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7호
멋진 감동, 불쾌한 신파극
그리고 한국 영화
박 은 서
영화 <부산행>을 볼 때, ‘한국 영화가 이 정도까지 발전했구나.’라고 감탄하며 시작하다가 ‘역시 한국 영화구나.’라고 말하며 끝난다고 한다. 추석 특선 영화로 <월드 워 Z>와 <부산행>을 연속으로 본 나는 이 말을 한 번 더 실감했다. 물론 <월드 워 Z>는 거시적 관점으로 극을 진행하고 <부산행>은 미시적 관점으로 극을 진행한다는 것을 감안해도, 후자 영화의 끝은 너무 감동적으로 만들려고 한 경향이 강했다. <월드 워 Z>의 끝을 한 번 보자. 주인공 제리(브레드 피트)와 그의 가족이 재회하는 장면을 보면 누구나 가족의 소중함과 감동을 느낀다. 따로 감동적인 장면을 넣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이 울컥하게 된다.
‘신파’라고 한다. 본래 그 단어의 뜻은 상투적이며 과장된 연기라는 뜻인데, 오늘날에는 개연성을 무시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넣어 눈물 나도록 만드는 억지 감동을 뜻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히려 불쾌감을 조성하고 극을 망친다. 눈물이 났어도 왠지 모를 찝찝함을 남긴다. 한국 영화에서는 이러한 신파적 요소가 특히 더 잘 드러난다. 위에서 언급한 <부산행>은 물론이요, <판도라>, <군함도>도 마찬가지다. 후자의 두 영화 모두 중간중간 거슬리는 무언가(사투리/역사왜곡) 때문에 조금씩 불쾌하다가 마지막 신파 장면에서 불쾌감이 폭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다.
어제(8일) 본 영화도 신파적 요소가 섞인 영화였는데, 조정석, 도경수(EXO의 D.O.), 박신혜 주연의 영화, <형>이다. 이 영화는 아쉽다. 코미디 영화임을 표출하고는 있지만 2퍼센트 정도 부족한데다가 신파적 요소들도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끝의 감동을 표출하기 위한 개연성과 복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B급 코미디에 묻혀 그것들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관객들은 의아하고 어색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경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형을 생각하는 장면은 눈물이 나고 코끝이 찡 하긴 하다. 다만 이 감정에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남아버려 약간의 불쾌함이 생긴다. 꽤 재밌게 봤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주연이라서 더욱 아쉬웠다. 그러나 미모가 열일하는 박신혜와 폼 나는 조정석, 그리고 대지의 힘을 다루는 디오의 연기는 아쉬움 없이 매우 좋았다.
나는 감동이란 요소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요소는 작품을 만들 때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고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감동시킬 수 있다. 어쩌면 인간과 감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관객 마음을 움직이도록 설정한 작가와 감독도 멋지고 캐릭터에 공감하여 진짜 자기 자신처럼 표현한 배우들도 멋지고 작품 속 인물에 공감하여 눈물 흘리는 관객도 멋지다. 감동은 멋진 것이다.
감동이 멋있는 것임을 알기에 많은 감독들과 작가들이 이 요소를 집어넣는다. 확실히 감동이 있는 작품은 멋있는 작품이 되고 양질의 작품이 될 수 있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너무 그것을 추구하다간 감동은커녕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신파라는 것이고 작품을 망치는 것이고 멋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감독과 작가는 기억해야 한다. 감동은 좋고, 멋있지만, 신파는 불쾌하고, 안 멋지다는 것을. 이것을 기억한다면 더 양질의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