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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0일
조계사 구경후 입구로 나와 좌측으로 쭉 가니 안국로타리가 나오고 반대편에 감고당길 공예마켓 플래카드가 보여서 무작정 그리로 갔다.
어차피 처음 가는 길이고 지도를 보니까 북촌마을로 갈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길 양옆에는 간이 매대가 마련되어 군대 군대 젊은 처자들이 장사준비를 하고 있었고 조금 더가니 여러 종류의 상점들이 있었다.
구경을 하면서 북촌마을 관광 안내소를 찾아 지도를 얻고 설명을 들었다. 허지만 헛일. 어디가 어딘지 몰라 사람들이 많이 있는곳을 찾아 다녔다.
관광객들은 거의 외국인.
한참을 헤매다가 인왕산이 보이고 북촌전망대 카페가 보여서 장사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주인아주머니의 양해를 얻어 들어가서 주위의 멋진 사진을 찍고 흑백사진 전문인 북촌사진관을 지나 북촌 한옥마을 맛집 만수의 정원에서 점심식사하고 청와대 앞길로 갔다.
아름다운 청와대 앞길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녀 경호원(?)들이 군대 군대 서있었는데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었다.
청와대 사랑채옆 분수대 무궁화동산에는 국화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한때의 외국 관광객들이 시끌벅적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랑채옆 효자로에는 기독교 신자들과 애국 시민들이 거의 한 달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회를 하고 있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오는데 모두들 건강이 걱정된다.
방랑 시인 김삿갓
박 훈 석 지음
김삿갓은 똑같은 시를 두 번씩이나 감격스럽게 읊고 나서,
"도대체 이처럼 기가 막힌 시를 누가 지었소이까 ?"
하고 일동에게 물었다. "강촌모경 "이 너무도 훌륭한 시였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강촌모경을 지은 작자를 누구냐고 물어도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때문에 김삿갓은 불현듯 , 이 시는 남의 작품을 옮긴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
"이 시를 지은 사람이 여러분 중에 반드시 있을 것인데 , 왜 들 대답이 없지요 ? 다른 사람의 시를 옮겨 쓴 것은 아니겠지요 ?"
하고 준엄한 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저쪽 등 뒤에서 아까부터 새치름하게 앉아 있던 기생이 얼굴을 바짝 들며 항의한다 .
"선생님 ! 제 이름은 죽향 (竹香 )이라고 하옵니다 . <강촌모경 >은 남의 시가 아니고 제가 직접 지은 시옵니다 ."
작자가 이름을 밝히고 나서는 바람에 좌중은 잠시 술렁거렸다. 그제사 자세히 보니 , 죽향의 나이는 30대 중반이 넘었을까 , 얼굴도 미인인 십인지상이었다 .
"본인 작품이면 진작 말할 일이지 , 왜 대답을 주저했지요 ?"
"선생님이 지나친 칭찬을 해 주셨기 때문에 너무 면구스러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
그 말을 듣고 보니, 죽향은 무척 내성적인 성품이 분명해 보였다 .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물었다 .
"시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기에 , 이렇게도 좋은 시를 지었소 ? 정말 놀랍소이다 ."
김삿갓이 죽향을 이같이 치켜 올리자, 다른 기생들은 기분이 좋지 않은지 , 늙수구레한 기생이 김삿갓에게 이렇게 말한다 .
"삿갓 선생은 저희들의 시를 모두 읽어 주셨으니 , 이번에는 선생님 시를 한 수 읊어 주세요 ."
"허허허 , 나더러 시채 (詩債 )를 갚으라는 말씀인가요 ? 그런 빚이라면 사양하지 않겠소이다 ."
김삿갓은 좌중에 어색한 분위기를 돌려놓기 위해, 기생들과 똑같은 <門 , 村 , 昏 > 석 자를 써가면서 "연광정 (練光亭 )이라는 즉흥시를 두 연이나 써 갈겼다 .
截然乎屹立高門 (절연호흘입고문 ) 깎아지른 절벽 위엔 높은 문이 서 있고
萬頃蒼波直碧翻 (벽만경창파직번 ) 만경창파 대동강엔 푸른 물결 굽이친다
一斗酒三春過客 (일두주삼춘과객 ) 지나가는 봄 나그네 말술에 취했는데
千絲柳十里江村 (천사유십리강촌 ) 수양버들 마을은 십리나 뻗었구나 .
孤丹鶩帶來霞色 (독단목대내하색 ) 외로운 따오기는 안개 속에 날아오고
雙白鷗飛去雪痕 (쌍백구비거설흔 ) 갈매기는 쌍쌍이 눈발처럼 휘나른다
波上之亭亭上我 (파상지정정상아 ) 물결 위에 정자 있고 정자위에 내가 있어
坐初更夜月黃昏 (좌초갱야월황혼 ) 초저녁에 앉았는데 밤이 깊자 달이 뜨네 .
연광정 위에서 저물어 가는 대동강 풍경을 굽어보며 즉흥시를 써 갈긴 것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죽향의 시에 대한 화답으로 읊었건만 , 그러한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 다만 죽향 만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날이 이미 많이 저물어 김삿갓은 노기들과 더 이상 노닥거리고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일동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
"오늘은 여러분 덕택에 잘 얻어먹고 잘 놀았소이다 . 불청객은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
이렇듯 인사를 나누고 몇 걸음 옮기다가 불현듯 <가실 > 생각이 떠올라 , 가까이 있는 늙은 기생을 붙잡고 부탁을 하였다 .
"나는 지금 평양에 살고 있을 <가실 > 이라는 여인을 찾고 있는 중이요 . 여러분들 중에서 혹시 그런 여인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 나중에 임 진사 댁으로 연락을 해 주기 바라오 ."
오줌이 약이 되기도 하는지라, 지나가는 말로 한번 부탁을 해 둔 것이었다 .
"어마 ... 가실이라는 여인은 삿갓 선생의 애인이세요 ? 그 여인은 기생입니까 , 아니면 여염집 가정부인입니까 ?"
"가실이라는 이름만 알았지 나는 일면식도 없는 여인이라오 . 다만 어떤 필요에 의해서 한번 찾아보고 있을 뿐인데 평양에서 기생으로 지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 놓았자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늙은 기생에게만 지나가는 말로 부탁하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
김삿갓이 임 진사네 별당으로 돌아오니, 임 진사가 반갑게 맞아주며 말하는데 ,
"오늘은 어디를 가셨다가 이렇게 늦으셨소 ? 영명사 (永明寺 )의 벽암 (碧巖 )대사가 오랫동안 선생을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막 돌아가셨답니다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였다.
"영명사의 벽암 대사요 ? 나는 그런 분을 모르는데 , 그분이 무슨 일로 나를 기다렸다는 말씀입니까 ?"
"그야 물론 , 삿갓 선생이 벽암 대사를 아실 리가 없지요 . 그러나 시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삿갓 선생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 . 벽암 대사가 오늘 우연히 내 집에 들르셨기에 , <지금 우리 집에 삿갓 선생이 와 계시다 >는 말씀을 했더니 , 벽암 대사는 선생을 꼭 만나 뵙고 싶다고 하면서 , 한나절이나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저녁 불공을 드리기 위해 돌아가셨지요 . 모르면 모르되 , 내일쯤 선생을 만나 뵈러 , 다시 찾아오실 겁니다 ."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잘 알겠습니다 . 그러면 벽암 대사가 오시길 기다릴 게 아니라 내일은 내가 찾아뵙기로 하겠습니다 . <벽암 대사 >라는 분은 어떤 스님입니까 ?"
"벽암 대사는 시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해서 , 어떤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 스님 >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 도가 매우 높으신 분은 확실합니다 ."
시를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 시인이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김삿갓은 내일은 영명사로 벽암 대사를 찾아가 볼 결심을 하였다 .
47. 사람이 영원히 사는 방법 (色不異空 , 空不異色 : 색불이공 , 공불이색 )
다음날 아침, 김삿갓은 아침을 먹고 나자 영명사로 벽암 대사를 찾아 나섰다 . 영명사는 부벽루 서쪽 기린굴 (麒麟窟 ) 위에 서 있는 절이다 . 경내에 들어와 보니 , 절은 빈집처럼 조용했다 . 영명사는 언제나 조용한 절인지 , 누각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걸려 있었다 .
永明寺中僧不見 (영명사중승불견 ) 영명사 절에 중은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 (영명사전강자류 ) 영명사 절 앞에는 강물만이 흐른다
山空孤塔立庭際 (산공고탑입정제 ) 산은 비고 뜰에는 탑만 홀로 서 있어
人斷小舟橫渡頭 (인단소주횡도두 ) 사람 없는 나루터엔 배만 둥둥 떠도네 .
이 시를 읽다 보니, 김삿갓은 무아정적 (無我靜寂 )에 들어 온 느낌이 들었다 .
"나는 김삿갓이라는 사람이오 . 벽암 스님을 만나 뵈러 왔소이다 ."
마침 눈에 띄는 상좌가 있길래 말을 하였더니, 상좌는 합장 배례를 하더니 , 김삿갓을 선실 (禪室 )로 안내해 준다 . 벽암 대사는 김삿갓을 반갑게 맞아주며 말한다 .
"어서 오십시오 . 어제 임 진사댁에 갔다가 선생이 계시다기에 뵈려고 기다렸는데 , 오늘은 직접 찾아 주셨군요 . 일전에 금강산 장안사에 갔다가 입석봉에서 내려오신 공허 스님한테서 선생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
벽암 대사는 나이가 80은 넘은 듯한데 , 어딘가 모르게 거룩한 느낌이 드는 모습이었다 .
"어제는 임 진사 댁까지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는데 , 시생이 만나 뵙지 못하여 결레가 많았습니다 ."
그렇게 말하며 방안을 둘러보니, 한쪽 벽에는 다음과 같은 족자가 걸려 있었다 .
白雲千里萬里猶是同雲 (백운천리만리유시동운 ) 구름은 천리만리에 덮혀 있어도 구름일 뿐이고
明月前溪後溪嘗無異月 (명월전계루계상무이월 ) 달은 앞내에 비치고 뒷내에도 비치나 다른 달이 아니로다 .
김삿갓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저 족자의 뜻이 깊습니다 . 스님께서 지으신 글이옵니까 ?"
"저 글은 신라 때 진경 (眞鏡 ) 선사께서 읊으신 게송 (偈頌 )입니다 ."
"저 글을 보니 반야심경 (般若心經 )에 나오는 <색불이공 , 공불이색 (色不異空 , 空不異色 )>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니옵니까 ?"
벽암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삿갓 선생은 저 게송의 뜻을 대번에 알아보는구려 . 엔간히 유식한 사람들도 저 족자의 뜻을 알아보는 사람이 극히 드물답니다 ."
두 사람이 차를 마시며 그런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문득 문밖에서 ,
"대사님 계시옵니까 , 대사님을 잠깐 만나 뵈러 왔습니다 ."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80쯤 되어 보이는 쪼그랑 할아버지가 문밖에서 연신 머리를 수그려 굽신거리고 있었다 .
"어서 들어오십시오 ."
벽암대사는 서슴지 않고 쪼그랑 할아버지를 방안으로 맞아들였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자유롭지 못한지 방안에 들어와 앉기까지 무진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
"보아하니 , 몸이 매우 불편하신 것 같은데 ,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
벽암 대사가 그렇게 물어보자, 노인은 몸이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
"내 나이 올해 90이올시다 . 몸이 괴로운 걸 보니 ,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네요 . 대사님은 영험이 대단하시다고 들었는데 , 나를 조금만 더 오래 살게 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
김삿갓은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조금만 더 살고 싶다구요 ? 몇 해나 더 살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
"될 수 있으면 백 살까지는 살고 싶구려 ! "
김삿갓은 그 대답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자 백암 대사는 노인에게 나무라듯 말한다 .
"에이 , 여보시오 . 영감님은 어쩌면 그렇게도 욕심이 없으시오 ? 백 살까지 살고 나면 ,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할 게 아닙니까 ?"
노인은 <죽음 >이란 말을 듣고 , 크게 당황하는 빛을 보인다 .
"아닙니다 . 이왕이면 백 오십 살까지 살게 해 주십시오 ."
"좋소이다 . 백 오십 살까지 살게 해드리지요 . 그런데 백 오십 살이 되는 해의 섣달 그믐날에는 반드시 돌아가셔야만 하는데 ,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
그러자 노인은 또다시 당황하는 빛을 보이며
"그렇다면 이백 살까지 살게 해주소서 ."
그러자 벽암 대사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나무란다.
"영감님은 욕심이 왜 이렇게 적으십니까 ? 이왕이면 영원히 살아가셔야지요 . 그 생각은 왜 못하십니까 ."
쪼그랑 노인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에이 , 대사님두 , 사람이 죽지 않고 어떻게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
벽암 대사는 이때다 싶은지, 노인에게 자신만만한 설교를 한다 .
"중생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면 고해 (苦海 )에서 반드시 제도 (濟度 )되는 법이옵니다 . 그렇게 되면 육신은 비록 죽어 썩어 버리더라도 , 영혼은 반드시 극락세계로 가는 법이지요 . 극락 세계야말로 죽음의 고통을 모르는 영생의 세계라는 것을 왜 모르시옵니까 ?"
이렇게 벽암 대사가 순순히 타이르자, 쪼그랑 노인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불교에 귀의해 버리는 것이었다 .
김삿갓은 벽암 대사의 능수능란한 포교술(布敎術 )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대사님은 어쩌면 설법이 이렇게도 능란하시옵니까 ?"
"하하하 , 장안사에 계신 공허 스님의 말씀을 들어 보면 , 공허 스님이 삿갓 선생과 시 짓기 내기를 했다가 참패를 당했다고 하시던데 , 그러한 삿갓 선생께서 내게 <설법을 잘한다 >는 칭찬을 듣고 있으니 , 이런 영광이 없소이다 .“
김삿갓은 벽암 대사와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더니 벽암 대사가 짐짓 손짓을 하니 , 상좌가 술을 한상 차려다 놓는다 .
"삿갓 선생이 술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 나는 술이 아닌 곡차 (穀茶 )를 좋아합니다 . 절에 오셨으니 , 우리 곡차를 한잔 나누십시다 ."
벽암 대사는 멀쩡한 <술 >을 익살맞게 <곡차 >라고 불렀다 .
김삿갓도 술을 좋아하지만 벽암 대사의 주량은 끝이 없었다. 그는 마셔도 마셔도 취할 줄을 모르므로 김삿갓은 너무도 놀라워 ,
"주장관사해 (酒腸寬似海 : 술 마시는 배가 바다와 같다 )라는 옛 말이 있더니 , 스님의 술배는 정말 바다와 같이 크십니다그려 !"
하고 말하니 벽암대사가 화답을 하는데,
"내 배가 <주장관사해 >라면 , 시를 잘 지으시는 선생은 시담대어천 (詩膽大於天 : 시를 짓는 담력이 하늘처럼 크다 ) 올시다 ."
하고 대구(對句 )를 응구첩대 (應口輒對 )로 받아넘긴다 .
김삿갓은 이왕 고승을 만난 기회에 불교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벽암 대사에게 물었다 .
"부처님과 보살은 어떻게 다르옵니까 ?"
"부처님이란 모든 중생이 지니고 있는 온갖 미망 (迷妄 )과 번뇌를 깨끗이 떨쳐 버리고 , 자기 자신 속에서 불성 (佛性 )을 찾아내어 자연의 진리를 깨닫고 , 다른 중생까지도 교화를 시켜 깨닫게 해 준 성인을 부르는 칭호지요 . 처음에는 석가여래 (釋迦如來 ) 한 분만을 <부처님 > 이라고 불러왔지만 , 그 후에는 석가여래를 따르는 많은 선각자 (先覺者 )들이 생겨나서 , 지금은 그들도 넓은 의미에서 부처님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
"그러면 <보살 >이라는 것은 무엇이옵니까 ?"
"보살이라 함은 위로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구하면서 , 아래로는 중생들을 교화시켜 성불 (成佛 )하게 하려고 수행에 힘쓰는 불자 (佛者 )를 부르는 칭호지요 .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타고 났어요 . 그러니까 누구든지 수행만 잘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말이 쉽지 , 그만한 수행을 쌓으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
"그야 물론이지요 . 신라 때의 고승 부설거사 (浮雪居士 )는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심경을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하고 있어요 .
눈에 뵈는 것이 없으면 분별이 필요치 않고
귀에는 시비가 없는 소리만이 들린다.
분별과 시비를 모두 떨쳐 버리니
마음은 절로 부처님에게 귀의하게 되노라.
벽암 대사가 읊은 게송을 들은 김삿갓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육기가 먼저 동하는 나 같은 속물은 도저히 부처님이 될 수 없겠습니다 ."
"무슨 말씀을 ! 삿갓 선생이야 말로 부처님의 성품을 선천적으로 풍부하게 타고나신 분일 겁니다 ."
"과찬의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 대사께서는 술이 몹시 취하신가 봅니다 ."
벽암 대사는 <취했다 >는 소리에 머리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
"내가 취했다고요 ? 천만의 말씀이오 . 술을 마셨다면 취했을지 몰라도 , 곡차를 마시고 취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 ?"
벽암 대사는 이와 같이 익살을 부려 가면서,
"나는 <방랑시인 김삿갓 >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유 (儒 ), 불 (佛 ), 선 (仙 )에 모두 능통한 선생께서 요산요수 (樂山樂水 )로 영풍농월 (詠風弄月 )로 팔도를 두루 편답하고 계시는 만고의 풍류객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만인의 입에서 널리 회자 (膾炙 )될 것을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 하하하 ...."
이날 밤이 늦도록 두 사람은 술을 마셔가며 혹은 불교를 말하고 혹은 유교와 도교를 논하며 뜬눈으로 밤을 꼬박 보냈다. 그러고도 미진해 김삿갓은 벽암 대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
"나는 아직 참선 (參禪 )이라는 것을 해본 일이 없는데 , 참선이 그렇게도 좋은 것이옵니까 ?"
그러자 벽암 대사는 대뜸 다음과 같은 선시 한 수를 적어 보였다.
一默禪心淸 (일묵선심청 ) 한번 참선을 하면 마음이 깨끗해져서
對物最分明 (대물최분명 ) 모든 사물이 분명하게 보인다
猶如風過竹 (유여풍과죽 ) 이것은 마치 바람이 대나무 사이를 지나감과 같나니
竹中不溜聲 (죽중불류성 ) 대나무는 바람을 붙잡아 두지 않는다 .
이 글을 읽은 김삿갓은 참선에 대해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아 아리송하였다 . 마침 그때 , 상좌가 손님이 찾아오셨다고 문밖에서 알린다 .
"어떤 손님이 아침부터 찾아 오셨는고 !"
벽암 대사는 방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아니 , 일영 (一影 ) 보살이 이게 웬일이야 . 어서 들어와요 ."
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찾아온 여자 손님은 방안에 들어올 생각은 안하고,
"아침부터 무례하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 혹시 <김삿갓 >이라는 분이 여기 와 계시는 것은 아니온지요 ?"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그 소리를 듣고 멈칫 놀랐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누가 찾아왔는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자기를 찾아올 여인이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벽암대사는 일영 보살이 김삿갓을 찾아온 것을 알자 ,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한다 .
"일영 보살이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삿갓 선생 >을 찾아온 모양이구먼 그래 ? 허기는 일영 보살 같은 미인이 나 같은 늙은 중을 찾아왔을 리가 있을라구 .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면 지금 나와 마주 앉아 계시니 , 그 분을 만나보고 싶거든 이리 들어와요 ."
그리고 이번에는 김삿갓을 돌아보며,
"삿갓 선생은 무슨 염복 (艶福 )을 그렇게나 많이 타고나셨기에 , 평양에서도 시를 잘 짓기로 소문난 일영 보살을 아침부터 찾아오게 만드셨소 ?"
하고 농담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일영 보살이오 ? 나는 그런 분은 알지도 못합니다 .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다는 겁니까 ?"
김삿갓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그때, 일영 보살이라는 여인이 방으로 들어와 김삿갓에게 합장 배례를 하는데 보니 , 그녀는 며칠 전에 연광정에서 화전놀이를 할 때에 시를 가장 잘 지었던 노기 <죽향 >이가 아닌가 .
김삿갓은 춤이라도 출 듯이 반가웠다.
"아니 , 이게 누구요 ?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소이까 ?"
불명(佛名 )으로는 <일영 >이라고 부르는 노기 <죽향 >이 영명사로 김삿갓을 새벽같이 찾아오게 된 사연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
연광정에서 화전놀이가 있었던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죽향은 집으로 돌아오다가 , 일행 중의 한 사람인 노기로부터 ,
"김삿갓이라는 양반이 <가실 >이라는 여인을 찾고 있던데 , 너희들 중에 혹시 그런 여인을 알고 있거든 , 그 양반에게 알려드리도록 하거라 !"
하는 말을 듣고 죽향은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가실이라는 이름은 죽향 자신의 본명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에 부랴부랴 김삿갓이 지낸다는 임 진사 댁을 찾아가 보니 공교롭게도 김삿갓은 조반을 먹기가 무섭게 구경을 나갔다는 것이 아닌가.
죽향은 김삿갓을 찾기 위해 연광정, 을밀대 , 부벽루 등등으로 그날 하루를 김삿갓을 찾아 헤매었다 . 그래도 김삿갓을 만날 수가 없어 , 다음날 또다시 임 진사 댁을 찾아가니 , <김삿갓은 어젯밤 영명사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는 것이 아닌가 . 그리하여 죽향은 체면 불고하고 그 길로 새벽같이 영명사로 벽암 대사를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
김삿갓은 자기를 찾아온 죽향이라는 기생이 <가실 >임을 알고 크게 기뻤다 . 그리고 죽향에게 이렇게 물었다 .
"자네는 시를 잘 짓는 죽향이 아닌가 ? 자네 본명이 <가실 >이란 것이 틀림이 없단 말인가 ?"
죽향은 울먹이며 대답한다.
"제 이름이 분명이 <가실 >이옵니다 . 제가 비록 열 다섯 살 때에 사리원에서 어머니 슬하를 떠나기야 했지만 , 제 이름이야 어찌 잊을 수가 있겠나이까 ?"
"자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 당신 딸이 사내놈과 배가 맞아 평양으로 도망쳐 버렸다고 하던데 , 그 같은 사실이 있었던가 ?" 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
죽향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소리 없이 흐느껴 울다가, 대답을 한다 .
"어머니 슬하를 떠나기는 했지만 , 사내와 배가 맞아 평양으로 온 것은 아니옵니다 ."
"그런데 자네 어머니는 어째서 , 아직도 그렇게 알고 계신가 ?"
죽향은 대답을 하지 않고 다시 한동안 흐느껴 울더니,
"어머니는 팔자가 기구하여 열 아홉 되던 해에 첫 번째 남편을 병으로 잃고 , 저의 아버지와 재혼을 하게 되었지요 . 그러나 다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 슬하에 4남매를 건사할 요량으로 부잣집 영감님과 재재혼의 혼담이 오갔습니다 ."
죽향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자 김삿갓은 지난날 무하향 주모 , 천 씨 (千氏 )의 말을 되새겨 보면서 죽향의 다음 말에 침을 꿀꺽 삼키고 귀를 기울였다 .
"그런데 재재혼의 혼담이 막바지에 이른 때 , 부잣집 영감님이 저희 집에 왔다가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저에게 남모르게 추파 (秋波 )를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 그때는 너무도 어려서 무섭기도 하였지만 ,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그 영감님의 유혹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
죽향의 말을 들은 김삿갓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말없이 어머니 슬하를 떠나게 된 것 이로구만 ."
"예 , 마침 평양으로 떠나는 동네 오라버니가 있어서 그를 따라 평양으로 오게 되었지요 ."
"그런데 평양에 와서는 어떻게 기생 노릇을 하게 되었던가 ?"
김삿갓은 죽향이 어떤 연유로 기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궁금하였다.
"평양에 와서는 , 호구지책 (糊口之策 )으로 평양 명기 묵향 (默香 )의 집에서 부엌살림을 하며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 묵향이 너무 늙어 퇴물 기생으로 전락하게 되자 , 저를 내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
김삿갓으로서는 <가실 >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렸다 . 그리하여 얼마 전에 자신이 만났던 죽향의 어머니 , 무하향 (無何鄕 ) 천 씨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
"자네 어머니는 일곱이나 되는 자식 , 어느 하나 하고도 생활을 하지 못하고 , 홀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네 . 이제라도 자네가 홀로 된 늙은 어머니를 보살피는 , 늦은 효도를 해야 하지 않겠나 ?"
죽향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소리 없이 흐느껴 울다가, 이번에는 벽암 대사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 .
"스님 ! 삿갓 선생을 저희 집으로 모시고 가서 , 어머니 소식을 좀 더 소상하게 알아보고 싶사옵니다 . 스님께서 허락해 주실른지요 ?"
벽암 대사가 흔쾌히 대답한다.
"일영 보살이 어머님 소식을 그렇게도 알고 싶어 하는데 , 내가 왜 훼방을 놓겠는가 ? 어서 댁으로 모시고 가도록 하게 . 삿갓 선생 ! 일영 보살은 나의 교화로 불문에 귀의한 나의 불제자올시다 . 두 분이 이토록 기이하게 만난 것도 전생의 인연이니 , 일영 보살을 정성껏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
이리하여 그 길로 김삿갓은 죽향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죽향의 집은 대동문 가까운 산기슭에 있었다 . 그다지 큰 집은 아니었지만 , 뜰이나 방이나 모두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인상 깊은 것은 벽에 걸려 있는 한 폭의 족자였다 .
妾身倫落屬娼家 (첩신윤락속창가 ) 이 몸은 윤락하여 기생이 됐을 망정
願得賢郞送歲華 (원득현랑송세화 ) 어진 낭군 만나 길이 섬기고 싶었소
不識郞心磐石固 (불식랑심반석고 ) 님의 마음 반석처럼 굳지 않을 줄 알았는데
暫時移向別園花 (잠시이향별원화 ) 오래지 않아 딴 여자로 옮겨 갔구려 .
김삿갓은 그 족자의 시를 읽어 보고 죽향이 어떤 성품의 여자인지 대번에 짐작할 수가 있었다.
죽향은 김삿갓을 좌상대청에 모셔 다 놓고, 술을 권하며 김삿갓이 만난 죽향 어머니의 소식을 더 듣기를 원했지만 김삿갓은 더 이상 해줄 말이 별로 없었다 . 그리하여 죽향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
"내가 자네 어머니를 이곳 평양으로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나 보았는데 , 자식은 여럿을 두었으나 , 가까이 부양하는 자식은 하나도 없이 고향에서 홀로 늙어가는 모습이 여간 쓸쓸하지 않게 보여 졌네 . 지금이라도 자네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어머니가 크게 반겨 주실 것이네 . 그리고 형편을 살펴서 고향에서나 이곳 평양에서나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다면 좋을 것 같네 ."
죽향은 언제나 시름에 잠겨 있는 얼굴이었건만, 어머니를 만나러 갈 생각을 굳혔는지 , 딴사람이 된 것처럼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 그리하여 김삿갓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
"수일 내 준비를 마치고 고향으로 어머니를 찾아뵙겠습니다 . 선생님도 함께 가시면 어떻겠사옵니까 ?" 하고 묻는다 .
김삿갓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나는 구름처럼 세상을 떠돌 뿐 , 한 번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법이 없다네 . 자네가 고향으로 떠나는 날 , 나도 평양을 떠날 생각이니까 그 동안이나 자네 집에 머물러 있게 해 주게나 ."
김삿갓은 임 진사 댁에 다시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 죽향이 고향으로 가기 전까지 함께 있고 싶었다 .
그러자 죽향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저희 집을 내버려두고 가기는 어디로 가시옵니까 . 제가 수 일 후에 고향으로 떠난 뒤에도 집은 계집아이가 지키고 있을 것이오니 , 선생은 저희 집에 얼마든지 유숙해 주시옵소서 ."
"아니야 ! 자네가 고향으로 떠나는 날 , 나도 어디론가 떠나갈 생각이네 . 자네가 없는 평양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혼자만 남아 있겠는가 ."
사실 그렇게 좋아했던 평양이었지만 이제는 죽향이 없는 평양은 사막처럼 쓸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김삿갓은 잠자리에 들자, 약간은 허전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 그러나 벽에 걸려 있는 족자로 보아 , 죽향은 몸을 함부로 허락할 기생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엉뚱한 욕심은 버리고 곱게 잠이 들었다 .
김삿갓은 죽향을 무리하게 가까이할 생각은 없었다. 시와 마음이 통하면 그만이지 , 나이 어린 풋내기들처럼 구태여 살을 섞어야 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 김삿갓은 비록 , 죽향과 살을 섞지는 않았지만 , 바라만 보아도 서로 간에 마음이 통하고 보니 , 그날부터 두 사람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
그러기에 김삿갓은 죽향에게 농담 삼아, "우리들은 마치 홀아비와 과부가 한집에 모여 살고 있는 것만 같네 그려 ." 하고 말했더니 , 죽향은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렇게 받아넘기는 것이었다 .
"옛날 시에 , 화소성미청 (花笑聲未聽 : 꽃은 웃어도 웃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이요 , 조제누난간 (鳥啼淚難看 :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볼 수 없다 )이라는 말이 있지 아니하옵니까 . 삿갓 선생만은 소첩의 심정을 충분히 알아 주시리라고 믿고 있사옵니다 ."
진실로 변죽을 두두리면 복판이 울리는 멋진 대답이었다. 김삿갓은 죽향이 고향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준비를 하는 중에 때때로 이 같은 시간을 보냈다 .
어느덧 사흘 만에, 죽향의 고향 출발의 날이 밝아왔다 . 마음이 통하는 사모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짧은 사흘이었다 . 김삿갓은 배낭을 먼저 짊어지고 나서며 , 죽향에게 말한다 .
"자네를 대동강 나루터까지 전송하고 나서 , 나도 관서 지방으로 떠나기로 하겠네 ."
그러자 죽향은 도리질을 하면서 말한다.
"아니옵니다 . 선생을 전송해 드리고 , 저는 나중에 떠나겠습니다 ."
"아니야 . 자네는 여자고 , 나는 사내 대장부가 아닌가 . 자네를 전송하기 전에는 나는 발길이 무거워 떠날 수가 없네 .“
두 사람은 서로 전송하겠다고 승강이를 하다가, 결국은 죽향이 먼저 떠나게 되었다 .
이윽고 두 사람은 대동강변에 있는 나루터에 당도하였다. 그러나 죽향은 나룻배에 오를 생각은 안 하고 , 김삿갓의 얼굴만 눈물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어서 배에 오르게나 !"
죽향은 그래도 배에 오르지 않고, 김삿갓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 떨리는 목소리로 시 한 수를 읊는다 .
大同江上別情人 (대동강상별정인 ) 대동강에서 정든 님과 헤어지는데
楊柳千絲未繫人 (양류천사미계인 ) 천만 올의 실버들도 잡아매지 못 하오
含淚眼看含淚眼 (함누안간함누안 ) 눈물 어린 눈으로 눈물 젖은 눈 바라보니
斷腸人對斷腸人 (단장인대단장인 ) 님도 애가 타는가 나도 애가 끊기오 .
그야말로 애 간장이 녹아 나는 시였다. 거기에 대해 김삿갓도 한마디 응수가 없을 수 없었다 . 그리하여 눈앞에 펼쳐진 대동강 풍경을 바라보며 ,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
翠禽暖戱對沈浮 (취금난희대심부 ) 푸른 새는 강물에서 정답게 노닐고
晴景欄珊也未收 (청경란산야미수 ) 난간에서 바라보니 풍경은 아름답건만
人遠慢愁山北立 (인원만수산북입 ) 님 보내는 시름은 북쪽 산에 어리고
路長惟見水東流 (노장유견수동류 ) 멀리 떠나가는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네
垂陽多在鶯啼驛 (수양다재앵제역 ) 꾀꼴새는 버드나무 숲에서 울어 쌓는데
芳草無邊客倚樓 (방초무변객의루 ) 나는 다락에 기대 풀밭만 바라보노라
怊悵送君自崖返 (초창송군자애반 ) 슬픈게 그대를 보내고 나 혼자 언덕에 남으면
那堪落月下汀洲 (나감낙월하정주 ) 달이 질 때 설움을 무엇으로 달래랴 .
죽향은 김삿갓이 읊는 이별의 시를 듣고 옷소매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 없이 흐느낀다. 아직까지 잠자리조차 같이해 본 일이 없던 그들이었다 . 그러나 마음의 눈이 서로 미치면 , 모든 것이 통 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
지금 대동강 가에서 이별을 앞에 두고, 가는 사람은 죽향이요 보내는 사람은 김삿갓이었다 . 죽향과 김삿갓은 좀처럼 헤어질 줄을 몰랐다 .
"배가 떠날 모양이니 , 어서 배에 오르게 ."
김삿갓이 배에 오르기를 재촉하자, 죽향은 눈물을 씹어 삼키며 ,
"선생은 이제부터 어디로 가시옵니까 ?"
하고 울성으로 묻는다.
"나는 원래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몸 , 이제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기가 어려울 걸세 ."
죽향은 그 말을 듣자, 설움이 북받쳐 올라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 이별의 시를 이렇게 읊는 것이었다 .
去去平安去 (거거평안거 ) 부디 평안히 가시옵소서
長長萬里多 (장장만리다 ) 끝없이 머나먼 만리길을
江天無月夜 (강천무월야 ) 하늘에 달이 없는 밤이면
孤叫雁聲何 (고규안성하 ) 외기러기 슬피 울어오리다
죽향은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조그만 돈주머니 하나를 김삿갓의 배낭 속에 쑤셔 넣어 주며, "이것은 몇 푼 안 되지만 , 술값으로 보태 쓰시옵소서 ."
마지막으로 그 말 한마디를 남기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나룻배에 뛰어올라, 숫제 외면을 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 눈물이 앞을 가려 김삿갓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
(죽향아 ! 부디 잘 가거라 ! 오늘의 우리들의 이별은 처음이자 마지막 이별이 될 것이다 .)
마음속으로 그렇게 뇌까리며 발길을 돌리는 김삿갓의 눈에서도 굵은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 밤 잊었던 추억인가
멀리 가버린 내 사랑은 돌아올 길 없는데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 울어 검은 눈을 적시나