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강해3 매주일10시생방송🍚(막12 41 44,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P8KTz3VUrus?si=M_dHXDd7v7N3H4-d
말씀:
[막12:41-44]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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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40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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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읽기:
3. 정성과 사랑이 담겼음
(고후8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마22 37 38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히11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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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주품이 주석:
과부의 헌금은 생활비 전체라 하였고 생활비 비오스는 삶, 생명, 생활을 의미한다 하였습니다. 과부의 헌신은 즉, 전심을 다하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 생명, 생활의 모든 삶을 온전히 하여 정성 다해 드림으로 그녀의 예배는 아벨의 예배였던 것입니다. 제가 전에 마지막으로 쫓겨났던 교회를 감히 또 말씀 드림을 양해 구합니다. 저 보고 자기 방식으로 설교 안함 쫓겨 버리겠다던 여집사는 사실 중등부 교사였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녀의 중등부가 가인의 예배였던 것은 아무도 그 중등부를 찾는 자들이 없었던 거였습니다.
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온라인 유트브 찬양과 예배를 준비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이미 온라인 예배를 구축하던 저에게는 너무 쉬운 과정으로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을 하였고 주일학교 중등부 교사경험과 6년간 아이들을 셔틀 학원 차량을 운행하며 전도 하였던 저에게는 아이들에게 어떤 설교 어떤 예배가 유익한가를 알았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배, 설교를 준비하였기에 아이들의 수는 점점 늘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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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그 여집사는 단 한명(가끔 한두명 제외요)도 중등부 예배를 찾는 학생도 없고 온라인 예배를 중등부에 권면을 하여도 할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저의 주일 학교 예배를 드리러 오는 현상도 벌어졌습니다. 중등부 학생이 한명도 없으니까요 그런 준비도 안되도 교만한 마인드로 사람을 대하니 학생들이 찾지도 않고 오히려 중고등부 학생들이 저의 예배를 온라인으로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시기가 작렬하고 예배당 문앞에서 벼르고 트집 잡고 담임 목사를 전부터 선동하여 결국 제가 내쫓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잠9:13-18]
13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14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15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16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17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18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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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집사는 예배를 거저 먹으려는 강도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대비하여 온라인 예배 구축을 저에게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 비판만 하고 있었고 날마다 자신들이 맡은 중고등부와 청년들이 사라지는 것은 기초 신학의 부재로서 당시 신천지들이 창궐하고 지금도 진화론에 녹아 사라지는 청년들의 믿음을 깨우쳐여만 하건만 기초신학과 진화론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가르치는 저에게 저보고 너무 새롭다고 듣기 싫다고 따져 달려드는 시기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진심 전심으로 삶에 녹아져 열심히 준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저렇게 훼방을 당하고 그곳 담임 목사님도 저의 억울한 상태를 아는 것 같으나 같은 교회 소속이라고 자기들 편을 순전히 드는 것을 보고 제가 그냥 사과 드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신기한 사실은 그 여집사의 사태의 심각성을 아셨는지 그날 오전 설교 담임 목사님의 설교는 그녀와 그의 남편을 비방하는 설교였습니다. 그날 본문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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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1: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고전14: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딛2: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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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2 5절을 넣는지 안넣는지는 잘 기억은 안나나 여튼 이런 내용들 이었습니다. 그 여집사 남편이 게이같이 머리가 길어 똥꼬까지 닿았고 오랫동안 그 부부는 교회에 있던 터주대감인가 하도 잘난척 이리저리 나대니 교회가 시끄러웠나 봅니다. 잘 아실 겁니다. 어느 교회나 교만한 터주대감 집사 가정들은 꼭 있습니다. 만만한 부교역자들 찾아가서 트집 잡고 가르치고 싸움 붙이는 자들이 있죠 어디가나 이런 말쟁이들이 사라지면 그 공동체는 평안이 옵니다...
우리는 두렙돈의 과부같이 정성을 다하는 예배를 드리는 아벨과 같이 정성과 생명과 삶과 겸손을 다하는 예배로 열납되어 드리는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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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절,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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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뜰은 제사장의 뜰, 이스라엘의 뜰, 여인의 뜰, 이방인의 뜰등으로 나누이며 헌금함은
13개의 연보궤 중에서 9개는 성전세와 제물을 위한 헌금, 4개는 성전 수리와 장식을 위한 헌금함이라 합니다. 요즘 교회당에 들어서면 수많은 제목의 헌금봉투가 섞여 있는 것을 봅니다. 아무래도 고대부터 시작이 된거라 여겨지네요 다음은 제물을 위한 헌금이라는게 눈여겨 들립니다. 당시 양과 소의 제사라 하여도 성도들이 그곳까지 가지고 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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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헌금으로 드리고 제사장은 양과 소의 제사 보다는 헌금을 가져다 성전과 성전 생활을 위해 씀으로서 번잡한 희생제사를 대신 하였을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안 믿는다면서 어떻게 구약의 제사가 이루어지는가 화면상으로 여행하는 목사님들이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제사드리는 것을 거의 못 보았을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보시다시피 제물을 위한 헌금 즉, 제사를 대신하는 헌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점점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런 편의성은 이어지어 지금 양소제사가 거의 사라지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헌금의 제사라도 온전히 인간의 죄를 씻지 못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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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절,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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렙돈은 이스라엘의 화폐단위 고드란트는 로마의 화편 단위로서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렙돈은 호리로도 성경은 비유를 합니다.
(눅12 59 59 네게 이르노니 호리(한푼)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호리3, 毫釐
명사1. *자 또는 저울 눈금의 호(毫)와 이(釐).
2. 매우 적은 분량의 비유)
사실 성경 원어에는 호리나 한푼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의역을 한거 같습니다. 그리고 호리의 의미는 저울의 자에 한 눈금을 얘기한다라는 것을 오늘 처움 알았네요 그러므로 1cm 나 1mm같이 작은 길이를 의미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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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과부의 전심을 다하는 예배는 저울 눈금의 작은 호리같이 작은 것에도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마음의 작은 양심에도 부끄러움이 없이 살았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 깨끗한 삶의 예배를 그녀는 헌금함에 넣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흠없는 예배, 믿음과 사랑 소망의 삶의 예배를 하나님께 향내가 나며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그녀는 자신을 지금 바라보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주님을 신뢰하며 드리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반드시 열납되는 예배의 순간인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순전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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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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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헌금이 열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 구절들에 힌트가 있습니다.
[대상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시37:4-7]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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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주께로 말미암은 것 주님께 맡기는 예배를 드리었기 때문입니다. 겉모습만 보는 대제사장 앞에 드려봐야 눈총을 받을 것이지만 예수님 앞에 드리는 헌신은 마음 중심을 보시고 예수님의 말씀의 현장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맡기고 그녀의 전심을 다한 헌신을 멸시하지 않으실 것을 그녀는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당당히 예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저는 종종 저의 채널을 구독하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천국의 티켓을 얻으셨네요라고 축하합니다. 이는 빈말이 아닙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 활공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선택하여 영생을 우리가 같이 향하기에 진심의 축하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순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작은 헌신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티켓을 경멸히 여기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는 복과 영생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하여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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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절,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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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1:2-3]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과부의 헌신은 하나님의 감동과 능력을 허락 하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중동의 사태는 예수님 없는 지금의 이스라엘로 인해 확전이 더합니다. 하지만 미국과 기독교국은 협력을 모색합니다. 그리고 이란의 이슬람은 평강이 없어 모든이와 다툼을 더합니다. 이 평강과 다툼의 둘 사이의 중심에는 주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이 활공교회나 세계의 정세는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은혜를 받아 영광과 덕을 끼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 다툼이 아닌 영광과 덕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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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으며 바라며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의 보혈로 드리는 우리 삶과 우리 노래도 우리 하나님께 나아가서 열납되는 예배가 되도록 날마다 십자가의 교제 십자가의 찬양 십자가의 섬김, 십자가의 전도가 되어 효과적인 우리의 인생이 되도록 날마다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성령님의 9가지 열매 맺어 상급과 칭찬이 있는 나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