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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정론직필
KAL기 폭파 비밀문서…김현희 범행에서 사면까지
[연합] 입력 2012.07.19 05:19
'B.H. WON'으로 표기된 이 담당자는 서울시간 오전 11시 30분 현재 항공기가 실종 상태라고 밝힌 뒤 탑승자 가운데 미국 시민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으며, 115명의 승객 가운데 외국인은 레바논과 인도 국적 2명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로부터 사흘뒤인 12월 3일 항공기 내 폭발물 설치 가능성과 함께 문제의 승객 2명이 이라크에서 탑승했다는 소식이 워싱턴DC 국무부로 전달된다.
▲"한국, 테러동기에 의아" =
송한호 당시 남북대화사무국장은 미 대사관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연말로 예정된 한국 대선에서 야당의 승리를 원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는 여당(=노태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송 국장은 아울러 이듬해 여름으로 예정된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런 고강도 테러를 감행한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ㆍ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당시 사태를 계기로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당시 야당 후보인 김영삼, 김대중 진영이 북한 위협을 평가절하한 데 대해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美 김현희 직접 조사 =
이들은 미 정보당국이 확보하고 있던 북한 공작원 26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접촉인물을 확인토록 했다. 이에 김현희는 베오그라드와 부다페스트에서 접촉했던 인물 3명을 지목했다.
또 이와 별도로 중앙정보국(CIA) 산하 외국방송정보서비스(FBIS)를 통해 김현희의 기자회견 발언의 성문(聲紋)도 분석했다.
이에 앞서 마인자 초나 주중 잠비아 대사는 '김현희가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명확한 증거를 요구했으나 미측은 독자적으로 확보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를 반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보복 검토 안해 =
특히 전 전 대통령은 한국이 정권교체기인데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군사작전 가능성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외교전문은 전했다.
▲김현희 재판, 사면 = 외교전문은 김현희의 재판 과정과 이를 둘러싼 희생자 가족들의 반발 등도 비교적 자세하게 전했다.
1988년 4월 전달된 마지막 전문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소식을 전하면서 "이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면서 "김현희와 같이 북한공작원이 된 것을 후회하는 사람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대한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김현희를 KAL기 희생자들과 같이 '북한정권의 희생자'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908/8799908.html?ctg=1300
KAL 858 기 사건이란 상당히 낡은 것으로 알려진 비행기에 주로 중동노동자들을 태운 것으로
알려졌는데......하필이면 1987년 대통령 선거를 불과 얼마 앞두고 발생한 대형사건으로서
여러 논리모순적 정황증거들로 인해 자작극이라는 의혹을 받는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1987년도는 한국사회에 민주화 열풍이 엄청나서 당시 야당 후보들이었던
김대중, 김영삼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엄청났었지요. 그래서 당시 여당이자 현재 새누리당의
전신 정권의 후보인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보장하기 어려울 정도였었지요.
그리고 바로 그 사건으로 당시 전두환 정권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여 실제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요.
그래서 그 때 희생된 사람들의 유족들은 단체를 만들어 오늘날까지도 그 진짜 진실을 규명하라고
정부당국에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KAL 858 기 사건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1분 바그다드에서 출발하여, 승객 115명을 태운 KAL858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방콕과 최후 교신 뒤 실종되었다. 11월 30일 현지조사반을 급파한 관계당국은 인도양과 벵골만 상공에서 공중폭파 가능성 시사.
12월 1일 아랍에미리트 주재 한국대사관은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린 요주의 인물 남성1명, 여성1명을 검거하였으나, 음독자살을 기도하였다고 발표.
12월 7일 바레인에서의 수사를 종결하고, 정부는 북한의 88 서울 올림픽 대회 방해 공작으로 사건 분석. 12월 11일 KAL858기 잔해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나, 12월 15일 미국방성은 KAL858기 잔해가 아니라고 보고.
12월 16일 대통령 선거 실시. 안기부 주관으로 하치야 마유미 신상확인 조사 착수.
1989년 2월 3일 서울지검은 김현희에 대해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
1990년 3월 KAL858기 잔해를 발견.
1990년 3월 27일 김현희에 대해 대법원의 사형선고.
1990년 4월 12일 김현희에 대한 사면 조치
이 사건으로 북한은 2008년 9월까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다.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
한국정부의 수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회 일각에서는 사망자들의 시체 미발견 등의 이유로 당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 블랙박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안기부에서 일부를 폐기하였다는 설 주장)
-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고 사망자의 시체와 유품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 당시 국가안전기획부(現 국가정보원)이 매우 빠른 속도로 수사를 종결처리하였다.
- 사건 당시 항공기 동체를 찾지 못하다 2년 반이 지난 1990년 3월에야 잔해가 발견되었지만, 국과수 감식결과 폭발흔적을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안기부는 증거반환요청을 하지 않아 유일한 증거인 항공기 동체는 1995년에 폐기처분됐다. 이 때문에 현재 증거는 사라진 상태이다.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D%95%AD%EA%B3%B5_858%ED%
미국이 현재의 시점에 위와 같은 비밀문건을 공개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상당히 의아하군요.
원래 Kal 858 사건에 대한 미국의 비밀문건이 밝혀지면
김현희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러면 한나라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어
현재의 새누리당에 매우 불리해질 것이라고 흔히 예견되던 문건이죠.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김현희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김현희 Kal 858 사건이 그렇게 다급한 국제정치적, 국내정치적
사건도 아닌 것 같은데..... 왜 하필 현재의 시점에 그런 문건이 공개된 것일까요?
바그다드에서 탑승
당시 이라크의 바그다드는 북한의 외교적 무대가 아니라
미국의 외교적 무대였지요.
왜냐면 당시는 이라크가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이란과 전쟁을
벌이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1979년 7월에 정권을 장악한 사담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년-1988년)을 일으켰으나,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승부로 끝났다.
북한으로서는 사실상 "적국"에 해당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한 요원들이
탑승한다? 많이 이상하네요.
'B.H. WON'
원모씨라는 한국계 미국인이거나 미국을 위해 일하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군요.
접촉했던 인물 3명을 지목
Kal 858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김현희는 북한에서의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 조차도 제대로 지목하지
못해서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지목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단지 김현희의 손가락 지목에 의해 그녀가 진범이라고
믿고 있는 셈이로군요. (별로 그렇게 신뢰성이 있어 보이지 않네요.)
성문(聲紋)도 분석
김현희의 발음이 북한말투라고 해서 북한출신이 틀림없다고
미국이 추정한다는 말인데.....그러나 연변 등지의 조선족동포들의 발음도
북한 말투와 거의 동일하지요.(따라서 확실한 증거로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이네요.)
주중 잠비아 대사는 '김현희가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
좀 의외로군요.
엉뚱하게 주중 잠비아 대사가 의혹을 제기하다니...
잠비아가 당시 북한과 가까웠던 것일까요?
그나저나 당시 미국이 독자적으로 확보했다는 증거들이 무엇인지
지금 공개하면 될 것인데 말입니다.
한국, 보복 검토 안해
헐.....그것도 많이 이상하네요.
당시 여론에 의하면 대북 보복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엄청난 대북보복 주장 여론들이 있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물론, 대선 때문에 즉시 보복은 곤란하다고 할지라도
대선 후 보복을 다짐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예컨데, 연평도 포격 후에 대북 보복을 다짐하지 않았나요?
다만, 미국의 제지로 결행을 못했지요.
그런데 KAL 858 사건 때만해도 일반 국민들의 반북감정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엄청났었지요.
따라서 연평도 포격 사건 보다도 더욱 격앙되어 보복 운운했어야만
할 것이라는 말이지요.
백악관 전 보좌관 "한국, 연평포격 후 대규모 보복 검토"
회고록서 "게이츠 前국방, 전작권 전환 연기에 난색"
기사입력 2012-03-08 오후 6:10:24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308180321§ion=05
이는 이미 예상됐던 일
북한공작원이 된 것을 후회하는 사람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대한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것
간첩사건들을 조작해가면서까지도 사람들을 잡아 죽였던 과거 독재정권들이
반공강연에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살려주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그 사건의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를
입증해 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예컨데, 불과 얼마전 탈북했다가 재입북한 어느 할머니의 재입북 동기에 대해서도
남측 찌라시들은 그녀가 자진월북을 한 것이 아니라, 북측당국의 공갈협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만일 남측 찌라시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북측은 단지 주민선동을 위한 강연에
그녀를 동원하기 위해 날조된 자작극을 벌이고 있는 셈이 되고 맙니다.
즉, 그녀 재입북의 진실은 북측당국이 주장하는 내용이 아닌 셈이 되지요.
역으로, 남측이 아무개를 살려두고 반북강연에 동원한다고 해서, 남측 당국의
주장이 반드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증거능력 불충분)
암튼, 관심있는 분들은.....희생자 유가족들이 도대체 왜 그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며, 그것도 무려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러고 있는 것인지 한번 검색을 통해 찾아 보세요.
"KAL858기 한국인 탑승객 더 있었다"
가족회.대책위, 12가지 구체적 새로운 의혹 제기
2004년 03월 16일 (화) 13:58:00
이와 관련해 일본 '주간신조' 87년 12월 17일자는 "안기부 요원 2명과 서울로 가기로 예정돼 있던 11명의 외무부 관계 한국고관이 아부다비에서 내렸다"는 보도를 낸 바 있다.
신동진 (유가족회) 국장은 "115명으로 맞추려고 임의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 한국 사람이 더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고, 탔다가 내린 밝힐 수 없는 한국 사람이 분명히 더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사고 비행기의 이륙시간과 폭파장치 조작시간이 언론보도와 안기부 발표, 김현희 수기에서 계속 바뀐 점, 김승일이 죽고 김현희가 묵비권을 행사중인 시점에서 '9시간 뒤 폭파'라는 보도가 나온 점 등에 의문을 제기했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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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만 5번…KAL가족회는 여전히 의혹 제기
2012.06.26 20:19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26/2012062602377.html?tv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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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국 땅에서도 ‘KAL기 사건’ 못 놓는 까닭
[특별기고] 9년째 ‘KAL 858기 사건‘ 진상규명 작업 매달려온 신성국 신부
2012년 06월 21일 (목) 10:03:26
내가 ‘KAL858기 사건’과 인연을 맺은 것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5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KAL858기 가족회 임원들을 만났다.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어머니들의 외침은 내 양심을 뒤흔들어 놓았다. 남편을 잃고, 남동생을 잃고, 딸과 아들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피눈물을 흘리며 15년을 살아온 그들의 슬픔과 아픔이 나를 진상규명 활동에 끌어들인 결정적인 동인이었다. 또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넘어 한반도 분단이 가져온 민족적 비극과 불행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된다는 시대적 고민도 한 이유였다.
사건 진상규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참으로 곡절도 많았다. 2003년 10월 초순에 국정원 직원 두 명이 나를 찾아와 이 일에 손을 떼라고 강요했다. 그 다음으로는 교회 내부로부터 강한 압력이 들어왔다. 그러나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찾으려는 나의 의지와 노력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힘겹고 외롭고 고달픈 일이었지만 신앙인으로서 내가 믿는 절대자에게 끊임없이 기도하고 의지하며 인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3년여 동안 KAL858기 희생자 가족들 곁에서 혼신을 다해 일했고, 나름대로 성과도 거두면서 보람도 많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교회에서 나를 돌연 해외(미국)로 발령을 낸 것이다. 그로 인해 국내에서의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활동은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 이후 현재 캐나다에 3년째 체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새로운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사건 진상규명 활동에 결정적인 큰 소득과 반전의 계기를 꼽는다면, 2007년 10월에 법원의 정보공개 청구에서 승소하여 ‘KAL858기 사건’ 관련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 김현희 진술서 등을 확보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사건 발생 20년간 수사기관이 공개하지 않은 수사 관련 자료들을 입수한 후 사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분석작업을 거치면서 안기부와 검찰의 숱한 거짓들을 낱낱이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김현희 진술문과 수사 기록들은 한국 수사기관이 얼마나 많은 거짓과 조작으로 국민들을 속였는가를 명백하게 입증하는 증거물이 돼 버렸다. 파면 팔수록 끝이 없는 거짓의 기록을 들추며 나와 KAL858기 가족회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미리 말씀드려 둘 것은 오늘 이 글을 시작으로 <진실의 길>을 통하여 그들이 숨기고 감춘 범죄의 실체를 하나하나씩 밝힐 것을 독자여러분께 약속드린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현희는 남은 여생을 희생자 가족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거짓이었고 오히려 그들을 배신하고 외면하였다. 또한 자신의 범죄를 속죄하고 참회한다고 대국민 약속을 하여 대통령 특별사면까지 받아 혜택을 누렸던 자가 지금 다시 TV에 나와 자기가 무슨 영웅인양 행세하는 모습은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을 모독하고 우롱하는 후안무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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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는 ‘역사의 증언대’ 앞에 나서라
[기획연재-1] 신성국 신부, KAL858기 폭파사건을 다시 묻는다
신성국 | 2012-07-03 10:37:24
끝으로 만일 내가 공개 토론회의 패널로 참가한다면 김현희에게 반드시 묻고 싶은 질문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한다.
1. 김현희는 공민증 번호를 비롯한 다양한 북한의 신분증 번호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이 질문의 이유는 피고인 김현희의 신원조회와 관련하여 김현희가 북한 인민임을 입증하는 공민증(주민등록증) 번호와 노동당증(김현희는 노동당 정당원이었다고 발표함), 평양시민증 번호가 수사기록에 모두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국정원 조사에서 북한 인민 신원조회를 위해 공민증 번호와 북한에서 가입하고 활동한 단체의 증명서 번호들을 진술한다. 피해자 가족들은 김현희의 북한 신분증 번호가 전혀 없음을 의심하고 있다.
2. 김현희는 자신이 KAL858기 폭파를 했던 테러범이라고 했는데 왜 폭발물 이름을 모르는가? 검찰 신문조서를 보면 “폭발물 전문가 김문호(경찰)가 라디오에 사용된 폭약은 컴퍼지션 4로 추정되고, 액체 폭약은 테러범들이 통상 사용하는 PLX로 추정되며...”라고 나와 있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김현희는 7년8개월간 대남 공작원 교육을 받으며 군사 훈련, 폭파 훈련, 간첩 통신 훈련 등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자신이 KAL858기에 설치한 폭약의 이름도 모를 수 있는가?
3. 안기부와 김현희가 국민들에게 불신의 원인을 제공한 것 중의 하나가 ‘화동(花童)’ 문제이다. 김현희가 중학교 1학년 때인 1972년 11월 2일 남북조절위 2차 회담 때 남측 대표인 장기영에게 꽃다발을 주었다고 진술하였다고 안기부가 발표하였다. 그러나 2008년 10월 하순 김현희는 이동복(북한 민주화 포럼 상임대표)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이동복에게 꽃다발을 주었다고 증언하였다. 김현희의 수도 없는 말바꾸기와 오락가락한 진술은 그 스스로가 가족회 어머니들의 불신을 자초한 것이다.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8&table=sk_shin&ui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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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허위경력 문제는 김현희 일대기 전체를 수정해야 하는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김현희가 당시 북한사람으로서 실제로 학교를 다녔다면 당연히 개편된 학제에 따라 학력이 기재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안기부는 1972년 당시 북한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학제를 적용하였다.
만약 수사기록이 김현희의 진술에 따라 작성되었다고 한다면 결국 김현희는 북한의 변경된 학제와 학년도 모르는 사람으로 판단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오류로 밝혀진 수사기록과 판결문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25년동안 김현희 경력으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김현희의 파트너 김승일에 관한 문제도 지나칠 수 없다. 김승일은 1984년 9월 21일부터 26일까지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 투숙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1984년 8월 15일부터 9월 20일까지 1차 해외실습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김승일은 한국 김포공항으로 입국한 적이 있다.
안기부는 김승일이 ‘하찌야 신이치’라는 일본인으로 변신하여 위조여권을 갖고서 남한에 입국하였다고 발표했는데, 이 대목과 관련해 꼭 짚어봐야 할 점이 하나 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인들이 일본 여권으로 한국에 입국할 경우 반드시 여행 비자를 발급받아야만 했다. 따라서 김승일은 당시 한국 정부로부터 여행 비자 허가와 발급을 받고 입국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일본인으로 변신한 북한 공작원이 어떻게 남한 입국이 가능했는가? 또한 김승일의 서울 호텔 숙소를 예약을 대행해준 사람은 타이 항공사에 근무하는 'Miss. H. Park'으로 최근에 이 인물이 남한 여성임이 확인된 바 있다.
국가보안법이 서슬 퍼렇게 살았있던 그 시절, 남한 여성이 북한 공작원의 한국 입국을 돕고, 또 서울의 호텔 예약까지를 대행해준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안기부는 그간 'Miss. H. Park'에 대해 수사를 한 적도 없었고, 또 그간 어떤 해명자료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안기부 수사기록에서 오류 투성이와 허위사실들을 발견할 때마다 지난 25년 동안 KAL858기 가족회 어머니들이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목놓아 외치는 이유를 필자는 마음 속 깊이 동의하게 된다. 필자가 이 일에 나선 것도 바로 이같은 진실을 향한 노력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8&table=sk_shin&uid=6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List.php?kcat=2018&PHPSESSID=
eb1c1cdd7be8ed4915a7335c7b5f68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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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참고사항
http://cafe.daum.net/kal858notice/ (의혹 진실규명 사이트)
[[기사]] KAL858기 폭발물 적재 장소는 바로 한국?|▶네티즌의 의혹 제기!!!
사무실을 찾아간 기자에게 서현우 팀장이 가장 먼저 보여준 자료는 그 유명한 '화동 사진'을 확대 인화한 것이었다.
일본공산당 기관지 사진기자 하기와라 료가 찍은 문제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에 당신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김현희가 "어! 선생님 이 사진 어디서 나셨습니까? 저희 집에 있는 거랑 똑같네요"라고 말했다는 문제의 그 사진이다.
문제의 사진 속에서 김현희가 자신이라고 지목한 인물은 평양외국어학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희선이라는 사람으로 밝혀졌고, 안기부가 다시 김현희라고 지목한 인물에 대해 정희선은 '김송희'라고 주장한 바 있다.
국정원 진실위는 하기와라 료의 촬영 필름 전체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사진이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하면서 "김현희가 왜 두 차례나 자신이 아닌 소녀를 자신이라고 진술했는지에 대해 김현희가 진술을 거부한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얼버무렸다.
서 팀장은 "김현희 스스로 자기가 아닌 사람을 자신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김현희의 다른 진술들은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지적했다.
서 팀장이 보관하고 있는 사건 수사기록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자료에 포함된 김현희의 '자필' 진술서에 김현희가 지장을 찍고 수정한 부분으로, 김현희가 북한 출신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어서인지 대부분 한국식 표현들을 북한식으로 수정한 것이다.
김현희 자필 진술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수정 부분은 '규율'이라고 썼던 것을 '규률'로 바꾼 것처럼 두음법칙을 수정한 경우로, 노태우→로태우, 영수증→령수증, 여권→려권 등은 굳이 수정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특히 '팬티'라고 쓴 것을 '빤쯔'라고 고치는 등 한국식 외래어 표현을 북한식으로 고친 부분이나, 김승일씨→김승일 선생, 부장→부장동지, 영희 아빠→영희 아버지 등 북한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표현들을 북한식으로 수정한 것이 많이 발견됐다.
서현우 "김현희, 자기가 아닌 사람을 자신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다른 진술들은 어떻게 믿을 수 있나"
그밖에 한국인→남조선 사람, 한국 외교관→남조선 외교관 등은 일본인으로 위장했던 김현희가 북한은 물론 일본에서도 익숙한 표현인 '조선'이라는 국명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http://cafe.daum.net/kal858notice/Ne6y/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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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al858.or.kr/ (시민 대착위)
가장 확실한 진실은....김현희가 직접 북한에 가서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확실하게 입증해 보이면 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할런지?
그나저나.....
한국의 대형사건들에 미국이 개입되지 않은 사건이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겠지만....
미국이 왜 현재 시점에서 그런 문서를 공개한 것인지...
그 이유가 가장 궁금한 점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