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 점자동화책 기부한 대전구봉고등학교
*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69호에서 발췌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의 첫걸음으로 기억하겠습니다”
한 해 국내에서 출판되는 책은 약 6만여 권이다. 그중 점자책의 비율은 0.7%에 불과하다. 특히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동화책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그래서 시각장애 아동은 읽고 싶은 책이 아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야 한다.
지난 9월 대전구봉고등학교 1학년 학생 23명이 점자동화책 10권을 제작해 대전시청각장애특수교육지원센터에 기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4개월간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아동용 대상 도서를 선정하고 점자로 번역한 것.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장서윤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가 무엇인가요?
A. (장서윤 교사) 학교에서 장애인식개선을 주제로 교육을 종종 진행하는데, 그때마다 영상을 주로 활용하는 게 아쉬웠어요. 장애인에게는 실제 도움이 되고 학생들에게도 뜻깊은 경험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교내 특수교사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면서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동화책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고,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선생님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무사히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A. (장서윤 교사) ‘나는 개다(백희나)’, ‘괜찮아(최숙희)’, ‘돼지책(앤서니 브라운)’ 등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되는 책 위주로 골랐습니다. 아이들이나 부모님으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책이기도 하고요. 작업은 모둠별로 책 한 권씩을 맡아 진행했습니다.
Q.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A. (김영찬 학생) 저는 매달 두 번씩 어르신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시각장애인을 돕는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었고,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작업이라기에 재미있을 것 같아 참여했어요. 그런데 대전맹학교에서 장애 체험을 하면서 제가 장애에 대해 얼마나 이해가 부족했는지 깨달았습니다.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시각장애 아이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어 점자동화책 제작에 더욱 최선을 다했습니다.
A. (소은채 학생) 저 또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더불어 살기’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막연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했는데, 점자가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 처음엔 힘들었어요. 동화책 내용을 라벨지(투명 스티커)에 직접 찍어 해당 페이지에 부착하는 작업을 했는데, 점자에는 정자뿐 아니라 약자가 있다는 걸 알고는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Q. 학생들이 참 대견스럽습니다.
A. (장서윤 교사) 그렇습니다.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어 프로젝트 내내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프로젝트는 자율 활동으로 진행됐어요. 특수교사 선생님으로부터 점자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학생들 스스로 유튜브를 통해 점자를 공부하고 익혔습니다. 점자를 처음 접할 때에는 재미있어하다가 막상 점역 작업에 들어가니 너무 어렵다며 당황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A. (최준식 학생) 특수교사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점자일람표를 보고 점필로 하나하나 찍는 작업은 정말 어려웠어요. 눈으로 확인해보니 오탈자가 많더라고요. 검수 작업을 도와주신 특수교사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힘들었던 만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요?
A. (조승아 학생) 책을 만들면서 ‘이건 그림을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때가 많았어요. 예쁜 그림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데 점자로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어요. 시각장애 아이들이 우리가 제작한 점자동화책을 읽는 모습을 봤는데,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이런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길 희망합니다.
A. (조혜원 학생)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사람만이라도 노력한다면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식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앞으로 비슷한 활동을 더 해볼 생각입니다.
Q. 프로젝트 참여 후 달라진 점이나 바라는 점이 있나요?
A. (김수인 학생) 배리어프리 제품에 관심이 생겼어요. 의외로 세탁기나 밥솥 같은 가전제품에는 점자 표기가 없더라고요. ‘그럼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사용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최근에는 터치 기능을 활용하는 가전제품이 늘고 있는데, 오히려 시각장애인은 사용하기가 더 힘들다고 해요. 대학에 진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할 계획인데, 훗날 가전제품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면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할 겁니다.
A. (김수현 학생) 저는 건축공학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건축물에 점자 표기가 있는지 살펴봤는데, 좀처럼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만약 제가 건물을 짓는다면 꼭 사회적 약자를 고려해 설계하고 싶어요.
Q. 앞으로 제2의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를 계획하는지요?
A. (장서윤 교사) 한 학생이 점자 번안이 어려웠다면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점역에 특화된 키보드를 개발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장애를 불편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바람직한 사회 발전을 위해 교사로서 할 일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장애인권 공감 프로젝트는 일회성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활동입니다. 다음에는 오디오북 제작을 국어과 수행평가로 진행해볼까 합니다. 우리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이런 활동이 전국 곳곳에서 꾸준히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