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계동 62
-그러니까, 어디로 갈거냐고?
-그러게, 막상 모텔로 가려니까 기분이 묘하네.
-그렇지? 사람이 직업을 속일 수는 없나봐
-어디 모텔 말고 없을까?
-정말, 어디 가까운데 펜션이라도 있거나 아니면 콘도라도 있으면 좋겠네.
-언니! 우리 그러지 말고 숙소로 갈까?
-어디! 네 숙소?
-그래.
-야! 거기를 내가 어떻게 가니? 물론 안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럼 할 수 없지 뭐,
-차라리 호텔로 가자.
-호텔?
-그래! 그게 좋겠다. 잠을 자는 거야 마찬가지겠지만 아무래도 그게 낳겠다.
-그럼, 어느 호텔로 갈까?
-가능하면 인계동에서 먼 곳으로가
-그러자! 그럼 택시를 타야겠네.
술기운에 대충 샤워를 하고 수면실에 올라가니 일행은 먼저 샤워를 하고 수면실에서 자고 있었다. 진철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를 않는다. 하긴 대리기사를하면서 자신도 모르
게 야행성이 된 것 같았다. 잠시 누웠다가 일어나 휴게실 옆에 붙은 피시 룸으로 들어가 동전을 넣고 카페를
살폈다. 벌써 부지런한 회원이 정모 후기 글을 올려놓았고 잘 들어갔다는 인사 글과 댓글이 적지 않게 올라
와 있었다. 마우스를 조금 밑으로 내리니 사진 방에도 불이 켜있다. 정성스럽게 찍은 행사 사진이 꽤나 많이
올려져 있었는데 사진을 살펴보는 진철에게는 인정의 사진만 눈에 들어온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이번 모임을 준비하는데 인정의 도움이 컸다. 선물을 준비해주었고, 참석하는 회원들의
명찰을 걸어 주었으며 식당에서도 다른 회원들이 식사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해
주었다.
문득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던 인정의 모습이 그려진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다른 여
자 회원들 보다는 훨씬 잘 부르는 실력이었다. 전철 안에서 느껴지던 인정의 머릿결이 지금도 진철의 몸에
와 닫는 기분이다.
‘참 밝고 구김살이 없는 여자야,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그렇고, 미리미리 생각해서
챙기는 것도 그렇고, 어쨌든 좋은 회원을 알게 되어서 잘됐어. 다음에 만나면 운영자를 해 달라고 해 보아야 하겠
어.’
진철은 카페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휴게실로 나왔다. 군데군데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
습이 정겹게 눈에 들어오고 한 쪽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진철은 다시 잠을 청
하려고 수면실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누군가 코를 심하게 골아댄다. 눈을 감았지만 코고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청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고, 누군가 코고는 소리에 잠이 깼는지 욕을 한 마디 하고 옆으로 돌아눕는다.
진철은 다시 일어나서 매점에서 캔 맥주를 사들고 휴게실 뒤편 야외 흡연 장으로 가서 담배를 피워 물고 맥
주를 딴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시는데 문득 명혜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왜, 갑자기 명혜가 생각날까?’
지난 번 명성 시에 가서 명철을 만난 후 진철은 명혜를 찾는다는 것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저 우연이
라도 찾거나 만나게 되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는 명혜에 대한 기억을
가능한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썼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잊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떠오른것이다.
‘그래, 명혜도 지금 인정씨 나이 정도는 되었을 거야, 하지만 명성에서 그렇게 아픈 상처를 입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린 명혜가 그 상처를 잊고 잘 살고 있을까?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 정도 남겨두고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졸
업은 했을까? 아니 졸업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짖다. 만일 졸업을 하지 못했다면 변변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어느 공단의 어떤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생산직으
로 일하다가 그런 일을 하는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었을지도 모르지.’
명혜에 대한 상상을 하기 시작하자 상상은 꼬리를 물고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혹시! 잘못 되었다면? 만일 변변한 직장 생활도 하기 어려워서 다방이나 술집 같은 데서 일을 하게 되었다면?
밤의 여자, 수많은 남자들에게 웃음을 파는 직업. 술꾼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몸으로 돈을 버는 일을 한다면?’
진철은 대리를 하면서 보았던 그 많은 밤의 여자들과 명혜를 연결시키기 되자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하였
다.
‘차라리 카페에 공개적으로 명혜를 찾는 글을 올려볼까? 혹시 명혜를 아는 사람이라도 그 글을 보게 된다면 그
러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명혜가 고아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면? 나도 그러면 고아라는 사
실을 들어내야 하고, 명성보육원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만일 명혜가 남편과 아이가 있는 가정주부가 되어있다면?’
일곱 살 작은 몸매의 여자 아이가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 흔들리는 어깨가 눈에 선하게 다
가온다.
진철은 담배를 끄고 일어선다. 10월 하순의 밤바람이 으스스하게 몸을 떨게 만들고 있었다.
-어머! 냉장고에 맥주도 들어있네, 땅콩하고. 역시 호텔이구나.
진우가 샤워를 하고 난 후 냉장고를 열어보면서 놀라워했다. 그렇지 않아도 후론트에서 체크인을 하면서부
터 깔끔한 사복을 입은 여자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올라오는 도중에도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으며 걸
음 걷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박양을 보면서 귓속말을 했었고 객실에서도 옷장과 소파를 보면서 돈 값어치
가 있다고 하더니 냉장고를 열어보면서도 또 놀라워하는 것이다.
-그게 뭐 놀랄 일이니?
-어머! 언니는. 그럼 그게 안 놀라워? 욕실에 들어가 봐! 바디샴푸 샴푸 린스도 있고 타월은 또 이렇게 온 몸
을 감기에 넉넉한 대형 타월이 있지 않나. 수건 숫자도 그래, 저녁에 샤워하고 아침에 샤워해도 수건이 남겠는
걸. 아참! 언니는 신혼 여행 때 호텔에 가 보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