鈍功(둔공)ㅡ>현충일의 맹세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태백'이 한 때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붓을 꺾고 유랑을 한적이 있었다.
유랑하던 어느 날
산중 오두막집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집주인 노인이
큰 쇠절구를 숫돌에 열심히 갈고 있었다.
이태백은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갈고 계십니까?" 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네. 바늘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어느 세월에 그 쇠절구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려는지...
이태백은 노인의 행동이 답답하고 미련해 보였지만,
노인은 계속해서 쇠절구를 열심히 갈고 있었다.
한참을 그 모습을 보던 이태백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다시 붓을 잡았고, 이후 대문호가
될 수 있었다한다.
아마 노인의 행동이 무망한 일일지는 몰라도 둔공을 들이는 그 과정만은 소중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실현되는 것이라 볼수 있다
필자가 1987년 백화점 파산 후 회사출근도 곤란하여 노숙자 생할 비슷하게 할즈음 놀기도 심심하여 꼭두 새벽에 일어나 숲속 공터에 배드민턴장 닦기위해 삽질을 시작하였다
구청에서 마련해준 큰길 옆 운동장보다는 바람에 민감한 배드민턴운동에는 바람을 막아줄 숲속이 필요했던차 마침 공원부지 안에 약간의 비탈진 공터가 안성맞춤이라 여겨져 무작정 둔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 산책 나온 주민들이 뭐 할거냐고 물어와서 체육관을 지을거라고 하자 모두가 이상한 눈초리로 가당찮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매일 몇개월간 하루 3시간씩 흙을 퍼내고 푸대에 흙을 담아 축대를만드는등의 노력으로 코트장하나가 완성단계까지 이를 무렵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꼭두새벽에 현장에나기보니 간신히 쌓아놓은 축대가 훼손되어있고 닦아놓은 운동장에는 간이 의자까지 놓여져 있었다.
알고보니 구청녹지과 직원들이 몰려와서 공원부지라 운동장 사용을 막으려고한 조치임을 금새 알수 있었다.
공원훼손으로 고소고발 대상이라는 경고장까지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김병관이가 아니었다
곧바로 구청으로 달려가서 구청장을 만나 설득하여 기존의 수목은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장을 사용하라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
허락과 동시에 포크레인을 불러 약간의 무리수를 해서 두 코트를 완성 운동환경이 좋아지자 회원들이 증가하여 두 코트로는 수용이 되지 않았다.
코트장 20여 미터 산아래에 큰 웅덩이가 있어 늘 물이 고여 있었는데 그곳을 흙으로 메워 운동장을 증설하기로 작정 미사리로 가는 흙차들을 유인하여 200여 대의 흙을 받아 코트장 3면을 증설하는데 성공하였다.
모든 회원들이 기뻐하고 푸른 잣나무가 울창하여 靑松크럽이라 이름하여 새벽부터 하루종일 주민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 공로 덕분인지 강동구 연합회장에 이어 40대에 서울시 연합회장까지 역임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실내체육관이 없어 야외에다 비바람막이를 회원들이 오밤중 공무원들 눈을 피해 설치하고는 철거반과 싸우느라 목불인견이였다.
회원들의 호주머니 돈으로 설치한 비바람막이 철거현장에는 낙심한 회원들이 눈물을 쏟기 까지 하였다.
행정관청에서 국민의 갈망을 채워주지도 못하면서 부당한 규제만 능사라 당시 고건 시장을 만나 특유의 설득력으로 규제완화지치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변두리의 우사나 돼지막사 허용과 같이 체육시설 설치를 허용한 것이다.
가는곳 마다 비바람 막는 간이 체육관이 등장하여 하루종일 회원들이 북적거리다보니 취사를 하는등 외관 정비도 부실하여 일반 주민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간에 나라살림살이도 늘어나 철거를 조건으로 현대식 체육관을 지어주는 방향으로 선회가 되었다.
김병관이가 1987년 체육관을 짓겠다고
허풍을 친 청송클럽도 예외없이 첫삽을 떤지 30년만에 근사한 체육관이 들어서는 기적아닌 기적이 이루어졌다.
어느 세월에 하냐고요?
뭐든지 옳은 일이라면 지금부터 하면 됩니다.
재능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요?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도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여기면 물러설 이유가 없고 용기가 충천할것이다.
오늘은 현충일 49년전 159명의 전우가 순직하였으나 부끄러운 역사라 나라에서 외면한 위령탑도 사고후 33 만에 건립한 것도 포기하지 않는 김병관과 전우들의 열정 때문이다.
또하나의 둔공을 드릴 소재가 나타났다.
며칠전 6.25 최대의 격전지 낙동강 박진전투 현장을 돌아보고 낙동강 하천부지에 세계 평화공원과 참전국 민속관을 지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저에게 눈을 뜨게 해주신 구순의 안경홍박사님(초대문교장관 안호상박사 장남)의 숭고한 열정에 감사하면서 필생의 과업으로 작정하고 둔공을 들여볼 작정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낙동강 방어선 이제는 인류의 문명사를 바꾸는 성지로 바꾸어 볼 작정이다.
오늘 뜻 깊은 현충일 현충원으로가서 호국의 용사들과 159위 동기들의 영령들에게 간곡한 마음으로 빌어볼 작정이다
2023 6. 6
현충일 날
불기산의 법률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