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조재형 신부)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지성과 이성, 감성과 오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러한 능력을 이용해서 공간과 시간을 끊임없이 확장해 왔습니다. 사람의 손은 짧지만, 도구를 만들어 손이 닿는 공간을 넓혔습니다. 중략)..... 사람은 글을 통해서 시간도 확장했습니다. 우리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플라톤의 글을 읽고 공자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불경과 성경을 읽으면서 오래전 사람들의 지혜와 신앙을 만납니다. 그렇게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 인간이 이제 인공지능을 만들었습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자료를 학습해서 사람의 질문에 답합니다. 저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공지능에 물어보곤 합니다. 앞으로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인공지능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에 사람과 비슷한 몸을 만들어 주면 ‘휴머노이드’가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휴머노이드를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중략)...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창세기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며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당신을 닮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얼굴이나 몸이 하느님과 비슷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선과 악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희생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 얼마나 성공했는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철학과 문학의 눈으로 보아도 인간은 단순히 먹고 살아가는 존재를 넘어섭니다. 인간은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무엇이 옳은가?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감동하고,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어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진리와 아름다움, 사랑과 영원을 향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도 아닙니다.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맹자는 인간의 마음속에 선을 향한 네 가지 씨앗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사단(四端)’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양보하는 ‘사양지심’, 잘못과 악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비지심’입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네 마음을 온전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중략).... 어쩌면 맹자가 말한 이 네 마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새겨 놓으신 당신 모습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특별히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기억합니다. 이주민과 난민은 여러 이유로 정든 고향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전쟁을 피해 떠난 사람이 있고, 박해를 피해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 사람도 있고, 가족의 미래를 위해 낯선 나라로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든,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피부색이 어떠하든 모두 우리와 똑같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중략)
저 역시 한국을 떠나 이곳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주민의 마음을 조금은 압니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운지 압니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너희가 나를 따뜻이 맞아들였다.” 예수님께서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당신을 환대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주민과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단순한 사회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입니다.
....중략)
우리도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다가가고, 어려운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이주민을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난민의 아픔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신앙은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오늘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이하며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낯선 사람 안에도 하느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주민과 난민 안에도 하느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할 때 우리 안 하느님의 모습도 더욱 아름답게 드러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