내어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왜 일본이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는지 곰곰이 따져보는 여행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열린 눈으로는 일본을 쉽게 보되, 가슴으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어렵게 찾아보고 싶었다. 내 여행의 목적은 가까이에서 가이사님께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기에 이 기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여행은 돌아오기에 즐겁다고 했던가.
떠남은 실은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떠남은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서 살려내고, 내 영혼에 새 옷을 입혀서 돌아오는 일이다. 한없이 사소한 집착과 욕망과 물질적 소유 등의 일상에서 잠시 떠나 객관적인 나를 찾아서 영혼을 살찌우고 더욱 생기발랄하게 돌아오는 일이다.
돌아오는 뱃전에서 이글거리는 불볕 태양아래 일렁이는 속 깊은 푸른 바다를 본다.
즐겁게 출렁이는 나를 본다. 나를 찾아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면서…….
[ 참고 사항 - 여행 경로 ]
제 1일 : 카멜리아 선내숙박
제 2일 : 후쿠오카 ‘태재부천만궁, 하우스텐보스
제 3일 : 미즈나시 혼진(화산의 위력), 구마모토성, 아소 활화산, 사루마와시 원숭이 극장
제 4일 : 일본 정원
첫댓글대단하십니다.무한한 도전에 경의를 표하고 싶네요. 저도 요즘 들어 이것저것 많은걸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늦기 전에 더 늦기전에...... 번데기에서 나방이 되기가 이렇게도 힘이 들고 용기도 없네요.ㅠㅠ~ 깊은 뜻이 내포된 글 잘 읽고 갑니다.아무쪼록 선아님의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무한한 도전에 경의를 표하고 싶네요. 저도 요즘 들어 이것저것 많은걸 생각해 보게 되더라구요,늦기 전에 더 늦기전에...... 번데기에서 나방이 되기가 이렇게도 힘이 들고 용기도 없네요.ㅠㅠ~ 깊은 뜻이 내포된 글 잘 읽고 갑니다.아무쪼록 선아님의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산골님..더운데 어찌 지내시나요? 여행은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게 사실이랍니다. 무한도전에 문을 열고 나와보세요. *^^*
여행하는 동안 덥지는 않았는지요.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공간만이 탈출해 있을 뿐일 때가 많지요. 여행도 일상으로 만들어버리면 낭만이 없어져서 멋이 없을까!!!
많이 더웠어요. 일본여행은 아무래도 겨울이 훨씬 좋겠습니다.
넵..저도 너무 반갑습니다.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소중하고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