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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보면 유달리 분양 광고가 많다. 현란한 조감도나 광고 문구를 한참 들여다보다 문득 맨 아래 ‘사업 주체’에 눈길이 간다. 각종 브랜드 광고로 인지도를 높인 시공사는 그렇다 치자. 이름이 낯선 시행사들은 ‘과연 믿을 만한 곳일까’라는 궁금증이 든다. 한 예로 최근 서울 신도림에서 분양한 디큐브씨티는 대성산업에서 시행, 시공을 동시에 진행했지만 보통 대규모 아파트나 상가를 분양할 때 유명하지 않은 시행사가 꼭 따라가게 마련이다.
디벨로퍼로도 불리는 시행사들은 부동산 상품 기획은 물론이고 자금 조달, 분양 대행 등 부동산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아파트 고분양가의 주범’이라는 오명과 함께 소비자 인식마저 좋지 않은 것도 사실. 2005년 디벨로퍼협회까지 출범해 이미지를 불식하려 했지만 소비자의 눈길은 차갑기만 하다. 게다가 시행사들이 분양대행, 도급 사업 등 워낙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제대로 된 시행능력조차 평가하기 어려운 게 현실. 요즘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의 각종 규제 탓에 건설경기 악화의 직격탄까지 맞고 있다.
물론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실적을 쌓아온 곳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디벨로퍼협회장인 정춘보 회장이 이끌고 있는 신영은 국내 최대 복합개발 사업인 충북 청주 지웰시티를 개발 중이다. 그렇다면 ‘신영의 신화’를 이을 유망 시행사는 어디일까.(한국디벨로퍼협회 추천을 받아 사업 실적이 큰 주요 시행사를 선정했다.)
■ 프라임개발 - 신도림 테크노마트 완공 앞둬 ■
요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시행사로는 단연 프라임그룹 계열사인 프라임개발이 꼽힌다. 지난해 매출액 2023억원에 당기순이익만 534억원(9월 결산 기준)을 거둘 정도로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개발 전문회사로 성장했다.
대표적으로 98년 테마쇼핑몰의 효시가 된 국내 최대 복합전자유통단지인 강변역 테크노마트를 건설, 운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테크노마트를 비롯해 서울 명동 아바타, 광명 크로랑스 등 대형 쇼핑몰과 오피스빌딩, 주택 등 다양한 개발사업을 추진해왔다.
특히 지하 7층, 지상 40층으로 복합전자 유통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신도림 테크노마트가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최근에는 약 28만1000㎡(8만5000평)의 한류우드 1차 사업자로도 선정됐다.
권병준 프라임개발 과장은 “대형 개발사업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는 한편 동아건설 인수를 통해 글로벌 디벨로퍼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 르메이에르건설 - 스포츠센터 분야의 강자 ■
96년 8월 창립한 르메이에르건설은 주상복합타운과 스포츠센터 분야 강자다. 98년 서울 신촌과 역삼동에 르메이에르 주상복합오피스텔을 완공한 데 이어 서울 곳곳에 르메이에르타운 개발을 진행해왔다. 올해 들어서는 서울 종로1가 대형 주상복합건물인 르메이에르종로타운에 매머드급 스포츠센터를 선보였다. 주상복합건물 내 스포츠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 지하 2개 층에 9917㎡(3000평) 규모로 설계돼 국제 규격의 메인풀(5레인)과 체력단련장, 실내골프장 등이 설치됐다.
해외로도 눈을 돌려 2004년 호주 해변 휴양지인 포트스테판에 있는 ‘호라이즌골프리조트’를 인수하기도 했다.
■ 도시와사람 - 건축사 출신 회장의 명품단지 ■
시행사 ‘도시와사람’ 역시 다크호스로 꼽힌다. 경기 분당 벤처타운 인텔리지, 미켈란쉐르빌을 성공시키면서 이름을 알렸고 경남 창원시에 ‘더시티세븐’을 본격 개발하면서 성장궤도에 올랐다. 더시티세븐은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으로 ‘1년 365일, 1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내내 활기찬 도시’ 콘셉트를 추구한다. 초고층 주거단지 4개동과 300여개의 객실을 갖춘 5성급 특급호텔, 쇼핑몰, 컨벤션센터 등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게 특징. 일본 롯폰기힐스를 설계한 저디파트너십(Jerde Partnership)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조명을 맡았던 호주 LPD사가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자회사 노블시티를 통해 경남 함양에서 대규모 도농복합개발 프로젝트인 ‘다곡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지리산 일대 1157만㎡에 주거시설은 물론이고 골프장, 쇼핑몰, 학교, 병원까지 조성해 도시와 농촌이 자족하는 공간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건축사 출신인 하창식 도시와사람 회장은 “복합단지는 도시공동화 현상을 막아 자연스럽게 업무와 상업, 주거, 문화의 ‘원스톱 생활’이 가능하다. 부동산 규제가 현실화되고 있어 이제 지자체의 특색 있는 도시개발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 일레븐건설 - 용인·인천 등 수도권에서 강세 ■
충남 천안에 위치한 일레븐건설은 주택개발 사업부문에 특화했다. 99년부터 대규모 주택건설 사업을 주로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무려 7000여가구 아파트를 공급했다.
가장 성공한 사업은 LG건설(현 GS건설)과 함께 진행한 경기 용인 신봉지구 LG빌리지 분양. 이를 통해 2004년까지 매년 2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거뒀다. 그러나 2005년부터 용인시가 난개발 방지를 위해 개발제한을 시작하면서 성장세에 비상이 걸렸다.
실제로 영업이익률 악화로 2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에는 당기순손실이 256억원에 달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하지만 요즘 도약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인천 삼산지구에 82만5000㎡(약 25만여평) 규모, 용인 신봉지구 등에 약 132만㎡(40만여평) 규모의 도시개발 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송창의 일레븐건설 이사는 “원래 주택사업을 위해 토지 확보에 주력해왔지만 요즘에는 사업 여건이 어려워져 도시개발을 기반으로 한 시행에 본격 나서고 있다”고 밝힌다.
■ 청원건설 - 일산 라페스타 성공으로 유명 ■
청원건설은 전문가들이 눈여겨보라고 손꼽는 시행사다. 경기도 일산의 라페스타 개발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2003년 국내 최초로 경기 일산에 설립한 스트리트형 쇼핑몰 라페스타는 이미 ‘명품 쇼핑몰’로 위상을 다졌다.
최근 국내 상업시설 최초로 국제쇼핑센터협회에서 국제 디자인 개발상 우수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한라건설과 함께 경기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에 돔(Dome) 형태인 연건평 12만5620㎡(3만8000평) 규모의 대형 쇼핑몰 ‘웨스턴돔’을 분양하기도 했다. 호수공원 맞은편 상업 지구에 위치한 웨스턴돔은 4개 오피스빌딩을 연결하는 중앙 보행로 좌우에 3층 규모로 지어졌다. 배병복 청원건설 회장은 “제2, 제3의 라페스타를 개발하는 한편 웨스턴돔같이 첨단 시설과 우리나라 전통시장을 결합한 공간을 계속 선보일 것”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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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시행사들의 고민 】
◆ 해외 진출로 돌파구 모색 중
= 요즘 디벨로퍼들의 고민은 그야말로 국내에서는 먹고살 게 없다는 것. 디벨로퍼인 조정훈 원포올디앤씨 사장은 “현재 시행사들은 한마디로 숨고르기 상태에 들어갔는데 지자체별로 수익에 대한 부담을 늘리고 있고 금융 자금조달까지 어려워지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상태”라고 설명한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벨로퍼는 약 3000개 업체로 추정된다. 이 중 한국디벨로퍼협회에 가입한 업체는 80여개뿐. 그중에서 제대로 된 수익을 거두는 곳은 몇 안 된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아예 시행사들의 존재감마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시행사 사업실적이 부진하면서 은행권은 물론이고 캐피털 업체에서도 이들에 대출을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조정훈 사장은 “시행사들은 규모가 작더라도 여러 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야 하는데 요즘 단발성 일감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시행사들은 해외 진출로 활로를 찾고 있다. 디벨로퍼인 삼정씨앤씨는 대우건설을 비롯해 우림건설, 동일토건, 공간건축 등과 함께 아프리카 알제리 부이난 신도시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