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
이 재 천
지금으로부터 상당히 오래된 일이다. 그러니까 88올림픽이 열리기 4.5년 전으로 기억 된다. 그때 나는 가정에 우환이 있어 가슴 속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도시의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만기가 되어 진안 마령고등학교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그해 2월말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따라 진눈개비가 내리는 고개를 돌고 돌아 진안 마령에 도착해 보니, 정말 깡촌 이었다.(그때는 오지 중에 오지였음) 내가 살고 있는 전주에서 출퇴근 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 하였다. 학교를 사표 내고 전업을 할까하는 생각으로 몇 날을 뜬눈으로 밤을 지세웠다. 어쩔 수 없이 식구들을 데리고 마령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였다. 3월인데도 진안지역은 고원 지대라서 식수까지 얼어붙고 집은 시골의 날림 집이라서 외풍이 아주 심했다. 그때는 정말 심난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학교에 출근하여 순박한 학생들과 생활하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정이 들었으며 심난했던 것들이 봄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나를 더 정겹게 만든 것은 시간이 날 때마다 봄에는 산나물을 캐고 분재를 만들려고 분재나무를 채취하려 산으로 동분서주 했고, 맑은 1급수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을 즐겼다. 달 밝은 밤이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선생님들이나 주민들과 냇가 자갈밭에서 밤새워 물고기 매운탕을 안주로 술을 마시며 풍류도 즐기곤 하였다. 나는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자연과 동화된 생활을 하였다. 사표를 내지 않고 근무하게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내 가슴 속의 응어리 진 몸살은 이렇게 풀려갔다.
그러나 내가 정작 쓰고 싶은 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우리가 살던 집은 울타리가 생나무로 되었는데 그 사이에 제법 큰 산수유나무가 있었다. 그 산수유나무는 겨울의 끝머리에 노란 꽃을 피우고 봄을 불러 왔다. 내가 제일 좋아 하는 꽃 이었다. 그때 우리 딸이 서너 살쯤 되었는데 추위에 떠는 산수유 꽃만큼이나 외롭고 애처로웠다. 뒷산 계곡에서 흐르는 실개천 가의 바위에 앉아 외롭게 혼자 소꿉장난을 하다가 내가 직장에서 점심을 먹으려 집에 오면 “아빠”하며 반기는 천진함이 천사를 보는 듯 했다. 그때 내 아내는 가정에 우환이 있어 딸을 알뜰히 돌볼 처지가 아니였고 나는 나대로 생활 했으니 우리 딸이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지금도 죄스러워 마음이 아프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딸은 심성이 착하고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정서가 풍부하고 인정이 남 달리 많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예수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천사와 같았다. 딸이 말을 잘 않는 편이라서 늦게야 안일이지만, 중.고등학교 다릴 때에는 학교가 끝나면 밤 늦게 까지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집에 왔으며,대학교 때에는 기독교 동아리의 리더로 활약 하기도하였다. 결혼 할 나이가 되니 여러 곳에서 중신이 들어 왔다. 조건이 좋은 자리도 있었는데 모두 싫다고 한다. 누가 말했듯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 졌다. 끈질기게 성직자와 결혼을 고집하여 지금의 사위인 이 목사와 결혼하여 서울에 살고 있다.(나는 사모의 길이 힘들어 반대했음) 10개월 전에 아기도 낳았다. 항상 맑고 명랑한 목소리로 잘 살고 있다는 전화가 와서 내 마음이 놓이고 편안 하였다.
그런데 유난히도 추운 날 딸이 아기를 대리고 갑자기 전주 집에 나타났다. 거기다 연년으로 둘째아이 까지 임신 하여 파김치가 되어서 왔다. 딸의 피곤하고 지친 모습을 보니, 마령 살던 집의 울타리에 피는 산수유 꽃을 보는 것 같아 애잔함에 가슴이 아프다. 사람은 지치고 힘들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몇일 동안 아기를 아내에게 맡기고 쉬더니 자기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전주로 전학 온 뒤로 마령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며 한번 가보고 싶다고 조르기에 내 승용차로 그때 살던 추억어린 동네와 딸이 다니던 학교 등을 한바퀴 돌아 왔다. 딸은 고향에 조금 더 머물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의 그리움이 반절은 풀렸다고 했다.(아기 때문에 거기서 더 있을 시간이 없었음) 아버지 노릇을 어느 정도 한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잠든 깊은 밤, 딸과 아기가 평화롭게 잠든 모습을 확인 하고 앞으로 딸의 평안한 삶을 기원하며 아래와 같이 詩를 써 본다.
딸(희망)
아기가 아기를 낳았다
내 딸이 넉넉한 엄마가 되었다
서운함을 사랑으로
지치고 피곤함을 기쁨으로
노란 미소가 흐른다
가냘픈
산수유 꽃이 잔설을 녹인다
가깝게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2008. 12월
첫댓글 애조롭고도 애잔한 사연, 감동이 서립니다.. 그 정서가 깃든 시에 가슴이 잔잔해집니다..
산수유 같은 딸의 이야기,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행복한 세밑과 희망이 넘치는 새해를 맞이하기를 빕니다.
왠지모를 눈물을 쏟아놓게 하십니다! 가슴 깊은곳까지 울려주는 감동의글 잘읽었습니다. 어쩌면 시골 뒷산과 냇가에서 어린따님은 가장 큰가르침을 받았을 겁니다. 잔설을 녹이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 으로 어머니로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옵니다.
노오란 산수유 꽃 향기 같은 아릿한 마음이 듭니다. 사랑과 보람으로 키운 딸이 그 아버지 뒤를 이을 것이고 오래토록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리라 기대합니다. 봄이 오는 길목의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