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9)
2009-11-09 13:34:38
제 268차 민주지산 정기산행기
1. 일시 : 2009. 11. 7(토)
2. 곳 : 충북 영동 민주지산(1,242m)
3. 참가 : 서울팀 : 문수, 은수, 민영, 택술, 상국, 병욱, 덕영, 학희
부산팀 : 정태, 상수, 범주, 용하
창원팀 : 영수, 경태
대전팀 : 병철, 영수 (총 16명)
나는 올해 산행참가율이 아주 저조하다. 지난 3개월은 산 근처에도 못 가고, 자전거도 못 타고 비몽사몽간에 겨우 숨만 쉬고 살았다. 이 나이에 뭔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나싶어 밤에는 거의 매일 소주잔을 친구하자 다리는 물러지고, 머리숱이 더 빠지고, 배는 더 나오고, 몸이 망가지는 게 눈에 보이고 손에도 잡혔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지난 주, 친구들과 서울 시내에 있는 인왕산과 북악산, 두 산을 합쳐도 670m 정도밖에 안 되는 가벼운 산행을 하던 중 종아리에 쥐가 나더니, 다리에 알이 배겨 한 주 내내 혼이 났었다.
다시 열심히 산에 다니리라 마음먹고 아무 생각없이 산행신청을 하고 막상 떠나려고 보니 놀토가 아니네? 에라 모르겠다. 금요일 오후 6시 보정역에 나갔더니 덕영이가 15분 정도 늦겠다. 문수랑 닭갈비집에 들어가서 간단히 2인분을 시킨다. 덕영이는 매운 걸 못 먹는 모양이다. 밥을 볶고 있을 때 권박이 나타난다. 같이 밥 한술 뜨고 충북 영동 물한계곡에 있는 민박집을 내비에 찍고 출발한다. 중간에 전화를 해보니 서울과 부산팀들은 우리보다 조금 늦겠다.
민박집에 닿아 좋은 공기 마셔가며 가을 경치를 구경하고 곶감 만드느라 감 깎는 모습도 보면서 좀 기다리니 서울팀과 부산팀 친구들이 속속 도착한다. 마라톤-매니아인 정태가 작년 치악산 산행시에 전어회를 가져와 우릴 감동시키더니만 올해는 전어와 방어, 광어 등등 회를 엄청 준비해 왔다. 정태는 해양대학을 나온 마도로스 출신으로 배 타면서 육지를 못 밟아본 게 한이 되어 그러는지는 몰라도, 배 내리고 나서는 온 사방을 뛰어댕기는 통에, 심심풀이로 껌 씹듯 아무렇지도 않게 100Km 마라톤을 해재끼질 않나, 순전히 달리기 위해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건너가 보스톤 마라톤까지 뛰고 온 바다사나인지 육지사나인지 정체성이 의심되는 친구인데 요즘은 뜸사랑 회원으로 봉사를 하는 뜸사나이까지 겸한다.
12명이 생선회를 놓고 막걸리에 소주, 마호타이, 캐나다산 양주, 와인 등을 놓고 거나한 술판을 벌인다. 부산팀에 끼여서 올라온 병욱이가 제일 시끄럽다.
“와, 대구를 지나면서 상수가 운전대를 잡더니 야~가 172를 계속 밟는데 몸이 쫄아들어서 죽을 뻔 했다.”느니... 재작년엔 효용이 차를 탔다가 그게 속으로 파고 들어서 소변도 못 봤다는 병욱이가 요번에는 상수 때문에 또 비뇨기과를 다녀와야 겠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나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왔는지 상수 앞머리가 다 빠졌다.
주의가 약간 산만한(?) 민영이가 내 옆에서 뭐라뭐라 구시렁대더니 제 속을 털어낸다. 또 웃음판이다.
“나는 절마들이 172, 머라머라 하는 기, 키 이야기 하는 줄 알았는데... 가만 듣다보니 그기 아닌 것 같고... 그라몬 이기 아이큐 이야기 하나? 아이큐가 150에서 172? 절마들이 내보다 공부 못했을 낀데 머리가 저리 좋나? 아닐 낀데.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가?”
담배 피운다고 학희랑 같이 마루에 나가 있으니 친구들이 모두 밖으로 다 나온다. 폭탄주 만들기 어려우니 아예 소주와 양주병을 병째로 같이 마시는 독극물박사 민영이도 일본 알프스에서 한번 구르더니 맛이 약간 가는 모양이다. 누구보다 즐겁게 술 마시는 학희도 이에 질세라 아예 막걸리통을 입에 대고 좍~ 훑어버리고... 생선회가 동이 나자 누가 안주로 저기 곶감 만드려고 쌓아둔 감을 가져온 모양이다. 어찌나 떫던지 목에 붙어 시껍했다.
한 방에 12명이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아침 7시경 산행대장 문수가 기상나팔을 분다. 나는 좀 더 잤으면 싶었는데 새벽잠이 없는 친구 두엇은 산보를 하다 온 모양이다. 늙어가는 징조다.
아침을 먹고 차로 물한계곡 주차장으로 이동, 대전과 창원에서 오는 친구들이 약 30분 정도 늦겠다고 판단한 문수는 9시 5분에 우리를 먼저 출발시킨다. 30분은 추월 할 수 있다는 공비다운 판단이다.
길이 참 좋다. 잣나무가 많은 곳에서 삼림욕도 할 겸 친구들 기다려주자며 자주 쉰다. 삼도봉 올라가는 길 중간 즈음에 쉬고 있으니 못 보던 얼굴들이 나타난다. 창원에서 온 경태와 영수, 대전에서 온 병철이와 영수다. 다들 오랜만이다. 경태와 영수는 독일 월드컵 할 때 유럽으로 둘이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 둘 다 산도 잘 타지만 마라톤-맨이다. 차를 빌려 이리 저리 돌아다니던 중에 하루는 이태리에서 너무나 밥이 먹고 싶어 쌀을 사러 보냈는데, 세상에... 대한민국 현직 변호사인 영수가 품에 안고 온 쌀봉투, 포장을 뜯으니 거기서 소금이 나오더란 이야기가 생각나, 쌀과 소금을 구별하는 것은 사시에는 안 나오는 모양이라고 놀려대며 많이 웃었다.
다들 산을 잘 탄다. 내가 제일 비실비실하다.
집은 대전에 있으면서 직장은 밀양에 소속은 부산대학교인 이름에 사주팔자가 똑 맞는 범주가 행동범위가 넓어 사진 찍는 데도 왔다갔다 정신이 없어 한 쿠사리 묵는다. “범주 니는 범주를 자꾸 벗어나노? 그라이 니가 신범주 아이가?”
-삼도봉
먼저 갔던 천생이 공비인 용하를 만나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를 다 끼고 있다는 삼도봉에서 단체사진 하나 찍고 각기봉으로 이동한다. 능선길이 좋다. 각기봉 조금 아래 팔각정에서 대전팀이 단체로 준비해온 김밥 16인분으로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각기봉으로 오른다. 길이 조금씩 가팔라진다. 다른 사람 구경을 하지 못해 문수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 거기에 카메라를 올려 자동으로 한 방 찍는데, 산은 잘 타지만 눈치가 빠르지 않아 아직 총각인 듯 대전의 영수가 머리가 잘려버렸으니, 이를 우야노? 아무리 연봉이 많다지만 대가리는 있어야 장가를 갈 낀데... 쯧쯧쯧.
-각기봉
-민주지산 정상
민주지산에서 다시 단체 사진하나 찍고, 대장인 문수는 “여기서 각호산까지 3.9Km인데 바로 계곡길을 따라 하산하는 A팀과 각호산을 거쳐서 하산하는 B팀, 이렇게 두 패로 나누자.”고 하면서도 다 끌고 갔으면 하는 눈치다.
“아이고, 나는 못 가겠다. 분명히 누가 들어도 A가 더 잘 타는 팀으로 생각하겠제? 나는 A팀 할란다. 크크”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민주지산에서 아주 민주적으로 웅성웅성, 왈가왈부, 우왕좌왕 하다가 편이 나누어 졌는데 정말 짜고 친 것도 아닌데 8:8이 나온다. 이름값 구실을 하는 산이다.
여기 오합지졸들 다 모여라 해서 8명이서 오합지졸처럼 줄도 안 서고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출발하는 데는 학희가 저리 가고 병철이가 여기 남는단다.
-A팀, 자칭 오합지졸팀. (학희랑 뱅철이가 마지막에 서로 변심해 맞바꾸고)
정상에서 조금 되돌아가면 계곡길로 빠지는 좋은 길이 있는데 특수부대 출신보다 더 큰 칼자국을 몸에 지니고 있는 SS(Strong soldier)출신 뱅철이가 자기가 좀 안다고 각호산방향으로 가다가 빠지는 길이 있을 거라며 먼저 떠난 친구들과 같은 방향으로 길을 잡았는데, 어, 이게 한참동안 나오질 않는다. 500미터, 700미터, 1.5Km 정도 왔는데도 길이 없다.
민주지산, 그 언제 공수부대원들이 3월에 1000리 행군하다가 눈비를 만나 저체온증으로 여섯인가 그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던 그 산인데, 여기 근처가 변을 당했던 곳인데... 이거 이러다 각호산까지 가는 거 아냐? 뱅철이더러 “니 여게 와 본 적 있나?” 윽박질러보지만 워낙 배도 많이 나오고 머리도 많이 벗겨진 넉살 좋은 친구라, 그냥 실실 웃고만 있다.
- 정태
-B팀 후미
각호산까지 가는 길 반쯤 왔나보다. 오른쪽으로 조그만 길이 보이는데 팻말은 없고 누가 간판 구석에 조그만 글씨로 ‘물한리’라 쓰고 그려둔 화살표가 보인다.
아, 그 길. 얼마나 경사가 심하던지... 그래도 길은 끝이 있게 마련, 아까 지나왔던 삼거리 길에서 합류한다. 황룡사 옆길로 다 내려와서 흥얼대며 저기 주차장이 보일 지점에 오는데 어렵소? 저쪽에서 오고 있는 등산객 셋이 누구여? 옷색깔을 보니 남자들이고 년식이 우리랑 비슷해 뵈는데? 설마 절마들이?
윽. 우리보다 대여섯 걸음 더 빨리 내려온 세 명의 공비는 바로 부산의 용하, 서울의 민영이, 대전의 영수. 창원팀은 오늘 바로 창원으로 내려가야 해서 A팀에 끼었던 게고 그게 아니었다면 창원의 경태도 공비니까 아마 각 지역팀 대표들끼리 한 판 붙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우리A팀 모두를 굼벵이로 만들어 버리는 독하고도 나쁜 친구들임에 틀림없다.
슈퍼에서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허허, 뭔 다고 그 길로 왔는가? 그 길, 급하기만 하고 길이 안 좋아서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길인디?”
슈퍼 평상에 앉아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이 정말 맛있다. 우리 A팀도 7시간 걸었다. 크크. 창원팀은 바빠서 먼저 내려가고 민박집으로 이동하니 서울에서 버스로 온 친구들이 민박집 마당에서 콜라놀이를 하고 난리가 났다. 경남이 다리는 다 풀려있고 진홍이 지갑은 열려진 채 닫힐 줄은 모른다. 좀 있으니 부산에서도 버스가 도착해 반가운 친구들과 악수를 나눈다.
저녁 식사시간, 삼겹살을 굽다가 아까 콜라하면서 돈을 많이 따던 영효는 자리를 잘 못 잡아 수염 억수로 기른 민박집 할아버지가 불판을 쏟는 통에 머를 데이고 앉은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점프를 하는데, 정말 옛날 국민학교 다닐 때 불렀던 노래,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정말 머리가 하늘까지 닿는 것 같았다.
아이고 나도 그 다음에는 우리 친구 중에 애꾸가 그렇게 몇 놈이나 되는지 처음 알았고, 정신이 없다. 남은 친구들은 다 잘 놀다 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